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마운 경찰 아가씨

2018.04.25 14:50

성민희 조회 수:27

내 뒤를 따라 오는 차가 경찰차인 줄 몰랐다. 백미러에 비친 차 모양이 미심쩍어서 첫 번째 stop 사인에서는 정확히 정지했다. 그 차도 잠시 정차하더니 곧 뒤따라 왔다. 두 번째 stop 사인을 또 만났다. 뒤 차가 너무나 얌전히 따라와서 경찰차가 아닐 거라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다. 나를 기다리고 있을 남편 생각에 스르륵 서는 둥 마는 둥 엑셀을 밟았다. 아니나 다를까 뒷 차가 빨강 파랑 불을 번쩍 켜더니 바싹 따라 붙었다. 경찰차가 맞았구나. 아이구, 이 바보를 어찌하면 좋나. 바보. 바보 멍청이. 나를 마구 쥐어박으며 길가에 차를 세웠다. 
“왜 내가 세웠는지 알겠어요?” 예쁘게 생긴 히스패닉 여자 경찰이다.
“미안해요. 내가 정확하게 stop 사인에서 안 섰어요. 제가 잘못했어요.” 경찰이 내 눈을 빤히 쳐다보며 고개를 끄덕인다. 여자가 내 말을 듣는구나 싶어서 또 말했다. 
“지금 내 남편이 교회에 맡은 프로그램이 있어서 진행하러 들어가야 하는데 배가 너무 고프다고 해서. 내가 이 햄버거를 갖다 주려고 하다보니까 마음이 바빠스리... 미안해요.” 
사실 그랬다. 오늘따라 배는 너무 고픈데 먹고 싶은 것이 없어서 종일 바나나와 우유 한 컵으로 하루를 지났다. 해가 뉘엿뉘엿 지니 또 허기가 졌다. 이것저것 냉장고를 뒤져봐도 먹고 싶은 게 없었다. 마침 남편은 퇴근하고는 바로 교회로 간다고 하니 내 저녁만 해결하면 되겠구나 싶어 인앤아웃 햄버거를 사러 갔다. 줄을 서 있는데 전화가 왔다. 잠깐 집에 들러 밥을 먹어야겠다고. 인앤아웃 햄버거를 산다고 했다. 그러고는 부지런히 집으로 가는 중이었다. 경찰은 내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햄버거를 멀뚱 쳐다보더니 그런 익스큐즈는 통하지 않는다고 했다. 운전면허증과 보험증서, 차량 등록증을 모두 꺼내어 주고 조회를 하는 경찰을 핸들에 손을 얹은 채 기다렸다. 벌금도 벌금이지만 8시간 교육을 받을 생각을 하니 답답하다. 왜 하필 그 때 경찰차가 나타났을까. 왜 하필 그때 경찰차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을까. 하필. 하필... 혼자 중얼거리고 있는데 경찰이 다가왔다. 서류를 돌려주면서 말한다. 
“보험 날짜가 오늘 만료네. 그리고 오늘은 티켓을 끊지 않고 주의만 주고 보내줄게요.”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이게 무슨 말? 요새도 이런 경찰이 있나? 시 재정을 위해 티켓 끊는 일에 얼마나 혈안인데. 경찰은 곧 이어 또 말했다. 
“네 죄를 너가 알렷다.” 
“네, 네. 제가 스탑 사인에서 정확히 서야하는데 그러지 않았어요. 배 고픈 내 남편 생각하느라구요. 다음부터는 절대로 절대로 안 그럴께요.” 
경찰은 피식 웃으며 떠났다. 꾀죄죄한 아시안 여자가 남편 주겠다고 햄버거를 사 가는 모습이 처량하게 보인 모양이라고 생각하니 나도 웃음이 나왔다. 나를 용서해준 이쁜 경찰의 은혜를 생각해서라도 앞으로는 절대로 스탑 사인에서 스르르 서는 시늉만 하고 지나가지 말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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