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아이

2012.06.09 08:55

김영문 조회 수:340 추천:29



                            이상한 아이


  “목사님도 보고 계시군요.”
  멀찌감치에서 아이의 행동을 지켜보던 목사님은 귓가의 목소리에 흠칫 놀라서 돌아보았다. 교회에서 궂은일을 많이 하는 이석재가 뒤에 있었다. “가서 물어 볼까요?”
  “아니, 그냥 놔두고 봅시다. 무슨 사연이 있겠지요.”
  그 다음 주에도 아이는 혼자 교회에 나와서 목사님의 설교 따위에는 관심 없이 주위를 산만하게 둘러보며 시간을 때우더니 예배가 끝나자마자 부리나케 친교실로 나왔다. 잠시 식탁에 앉아서 눈치를 보다가 식사가 나오기 시작하니까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줄에 끼어들었다. 차례가 되자 접시에 밥을 퍼주는 봉사자에게 꾸벅 절을 하고 받더니 반찬이 있는 곳으로 가서 이 것 저 것 도무지 다 먹을 수 없을 만큼 많은 반찬을 접시에 담았다. 그러면서 아이는 잽싸게 눈동자를 굴려 잊지 않고 주위를 경계했다.
  그런 아이를 이석재는 이 번 주에도 조심스럽게 관찰하고 있었다.
  “이 집사님도 그 아이가 이상하다는 것을 보고 있군요?” 마침 식사를 타서 자리로 가던 내과 의사 김석호 박사가 턱으로 아이 쪽을 가리켰다.
  “네, 목사님이 모른 척하고 내버려 두라고 그래서 보고만 있습니다.”
  “무슨 사연이 있겠지요.”
  김석호 박사 역시 목사님과 같은 말을 했다. 저명한 내과 의사인 김석호 박사는 항상 겸손하고 무료로 인술을 많이 베푸는 좋은 사람이었다.
  아이는 음식을 좀 먹는 척하더니 미리 준비해온 플라스틱 백을 꺼내 음식 접시를 통째로 백 속에 넣어서 들고는 눈 모퉁이로 주위를 살피며 출구로 가서 슬그머니 사라져 버렸다.
  
  다섯 번째 주가 되자 교인 모두가 이 아이를 주시하기 시작했지만 목사님의 엄명으로 모두 마치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아이 앞에서는 쉬쉬하며 입을 다물고 있었다.
  그 다음 주 역시 많은 음식을 담아 탁자로 가지고 온 아이 앞에 목사님이 자기도 음식 접시를 들고 가서 앉았다.
  “오늘은 나하고 같이 먹을까?”
  놀라서 올려다보는 아이의 눈이 금세 굳어서 경계했다.
  목사님은 짐짓 아무 것도 모르는 척 시침 떼고 아이의 맞은쪽에 앉아서 젓가락을 들었다. “이름이 뭐지?”
  아이의 눈에서 좀처럼 경계심이 풀리지 않았다. “챨스.”
  “그래? 챨스는 몇 살이야?”
  몹시 불안하고 어색해 하며 아이가 대답했다. “아홉 살.”
  “음식은 집에 가지고 가니?” 목사님이 아무렇지도 않은 듯 자연스럽게 묻자 아이는 화들짝 놀랐다. 굳은 얼굴로 탁자만 내려다보는 아이를 목사님이 부드러운 시선으로 어루만지고 있었다.
  “집에 가서 부모님과 함께 먹고 싶은 모양이구나.”
  경계하던 아이의 얼굴이 갑자기 흐트러졌다. “엄마가.......”
  “엄마가?”
  “엄마가 아파요.”
  그러더니 아이의 눈에서는 닭똥 같은 눈물이 뚝뚝 떨어져 내렸다.
  아버지가 누군지는 알지도 못하고 어머니는 마켓에서 일하며 근근 생계를 꾸려 나가다 두 달쯤 전부터 아파서 일을 못하고 집에 누워 있다는 것이다.

  “엄마가 안 된다고 그랬어요. 절대 안 된대요.”
  완강한 반대를 결국은 꺾고 목사님과 이석재가 가정 심방을 하게 되었다.
  방 한 개짜리 작은 아파트는 가난했지만 잘 정돈되어 있었다.
  “누추한 곳에 오게 해서 죄송합니다. 우리 아이가 혹시 폐되는 짓을 하지는 않았는지......”
  눈을 내리깔고 부끄러워 어쩔 줄 모르며 챨스의 어머니는 불안해했다.
  그 파리한 얼굴을 보며 목사님은 마음속으로 걱정했다. 혹시라도 무서운 질병이 있는데 치료를 못 받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느님께서는 어떠한 모진 상황 속에서도 우리를 버리지 않습니다. 곧 건강해 지셔서 교회에서 뵐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석재는 창백하게 병색이 있으면서도 단아하고 깨끗함을 잃지 않고 있는 챨스 어머니의 얼굴을 잊을 수 없었다. 혹시 암이라도 몸에 퍼져 있다면.....  아내가 젊은 나이에 유방암으로 고생하다가 죽은 경험이 있으므로 이석재는 우선 무서운 암 걱정부터 했다.
  “김 박사님. 그 아이의 어머니가 몹시 아픈 모양이더군요. 아이는 저희 교회에 와서 음식을 챙겨서는 집으로 가지고 가 어머니와 같이 먹곤 했던 모양입니다. 살기가 몹시 힘든 것 같습니다.”
  “그래요? 수고스럽지만 이 집사님이 한 번 모시고 제 사무실에 오실 수 있겠습니까? 제가 한 번 진찰해 보고 싶은데.”
  “그래도 될까요? 진료비 낼 처지도 못 되는 것 같던데요.”
  “돈이 없으면 그 아이를 훌륭하게 키워서 나보다 훨씬 좋은 의사로 만드는 것으로 갚아도 됩니다.”
  김석호 박사는 대수롭지 않은 듯 사람 좋게 말했다.

  이석재는 직장에서 양해를 얻어 결근하고 김석호 박사가 처방하는 대로 챨스의 어머니를 데리고 병원을 들락거리면서 검사를 도왔다. 마침내 검사 결과를 놓고 챨스의 어머니와 이석재는 김석호 박사의 사무실에 앉았다.
  “이순희씨.” 김석호 박사가 검사 결과를 쓴 챠트를 들여다보며 챨스 어머니의 이름을 불렀다.
  “네.” 이순희가 두려움과 긴장이 섞인 얼굴을 들었다.
  “이순희씨의 몸에는 아무 병도 없습니다. 암이 아닌가 걱정한다는 말도 들었는데 전연 아닙니다. 꼭 하나 병이 있는데 뭔지 아십니까?”
  네? 걱정스러운 눈으로 이순희가 물었다.    
  “이순희씨는 마음의 병이 있습니다. 남편이 필요 없는 여자도 있지만 이순희씨는 굳센 남자가 옆에 있어야만 안심하고 살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믿을 만한 남편 없이 오랫동안 살면서 생긴 걱정과 불안이 이순희씨의 몸까지 병이 있는 것처럼 만들고 있다는 말입니다.”
  무서운 질병이 없다는 말에 이석재는 이순희 본인보다도 더 안심하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교회에서 아이가 사는 집까지는 반시간이 넘게 걸어야 할 거리인데 이런 거리를 챨스가 엄마 줄 음식을 들고 매주 걸어갔다는 것을 생각하니 이석재의 가슴이 뜨거워졌다. 오늘은 챨스가 음식 접시를 들고 이석재의 차를 타고 가고 있었다.
  “아저씨.” 챨스가 조심스럽게 이석재를 불렀다.
  “응?”
  “엄마가 아저씨는 참 좋은 사람이라고 그랬어요.”
  이석재의 마음이 환해져서 미소했다. 그는 음식 접시를 소중하게 들고 있는 챨스의 작은 손을 잡았다.
  “나도 너하고 엄마가 참 좋다.”
  그 동안 몰라보게 건강해진 이순희가 챨스의 손을 잡고 교회에 온 첫 날은 마치 잔칫날 같았다. 모든 교인들이 축복하며 환영해 주었다.
  “하느님이 주시는 모든 것이 값진 것이지만 오늘 이 교회에 주신 새 식구 두 사람은 그 중에서도 더욱 값진 선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이 있게 하기 위해서 애쓰신 여러분들과 하느님에게 다시 감사드리며 기도하겠습니다.”
  목사님의 목소리에도 깊은 감동이 스며 있었다.

    그 후 여러 주일을 챨스를 포함한 그 셋은 마치 가족인 것처럼 항상 같이 나란히 앉아서 예배를 보았다. 그러던 어느 날 예배와 점심 식사가 모두 끝난 조용한 시간에 이석재가 목사님 앞에 와서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목사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목사님이 미소했다. “그래요? 날짜는 언제로 결정했나요?”
  “네?” 되묻던 이석재가 눈치를 채고 얼굴을 붉혔다. “짐작하고 계셨군요?”
  곁에 있다가 둘의 대화를 엿들은 김석호 박사가 껄껄 웃으며 거들었다.
  “미국에서는 결혼하면 여자가 성을 남자를 따라서 바꾸는데 둘이 그것마저 같으니 번거롭지 않아서 좋겠군.”

김영문  
05/2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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