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이 약

2005.07.07 13:34

안경라 조회 수:624 추천:62

   평소에 가깝게 지내고 있는 분께서 몇 주 사이에 눈이 십리만큼 들어가고 다리가 휘청거릴 정도로 기운이 없어 보였다.  사사로이 남의 얘기하지 않는 분이라 마음속으로만 걱정해 주던 차에 어느 날엔가, 그동안에 있었던 일들을 넌지시 털어 놓으셔서 야위게 된 이유의 정체를 어렴풋 알게 되었다.
   몹쓸 물건을 미련없이 버리듯, 인간관계에서 생긴 불미스러운 일들을 누군에겐가 훌훌 털어 놓는다 해도 뒤돌아서면 속은 여전히 칩칩하고 개운하지 않다.  앙금처럼 남아있는, 무슨 화인같은 기억들로 인해 왠만큼한 세월로는 견뎌내기가 힘들다.  그러기에 이럴경우 뭐라 위로의 말이 딱이 없다.  
   그저 <세월이 약>이라는 지극히 인간적인 방법의 표현 밖에는... <잊어 버리세요>, <뭘 그런 걸 가지고 그러세요>, <원수를 사랑하려고 노력해 보세요> 누가 만약 내게 이러한 방법으로 위로한다면, 아-으 나는 그 위로자를 쳐다보는 것도 힘들게 맥이 쭉 빠져벌릴 것이다. 남의 다리 부러진 것 보다 내 살갗 작은 상채기가 더 아픈 법이기에.
   오래전 내게도 친한 친구 사이였던 전도사님과 사소한 오해로 인해 좋은 관계가 엉망진창이 되어 버렸던 일이 있었다.
   오해를 풀려는 변명이나 해명은 풀 수 없는 더 큰 실뭉터기로 꼬여져 가기만 했다.  그 때 나의 난처함을 보기만 하던 상사가 위로차 해 준 몇 마디 말이 지금도 나의 삶에 커다랗게 차지하고 있는 <<난관극복의 좋은 방법>>으로 남아 있다.   탕속에서 물이 뜨겁다고 움직이면 더 뜨거운 것과 같은 이치로 <가만히 있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것은 <세월이 약>이라는 말과 함께 내 자신에게 종종 써 먹는 위로방법이 되었다.
   <인생이란 끝없이 문제를 해결 하는 것>이라 한다.  그러기에 크고 작은 온갖 문제들 자체가 살아 꿈틀거리는 진짜 삶인지도 모른다.  끝없이 부딪치는 인간관계속에서 뜻하지 않게 생기는 마음의 상처를 잘 인내하는 모습은 아픔이 있었기에 훗날 더 아름다운 모습으로 남게 될 것이다.




<한국일보 '여성의 창'/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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