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수 698 추천 수 224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미끄러운 세상
                                                                                                                                                                         동아줄 김태수(Thomas Kim)

   미끄러졌다. 주차장 길바닥 위에. 막 차 문을 열고 왼발을 내딛는 순간 중심을 잃고.
누가 볼세라 얼른 일어나 아무렇지도 않은 듯 걸었다. 이제 사건 현장? 을 벗어났다 싶으니까 왼쪽 엉덩이 부분과 허벅지가 욱씬 거린다. 참 우습기도 해서, 괜히 애꿎은 날씨만 탓해본다. 무슨 날씨가 요술을 부리나? 눈 만 올 일이지 진눈깨비는 왜 섞여 오고 그래. 기온은 또 왜 얼었다 녹았다 하며 약을 올리는 거야. 사람을 바보로 만들고.

   밤에 눈이 내려 녹았다가 언 길바닥은 위험하다. 고속도로에도 차들이 나뒹굴고 있다. 지저분한 속 모습이 창피한 줄도 모르고 벌렁 누워있는 차. 달려온 길이 아쉬운지 고개 돌려 돌아보고 있는 차. 서로 나란히 부둥켜 안고 있는 차. 아예 다른 길을 탐하여 침범한 차……

   소방차와 경찰차가 달려와 사고 현장을 정리한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많은 재산과 인명 피해가 난 것은 시 정부 탓이라고 주장한다. 차량이 붐비는 출근길 전에 제설 작업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잔 돌멩이 흙을 뿌리지 않아 큰 사고가 났다고 한다. 운전자가 서행 하지 않아서. 다른 차를 피하려다가. 진입로에서 끼어드는 차 때문에…   다 이유가 있다. 합당한 이유를 둘러 댄다. 자기 탓이 아니고 남의 탓이다. 내 탓이 아니고 환경 탓이다.

   미끄러지는 것이 어디 길 뿐인가? 세상살이가 다 미끄러짐 속의 연속이다. 아기가 걷기 시작하면서부터 미끄러지고 넘어진다. 그러면서 중심을 잡아간다. 돌이켜 보면 세상 물정에 눈 뜨기 전부터 미끄러지고 넘아지며 살아온 것 같다.  입학시험,  취직 시험, 승진에서도 여러 번 미끄러졌다. 그 후 사업자 선정, 경매 등 생활 일선에서는 크고 작은 수많은 미끄러짐 속에서 살아오고 있다. 앞으로도 문학 공모전에서는 또 얼마나 미끄러질것인가? 어쩔 수 없이 경쟁 사회 속에서는 미끄러짐이 숙명적이다. 이를 받아들이고 적응해 가야 할 이유다.

   미끄러짐의 원인은 자기중심을 잃기 때문이다. 자기중심만 잃지 않으면 아무리 미끄럽고 빠르더라도 넘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그 미끄러움을 즐긴다. 미끄러운 빙판을 스케이트 선수는 잘도 지친다. 그것도 몇 바퀴씩 회전하며 예술적인 동작을 아름답게 음악에 맞춰 연출한다. 스키 선수는 미끄러운 설원을 빠른 속도로 활강한다. 수상 스키어는 거센 물살을 빠르게 헤쳐나간다. 태권도 선수는 두서너 바퀴를 돌면서 정학하게 목표물을 격파하고 안전하게 착지한다.

   지난주 한인 볼링 리그 경기가 있었다. 다른 팀은 모두 경기가 끝나 우리 팀 경기를 지켜보고 있었다. 마지막 경기 10프레임에서 스트라이크를 잡아야만 했다. 좀 긴장이 되었다. 나는 천천히 걸어나가 평소대로 볼을 던졌다. 막 던지고 난 직후 바닥이 미끄러워 중심을 잃었다. 그 순간에도 파울 라인을 넘지 않으려다 그만 엉덩방아를 찧었다. 다행히 볼은 예상대로 굴러가 스트라이크를 잡았다. 박수가 터져 나왔다. 위로와 안도의 박수였을 것이다.

  때로는 이처럼 미끄러지면서도 뜻을 이룰 때가 있다. 이는 행운이 된다. 불안한 긴장의 고조 다음에 이어지는 이룸이다. 그래서 더 짜릿하다. 행운도 노력한 자의 부산물이다. 그러나 의욕이 앞서면 분별력이 없어지고, 안정감이 줄어들고, 중심이 흔들리기 쉽다. 바로 가지 못한다.  

   미끄럽다는 말과 매끄럽다는 말은 같은 말이다. 거침이 없어 어떤 저항에 멈추거나 고임이 없다는 말이다. 그래서 움직이는 것은 늘 불안하다. 역설적으로 불안하기 때문에 매끄러워질 수 있다. 움직이고 있기 때문에 매끄러워질 수 있다. 불안을 이겨내면 매끄러워진다.

  불안은 자신이 중심을 잃었을 때 나타난다. 생각의 중심. 행동의 중심이 바로 서지 못해서 불안감을 갖게 된다. 중심이 바로 서면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가 매끄러워진다. 문장이 매끄러워지고 작품이 매끄러워진다. 일처리가 매끄러워 진다. 나아가 세상이 매끄러워진다.

   닳고 달아야 매끄거워진다. 그만큼 제 살을 깎는 각고의 노력이 필요하다. 미끄러워 넘어지고 또 넘어지면서도 일어서야 한다. 그럴수록 매끄러워진다. 중심 잡기의 연습이 필요하다. 흐트러짐이 없는 중심을 가졌을 때 비로소 개성과 의지대로 나아갈 수 있다. 오늘도 미끄러운 길을 조심스레 달린다. 중심을 잡아가며 미끄러운 세상의 길을. 나는 지금 중심 잡기 연습중이다.
?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소설 김태수 약력 동아줄 김태수 2016.11.11 609
23 수필 숲에는 푸른 마음이 산다[2016년 재미수필, 맑은누리 2017년 신년호] 동아줄 김태수 2016.08.20 39
22 수필 '하면서 주의'와 동영상 감상[2015 재미수필][맑은누리 2016 여름호] 동아줄 김태수 2016.03.23 82
21 수필 건망증과 단순성[2015 재미수필] 동아줄 김태수 2015.12.12 118
20 수필 엄마의 마음 3 동아줄 김태수 2017.12.11 188
19 수필 수필은 문이다[2014 재미수필] 동아줄 2014.04.10 242
18 수필 설거지[2016 맑은누리문학 신년호] 동아줄 김태수 2015.07.17 266
17 수필 3박 4일의 일탈[퓨전수필 13년 겨울호] 동아줄 김태수 2014.01.16 364
16 수필 400원의 힘[좋은수필 13년 11월호][2013 재미수필] 동아줄 김태수 2013.09.15 372
15 수필 길[계간문예 2014 여름호][2014 재미수필] 동아줄 2014.07.27 388
14 수필 어머니와 매운 고추[2014 재미수필] 동아줄 2014.12.04 431
13 수필 해외 봉사활동이 꿈[제2회 8만시간디자인공모전 최우수상] 동아줄 김태수 2013.10.25 442
12 수필 C형과 삼시 세판[재미수필 13년 15집, 맑은누리 14년 여름호] 동아줄 2014.03.14 459
11 수필 친구[2013 미주 문학세계 22호, 2014 맑은누리문학 신년호) 동아줄 김태수 2013.12.30 554
10 수필 이중 구조 동아줄 2012.03.19 565
9 수필 신문이 내 삶의 교재다[2013 신문논술대회 장려상, 맑은누리문학 14년 신년호] 동아줄 김태수 2013.06.07 586
8 수필 좋은 표어 짓기 동아줄 김태수 2016.04.28 606
7 수필 볼링 경기[현대수필 13년 여름호] 동아줄 2013.04.02 671
» 수필 미끄러운 세상[재미수필 신인상, 11년 13집][중부문예 13년 2월, 25호] 동아줄 2011.12.05 698
5 수필 어떤 시가 좋은 시인가?[현대문학사조 2016년 여름호] 동아줄 2011.12.05 819
4 수필 사람을 담는 그릇[재미수필 12년 14집] 동아줄 2011.12.05 826
Board Pagination Prev 1 2 Next
/ 2

회원:
2
새 글:
0
등록일:
2015.03.19

오늘:
42
어제:
51
전체:
1,167,9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