"이렇게 시작하는 또 하나의 인생을”

(200 자 X 89 매)

    나는 비행기에서 내려 다른 승객들 틈에 끼어 떠밀리듯 입국 수속대로 향하여 걷고 있었다.  4 년 만에 다시 찾아온 한국의 모든 것은 이상스럽게 낯설게 느껴졌다.  초라한 이민 보따리 하나를 들고 바로 이 공항에서 미국행 비행기를 탈 때 젖은 눈으로 근심스럽게 지켜보시던 이태규 선배님의 얼굴이 생각났다.  나의 사랑하는 옥희가 나의 출국 사실을 뒤늦게 알고 통곡하듯이 울었더라는 이태규 선배님의 편지를 받은 것은 미국에 도착하고도 한참이나 지난 후의 일이었다.  어렵사리 연결된 첫 번째 전화에서 옥희는 원망이 가득 찬 목소리로 울부짖었다.  왜?  왜 말도 없이 그렇게 떠나버린 거예요?  마치 불운해야만 한다고 운명지어진 그 틀을 송두리째 뒤집어 버리려는 듯 미친 사람처럼 일하며 도전하며 살아온 지난 4 년의 세월이 내 눈 앞에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옥희.  알리지 못하고 미국으로 떠난 것은 미안하다.  그러나 나는 이렇게 되돌아왔다.    

    미국에 도착하자마자 첫 번째 얻은 직업은 개인 이삿짐을 포장해서 장거리 운송을 해주는 회사의 인부 일이었다.  고된 육체노동이었는데 나는 이를 악물며 최선을 다해서 내 몫을 해내려고 애썼다.        
그날도 나는 밤늦게 작업이 끝나서 거덜이 나도록 지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들어왔다.  차가 없는 나를 내가 속한 작업조의 조장이며 심성이 착한 제임스 영이 그날 밤도 아파트 앞 길 까지 태워다 주었다.  제임스 영은 삼백 파운드가 넘는 거구의 흑인인데 그 위협적으로 큰 외모와는 달리 마음씨가 비단결처럼 고왔다.  아직 이 사회에서 미처 뿌리를 내리지 못한 나에게 제임스 영은 온갖 조언을 해주며 강력한 후견인 역할을 해주고 있었다.
딸그락거리며 아파트의 문을 따고 들어가자 하나 밖에 없는 베드룸에서는 큰 대자로 널부러진 알렉스 라쉬드의 코고는 소리가 온 방안을 진동하고 있었다.  이 알렉스 라쉬드는 인도에서 이민 온 친구인데 이 아파트에 방을 얻으러 왔다가 아파트 앞에 있는 맥도날드에서 햄버거를 사먹으면서 알게 되어 룸메이트가 된 친구였다.  나처럼 싸구려 아파트를 얻으러 왔던 알렉스 라쉬드와는 긴 설명 필요 없이 의기가 투합하여 침실이 하나 있는 아파트를 월세 300 불에 얻어서 같이 쓰기로 했다.  
   “좋다, 같이 쓰자.  그런데 하나밖에 없는 침실은 누가 쓰지?”  
알렉스 라쉬드가 털이 밖으로 삐어져 나온 콧구멍을 손톱이 긴 새끼손가락으로 후비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는 까만 피부에 몸이 길쭉하고 깡말라서 무릎과 팔꿈치의 관절이 유난히도 불거져 나와 보이는 전형적인 인도인 모습을 한 친구였다.  
   “네가 여자라면 한 침대에서 같이 자는 것도 괜찮을 것 같겠지만 말이야, 히히.”  
    마침내 의견의 일치를 보게 되었는데 자기 말로 인도의 왕실 혈통을 이어받은 왕족인 알렉스 라쉬드가 침실을 차지하고 그 대신 방세를 175 불을 내고 나는 밖의 쏘파에서 자고 125 불을 내기로 했다.  꼭 침대에서 자야만 하는 인도 왕족과 룸메이트를 하게 된 것을 나는 실로 다행하게 생각했다.  왜냐하면 나는 당시 단 한 푼이라도 절약해야하는 절박한 상황에 처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인도 왕족의 코고는 소리를 귓등으로 들으며 나는 냉장고를 열고 내용물을 훑어보았다.  아무리 드려다 보아도 주린 배를 채울 음식물이 보이지 않았다.  나는 소파 쿠션 밑에 숨겨두었던 라면을 꺼내서 물을 붓고 끓이기 시작했다.  라면을 한 열개쯤 사서 부엌의 찬장 속에 놓아두면 내가 세 개 먹는 사이에 이 인도 왕족이 일곱 개를 해치워버리는 것이다.  내가 화를 내면서 소리를 지르면 인도 왕족은 그 큰 눈을 꿈뻑거리며 위 아 후랜즈 유 노우 어쩌구 하면서 우정을 들먹이는 것이다.  그래서 아예 감춰놓고 먹게 된 것인데 이 감추는 장소도 수시로 바꾸지 않으면 효과가 없었다.  눈치가 쥐보다도 발달한 인도 왕족은 내가 두 번 이상 같은 장소에 숨길 경우 거의 99 퍼센트의 순도를 가지고 숨긴 장소를 찾아내는 것이다.  계속 감기는 눈을 치뜨며 설 끓은 라면으로 배를 채운 후 나는 소파 위에 늘상 펼쳐져 있는 담요 위로 옷을 입은채 몸을 던졌다.  가물가물 잠 속으로 빠져 들어가면서 나는 일주일 전에 서울로 통화했던 옥희의 애타는 목소리를 또 들었다.  선우씨, 어떻게 지내요?  건강하지요?  나는 걱정하지 말고.....  하다가 바보 같은 옥희는 울음을 터뜨렸다.  선우씨, 나 언제 데리러 오는 거예요?  나 잊어버리면 안돼요.  선우씨하고 같이 있고 싶어요.  옥희의 숨죽이며 흐느껴 우는 소리는 나의 심장을 멎게 만들만큼 애절하게 들려왔다.  옥희.  조금만 참고 있어.  어려운 일이 있으면 이태규 선배님에게 도움을 받기로 약속했잖아.  전화를 드리고 의논을 해보면서 조금만 있으면 돼.  이태규 선배님.  제 옥희를 도와주십시오.  외롭지 않게 해주십시오.  빠른 시일 안에 미국에서 저와 같이 살 수 있게 된다는 확신을 심어주시기 바랍니다.  옥희.  조금만 참고 있으란 말이야.  알았어?  조금만 더 참으면 돼.  틀림없이 나는 옥희를 데리러 갈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기다리란 말이야.  알았지?  쏟아지는 잠 속으로 빨려 들어가며 나는 잠꼬대하듯, 상처 난 레코드 판 헛돌아가듯 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조금만 더 참으면 돼.  조금만.  나는 옥희를 틀림없이 데리러 갈 거야.  알았지?  알았지?

   “쌔끼야, 얼굴 노란 놈들은 전부 그렇게 계집애처럼 약하냐?  뭐 대단한 작업했다고 그렇게 빌빌대고 있느냔 말이야?”
    성깔이 사납고 언제나 나만 보면 볶아먹으려고 드는 디에고 위니쎄로가 오늘 아침에도 역시 눈깔을 부라리며 침을 튀겼다.  
   “놔둬라.  너는 일찍 들어갔지만 선우는 나하고 어제 밤 열시까지 남아서 뒷 작업 다했다.  피곤해서 힘들어하는 것은 당연한 거야.”
    포장용 담요, 이삿짐 상자들, 서류 뭉텅이등 온갖 잡동사니로 발 디딜 틈도 없이 너저분한 사무실 한쪽에 거구를 소파에 파묻고 반쯤 자듯 눈을 감고 있던 조장 제임스 영이 눈도 뜨지 않으면서 바리톤 음성으로 말했다.  디에고 위니쎄로는 찔끔해서 입은 다물었지만 살기 띈 눈으로 나를 째려보는 것을 잊지 않았다.  이 디에고 위니쎄로는 윤기 없이 메마른 백인인데  성깔이 어떻게 나쁜지 이 이삿짐 운송 회사 안에서 좋아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삐쩍마르고 기미가 많은 얼굴에 언제나 해골이 그려져 있는 검은 색 머리  띠를 두르고 있는 것이 꼭 똘마니 해적처럼 생긴 놈이었다.  기분이 언짢을 때 마다 이빨 사이로 침을 찍하고 뱉는 습관이 있는데 그럴 때마다 손바닥으로 입가를 문질러내는 것이 여간 더러워 보이는 것이 아니다.  괴력의 삼백 파운드 흑인 제임스 영이 있어서 더 어떻게 해보지 못하고 물러서야 하는 것이 배알 꼬이는지 이 똘마니 해적은 바닥에 놓여있던 빈 상자를 발로 꽝 차고 사무실을 나갔다.  나는 힐끔 제임스 영 쪽을 보았는데 제임스는 가늘게 뜬 눈으로 나를 보며 그 까만 얼굴에 유난히도 하얗게 보이는 이를 드러내며 웃고 있었다.  
   “제임스, 땡큐야.  너는 내 친구야.”
나는 진정으로 고마운 마음으로 제임스 영에게 말했다.  만약 제임스 영이 없었더라면 이 똘마니 해적이 나를 얼마나 족쳐 먹으려고 들었겠는가를 생각하면 끔찍스런 노릇이었다.  영어도 서툴고 현지 실정에도 아직 어두운데 일은 고되지만 수입이 그런대로 괜찮은 이런 직장을 그 놈 때문에 그만둘 수도 없는 노릇이었을 테니까.  
    방금 똘마니 해적이 나간 문으로 그와 거의 흡사하게 생긴 테드 죤스 사장이 들어왔다.
   “굿 모닝”
   “굿 모닝”
   “굿 모닝”
    방안에 있던 사람 모두가 마치 아첨하듯 일제히 굿 모닝을 합창했다.  
테드 죤스는 하하 웃으며 손을 흔들어 보이고 사무실 끝에 있는 자기 방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갔다.  테드 죤스 사장은 생긴 겉모습은 똘마니 해적과 놀라울 정도로 흡사한데 성품은 정반대여서 아주 인정미 있고 직원들 걱정을 자상하게 해주는 좋은 보스였다.  이 점 때문에 제임스 영 같은 힘도 세고 경험도 풍부하며 더구나 성격이 유순한 직원이 다른 회사에서 아무리 유혹을 해도 꿈쩍도 안하는 것이었다.  언젠가 내가 테드 죤스 사장에게 똘마니 해적과 너무 닮았는데 사촌지간쯤 되는 것이 아니냐고 농담으로 물었더니 테드 죤스는 펄쩍 뛰다시피 부인했다.
   “그런 놈하고 나를 비교하면 어떡해?  우린 클래스가 다르단 말이야.”
    그러고선 사람 좋게 하하 웃었다.
    테드 죤스는 복마전처럼 어지러진 그의 사무실 안에서 무얼 하는지 구식 타자기 두드리는 소리가 간간히 들려왔다.  이따금 일이 마음대로 안돼는 것인지 갓댐잇 어쩌고 하면서 욕지거리 소리도 들리곤 했다.  
    오늘은 금요일.  주급 수표가 나오는 날이다.  그동안 봉급 수표도 준비하고 작업 청구서도 보내고 서류 관계 일체의 일을 하던 여자 직원 마리아가 일주일 전에 아무 예고도 없이 그만두고 말았다.  그래서 테드 죤스 사장은 잘 할 줄도 모르는 서류 일을 해내느라고 절절매고 있었다.  그 동안은 그래도 작업 명령서가 제대로 타자되어 깔끔해 보이는 서류로 작업반장에게 전달되었었다.  그러나 마리아가 그만 둔 이후로는 테드 죤스 사장이 타자기를 가지고 씨름하다가 결국은 포기하고 삐뚤빼뚤하게 손으로 쓴 서류같이 안 보이는 서류로 대치해서 쓰고 있었다.  그리고 오늘은 마리아가 그만 둔 후 첫 번째 봉급날이었다.  한참 후에 테드 죤스 사장은 자기 방에서 나와서 제임스 영에게 다가갔다.
   “헤이, 제임스.  오늘은 작업이 없어.  그 대신 내일 토요일에는 샤피로씨의 집에서 아침 아홉시부터 작업을 해야 돼.  목적지가 캘리포니아의 쌘디에고로 되어 있어.  대륙 횡단하는 짐이니까 파손품이 안 생기도록 잘 포장해야하는 일이야.  오후에 내가 확인해서 다시 알려주겠어.  그 동안 이 작업 명령서를 가지고 일단 작업을 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준비해 놓고 있어.  메이 훌라워에서 온 작업 명령서를 그냥 사본 떴어.  내가 사실은 고등학교 일학년 때 학교를 은퇴했거든.  서류 가지고 일하는 것은 딱 질색이야.  오늘 주는 봉급 수표도 내가 대충 계산해서 그냥 손으로 써서 줄 수밖에 없어.  나는 타자할 줄을 모른단 말이야.  그 빌어먹을 놈의 마리아가 사전 예고도 없이 그만 두는 바람에 사무실 일이 엉망이 되어 버렸단 말이야."
    제임스 영이 두 손을 깍지 껴서 뒷머리에 대며 웃었다.
   “타자 안 해도 괜찮아.  거기 숫자만 가급적 높이 적어주면 돼.”
    우리는 모두 낄낄 웃었다.  웃음 끝에 나는 테드 죤스 사장에게 말했다.
   “테드 죤스 사장님.  타자라면 내가 해줄 수도 있는데요.”
   “뭐야?  선우가 타자를 친다고?”
   “물론이죠.”
    그건 사실이었다.  미국에 오기 전 한국에서 약 삼년 동안 사무실 생활을 했었는데 타자는 필수적인 것이었다.  얼마 가지 않아서 내 타자 실력은 회사 안에서도 알아주는 고수가 되었었다.  테드 죤스 사장의 지시에 의해서 곧 나는 타자기 앞에 앉게 되었다.  테드 죤스 사장이 낑낑거리며 타자하다가 잘못되어서 버린 수표가 여러 장 널려 있는 것을 보면서 나는 속으로 킥 웃었다.   나는 테드 죤스 사장의 지시대로 아홉 명의 회사 트럭 운전수들을 포함한 합계 열 여섯 명 직원의 봉급 수표를 깔끔하게 타자해냈다.  테드 죤스 사장의 입이 함박만하게 찢어졌다.  
   “이봐, 선우.  땡큐.  땡큐.”
    테드 죤스 사장은 봉급 수표들을 들고 나가면서 환하게 웃는 얼굴로 나에게 말했다.  이렇게 해서 나는 테드 죤스 사장이 가장 신임하는 오른 팔과 같은 사무실 직원이 되었다.  제임스 영 같은 거한이 수두룩한 속에서 몸으로 벌어먹기가 쉽지 않은 노릇이었는데 이렇게 사무실에서 막노동이 아닌 일을 할 수 있게 된 것은 실로 다행한 노릇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우선 그 더럽고 발 디딜 틈 없이 어지러진 사무실을 청소했다.  그리고 그 전에 일하던 마리아가 엉망으로 만들어 놓은 서류들을 모두 정리하여 아무 때나 원하는 때에 원하는 서류를 즉각 찾을 수 있도록 정돈해 놓았다.  눈으로 보아도 크게 달라진 사무실을 보면서 테드 죤스도 좋아했지만 그 보다도 제임스 영은 자기 일처럼 좋아하면서 나의 어깨를 여러 번 두들겨 주었다.
   “됐어.  됐어.  넌 냉장고를 들어내는 데에는 젬뱅이지만 사무실에서는 왕이구나.  후, 후, 후.  그런 실력이 있으면서 왜 진작에 테드에게 이야기하지 않구.”
    제임스 영은 그렇지 않아도 내가 낑낑거리면서 무거운 화물들을 맨몸으로 들어서 집 밖으로 옮겨 놓으려고 애쓸 때마다 안쓰러워하면서 뒤에서 불안한 눈으로 조심해, 조심해, 하면서 걱정을 해주곤 했는데 이제 아주 안심이 되는 모양이었다.  그는 나에게는 눈물이 나오도록 좋은 친구였다.  그리고 더욱 신나는 일은 똘마니 해적이 이제 더 이상 나에게 못되게 굴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못되게 굴기는커녕 되레 내 눈치를 살피며 점심 먹으러 나갔다 올 때는 아이스크림을 사오기도하고 아침에 출근하면 꼭 사무실에 들려서 굿모닝하고 인사하는 것을 잊지 않는 것이었다.  이 더럽고 삐쩍마른 백인 녀석이 왜 이렇게 갑자기 나에게 친절하게 구는지를 몰랐는데 어느 날 나는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야, 선우.  우리는 친구지?”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던 나에게 똘마니 해적이 은근히 닥아와서 제깐에는 가장 매력적인 웃음을 담은 얼굴로 나에게 물었다.
   “물론.”
   “사실은 말이야.  내가 가족이 여러 명 있거던.  내가 이번 주에는 오바타임을 몇 시간이나 했지?”
    "아직 계산 안 해봤는데.”
   “그, ... 말하자면 오바타임을 한 다섯 시간만 더 써넣어줄 수 있니?  마리아가 할 때에는 더러 인간적으로 했었거든.”
    나는 속으로 쿡하고 웃었다.  그랬구나.
   “난 못하겠는걸.”
    똘마니 해적의 안색이 순식간에 험하게 변했다.  이빨 사이로 마루 바닥에 침을 찍 뱉아내곤 험악한 어조로 말했다.
   “협조적으로 하는게 신상에 좋을텐데.”
    나는 다소 불안한 마음으로 똘마니 해적을 곁눈질해 보았다.  그러나 나는 미국에 까지 와서 이런 불의에 타협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교활한 똘마니 해적은 내 표정을 보다가 얼른 작전을 바꾼 모양이다.  험악했던 얼굴에 순식간에 웃음기를 살살 띄웠다.
   “야, 선우.  내가 그냥 해달라는 것이 아니야.  일부는 너한테도 혜택이 가게한단 말이야.  알겠어?  마리아하고도 그렇게 했어.”
   “난 그런 것은 안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해.”
    똘마니 해적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싹 가시고 대신 살기가 흐르면서 나를 째려보다가 홱 몸을 돌려 발소리를 크게 내며 밖으로 나갔다.  나가면서 이빨 사이로 또 한번 찍 침 뱉는 것을 잊지 않았다.

    테드 죤스 사장은 내가 사무실에서 하는 모든 일에 대만족이었다.  봉급도 올랐다.  8 년 묵은 낡은 쉬보레 헌털뱅이지만 차도 하나 샀다.  이렇게 하면서 나는 이제 제법 미국에서 사는 사람처럼 되어가고 있었다.  미국에 와서 첫 번째 하는 세금 보고서도 작성해서 세무국으로 발송했다.  회사의 세금 관계를 맡아서 처리해주고 있는 회계사 사무실을 통해서 세금 보고서를 작성했는데 매번 봉급 수표를 받을 때마다 세금을 너무 넉넉하게 떼어서 되레 오백 몇 십 불 정도 돌려받을 거란다.  세금 보고서는 별도로 한 부 사본을 더 떠서 옥희의 초청이민 재정 보증용으로 남겨 놓았다.  이제 또 얼마를 더 기다려야 나는 옥희와 같이 합치게 되는 것인가.  난감한 생각이 안 들 수 없었지만 다른 방법이 없는 노릇이었다.  테드 죤스 사장은 어디서 누구를 구어 삶았는지 아주 근사하게 잘 써진 추천서를 가지고 와서 내 앞에서 보란 듯이 서명했다.  한국에 있는 이민 부로커가 가급적이면 많은 추천서가 있을수록 좋다고 했으므로 나는 테드 죤스 사장과 제임스 영에게 추천서 부탁을 해놓았던 것이다.  
   “선우.  오키라고 했지?  빨리 미국에 와서 행복하게 살기를 바란다.”
    테드 죤스는 악수까지 청하면서 근엄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선우.  너는 성실하고 머리가 똑똑하니까 아주 잘 살 거야.  나는 이놈의 머리가 잘 안 돌아가서 말이야.  후, 후, 후.”
    제임스 영도 기꺼이 테드 죤스가 준비해온 추천서에 서명을 하면서 가슴 속까지 울려대는 저음으로 말했다.  나는 모든 서류를 정성껏 봉투에 담아서 단단히 봉한 후 내 손으로 직접 한국에 있는 이민 부로커에게 발송했다.  그러면서 또 한번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옥희.  아무 걱정하지 말고 잠시만 더 기다려주면 된다.  미국에 먼저 간 남자가 한국에 있는 여자 버려두고 현지에서 만난 여자와 결혼해서 잘 산다는 따위의 이야기는 우리에게는 해당이 안돼는 이야기다.  한국에서 내가 그렇게 실패에서 실패를 거듭하면서 비참하게 살 때에도 너는 나를 버리지 않았다.  내가 미국에서 미친 것처럼 열심히 일해서 생활을 안정시키고 가장 빠른 시간 안에 너를 이곳으로 데리고 와서 아무 걱정 없이 행복하게 잘 살도록 만들겠다고 결심하고 있는 것은 실로 당연한 일일 뿐이다.  너와 나는 남자와 여자, 남편과 아내일 뿐만 아니라 가장 가깝고 신뢰할 수 있는 혈맹의 친구이기도 하다.  네가 미국에 오게 되면 나는 너를 유리로 만든 온실 속에서 외풍과 비바람을 타지 않도록 보호하고 단 일편의 근심 걱정도 없이 살도록 해주겠다.  그렇게 하기 위하여 내 뼈를 갉아 내야한다면 나는 그렇게라도 하겠다.  그렇게라도 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을, 옥희야, 나는 너에게 분명히 서약한다.
    우체국에서 등기 우편 수취 증명서를 받아들고 나오면서 나는 주먹을 불끈 쥐어 보았다.  여기는 나 같은 놈이 잘 먹혀들어갈 것 같은 풍토다.  나는 어쩐지 모든 것이 낯설은 이 곳에서 되레 자신이 붙고 온몸이 투지에 불타오르는 것을 느꼈다.  나는 꿀렁 꿀렁 소리를 내면서도 잘도 달리는 낡은 시보레 차를 몰고 이 도시에 꼭 하나 밖에 없는 한인 교회로 갔다.  상당히 큰 미국 교회에 세 들어서 예배를 보는 곳인데 밖에서도 찌렁찌렁 들리는 정열 넘치는 목사님의 설교 소리와 큰 교회 규모와는 대조적으로 설교를 듣고 있는 교인은 십여 명에 불과했다.  나는 뒤쪽의 벤치에 소리를 죽이며 가만히 앉았다.  설교하고 있는 목사님의 뒤쪽 높은 곳에 서 있는 십자가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못박혀서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천장에서 내려오는 조명이 아주 잘 어우러져서 마치 지금이라도 그가 고개를 들고 인자스런 눈으로 나를 내려다 볼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나는 두 손을 무릎 위에서 모두고 눈을 감고 기도를 드렸다.  한국에서 나의 소식만 목마르게 기다리고 있는 옥희에게 축복을 내려 주십시오.  빨리 옥희가 내 곁에서 아무 걱정 없이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항상 자신의 어려움을 뒤에 놓고 저희를 위해 애써주시고 걱정해 주시는 헌신적이신 이태규 선배님에게도 많은 행운을 주십시오.  그리고 저희와 마찬가지로 재회의 날을 기다리며 안타까운 생활을 하고 있는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도 따뜻한 축복을 주십시오.  실패에서 실패로 이어지며 좌절과 절망으로 보내던 생활은 마감이 되었습니다.  여기 이 기회의 나라에서 이렇게 시작하는 또 하나의 인생을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지켜보시면서 올바로 갈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아멘.  아멘.

    그러고도 한 일년여를 더 테드 죤스의 회사에서 일을 한 후 나는 독립했다.  개인 이삿짐을 운송해주는 내 회사를 하나 만들어 버린 것이다.  테드 죤스의 회사에서 사무실 일을 하는 동안 거의 하루 종일 고객의 문의에 답하고 가격 견적도 하면서 지내서 영어 실력은 엄청나게 늘어 있었다.  내 사무실을 시작했을 때 테드 죤스는 다소 언짢아했는데 내가 사무실만 있고 실제 일을 모두 테드 죤스의 회사에 의존해서 일을 하니까 시간이 흐르면서 테드 죤스는 되레 괜찮은 아이디어라고 환영하게 되었다.  입심이 제법 괜찮은 나는 테드 죤스의 경쟁 회사로 가던 일까지 척 나꿔채서 갖다 놓을 정도로 쎄일즈의 실력이 늘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나는 말하자면 몇 푼 안 되는 자본을 투자하여 꽤 수입이 괜찮은 운송 회사의 사장이 된 셈이었다.  그 동안 열심히 일한 보람이 있어서 정직하고 성실한 사람이라는 평을 얻게 되었고 운송 주문은 혼자서 감당하기가 힘들 정도로 폭주해서 들어오고 있었다.  당연히 수입도 봉급 받을 때와는 비교할 수 없도록 많아지게 되었다.  한국에 있는 옥희에게도 한달에 750 불씩 송금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이 때 까지도 나는 똑 같은 아파트에서 그 인도의 왕족 혈통을 이어받은 알렉스 라쉬드와 같이 살고 있었는데 일단 먹고 사는 민생고 문제가 해결이 되자 이 더럽고 지저분하기 짝이 없는 인도 왕족이 몹시 거추장스럽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이제 나에게는 내가 잠그고 나가고 또 들어올 때에는 나만 열 수 있는 그런 공간이 필요했다.  더구나 이 인도 왕족은 왕실에서 송금이 제 때 도착하지 않는 문제가 있으므로 인해서 아파트 세를 3 개월 치나 밀리고 있었다.  당연히 나는 내가 대납해서 낸 그의 몫의 아파트 세를 달라고 거의 매일 싸움질을 해댔다.  그러던 차에 어느 날 퇴근하여 무심코 아파트 문을 여니 부엌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나는 호기심을 앞세우고 기웃해 보았다.  인도 왕족이 빨갛게 충혈된 눈으로 얼굴을 잔뜩 찡그리고 수음을 하고 있는데 그 앞 식탁 위에는 나의 옥희가 보내준 사진첩이 펼쳐져 있는 것이 아닌가 말이다.  그 사진첩 속에는 나만 보라고 옥희가 찍어서 보낸 수영복 차림의 사진도 여러 장 들어 있었다.  이 인도 왕족은 그 때 마침 절정의 쾌감 속으로 돌입하던 순간이었던지 나를 보고 놀라는 얼굴을 하면서도 성기를 붙잡고 맹렬히 흔들던 손을 멈추지 못했다.  그는 손으로 성기를 붙잡은 채 혼비백산해서 뛰어 그의 침실로 들어가 쾅하고  문을 닫고는 안으로 잠구어 버렸다.  나는 잠긴 문을 사납게 두들기며 영어와 한국말을 다 섞어가며 내가 생각할 수 있는 욕지거리를 모두 해댔다.  
   “미안해.  선우.  미안해.  화내지 말어.  내가 잘못했다고 빌고 있어.  아이 엠 쏘리.  쏘리.”  
    녀석이 문 안에서 애원하듯 싹싹 빌고 있는 것이 눈에 보이는 것 같았다.
    흥분이 좀 가라앉자 조심스럽게 눈치를 보며 문을 열고 나온 인도 왕족과 나는 마주 보며 앉았다.  옥희의 수영복 사진을 보면서 수음을 할 수 있는 권리는 나에게 밖에 없는데 이 짜식이 성역을 침범했다는 것이 몹시 나를 분노하게 했고 불결감을 느끼게 했다.  
   “미안해.  절대 나쁜 뜻이 있었던 것은 아니야.  네가 원하는 대로 내가 나갈게.  어차피 여기서는 일이 잘 안 풀리고 있어.  나는 뉴욕으로 가겠어.  뉴욕에 가면 일자리가 있을지도 몰라.  밀린 아파트 세는 송금이 오는 대로 곧 붙이겠어.  미안해.  미안해.”
    이야기하면서도 인도 왕족은 내가 혹시 완력을 쓰지 않을까 몹시 걱정하고 있었다.  이렇게 해서 나는 아파트 세 삼 개월 치를 떼이긴 했지만 인도 왕족을 내쫓을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아파트 관리 사무실에 전화해서 이십 불을 지불하고 아파트 문의 열쇠를 바꿔달라고 신청했다.  혹시 이 녀석이 또 도둑놈처럼 들어와서 옥희의 수영복 사진을 보면서 흔들어대면 큰일 아닌가 말이다.  
이러는 사이에도 시간이 흐르면서 나의 비지네스는 계속 더욱 탄탄해지고 있었고 더구나 희망적인 것은 옥희의 비자 받을 날자가 가까워오고 있다는 것이었다.  

    어느날, 테드 죤스가 사전에 전화도 없이 불쑥 내 사무실에 나타났다.  몹시 절망적인 표정이었다.    
   “선우.  큰 일 났어.  내가 소속되어 있는 메이 훌라워 가맹점 본부가 도산했어.  미수금이 한 십만 불 되는데 하나도 못 받게 됐단 말이야.”
    그런 일이 있고 채 한 달도 되지 않아서 테드 죤스 회사도 도산해 버리고 말았다.  십만 불씩이나 미수금을 잘려버리고는 작은 업체가 살아남을 길이 없는 것이다.  매달 할부금을 내고 있던 화물 트럭, 훠크 리프트등 각종 장비는 융자 회사에서 회수해가 버리고 회사는 껍데기만 남은 채 게이트에 자물통을 채워 놓고 아무도 얼씬하지 않게 되었다.  다행히도 우직스럽고 일을 잘하는 제임스 영과 대개의 직원들은 모두 다른 회사로 수월하게 자리를 옮겨 가게 되었다.  유독스레 똘마니 해적 디에고 위니쎄로만 안 팔려나가서 무직자가 되었고 짜식은 체면 불구하고 내 사무실에 나타나서 기웃기웃 둘러보더니 멋쩍게 웃으며 선우, 혹시 너, 일자리 하나 줄 수 없니? 했다.  나는 어처구니없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며 그의 얼굴을 보기만 했다.  똘마니 해적은 눈치를 보다가 매 맞은 강아지처럼 비실비실 내 사무실을 나갔다.  그나저나 문제는 내 일을 해주던 하청 업체가 문을 닫아 버렸으니 당장부터 큰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나는 대타로 급하게 다른 회사와 용역 계약을 해서 발등의 불을 껐다.  그리고는 이번 기회에 큰 맘 먹고 창고를 만들고 트럭도 사서 모든 일을 직접 내가 하기로 결심하고 추진하기 시작했다.  제임스 영이 와서 도와준다면 문제가 없겠다고 생각했지만 다음 기회를 보기로 했다.  그 친구는 봉급이 높아서 내 작은 능력으로는 벅찰 뿐만 아니라 처음 시작하는 일인데 딴 회사에 막 자리를 옮기고 일 잘하고 있는 사람을 혹시 안 될지도 모르는 일에 끌어들여서 위험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았다.  그 이 후 약 6 개월 동안을 나는 몸이 둘이라도 모자랄 정도로 불철주야로 미친 것처럼 일했다.  피곤하고 힘들 때마다 나는 이것이 나만을 위한 것이 아니고 옥희와의 행복한 미래를 위한 것이라고 위로했다.  내가 미국에 첫 발을 디뎠을 때 고생했던 것은 나 하나로 족하다.  나는 옥희가 미국에 왔을 때 똑같은 고생을 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래서 나는 옥희가 만족할만한 미래를 만들기 위해서 미친 것처럼 몰두해서 일했다.  작지만 창고도 얻어서 이사했다.  처음으로 구입한 중고 트럭 두 대가 들어오던 날은 새로 생긴 사무실 직원 한 명과 운전기사 두 명과 함께 환호성을 질러댔다.  정직하게 열심히 일하는 회사라는 정평을 받으며 우리는 새벽부터 밤늦게 까지 점심 먹을 시간도 아껴야할 만큼 바쁘게 돌아갔다.  구입한 두 대의 트럭은 정비할 시간마저 없을 만큼 넌스톱으로 운행되었다.  너무 빠른 성장은 실패를 불러올 수도 있으므로 나는 신중에 신중을 기했지만 트럭을 두 대 더 주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일이 바쁘게 돌아가고 시간외 근무 수당도 상당히 지급되니까 직원들도 생기 있게 일하고 사기가 충천해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집에서 막바로 거래선 사무실로 가서 상담을 하고 열시쯤 출근을 했는데 내 책상 앞에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 거대한 흑인의 뒷모습이 앉아 있었다.  나는 그 뒷모습을 보다가 환하게 웃으며 다가갔다.  
   “제임스!”
    제임스 영도 사람 좋아 보이는 그 얼굴에 큰 미소를 띄우고 돌아보았다.
   “선우.  대단하구나.  회사가 많이 커졌어.  나는 네가 잘 해낼 것을 알고 있었어.”“그래, 제임스.  나는 열심히 뛰고 있어.  다행히도 비지네스는 잘 되고 있는 셈이야.  너는 어떻게 지냈니?”
   “나는 지금 직장이 필요해.  나를 고용해 줄 수 있겠어?”
   “제임스.  물론이야.  제임스가 나하고 일해 줄 수 있다면 고마워해야할 사람은 나란 말이야.  그런데 지금 일하던 직장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어?”
   “짜식, 나쁜 놈이야.  일도 바쁘게 잘되는데 지난 두 달 동안 봉급을 받지 못했어.  돈이 없다는 거야.”마침 더 주문한 두 대의 트럭이 나오면 사람을 그만큼 더 고용해야하는 상황이었으므로 아주 잘된 일이었다.  더구나 제임스 영 같으면 회사를 통째로 맡겨 놓아도 안심이 되는 그런 사람이다.  이건 틀림없이 횡재가 아닐 수 없었다.  

   “선우씨, 나 비자 나왔어요!”
    곤하게 자다말고 받은 전화통에 대고 옥희가 고함지르다시피 말했다.  나는 잠시 잠을 떨궈버리고 정신을 차리려고 애쓰다가 그 말의 의미를 찾아내곤 벌떡 침대 위에 일어나 앉았다.  
   “그게 진짜야?  근데 왜 인터뷰 날자가 정해졌을 때 나한테 알리지도 않았지?”
   “혹시 떨어질까봐 숨기고 있었어요.  창피하니까.”
    이 속 좁은 여자라는 동물들은 생각하는 것이 이 정도밖에 안된다니까.  이 생사를 가르는 일에 창피할까봐 안 알렸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말이다.    밤새 한숨도 자지 못하고 부스스한 눈으로 출근하기가 무섭게 나는 제임스 영부터 찾았다.
   “제임스.  옥희가 입국 비자가 나왔어.  나는 한국에 간다.  옥희를 데려오기 위해서 한국에 당장 간다.  제임스, 내가 돌아 올 때 까지 회사는 네가 책임지고 잘 돌아가게 해줘.  알았지?”
    순박한 제임스 영은 자기 일처럼 기뻐하며 연방 벙실벙실 웃었다.  
   “그렇게 오래 기다리더니 이제 데리고 올 수 있다는 말이지?  축하해.  이쪽 일은 염려 말고 잘 다녀와.”
    설레는 가슴으로 나는 4 년 만에 한국행 비행기를 탔다.

    부산한 입국 수속대에서 절차를 마치고 밖으로 나온 나는 꿈꾸는 것처럼 멍한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어느 것 하나도 현실인 것 같지가 않았다.  사 년 만에 보는 김포 공항은 몹시 낯설은 느낌이었다.  와글거리며 서있는 사람들도, 유리문 밖으로 보이는 택시의 행렬도, 또 가로수도 모두가 나에게는 낯설게 느껴졌다.  그리고 거기에, 아, 무리진 사람들 속에 가늘고 큰 키의 옥희는 하얀 얼굴로 뭔가 다소 두려운 듯 멈칫거리며 마치 낯선 사람을 보듯 나를 보고 있었다.  나는 두 말 없이 달려들어 남이 보던 말던 상관 않고 옥희를 으스러지게 끌어안았다.  그제서야 옥희는 이것이 꿈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낸 듯 흑, 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사 년 만에 안아보는 옥희의 몸은 내 기억에 남아있던 것 보다는 다소 여윈 것 같았다.  그러나 거기에는 내가 죽을 때 까지 잊을 수 없는 그 정겨운 체취가 있었다.  옥희는 일부러  친구들 아무에게도 연락을 안했다고 했다.  잘했어.  잘했어.  막바로 택시를 타지 않고 나는 일부러 옥희와 걸어서 공항을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만남의 흥분이 가시면서 옥희는 드디어 쫑알대며 그 동안의 생긴 일들을 수다 떨기 시작했다.  일단 옥희의 수다가 시작되면 아무도 막을 수 없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빙그레 웃으면서 어떤 수다든 다 들어주기로 작정하고 귀를 기울였다.
한참 각종 소식을 전하다가 옥희는 말했다.  
   “참, 선우씨가 송금해 준 돈 말이예요.  선우씨 재주가 별로 없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혹시 또 어떤 일이 생길지 알 수 없어서 그 돈은 내가 쓸 수가 없었어요.  꼭 필요할 때만 생활비를 조금씩 빼 쓰고 나머지는 모두 정기적금에 넣어 두었거든요.  여기 통장이.....”
    그 통장에는 놀랍게도 이천 칠백만 원의 돈이 들어 있었다.  나는 왈칵 눈물이 나올 것 같아서 황급히 외면해버렸다.  이렇게 돈이 있어도 쓰지 못하고 모아두어야 했다는 것은 내가 한국에 있을 때 얼마나 무능력하게 옥희를 고생시켰었는가에 대한 확고부동한 증거인 것이다.    
   “옥희.  여기하고 달라서 미국에서는 난 괜찮아.  이 정도의 돈은 다 써버렸어도 상관이 없었을 거야.  괜히 돈 아끼려고 고생만 할 필요가 없었는데.”
    나는 미국에서의 내 비지네스 이야기를 좀 과장을 섞어가며 떠벌렸다.  나는 옥희에게 뼈저린 고생과 가난이 끝났고 이제부터는 그렇게 까지 허리띠를 졸라매면서 살 필요가 없어졌다는 사실을 엄연하게 인식시키고 싶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확실히 해둘 것이 있었다.  이제는 두 번 다시 이별하는 일이 없겠다고 말이다.  줄에 매달아서 꽁무니에 차고 다니는 한이 있어도 절대로 떨어지지 않겠다는 것이다.  옥희는 발걸음을 멈추고 눈물이 가득찬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다가 말없이 두 팔로 나의 목을 감고 끌어안으며 흐느껴 울었다.  김포 공항을 걸어서 빠져 나와 우리는 화곡동을 지나고 등촌동 언덕을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가고 있었는데 그 때 까지 내내 연애하는 십대 소년 소녀처럼 빈틈없이 부둥켜안고 있었다.  
   “선우씨”
   “응?”
   “그럼, 나, 이제 미국 가기 전에 드레스 하나 사 입어도 돼요?”
    나는 갑자기 목이 메어서 대답을 할 수 없었다.  눈물을 보이는 것이 싫어서 다른 곳을 보는척하며 응, 그럼, 물론이지, 하며 내 감정을 가다듬으려고 애썼다.  
   “선우씨”
   “응?”
   “미국에 가면 진짜로 이 돈이 필요 없는 거예요?”
   “물론이야.  다 써버렸어도 상관이 없었단 말이야.  그렇게 까지 고생하면서 돈을 아낄 필요가 없었다니까.”
   “그럼, .....”
    ".... 왜?“
   “미국으로 떠나기 전에 이 돈을 드리고 싶은 분이 있어요.”
   “누군데?”
   “이태규 선배님.”
    아, 나는 나지막하게 신음하듯 소리 질렀다.  이태규 선배님.  물론이다.  
   “일주일에 한번씩 틀림없이 전화도 해 주시고 찾아오시기도 하면서 항상 걱정을 해주셨어요.  너무 고마우신 선배님이세요.  선우씨가 틀림없이 나를 잊지 않고 찾아오신댔어요.  그리고 그건 신의 계시와 비슷한 그런 예언이라
고 했어요.“
   “맞아.  이태규 선배님.  내가 한국에서의 힘든 생활을 견디다 못해 빈털터리로 미국으로 떠날 때에 공항까지 같이 나왔었지.  아직도 그렇게 생활이 어려우신가?”
   “하나도 변하신게 없어요.  가난하고, 노총각이고, 그러면서도 꿈은 엄청나게 크고.  불의에 타협할줄 모르고.  하나도 변하신게 없다니까요.”
   “좋은 생각이야.  옥희가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을 나는 자랑스럽게 생각해.  그럼, 우리 오늘 저녁에는 이태규 선배님을 모시고 같이 식사나 할
까?  무교동의 뚝배기 설렁탕을 좋아하셨었는데.“
    옥희는 핸드백에서 동전을 꺼내들고 길가의 공중전화 박스 앞에 섰다.  눈물이 번진 얼굴이 환하게 웃고 있었다.  
   “이건 행운의 메시지를 보내는 동전이에요.  이태규 선배님뿐만이 아니고  우리처럼 어렵게 사는 다른 모든 분들에게도 나는 사랑과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어요.”  
    옥희의 가늘고 긴 두 손가락 사이에서 동전은 가로등 불빛을 받아 보석처럼 반짝 빛났다.  


김   영   문 / YOUNG MOON KIM   (05/26/03)
LOS ANGELES, CA.

(이 글은 2003 년 재외 동포 재단 문학상 수상집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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