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 (그 첫 번째 이야기)

2007.10.03 01:58

김영문 조회 수:834 추천:140

                                  감자
                           (그 첫 번째 이야기)


    민디라는 아이를 알게 된 것은 내가 선생으로 일하고 있는 교회의 한글학교에서였다. 섬세하고 차림이 세련된 백인 여자가 아이의 손을 잡고 왔으므로 나는 즉시 그 아이가 한국에서 입양되어 온 아이일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었다.  아이의 양어머니는 이름이 벡키 클라크라고 했고 캘리포니아 주립 대학에서 음악을 가르치고 있는 교수라고 했다. 여자는 사십 대 초반쯤의 품위 있는 모습으로 항상 미소 지으며 이야기하는 것이 아주 사교적이고 따뜻한 성품을 가진 여자인 것 같았다.
    “2년 전에, 그러니까 민디가 네 살 때 한국에서 데리고 왔어요. 강원도의 어느 고아원에서 살고 있었는데 국제 입양 기구에서 소개를 받았지요. 여러 아이를 보고 결정하라고 했지만 고아원에 찾아가서 민디를 첫 번 보았을 때 나는 다른 아이를 볼 필요가 없다고 즉시 결정을 했어요. 그 아이가 나를 보는 눈이 그만 나를 사로잡고 말았습니다.”
    나는 어쩐지 내 나라 아이를 내 나라 사람이 거두지 못하고 미국의 백인 여자가 입양해 왔다는 사실이 부끄러워 이 여자를 똑바로 볼 수 없었다.
    “좋은 일을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아이가 빨리 잘 커서 벡키씨에게도 역시 좋은 일을 많이 해서 보답하기를 바랍니다.”
    나는 입안으로 우물거리면서 인사했다.
    “아니에요. 내가 민디를 도와주고 있는 것이 아니에요. 사실 나는 민디가 나를 도와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결혼해본 적이 없이 혼자서 내 멋대로 살았는데 민디가 내 생활의 일부분이 된 이후에야 비로소 나는 가정이 무엇인지, 책임이 무엇인지를 뒤늦게나마 새삼 깨우치면서 살고 있습니다.”
    말하면서 민디를 보는 벡키의 눈에 사랑이 가득 들어있었다. 그녀는 길고 섬세하게 생긴 손을 들어 민디의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쓸어 올려 주었다.
    “민디가 내 가족이 된 이후부터 내 생활에 활기가 생겼어요. 저녁에 일이 끝나면 빨리 집에 들어가 맛있게 저녁 식사를 준비해 주어야 할 내 아이가 있다는 것은 말할 수 없는 즐거움입니다.”
    말을 하는 사이에 차츰 벡키의 목소리에 생기가 솟아난다고 느끼면서 나는 벡키가 정말로 민디를 마음속으로부터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처음 왔을 때 저녁 식사 후에 내가 피아노를 치면 민디는 내 옆에 가만히 앉아서 내 피아노 음악에 귀를 기울이는 거예요. 여러 곳에서 음악회를 하고 박수도 많이 받았지만 나는 이제 비로소 내가 찾던 정말 좋은 청중을 만났다는 느낌이었어요. 나는 민디를 만나게 해준 하나님에게 감사해요.”
    민디라는 아이는 우리 둘이 대화하는 것을 들으면서 아무 말도 없이 얌전하게 앉아 있었다. 깔끔하게 다림질이 잘 되어 있는 옷을 입고 가만히 아래만 내려다보며 앉아 있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이 아이가 어쩐지 내향성의 외톨이 성격일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같이 살기 시작한지 몇 개월 후부터 피아노를 가르치기 시작했는데 민디는 놀라운 이해력으로 음악을 배웠어요. 하마터면 발견되지 못하고 버려졌을지도 모르는 재능이에요. 나는 음악을 전공한 내가 민디를 발견했다는 것은 정말 하나님이 주신 은혜라고 생각해요.”
    나는 민디의 목소리를 들어보고 싶었다.
    “민디야, 선생님이 이제부터 좋은 친구가 되어줄게. 알았지?”
    아이는 수줍은 얼굴로 대답하지 않고 의자 위에 앉아서 공중에 대롱대롱 매달린 다리를 조금씩 흔들고 있었다.
    “여섯 살이니까 학교에 들어갔겠구나?”
    그제야 민디는 나를 보면서 고개를 끄덕했다. 나는 그러나 아직도 민디의 목소리를 듣는데 실패하고 있었다.
    “그래, 민디야. 일요일마다 여기 오면 친구를 많이 사귀게 돼. 아주 재미있을 거야.”
    “친구? 프렌드?”
    드디어 민디가 입을 열었다. 민디의 목소리는 아주 맑고 예뻤다. 그렇게 보아서 그런지 굳었던 얼굴 표정도 풀리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벡키와 의논하여 매주 일요일 예배가 끝난 후 두 시에 시작하는 클래스에서 민디에게 한글을 가르치기로 했다.
    “한 가지 주의해 주실 것은 민디는 감자를 보면 울어요. 왜 그런지 아직도 이유를 알아내지 못했어요. 그것만 조심해 주시면 되요.”
    “감자를 보면 운다고요?” 좀 이해하기 힘든 말에 내가 되물었다.
    “네, 둥글게 통째로 있는 감자를 보면 갑자기 울기 시작해요. 묻고 되물어도 한사코 설명을 안 해요.”
    벡키의 감자 이야기를 듣고 갑자기 굳어지는 표정으로 외면하는 민디의
눈에 물기가 어리면서 불빛을 받아 반짝 빛났다. 나는 민디가 혹시 또 그 작은 마음속으로 울고 있는 것은 아닐까 걱정했다. 감자. 왤까?


    첫 번째 클래스에 민디를 데리고 와서 교실에 앉혀놓은 벡키는 걱정스러운 눈으로 돌아보고 또 돌아보다가 교실을 떠났다. 클래스가 끝나기 삼십분쯤 전에 전화해 달라며 벡키가 남겨놓은 휴대 전화 번호를 주머니에 넣으며 나는 벡키가 지금부터 내 전화가 갈 때 까지 긴장 상태에서 전화가 울리기만 기다리고 있으리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었다.
    걱정했던 대로 민디는 다른 아이들과 잘 어울리려들지 않았다. 그리고 그렇게 설명을 해드렸는데도 몇몇 한국인 부모님들은 민디를 손가락질하며 저희들끼리 고아원 출신이고 입양아라고 입 소문을 퍼뜨리고 있었다. 예민한 민디가 그 묘하게 꼬아 보는 시선을 느끼지 못할 턱이 없다고 걱정되어 나는 전전긍긍했다. 더구나 어느 어머니가 자기 아이에게 그 아이는 고아원 출신이니까 같이 놀지 말라고 말하는 것을 엿듣고 나는 아연했다. 이 미국에 까지 와서 그런 고루하고 폐쇄적인 사고방식을 벗어나지 못하고 사는 그 사람이 불쌍했다.
    첫 번째 일요일 클래스가 끝나자 나는 민디의 손을 잡고 복도에서 기다리고 있는 벡키에게 데리고 갔다. 민디는 보드랍고 따뜻한 작은 손을 나에게 맡기고 얌전하게 내 옆에서 걸었다. 첫 날은 아주 성공적으로 잘 끝나서 내 생각에 민디와 나 사이는 몹시 가까워졌다는 느낌이었다. 또 한 번의 일요일이 지나면 나는 작지만 어쩐지 단단하게 굳어 있는 것 같은 민디의 마음속으로 들어가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민디는 올 때보다는 환해진 얼굴로 두 팔을 벌리고 달려가 벡키의 다리를 감았다. 벡키는 민디의 밝아진 얼굴을 보며 고맙다고 땡큐를 수도 없이 연발했다.
    “한국말을 할 기회가 없으니까 그나마 조금 하던 말을 다 잊어버릴까봐 무척 걱정했는데 정말 고마워요.”
    민디에 대한 벡키의 아름다운 배려에 나는 그저 감격하고 목이 메어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두 번째 클래스쯤에서는 민디와 상당히 가까운 사이가 되어서 민디의 마음속으로 들어가 볼 수 있을 거라는 예상은 틀린 것이었다. 다른 아이처럼 떠들며 뛰어놀던 민디를 붙잡고 조심스럽게 감자 이야기를 물어보자 아이는 갑자기 조용해졌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꼬옥 다문 입은 그 후 벡키가 와서 아이를 데리고 갈 때 까지 한사코 열리지 않았다. 나는 성급하고 서툴게 접근했던 나의 바보스런 행동을 몹시 후회했다.
    세 번째 클래스에서도 아무 진전이 없었다. 그러나 나는 민디가 분명 나와의 관계에서 좀 더 신뢰감을 더해가고 있다는 것을 틀림없이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클래스에서 만난 다른 아이들하고도 그 사이에 몹시 친해져서 이제는 스스럼없이 같이 뛰어 놀았다. 그중에서도 교회 목사님의 아들 찰스하고는 아주 친해져서 민디는 찰스가 가는 곳에는 어디든 졸졸 따라다니며 그의 말을 잘 들었다. 찰스는 열 한 살이었으므로 민디 보다는 다섯 살이나 많았다. 아마 민디가 작은 동생 정도로 생각되었던 모양인지 찰스 역시 민디를 좋아해서 친절하고 자상하게 좋은 친구가 되어 주었다.  목사님과 사모님도 흐뭇한 기분이 되어서 이런 것을 지켜보았다.
    네 번째 클래스 점심시간에 민디는 뛰어놀다가 할딱거리며 내 책상 앞으로 와서 눈치를 가만히 보더니 가까이 다가왔다. 그리고는 나를 빠안히 올려다보았다.
    쉬는 시간을 틈타서 밀린 공부를 하던 나는 책을 덮고 민디를 보았다.
    “왜?”
    내가 물었다.
    민디는 아무 말 없이 손가락으로 책상에 세워져 있는 사진 액자를 가리켰다.
    “아, 이거? 이거는 내 아들의 사진이야. 이름은 호영이였어. 김호영.”
    민디의 눈빛이 더 알고 싶다고 나에게 말하는 것 같았다. 뜻밖에도 나는 이 작은 아이 때문에 아픈 기억을 되살려야하게 되었다.
    “나하고 차를 타고 가다가 사고가 났어. 다른 큰 차하고 부딪친 거야. 그래서 하늘나라로 갔어.”
    얼마간의 상처만 입고 살아남은 나를 아내는 왜 대신 죽지 않았느냐는 듯 저주스러워 하다가 어느 날 홀연 행방불명이 되어 버렸다는 이야기를 나는 그러나 민디에게는 하지 않았다.
    “그 때 호영이는 아홉 살이었어. 목사님 아들 찰스하고도 참 친했었지. 그런 일이 있은 지 벌써 2년이 되어가는군.”
    이야기를 듣던 민디의 눈에서 갑자기 닭똥 같은 눈물이 떨어져 내렸다. 나는 당황하여 얼른 화장지를 꺼내 눈물을 닦아주었다.
    “선생님이 쓸데없는 이야기를 했구나. 미안하다, 민디야.”
    민디는 내가 눈물을 닦아주는 대로 얼굴을 맡기고 가만히 있었다. 소리 내어 울지는 않았지만 민디의 눈에서는 계속 눈물이 흘러내렸다. 나는 민디가 몹시 감수성이 예민한 아이인 모양이라고 생각했지만 또 한 편에서는 어쩐지 만나보지도 못한 아이의 죽음에 대해서 너무 슬퍼하는 것이 좀 이상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민디의 가슴 속에 무엇이 도사리고 있어서 그 작은 마음을 울게 만들고 있는지 알아낼 수가 없으니 안타깝고 답답했다. 더구나 어째서 통감자를 보면 운다는 것일까? 그러나 나는 급하게 서둘다 도리어 민디의 여린 마음을 다치게 하는 것보다는 참을성을 가지고 아이가 마음을 열어줄 때 까지 기다리는 것이 훨씬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같이 산 지 2년이나 지났으면서도 내 아이의 마음속에 무엇이 그렇게 고통스럽게 남아 있는지 알 수 없으니 정말 속상하는 일이에요. 나는 이 아이의 모든 것을 알고 싶은데 민디는 자기의 모든 것을 나에게 털어놓지 않고 있어요. 분명히 무엇인가를 나한테 숨기고 있는 것 같은데 무엇인지 알 수가 없어요.”
    벡키가 어느 날 하소연하듯 말했다. 내가 답답하니 어머니인 벡키는 얼마나 더 답답할 것인지 상상하고 공감할 수 있는 일이었다.
    “민디가 마음을 열 때 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언젠가는 말을 해주겠지요.”
    “알고 있어요. 기다리는 수밖에 없어요.”
    저쪽에서 뛰어놀고 있는 민디를 보면서 벡키가 한숨처럼 말했다.
    “처음 강원도 고아원에서 민디가 나를 보던 눈을 나는 잊지 못할 거예요. 호소하는 것 같고 매달리는 것 같은 그런 눈이었어요. 그 몇 개월 전에 오빠가 교통사고로 죽었다는 이야기를 고아원 사람들이 내게 해주었어요. 아마 그 충격이 그 어린 아이의 눈을 그렇게 슬프게 만들었던 모양이에요.”
    “아,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둘이서 고아원에 버려진 채 의지하면서 살다가 오빠가 죽어버렸을 때 민디의 마음은 어땠을까. 나는 상상으로나마 느껴보려고 애썼다. 그리고 그 오빠는 어린나이에 동생을 데리고 얼마나 살려고 애쓰다가 미처 삶을 시작해 보지도 못하고 죽었을까 생각하니 가슴이 저려왔다.
    “아홉 살이라고 그러더군요. 민디의 오빠가 죽었을 때의 나이가. 제가 몇 개월만 더 빨리 한국에 갔었더라도 그 아이가 그렇게 죽을 필요가 없었을지도 모르는데.”
    벡키는 몹시 안타까워하며 혼잣소리처럼 말했다.
    아홉 살. 그것은 호영이가 죽었을 때와 같은 나이였다. 나는 나의 부주의로 목숨을 잃은 호영이와 또 같은 나이에 죽은 민디의 오빠 생각을 하자 갑자기 숨이 가빠지고 눈이 뜨거워졌다. 아홉 살. 그것은 죽기에는 너무나 어린 나이지 않은가. 그리고 오빠가 죽었을 때 네 살이었다는 민디는 과연 무엇을 기억하기에 내 아들 호영이가 죽은 이야기를 했을 때 그렇게 눈물을 흘렸을까?


    “저 양년은 여기 왜 와 있는 거야?”
    다섯 번째 일요일, 벡키가 민디를 나에게 맡기고 돌아서 나갈 때 교인 한 사람이 턱을 쳐들고 실눈으로 벡키의 뒷모습을 보며 말했다. 유감스럽게도 벡키를 배웅하고 돌아서다가 나는 그 말을 듣고 말았다. 나는 당황하여 급히 민디의 눈치를 살폈다. 다행히도 민디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아듣지 못한 모양이었다. 나는 그 교인을 숨길 수 없는 적의가 담긴 눈으로 쏘아 보았다. 그 유들유들하고 무디어 보이는 얼굴을 한 대 갈겨주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고아원에서 저 아이를 주워다 기르는 양부모인 모양이군, 그래.”
    분노를 참으며 민디의 손을 잡고 서둘러 그 자리를 뜨는 내 등 뒤에서 그런 소리가 들렸다. 그 사람뿐만이 아니고 몇몇 다른 부모들까지 민디가 입양되어 온 고아원 출신이라고 소문을 퍼뜨리며 따돌리려 들어서 나는 몹시 걱정하던 참이었다.
    “민디야.”
    “응?”
    민디는 아무 것도 모른 채 깡충깡충 뛰면서 내 손에 매달려서 나를 올려다보았다. 나는 그 불쾌한 사람의 언사를 빨리 잊으려 애쓰며 민디에게 물었다.
    “엄마가 그러던데 피아노를 잘 친다면서?”
    갑자기 민디는 수줍은 얼굴이 되었다.
    “아니, 잘 못 쳐.”
    “피아노 한 번 쳐볼래?”
    “피아노 있어?”
    “그럼.”
    수줍어하면서도 민디의 얼굴이 상기되는 것을 보고 나는 민디가 자신 있는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민디를 예배가 끝나고 비어있는 본당 피아노가 있는 곳으로 데리고 갔다.
    피아노를 보자 민디의 눈이 반짝 빛났다. 내가 권하는 대로 그 앞에 앉은 민디는 묻듯이 내 얼굴을 쳐다보았다.
    “민디가 잘 치는 곡을 아무거나 쳐봐.”
    민디는 수줍어서 고개를 꼬다가 마침내 피아노 건반을 치기 시작했다.
    잠깐 사이에 나는 놀라서 숨까지 죽이고 듣고 있었다. 그것은 여섯 살짜리가 연주하는 피아노라기에는 너무나 능숙했다. 벡키가 말했던 것처럼 민디는 음악에 재능을 타고난 아이인 것 같았다.
    아름다운 피아노 선율이 예배실 안을 가득 울리며 퍼져 나가자 밖에서 놀던 아이들과 휴게실에 있던 어른들이 조용해져서 듣기 시작했다. 그리고 하나씩 둘씩 피아노 주변으로 몰려 들어왔다. 모두들 숨을 죽이고 듣는 사이에 한 곡을 끝낸 민디는 상기된 얼굴로 수줍게 주위를 둘러보았다. 조용하던 사람들이 열렬히 박수를 쳐대기 시작했다. 나도 놀란 마음으로 박수를 쳤다.
    “민디야, 너 정말 피아노 잘 치는구나. 민디가 최고다.”
    나는 피아노 의자에서 내려오는 민디의 작은 몸을 꼬옥 끌어안았다. 주위에서 모두들 놀라서 칭찬하고 있었다. 너무나도 자랑스러워서 나는 민디를 번쩍 안아들고 마치 내가 피아노를 친 사람인 것처럼 주위를 큰 얼굴로 둘러보았다. 박수가 그칠 줄 몰랐다.
    그 날 오후, 벡키가 민디를 데리러 왔을 때 민디의 즉흥적인 피아노 연주 이야기를 들은 벡키는 민디를 마치 누구에게도 빼앗기지 않으려는 것처럼 꼬옥 끌어안고 놓을 줄을 몰랐다.
    “제가 보기에 이제 기초를 간신히 터득한 셈이에요. 그러나 이런 예능 부문은 기계적인 훈련보다는 타고난 재능이 있어야 하는데 나는 민디가 이 세상에 나올 때 가지고 온 재능을 믿고 있어요. 이 아이는 언제인가 멀지 않은 장래에 틀림없이 하나님이 주신 재능을 발휘할 수 있는 아이에요.”
    벡키의 상기된 얼굴을 보면서 나도 같이 흥분했다. 음악을 잘 모르는 내가 흥분한 이유는 부끄럽지만 몹시 속물적이고 세속적인 것이었다. 말하자면 한국의 고아를 데려다가 헌신적으로 기르는 벡키에게 겉으로 나타낼 수 없던 열등의식을 느끼고 있었는데 이제 민디의 음악성이 그 납덩어리 같은 부담감을 덜어주고 있기 때문이었다.
    민디를 가슴 속에 꼬옥 끌어안은 벡키가 자장가를 부르듯 속삭이는 것이 내 귀에 들려왔다.
    “민디야, 너는 특별한 아이야. 알고 있지? 너를 잘 가르쳐서 하나님이 네게 주신 재능이 헛되지 않게 해주겠어. 나는 너를 몹시 사랑하고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어. 알지? 네가 내 딸이 된 것을 하나님에게 감사해. 나는 민디의 엄마가 된 것이 자랑스러워.”  
    민디를 가슴에 품은 벡키의 눈에 눈물이 맺히고 있었다.
    나도 벡키의 진심어린 말에 마음이 사로잡혀 목젖이 뜨거워지고 눈시울이 젖어 와서 벡키에게 들킬까봐 슬그머니 외면했다.


    목사님의 개구쟁이 아들 찰스가 민디를 자기 동생이라고 선언하고 절대 놀리거나 짓궂게 대하면 안 된다고 엄포를 놓았을 때는 완력 있는 찰스가 무서워서 아무도 말대꾸를 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민디가 피아노를 그렇게 잘 치더라는 소문이 돌기 시작하자 이번에는 모두 자진해서 민디와 친하려고 들었다. 그것은 강요된 위압감과는 다른 것이었다. 더구나 아이들의 부모들도 피아노 사건 이후로는 민디를 다르게 보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점점 고아원, 고아, 입양아등의 말들이 없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그 변화를 예의 주시하며 하나님에게 감사했다. 이제 더 이상 아무데서나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그 무례한 말들이 민디의 귀에 들어갈까 봐 걱정할 필요가 없어졌다는 것은 나에게는 크게 안심되는 일이었다.
    여섯 번째 일요일. 천진스런 민디는 아이들이나 그 부모들이 자기를 보는 눈길이 그렇게 달라졌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찰스의 꽁무니를 따라다니며 찰스가 가지고 노는 공을 빼앗으려고 할딱거렸다. 다섯 살이나 위인 찰스는 민디를 가지고 놀듯 하다가 이따금 일부러 공을 빼앗겨 주고는 싱글거리며 웃었다.
    나는 그 친교실의 한쪽에 놓인 책상에서 아이들이 노는 것을 보면서 소리 내어 웃기도 하고 미소하기도 하면서 그들의 놀이에 마음으로 합류하고 있었다.
    한참 놀다가 지친 민디가 할딱거리며 내 책상으로 뛰어와서 내 곁의 의자에 올라앉았다. 콧등에 송글거리며 땀이 배어 나와 있었다. 나는 화장지를 한 장 뽑아 그 땀을 닦아주었다.
    “선생님.”
    땀을 닦아주는 내 손에 얼굴을 맡기고 민디가 나를 불렀다.
    “그래. 말해 봐.”
    “난 선생님을 좋아해.”
    민디의 그 말에 나는 나도 모르게 얼굴 가득 환하게 미소했다.
    “고맙다, 민디야. 나도 민디를 아주 사랑하고 있어.”
    민디는 가만히 앉아서 숨을 가라앉히며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고 나서 나는 어쩐지 민디가 이상하게 조용해졌다는 느낌을 받았다.
    “민디야, 괜찮니? 너무 뛰어서 피곤한 건 아니냐?”
    나는 걱정되어 민디에게 물었다.
    민디의 어린 눈이 어쩐지 형용할 수 없는 깊이를 가지고 허공을 헤매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오빠가 여기 같이 있으면 참 좋겠어.”
     나는 민디가 죽은 오빠를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자 흠칫 긴장했다.
    “이제부터 찰스가 오빠가 되어주면 안 될까?”
    나는 조심스럽게 민디에게 물었다.
    허공을 보고 있는 민디의 눈은 마치 다른 세계에 있는 것 같았다.
    “오빠.”
    초점을 잃고 헤매던 그 눈이 갑자기 무엇인가를 본 것 같이 반짝 빛을 냈다. 그리고 아이의 얼굴이 창백하게 변했다.
    “오빠는 나 때문에 죽었어.”
    그렇게 말하고 민디는 하얗게 질린 얼굴이 되어 의자에서 뛰어 일어나 나의 가슴으로 달려들었다. 나는 마치 아이를 온 힘을 다해 보호하겠다는 듯 두 팔로 꼭 끌어안았다. 민디의 여린 몸이 떨고 있는 것을 나는 내 두 팔 안에서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민디는 울었다.
    “오빠.”
    민디는 나의 팔에 안겨 내 귀뿌리에 울음 섞인 뜨거운 입김을 쏟으며 말했다.
    “오빠는 나 때문에 죽었어. 엄마가 알면 나를 쫓아낼 거야.”
    나는 민디가 뜻밖의 걱정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민디야, 그런 일은 없어. 민디를 쫓아낼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어.”
    민디의 작은 몸이 내 팔 안에서 파들파들 떨고 있었다. 아이의 가쁜 숨결이 뜨거운 호흡을 내 귀와 목에 쏟아 놓았다.
    “나는 배가 고파서 울었어. 오빠는 내게 감자를 줬어.”
    나는 민디를 꼭 끌어안고 아이가 울면서 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민디가 이야기하다 지쳐서 내 목에 얼굴을 파묻고 늘어졌을 때 그 아이의 눈물이 내 목 줄기를 타고 옷 속으로 흘러내렸다. 그리고 나도 눈물을 흘리며 내 팔에 안겨있는 그 아이의 가냘픈 어깨 위를 적시고 있었다.


    나는 배가 고파서 울었어. 오빠는 내게 감자를 줬어. 민디의 이야기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날 밤 따라 왜 달도 없었는지 사위는 칠흑처럼 캄캄했다.
    “내 손 놓치면 안 돼.  알았지? 여기서 잃어버리면 큰일이야. 호랑이가 나올지도 몰라.”
    아이는 겁에 질려서 오빠의 손을 놓칠세라 꼭 힘주어 잡고 뛰었다. 오빠의 손은 땀이 배어나와 미끄러웠다. 고아원에서 주는 보잘 것 없는 음식에 허기진 오빠가 낮에 보아두었다는 길 건너 쪽의 감자밭은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천리 길처럼 멀기만 했다. 오빠는 숨을 가쁘게 쉬며 땀을 흘리고 있었다. 아이도 땀을 흘렸다.
    가시 넝쿨에 찔리며 얼만가를 왔을 때 어둠 속에 희끄무레 차도가 보였다.
    “여기야. 다 왔어.”
    오빠가 헐떡이며 말했다.
    “너 여기 가만히 있어. 움직이면 안 돼.  알았지?”
    아이는 겁에 질려 차도 옆에 쪼그리고 앉아서 미처 목소리가 안 나와 거세게 머리를 끄덕여 오빠에게 알았다고 표시했다.
    오빠는 어둠 속을 더듬어 확인하듯 아이의 얼굴을 만져본 후 차도를 뛰어 건너 사라졌다. 아이는 공포에 질려 쪼그리고 앉아서 오빠를 기다렸다. 이따금 휘익 후덥지근한 바람이 불어 나뭇가지를 흔들어 놓을 때마다 소스라쳐 놀라면서도 아이는 울지 않으려고 애썼다.
    그렇게 기다린 것이 마치 밤새인 것처럼 길게 느껴졌다.
    자동차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어둠 속의 무서움도 이제 무디어져서 그저 떨리는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아이는 이제나 저제나 하며 뚫어질 듯 길 건너 쪽 오빠가 사라진 어둠만 내다보았다.
    오빠, 빨리 와. 무서워. 아이는 울면서 속으로 수십 번도 넘게 말했다.
    모퉁이를 휘익 돌아온 자동차의 헤드라이트가 갑자기 어둠을 깨고 포장 되지 않은 흙길을 환하게 비추며 질주해 왔다.
    아이는 저도 모르게 몸을 더 쪼그리며 쏟아져 들어오는 불빛을 피했다. 자동차의 기계음이 아이의 귀에는 괴물의 소리처럼 무섭게 들려왔다. 터질 것처럼 뛰는 가슴을 안고 아이는 갑자기 낯선 세계처럼 밝아진 길을 내다보았다. 환하게 불을 비춘 그 괴물은 마치 아이를 덮치려는 듯 위태롭게 가까워졌다.
    “오빠.”
    아이는 공포에 질려 쪼그리고 숨어 있던 곳에서 일어나 오빠에게 뛰어갔다.
    “아, 안돼.”
    길 저쪽에서 오빠가 비명처럼 소리 지르며 있는 힘을 다해 뛰어 건너왔다.
    끼익! 갑자기 나타난 장애물을 피하지 못하고 차는 흙길을 미끄러지며 브레이크를 밟고 휘청했다. 미처 줄이지 못한 속력으로 차는 그대로 달리며 오빠를 정면에서 들이 받았다. 그 육중한 차에 비교도 되지 않는 뼈만 남아 앙상한 오빠의 몸은 차체와 부딪치자 마치 바싹 마른 볏단처럼 허공을 날아서 팽개쳐졌다. 차 안에서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차 안에는 여러 명의 승객이 타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차가 멎자 안에서 승객 두 사람이 튀어나와 오빠가 쓰러진 곳으로 허겁지겁 뛰어갔다. 운전하던 사람이 차 안에서 소리를 질렀다.
    “야, 임마, 빨리 타. 아무도 본 사람 없어.”
    멈칫거리던 둘은 서로 얼굴을 보고 다시 황급히 뛰어가 차를 타고 쾅, 문을 닫았다. 순식간에 차의 꼬리등이 멀어져 갔다.
    “오빠.”
    자동차의 헤드라이트가 사라지고 순식간에 더 어둡고 더 조용해진 주위를 더듬으며 아이는 떨리는 다리로 기다시피 오빠가 쓰러진 곳으로 다가갔다.
    오빠는 피투성이가 되어 간신히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오빠, 오빠.”
    아이는 어쩔 줄 모르며 울었다. 어둠속에서 만져지는 오빠의 몸에서는 끈적거리는 피가 무섭게 쏟아져 나왔다.  그 온 몸이 파들거리며 떨고 있었다. 오빠의 한 손이 아이의 손을 찾아서 잡았다.
    “여기, 감자......”
    오빠는 떨리는 손으로 아이의 여리고 작은 손에 감자를 쥐어 주었다.
    “배고프지?”
    신음 사이로 힘없는 목소리가 말했다.
    오빠는 금방 죽지 않았다. 새벽이 될 때 까지 신음하며 피를 흘리다가 먼 데서 동이 틀 때 마침내 아이의 손을 꼬옥 감싸고 그렇게도 고통스럽게 허덕이던 숨길을 멈추었다.


    민디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나는 목이 잠기어 여러 번 쉬면서 떠듬떠듬 벡키에게 전했다.
    “그래서, 민디는 오빠가 자기 때문에 죽었다고 생각하고, 오빠가 죽어가면서 손에 감자를 쥐어 주어서, 죽은 오빠 생각이 나기 때문에, 민디는 감자만 보면 우는 모양입니다.”
    열린 친교실 문 밖 계단에 이쪽으로 뒷모습을 보이며 민디가 앉아 있었다. 그 가냘픈 어깨가 오늘따라 더 가슴 아프도록 애잔해 보였다.
    “민디는 자기 때문에 오빠가 죽었다는 것을 엄마가 알면 쫓겨날까봐 말을 못하고 가슴 조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벡키는 가슴 앞에 두 손을 모아 쥐고 숨을 죽인 채 내 이야기를 들었다. 그 큰 눈에 눈물이 가득 고이더니 두 볼로 수없이 흘러내렸다.
    “내 아이에게 그런 일이 있었군요.”
    벡키는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으려 하지도 않았다.
    “얼마나 배가 고팠으면. 그리고 얼마나 무서웠을까. 그 밤중에 혼자서 죽어가는 오빠를 지키고 있었다니.”
    찰스가 민디에게 다가가서 무어라고 이야기하며 이쪽을 가리키는 것이 보였다. 아마 벡키가 데리러 왔다고 알려주는 모양이었다.
    민디는 돌아보고 벡키를 발견하자 계단에서 일어나서 쏜살같이 이쪽으로 뛰어왔다. 치마가 팔랑거리며 나부끼고 뒤로 땋은 머리가 폴짝거렸다.
    벡키도 벌떡 일어나 민디쪽으로 뛰어갔다.
    친교실의 중간쯤에서 민디는 벡키의 가슴으로 뛰어 안겼다. 민디를 가슴에 보듬어 안은 벡키가 자기의 얼굴로 민디의 볼을 한없이 부비며 키스했다.
    민디를 안아들고 내게 온 벡키는 나에게 수도 없이 땡큐를 연발했다. 이런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몰라서 나도 바보처럼 벡키에게 땡큐를 연발했다. 그리고 우리 둘은 모두 같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민디야, 앞으로는 엄마가 항상 너의 곁에 있을 거야. 배가 고픈 일도 없고 또 민디가 혼자서 무서운 일을 당하는 일도 없을 거야. 엄마가 절대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겠어.”
    벡키는 마치 맹세하듯 민디에게 다짐했다. 그리고 나에게 또 한 번 고맙다고 인사하고 걸어 나갔다.
    벡키의 팔에 안겨 나가면서 민디는 나에게 빠이 손을 흔들었다.    민디야, 거 봐. 엄마가 너를 쫓아내지 않을 거라고 내가 말했지?
    나는 그렇게 말해주고 싶었지만 목이 메어 그저 손만 흔들었다.


김영문 / Youngmoon Kim (092407) (200 x 76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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