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詩學
                  <유시(遺詩)에 대한 고찰(考察)>
 
 
1) 여는 말            鄭 用 眞 (시인)

 인간이 지상에 사는 동안 운명의 신으로부터 일생일회 공평하게 부여받은 그 삶은 진지하고 소중하며,  죽음은 엄숙하고 냉정하다.
인간이 생(生)을 생각하기도 힘든데 죽음(死)을 생각하기란 참으로 힘들고 괴로운 일이다. 제자가 성현 공자(孔子)에게 생(生)을 물었을 때 공자는 내가 생을 다 모르거늘 어찌 죽음을 말할 수 있으랴. 아침에 도를 깨닫는다면 저녁에 죽어도 여한이 없겠다(朝楣 夕死可矣)라고 대답 하였고, 석가는 삶이란 일체중생 개고(一切衆生 皆苦)라고 일렀다.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것 모두가 고통이란 뜻이다.
불경에서는 “내가 구하는 목수는 찾지 못할진대 무한의 윤회(輪回), 내 앞에 서리라. 아! 끝없는 탄생은 고통인 저 목수여 그대는 잘 간파하나니, 이제 또다시 집짓는 일은 없으리라. 그 대들보는 부러지고 연목은 떨어졌도다. 적멸(寂滅)에 든 영혼만이 내 번뇌의 목마름을 없애리라.”고 설파했다.  
“참은 하늘의 길이요 참을 들어내는 것은 인간의 길이다.(誠者天之道也 思誠者人之道也)라고 공자도 그의 어록 논어(論語)에 기록하였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몸을 해쳐서 인(仁.사랑)을 실천하는 일은 있어도. 자기 자신이 살기 위하여 인을 해쳐서는 안 된다.(有殺身成仁 無求生而害仁)고 가르쳤다.
철인 소크라테스는 “철학은 죽음을 연습하는 학문이다. 사는 것이 문제가 아니고 바로 사는 것이 문제다.”라고 제시하였다. 인간 존재의 근본을 제시한 명언임이 분명하다.
인간은 영원 속에서 순간을 살다간 나약한 존재다. 그러나 인간은 만물의 영장으로 칭송을 받을 만큼 엄숙하고 진지하고 위대하다.
인간의 삶을 축복으로 생각하면서도 고통으로 여기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파스칼은 그의 명상록 “팡세”에서 인간을 중간자라고 정의하였다.“무한에 비하면 허무이고, 미생물에 비하면 완전하다. 인간은 소 우주로서 허무와 전체의 중간자다. 시간적으로 볼 때엔 영원한 과거와 영원한 미래의 중간자요, 외형적으로 볼 때엔 천사와 동물의 중간자다.”라고 역설하였다.
 울면서 태어나서 무로 돌아 가는 자와, 소망을 안고 가는 자의 차이는 엄청나다. 그러나 탄생과 죽음은 인간 자신의 영역을 넘어서 존재한다. 절대자의 영역이요, 운명의 몫이요, 신의 차원이다. 
 철인 데칼트가 인간을 피투성(被投性)적 존재라고 지적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아니하다. 절대자로부터 내어던져진 존재라는 뜻이다. 소조(所造)의 세계가 아닌 소여(所與)의 세계다. 소조는 창조자의 몫이지만 소여는 피조물의 차지다.
인간이 잘 태어나는 것도 축복이지만 잘 죽는 것 또한 크나큰 축복이다. 한 인간의 삶을 관 뚜껑을 덮어놓고 평가하라는 준엄한 뜻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나는 이글은 통해서 역사 속에서 바로 살다가 떠나면서  남긴 유시(遺詩)를 통하여 그들의 삶을 바로 재조명해 보고자한다.
도덕은 인간을 올바르게, 종교는 인간을 경건하게, 문학과 예술은 인간을 풍요롭게, 하는데 비하여, 철학은 인간의 죽음의 길을 엄숙하게 가르쳐준다.
여기에 옮겨 놓은 선인들의 유시(遺詩)들은 선인들이 일생동안 정성을 다하여 살다가 자신의 마지막을 장식한 유언들로서 우리가 이들의 삶과 죽음을 통하여 우리들도 바로살기를 다짐하는 계율로 삼고자하여 옮겨놓은 것이다. 일생일회의 자신의 삶의 모습이 숙연해지고 진지해지는 깨달음을 얻기를 바란다.
 성경(열왕기 상 2장)에 보면 “다윗이 죽을 날이 임박하매 그 아들 솔로몬에게 명하여 가로되 내가 이제 세상 모든 사람의 가는 길로 가게 되었노니 너는 힘써 대장부가 되고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을 지켜 그 길로 행하며 그 법률과 계명과 율례와 증거를 모세의 율법에 기록 된 대로 지키라 그리하면 네가 무릇 무엇을 하던지 어데 로 가던 지 형통 할 지라  여호와께서 내 일에 대하여 말씀하시기를 만일 네 자손이 그 길을 삼가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진실히 내 앞에서 행하면 이스라엘 왕위에 오를 사람이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신 말씀을 확실히 이루게 하시리라.”고 마지막 유언을 당부하였다.
 인간은 유한한 일생이요, 절대자 앞에서는 무기력한 존재다. 위인일수록 죽음 앞에서 더욱 겸손해진다.
 시와 예술은 인간에게 사랑을, 의학과 체육은 건강을, 도덕은 바른 삶의 길을, 종교는 미래의 영원한 삶을 제시하여주는데 비하여 철학은 바른 죽음의 길을 가르쳐준다. 우리의 역사 속에서 주옥같은 시로 영원한 참삶의 길을 일러준 의인들을 만나보자. 여기에  기록된 죽음 앞에선 참 삶의 노래들이 곧 “죽음의 시학”이요 유시(遺詩)에 대한 고찰이다.
이 시들은 일생동안 긍정적인 생각을 지니고 역동적(力動的)인 삶을 살다간 사람들의 진지한 마지막 노래(遺詩)들 이다. 하나같이 진지하고 간절하고 정성스럽다. 옷깃을 여미고 이 들 앞에 서보자.
고대사를 더듬어보면 유시(遺詩)의 효시(嚆矢)는 중국 춘추전국시대 초(楚)나라의 왕족이요 삼려대부(三閭大夫)를 지내고 세상이 썩어 감을 비관하여 멱라수(江潭)에 스스로 몸을 던진 굴원(屈原)의 초사(楚辭) 어부사(漁父詞)를 들어야 할 것이다. 굴원의 어부사를 감상해 보자.

어부사(漁父詞)

  굴원이 이미 죄에 몰려 원지에 추방되어 연못가 언덕을 방황하며 시부(試賦)를 읊조렸다.
어부가 이것을 보고 굴원에게 가로되 그대는 삼려대부가 아닌가?
어떤 연고로 여기에까지 이르렀느냐 물으니
굴원이 이르기를 세상은 모두 흐려 악에 물들어 있는데 나 홀로 맑고
중인(衆人)이 욕심에 미혹되어 취한 것 같은데
나 혼자 깨어있으므로 이 때문에 죄로 몰려 추방되어 이곳에 왔노라.
어부가 이르기를 성인(聖人)은 사물에 굳어버려 융통성이 없게 하지 않고 세상과 더불어 추이(推移)한다.
많은 사람들이 사리사욕에 눈이 어두워 그 즐거움에 취해 있으면
그 술 찌꺼기라도 먹고 박주(薄酒)라도 마시면서 세인과 더불어 살지 않고 왜 혼자 깨어있는가.
무엇 때문에 깊이 생각하고 남보다 뛰어나게 고상하게 행동하여 스스로를 원지로 추방당하게 하는가.
굴원이 이르기를 나는 이러한 말을 들었다.
금방 머리를 씻은 사람은 반드시 관(모자)을 털어서 쓰고 몸을 금방 씻은 자는 반드시 옷을 털어서 입는다.
맑고 깨끗한 몸에 어찌하여 외물(外物)의 더러운 수치(羞恥)를 받게 할 수 있겠는가.
차라리 상수에 가서 강물에 빠져 물고기 뱃속에 장사지낼지언정 결백한 몸에 어찌 세속의 진애(塵埃)의 더러움을 입을 수 있겠는가.
어부는 씽긋 웃으면서 호의를 표시하고 상앗대 소리 요란하게 배를 저어 떠나갔다.
그러면서 노래 불러 가로되 창랑의 물이 맑으면 나의 갓끈을 씻을 것이고  창랑의 물이 흐리면 나의 발을 씻으리로다. 하면서 떠나버리고 더불어 말하지 않았다.

屈原旣放 游於江潭 行吟澤畔 漁父 見而問之曰子非三閭大夫與 何故至於斯  屈原 曰擧世皆濁 我獨淸 衆人 皆醉  我獨醒 是以見放  漁父 曰聖人 不凝滯於物而能與世推移  世人 皆濁 何不굴其泥而揚其波 衆人 皆醉 何不飽其糟而何故 深思高擧 自今放爲  屈原 曰吾聞之  新沐者 必彈冠 新浴者 必振衣  安能以身之察察 受物之汶汶者乎  寧赴湘流 葬於江魚之腹中 安能以皓皓之白 而蒙世俗之塵埃乎  漁父 莞爾而笑 鼓 而去 乃歌曰滄浪之水淸兮 可以濯吾纓   滄浪之水濁兮 可以濯吾足 遂去不復與言

옥쇄불개백(玉碎不改白)은 관운장의 마지막 결의에 찬 유언이다.
“나는 해량(海良) 땅의 일무부(一武夫)로 내 주군께서 수족과 같이 대우하심을 입고 왔으니 어찌 의를 배반하고 적국에로 갈 것인가.
성이 파하면 죽음이 있을 뿐이다. 옥은 부스러져도 그 흰빛은 고칠 수 없다.(玉碎不改白) 대나무는 타도 그 결은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몸은 죽어 없어져도 이름은 역사에 남는다. 그대는 속히 출성하라. 나는 손권과 싸워 죽기를 결정할 것이다.” 관운장은 장부다운 기개를 마음껏 발휘하고 오나라 손권의 손에 죽었다.
이는 유비(劉備). 관우(關羽). 장비(張飛)가 도원에서 형제의  결의를 맺고 3형제가 된 후 신뢰관계 속에서 평생을 한결 같이 지켜온 약속의 위대한 표본이다.  인간은 의리에 살고 의리에 죽는 신뢰 관계다. 아무리 삼국지의 역사 소설의 한 장면이라도 인류 사회에 제시하는 교훈이 위대하고 장구하다.


2) 선사(禪師)들의 임종게(臨終偈)

자신의 생멸을 초월한 선사들은 입적 이전에 시를 임게송으로 남기고 열반의 길로 향하였는데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는 수행과 깨달음의 명편들이 많이 있다. 그중에 몇 편을 여기에 옮기려한다. 그들은 이승을 떠날 때 몸을 버림을 마치 입고 있던 헌옷을 벗어 던지듯 훌훌 벗어버리고 혼가분한 마음으로 구름처럼 떠났다고 기록되어있다.
 중국의 도신선사는 60년 동안 장좌불와(長座不臥)를 하였고, 행인(行因)선사는 길 모퉁이에서 서서 입적 하였으며, 등운봉 선사는 앉아서 입적하는 것도 거부하고 물구나무서서 세상을 거꾸로 보다가 눈을 감았다고 한다. 이런 분들은 삶보다 죽음의 예비를 위하여 한생을 보내신 분들이다.
 
본래 내 고향 일세

칠십 팔년 고향으로 돌아가니        (七十八年歸故鄕)
이 산하대지 온 우주가 법계이네    (天地山河盡十方)
삼라만상 모든 것은 내가 만들었으니(利利塵塵皆我造)
이 모든 것은 본래 내 고향 일세   (頭頭拘本眞鄕) 
                             <나옹선사 . 懶翁>

태어나실 땐 한 줄기 바람처럼 일어나고
가실 땐 저 연못에 달그림자 잠기듯 가네
나고 죽고 가고 옴에 걸림이 없어
중생에게 보인 그 몸속에 참마음 있네
참마음은 없어지지 않거니
이 때를 놓치면 또 어느 곳에서 찾으리
        <나옹선사>(指空和尙이 입적했을 때)

태어남이란 한 조각 바람이 일어나는 것이요
죽음이란 못에 비친 달의 그림자일 뿐이다.
죽고 살고 가고 옴에 막힘이 없어야 한다.
(生來一陣風起 滅去澄潭月影 沈生滅去來無罣礙)
                                           <나옹선사>
나옹화상 禪詩 
 
靑山兮要我以無語 [청산혜요아이무어]
蒼空兮要我以無垢 [창공혜요아이무구]
聊無愛而無憎兮   [료무애이무증혜]
如水如風而終我   [여수여풍이종아]
 
청산은 나를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창공은 나를보고 티없이 살라하네
탐욕도 벗어놓고 성냄도 벗어놓고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하네

세월은 나를보고 덧없다 하지않고
우주는 나를보고 곳없다 하지않네
번뇌도 벗어놓고 욕심도 벗어놓고
강같이 구름같이 말없이 가라하네
                                         <나옹선사>

* 지공화상. 나옹선사. 무학대사는 여주 신륵사 조사당에 봉안됨)

 나라가 위기에 처할 때 승병을 이르켜 나라를 지키고 85세때 묘향산에서 입적한 서산대사는 아래와 같은 임게송을 남겼다.

생이란 한 조각 구름이 일어남이요    (生也一片 孚雲起)
죽음이란 한 조각 구름이 스러짐이다   (死也一片 孚雲滅)
뜬구름 자체가 본시 실체가 없는 것   (孚雲自體 本無實)
나고 죽고 오고 감이 모두 그와 같도다(生死去來 亦如然)
                                             <西山大師>

무학 대사의 오도송
 
푸른 산 푸른 물이 나의 참모습이니
밝은 달 맑은 바람의 주인은 누구인가.
본래부터 한 물건도 없다 이르지 말라
온세계 티끌마다 부처님 몸 아니런가.靑 山 綠 水 眞 我 面 (청산록수진아면)明 月 淸 風 誰 主 人 (명월청풍수주인)莫 謂 本 來 無 一 物 (막위본래무일물)塵 塵 刹 刹 法 王 身 (진진찰찰법왕신)
 
효봉(曉峰)스님 열반송오설일체볍(吾說一切法)
도시조변무(都是早 拇)
약문금일사(若問今日事)
월인어천강(月印於千江)
지금까지 내가한 말
모두가 군더더기
오늘 일을 묻는다면
달이 일천 강물에 비친다 할 뿐이로다

        曉峰禪師>(밀양 표충사에 사리봉안 되었음)

효봉스님(1888~1960) 의 게송이다.

海底燕巢鹿胞卵(해저연소록포란) 불 속 거미집엔 물고기가 차를 달이네 此家消息誰能識(차가소식수능식) 이 집안 소식을 뉘라서 능히 알랴만 白雲西飛月東走(백운서비월동주) 백운은 서쪽으로 달은 동쪽으로 달리는 것을

이 시는 효봉스님(1888~1960)의 시다. 효봉 스님은 26세에 법관이 됐으나 10년 만에 법복을 벗고 전국을 떠돌며 고행의 길을 걷다가 금강산 신계사 보운암의 石頭스님을 은사로 사미계를 받았으며 8·15 광복 이후 해인사에 伽倻叢林을 개원하자 초대 방장으로 현 조계종 초대종정에 추대되었다.

이번에는 얼마 전에 열반하신 청봉스님이 마지막으로 남기신 게송이다.

差別卽平等 平等卽差別(차별즉평등 평등즉차별) 梅花元來紅 老松古今靑(매화원래홍 노송고금청)淸潭浮明月 夜夜寂照落(청담부명월 야야적조락) 心無微塵蹤 月影亦無跡(심무미진종 월영역무적)
차별이 평등이요, 평등이 차별이라매화꽃은 원래 붉고 노송은 옛부터 푸르른데밝은 달은 밤마다 호수에 비치지만마음도 머무름 없고 그림자도 남김 없네
 
 영원불멸 “세간 밖의 절” 이란 겁외사(劫外寺)는 성철선사가 출가하기 이전의 생가를 복원한 것이고 그는 영생불멸 “영원에서 영원”(From Eternity To Eternity)을 불교의 가르침으로 펼치면서 얼마나 뼈를 깎는 수행을 수 많은 세월을 하였으면 8년을 장좌불와(長座不臥),10년을 동구불출(洞口不出)하였다. 나는 새도 떨어뜨릴 권세를 한 몸에 누리던 P 장군이 그를 찾아 면회를 청하였을 때 부처님께 3천배를 올리고 오면 만나겠다. 고하니 그냥 돌아 갔다는 일화는 너무나 우리의 마음을 흔들었다. 그는 임게송으로 이런 시를 남기고 해인사에서 입적 하였다.

하늘에 넘치는 큰일들도
붉은 화롯가에 한 점의 눈송이요
바다를 덮는 큰 기틀이라도 한 방울 이슬 일세
그 누가 잠깐의 꿈속 세상에
꿈을 꾸며 살다가 죽어가랴
만고의 진리를 향해
초연히 나 홀로 가노라. <性徹禪師>

성철스님의 열반송

生平欺狂男女群
彌天罪業過須彌
活陷阿鼻恨萬端
一輪吐紅掛碧山
 
일평생 뭇사람들을 깨우치지 못하고 거짓말을 했으니
하늘을 두루는 죄업이 수미산을 넘고도 남는구나,
이 목숨 아비지옥에 떨러지면서도 그 아쉬움과 후회함이 끝이 없구나,
오직 하나뿐인 진리만이 환한 빛을 내뿜으며 천지우주를 꿰뚫고 있다.

원각(圓覺)이 보조(普照)하니
적(寂)과 멸(滅)이 둘이 아니라
보이는 만물은 관음(觀音)이요
들리는 소리는 묘음(妙音)이라
보고 듣는 이밖에 진리(眞理)가 따로 없으니
아아, 시회대중(時會大衆)은 알겠는가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성철스님의 전두환 신군부시절 불교중흥의 법어>
 
 2003년 12월 13일 백양사 설선당(雪禪堂)에서 앉은 채로 좌탈입망(座脫入亡)한 서옹선사(西翁)는 “목숨을 바치듯 수행하라“고 참선을 강조한 분으로 아래와 같은 열반송을 남겼다. 그는 평생을 얼마나 뼈를 깎는 마음으로 수행하였으면 바른 자세로 앉아서 열반하셨을까? 고개가 숙여진다.

임제의 한 할은 정안을 잃어버리고       (臨濟一喝失正眼)
덕산의 한 방은 별전지가 끊어지도다     (德山一捧別傳斷)
이렇게 와서 이렇게 가니                 (恁磨來恁磨去)
백학의 높은 봉에 달 바퀴가 가득하도다 (白鶴高峯月輪滿)
                              <西翁禪師>

설송(雪松)태백산 자락에 현불사에서 대한불교 불승송(佛乘宗)을 창종하였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현불사를 방문하던 날 영령보탑에 오색빛이 발함을 보고 대통령에 당선될것을 예언하고 비석을 세웠다. 조계종이 금강경을 주된 경전으로 쓰는데 비하여 법화경(묘법연화경)울 경전으로 1962년에 창종하였다. 09년 5월 91세로 현불사에서 입적하였는데 1980년대 현불사를 창건하였고 열반송으로 “산다는건 모두 꽃피고 짐과 같다.” “내왕과거 지재몽 인생도시 여화개 (來往過去 只在夢 人生都是 如花開)”를 남겼다.

3)조선조의 정치가와 선비들의 유시(遺詩)

 요동 정벌의 꿈을 접고 위화도를 회군한 이성계 일파는 최영 장군 등을 숙청한 후 고려를 멸망시키고 조선을 개국하여 사대교린(事大交鄰)억불숭유(抑佛崇儒)정책을 기치로 내세웠다.
 야심이 강한 이방원(李芳遠)(후에 태종)은 포은 정몽주, 목은 이색과 같이 우국 충정을 지키려는 수구파들의 도움을 얻지 못하여 역성혁명(易姓革命)을 이룩하기 위하여 숱한 고초를 겪었다. 이방원은 
 
하여가(何如哥)로 포은의 마음을 떠보려 하였다.

이런들 어떻하며 저런들 어떻하료
만수산 드렁츩이 얼거진들 엇더하리
우리도 이와같이 얼거져 백년까지 누리리라. <이방원>

이에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는 단심가(丹心歌)로 맞섰다. 

“이몸이 죽고죽어 일백번 고쳐죽어
백골이 진토되어 넋이라도 있고없고
임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줄이 이시랴.“ <포은. 정몽주>

이는 포은의 단호한 신념의 표시요, 천추만세에 길이 남길 불후의 유언이었다. 이후 그는 이방원의 하수인 조영규에 의하여 개성 선죽교에서 피살되었고 그가 흘린 핏자국이 선죽교에 붉게 물들어 있다고 전한다.
 신념과 확신은 인간 존재의 의미요 소중한 가치 중에 가치다. 이러한 삶과 죽음의 어려움을 보고 인류의 스승 공자는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朝楣 夕死可矣“라고 논어 이인 4편에 기록하고 있다.
 충신을 키운 포은의 어머니가 지었다는 시조도 우리에게 큰 의미를 던져준다.
 
가마귀 싸우는 골에 백로야 가지마라
성낸 가마귀 흰빛을 새올세라
청강에 잇것 시슨 몸을 더러 일가 하노라. <포은 모친>

 고려의 몰락으로 황폐 해진 옛 도읍 개성을 찾아 그 심정을 노래한 시들이 지금도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백설이 자자진 골에 구루미 머흐레라
반가운 매화는 어느 곳에 피엿는고
석양에 홀로 서 이서 갈 곳 몰라 하노라. <목은. 이색>

녹이상제(綠馬耳(마이는한글자임)霜蹄) 살지게먹여 시냇물의 씻겨타고
용천설악(龍泉雪鍔)을 들게 갈아 두러 메고
장부의 위국충절(爲國忠節)을 세워 볼가 하노라.

고려말 최영(崔瑩)장군의 호기가(豪氣歌)이다. <출전. 청구영언>
최영장군은 이성게 일파의 위화도 회군 후 강하도 교동으로 유배되었다가 살해되었다.

선인교 나린 물이 자하동에 흐르르니
반천년 왕업이 물소리 뿐이로다
아희야 고국흥망을 물어 무엇 하리요. <정도전 혹은 유응부>

오백년 도읍지를 필마로 돌아드니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듸 없다
어즈버 태평연월이 꿈이런가 하노라.  <야은 길재>

흥망이 유수하니 만월대도 추초로다
오백년 왕업이 목적에 부처시니
석양에 지나는 객이 눈물겨워 하노라.  <원천석>

 이 시를 감상하면 옛 도읍에 대한 새로운 감회가 가슴 깊이 저며 온다.

수양산 바라보며 이제(夷薺)를  한하노라
주려 죽을 진들 채미(採薇)도 하는것가
아모리 푸새 엣 것인들 그 뉘 따에 낫더니 
                             <梅竹軒 成三問>

이몸이 죽어가서 무엇이 될고 하니
봉래산 제일봉에 낙락장송 되얏다가
백설이 만건곤 할제 독야청청 하리라. <성삼문>
              
 위의 시조는 성삼문이 중국을 방문하여 백이 숙제의 나약함을 경계한 시조요, 아래 시조는 그의 당당한 삶의 의지와 신념을 떳떳이 표현한 작품이다. 이러한 마음 가짐과 각오가 서 있었기  때문에  그는 단종 복위운동을 꾀하다 세조에게 갖은 고문을 당하였어도 굴하지 아니하고 소신을 지키다 장열한 죽음을 마지 하였을 것이다.
 성삼문. 박팽년. 하위지. 이개. 유응부. 류성원. 김문기 (후에 추존)의 사육신의 지조와 절개는 송죽매(松竹梅)의 세한삼우(歲寒三友)에 견줄 만 하다. 

참형당할 때(受刑時)

서산에 뉘였뉘엿 해 지려는데             (回頭日欲斜)
북소리 둥둥 재촉하는 내 목숨          (擊敲催人命)
황천 가는 길은 여숙(旅宿)도 없다던데 (黃泉無一店)
오늘 나는 뉘 집에서 자고가나          (今夜宿誰家)  
                                                       <성삼문>
                      
 라는 유시를 남기고 거열형을 당하였다.2 살배기 아들마저 죽였다니 세조의 잔악함을 가히 짐작 할만하다.

 취금헌(醉琴軒) 박팽년(朴彭年)은 세종 때 집현전 학사로 형조 참판을 지냈다.

가마귀 눈비 맞아 희는 듯 검노매라
야광명월(夜光明月)이 밤인들 어두우랴
님 향한 일편단심(一片丹心)이야 고칠 줄이 이시랴.
                                 <박팽년>

 자신의 결정에 대하여 변절을 거부하고 외길로 죽을 때 까지 가겠다는 비장한 각오와 결의가 가득 찬 명 시조다.
과연 그의 시조와 죽음은 대장부다운 기개가 펄펄 넘쳐난다.

창안에 혔는 촉 불 눌과 이별 하였관듸 
겉으로 눈물 흘리고 속 타는 줄 모르는고
저 촉불 날과 같하여 속 타는 줄 모르더라.
                    <이개(李塏)>

 시문에 능하고 직제학(直提學)을 지낸 백옥헌(白玉軒)이개의 유시다. 자신의 몸을 태우면서 빛을 발하는 촛불, 밖이 어두울수록 그 밝음이 더하는 촛불, 간신배들의 온갖 수모를 참다 의연하게 죽어 촛불처럼 빛나는 그의 죽음이 보배롭다.

간밤에 부던 바람 눈서리 치단말가
낙락장송(落落長松)이 다 기울어 지단말가
하물며 못다 핀 꽃이야 일러 무삼하리오.
                        <유응부>

 동지중추원사(同知中樞院事)를 지내고 세종과 문종의 사랑을 크게 받았던 벽량(碧梁) 유응부(兪應孚)의 시조다.
 세조의 포악한 품성을 탓한 시조로 낙락장송은 지조 깊은 선비를 이름이다. 불의로 권력을 장악하여 숱한 인재들을 도륙하고 살상을 일삼는 폭군 앞에 당당히 맛서는 기개가 뚜렷하고 후일을 진심으로 염려하는 지극정성의 마음이 가득히 고여 있다.
진정한 학자의 우국충정이 반 천년을 지난 오늘에도 가슴에 남아 따사롭다.

대장부 하올 일 금과 같거니
햇빛 처럼 뚜렷한 길 머리위에 틔었소
도롱이 보내오심 응당 뜻 있으려니 
오호(五湖)에 배 띄워 한가히 놀자는 게지오. <하위지>

 단계(丹溪) 하위지(何緯地)는 집현전에서도 침묵과 과묵으로 남의 존경을 받았으며 난세에 자신이 할일을 분명하게 알아 비장한 충성심을 내포한 큰 그릇의 인물이다.

영월 자규루에서

천고원한 품은 채 구중궁궐 물러나와
영월이라 깊은 산중 혈혈단신 될 줄이야.
밤이면 밤마다 잠 못 이루고,
지는 해는 진다만 내 시름 끝이 없네.
두견의 소리 끊어진 새벽녘 기슭의
기우는 달빛마저 퇴색해 가누나.

붉은 피 같이도 흐르는 봄 골짝의 
저기 저 꽃잎들, 저기 저 꽃잎들,
붉게 타네.
아하! 하늘마저 귀 어두워
애끓는 이 하소는 아니 들었는지
어찌타 나 홀로 설움 겨워 목 메이나. <단종대왕>
 
 단종대왕의 <영월 자규루에서>전문이다. 1455년 숙부 세조에 의해 왕위를 찬탈당하고 노산군(魯山君)으로 강등되어 영월 청령포에서 읊은 유배의 아픔을 읊은 시조다.

자규루에서

자규루 다락에 올라
설움에 겨워서
서성이는 밤
두견새 너는 어이 그리우느니.
네 울음 애절하면 내 마음도 괴로워
네 슬픔 없고 보면 내 시름도 없을 것을...
여보소 원통한 세상 사람들이여!
춘삼월 자규루에 올라
두견새 소리
듣지마소. <단종대왕>

 단종이 노산군(魯山君)으로 강등되어 영월로 유배될 때 의금부도사(義禁莩事)로 그를 호송하였던 왕방연(王邦衍)은 여주(驪州)앞강 여강(驪江)을 지나면서 그의 아픈 심정을 이렇게 시로 남겼다.

단종을 생각하며

천만리 먼 먼 길
임금님 이별하고
내 마음 설레어
냇가에 앉았노니
저 물도 내 마음 같아
울어 밤길 가누나.  <왕방연>

맑은 듯 흐리고 흐릴 듯 다시 개네
자연도 이렇거든 세상 인심이야.
어저께 날 좋다던 이 오늘아침 헐뜯고
공명 싫다던 이 바둥대네.
꽃은 피건 지건 봄이야 관계하랴
구름이 오고 가건 산새야 알바 없어.
여보소 사람들이여! 새겨두고 잊지 마소
평생을 구하여도 부귀공명 덧없느니. <김시습>

 매월당(梅月堂) 김시습(金時習)은 삼각산 중흥사에서 공부하다 수양대군이 즉위 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통분하여 책을 불사르고 중이 되어 방랑의 길을 떠났다. 저서로는 금오신화. 매월당집. 신현담요해 가 있다.
 수양대군의 의하여 거열형으로 사지가 찢어져 죽은 사육신의 시신이 한강변에 방치되어 나뒹구는 것을 수습하여 오늘의 노량진에 사육신 묘에 안장한 것이 김시습 이라고 전해진다.

삭풍(朔風)은 나무 끝에 불고 명월(明月)은 눈 속에 찬데
만리변성(萬里邊城)에 일장검 집고서서
긴 파람 큰 한 소리에 거칠 것이 없어라.

장백산(長白山)에 기를 곳고 두만강에 말을 씻겨
서근 져 선비야 우리 아니 사나희냐
엇덧타 인각화상(麟閣畵像)을 누구 몬져 하리오.

세종조(世宗祖)에 육진을 개척하고 문무를 겸비한 김종서(金宗瑞)의 애국시 호기가(豪氣歌)다.
세종의 총애를 받고 세조가 사륙신을 역살할 때 문무를 겸비한 김종서도 단종 복위 운동 때에 주살 되었다. <출처 : 청구영언>

남이(南怡)장군은(1441-1468)선조 3년에 무과에 급제하여 28세에 병조판서에 오른 무관으로 장래가 촉망되었으나 유자광등의 반대파들의 모략으로 여진 토벌 시 읊은 시가 발단이 되어 반역죄로 주살 당하였다. 이들이 미평국(未平國)을 미득국(未得國)으로 변조하여 역모로 몰고 간 것이다.

백두산 돌이 다 달토록 칼을 갈아 둘러메고 
두만강 물이 마르도록 말을 살찌게 먹여 타고
남아로서 20세에 나라를 평정하지 못한다면
후세에 어느 누가 일러 대장부라 하리오.

白頭山石 磨刀盡
豆滿江水 飮馬無
男兒二十 未平國
後世誰稱 大丈夫   <남이>   
        

 정암(靜庵) 조광조(趙光祖)는 진사시 장원, 알성시 급제 후 성균관전적, 부제학, 대제학을 지내는 동안 급진적인 개혁을 서두르다 훈구파 남곤. 심정 등의 무고로 기묘사화 때 사사(賜死)당했다. 궁중을 혼란케 하던 소격소 혁파로 유명하고 정암집15권 5책이 전해진다. 그의 유시를 대하면 우국충정이 눈물겹다. 사색 당쟁이 얼마나 무모하였는가를 우리 민족은 진심으로 반성해야 할 것이다.

임금을 어버이처럼 섬겼고         (愛君如愛父)
나라를 내 집 처럼 근심하였네   (憂國如優家)
밝은 해가 세상을 굽어보니       (白日臨下土)
붉은 충정을 밝게 밝게 비추리라.(昭昭照丹衷) <조광조>

 사약 사발을 들고 온 의금부도사 앞에서 이런 유시를 쓸 수 있는 올곧은 선비가 있었다니 참으로 우리의 선조들은 위대한 민족혼의 표본이었음을 알 수 있다.

  청음(淸陰) 김상헌(金尙憲)은 1570년에 태어나 병자호란 때 최명길 등 주화론자에 앞서 척화론을 주장하며 청에 볼모로 잡혀가는 두 왕자와 홍익한  오달제 윤집 삼학사의 극한상황을 보며 최명길이 작성한 항복서를 찢으며 청나라로 잡혀가면서

"임금의 욕됨이 극한에 이르렀는데
신하의 죽음이 어찌 더딘 가 목숨을 버리고
의(義)를 취한다 하더니 바로 지금이 그때인가  노라.“

임금을 모시고 투항하는 건 내 진실로 부끄럽네
한칼로 인(仁)을 얻으리니 죽음은 집에 돌아가는 듯 여겨지네.“

라는 각오로 청나라에 잡혀 가면서

가노라 삼각산아 다시보자 한강수야
고국산천을 떠나고자 하랴마는
시절이 하 수상하니 올동말동하여라.

애국시를 남기고 고국을 떠났다.
그는 뒤에 풀려 노구를 이끌고 고국으로 돌아와 학가산(鶴駕山)골짜기에 목석헌(木石軒)이라는 초옥을 엮고 은거하였는데 많은 신하들이 상소하여 숭록대부(崇錄)대부를 하사하려 하였으나 끝내 사양하였다.
끝까지 항복을 아니 한 삼학사 홍익한 오달제 윤집은 한 관속에 넣고 톱으로 켜서 죽였다하는데 그들이 유서로 남긴 시한수가 전해오지 아니하여 어기에 옮길 수 없으니 필자도 마음이 아프다.

충무공(忠武公)이순신(李舜臣)장군은 무인인 동시에 탁월한 전술가요 문장가였다. 그는 이조 인종 원년에 한양에서 태어나 갖은 저항과 모략을 받으면서도 우국충정의 애국 혼을 천추만세에 빛내신 분이다.
그는 충신이요, 효자요, 애국자였다. 가지가 많은 나무가 바람 잘 날 있었겠는가?
생불여사(生不如 死)란 말이 있다. 비천한 삶이 차라리 죽음만 못하다는 뜻이다. 이 세상에서는 태어나서 빛이 되는 존재와. 그저 해도 득도 없이 멍청한 존재와, 세상에 해가되는 존재로 3분 된다.

이제 충무공 이순신의 깊은 마음 속 으로 들어가 보자.

님의 행차 서쪽으로 멀리 가시고
왕자들 북쪽에서 위태한 오늘날
나라위해 근신하는 외로운 신하들
장수들은 공로를 세울 때로다
바다에서 맹세하니 용이 흐느끼고
산에 맹세하니 초목이 아는 도다
이 원수 모조리 무찌른다면
내 한 몸 이제 죽는 다 어찌 사양하리오.

  天步西門遠 君儲北地危
  孤臣愛國日 壯士樹勳時
  誓海魚龍動 盟山草木知
  誓夷如盡滅 수死不爲辭(수-비록수)

충무공(忠武公) 이순신(李舜臣)장군은 충신이기도 하지마는 효자요, 대 문장가였다.  
그의 명저 난중일기에 보면 “고요하고 무겁기가 산과 같다” (靜重如山)이란 심정의 진실한 표현이 나온다. 나는 이 글귀가 너무나 마음에 들어 怡堂 安秉煜 스승께서 1982년 여름 우리 농장을 방문하셨을 때 휘호로 받아 우리 가문에 보배로 삼고 있다.
충무공이 진중에서 격랑의 파도와 싸우면서 왜적을 격파하다 잠시 틈이 나면 시로 그의 우국충정을 노래하였으니 그의 한산도가 는 우리 민족의 애국가나 다름이 없다.

석자 칼로 하늘에 맹세하니
산과 들이 떠는도다.
한번 휘둘러 쓸어버리니
피가 강과 산을 물들이는 도다.
<三尺誓天 山河動色 一揮掃蕩 血染山河> 란 그이 고독이 얼마나 깊고 무거웠는가를 짐작할 수 있다.

한산섬 달 밝은 밤에 수루에 혼자 앉아
큰 칼 옆에 차고 깊은 시름 하는 차에
어디서 일성호가는 남의애를 끊나니.

화살을 맞아 세상을 떠날 때에도 진중의 혼란을 생각하여 나의 죽음을 밖에 알리지 말라고  당부한 우국충정이 지금도 귀에 들려오는 듯 쟁쟁하다.
귀생지도(貴生之道)의 고귀한 선인들의 길을 따를 수만 있다면 얼마나 아름다운 삶이겠는가.

4) 근대 시인들의 유시

 시인 김삿갓은 순조 7년 1807년 권문세가인 장동(壯洞)김씨 집안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병연(炳淵)자는 성심(性深) 호는 난고(蘭皐)다. 과거에 장원급제 하였으나 조부 김익순을 모욕한 죄로 하늘을 두려워하여 일생 삿갓을 쓰고 전국을 방랑하며 살다가 철종14년 (1863)3월29일 전남 동복 적벽강에서 아래 유시를 남기고 56세의 생을 마감하였다.

날짐승도 길짐승도 제 집이 있건만
나는 한평생 혼자 슬프게 살아 왔노라.
집신에 지팡이 끌고 천리 길 떠돌며
물처럼 구름처럼 가는 곳이 내 집이었다.

사람도 하늘도 원망할일 못되어
해마다 해가 저물면 혼자 슬퍼했노라.
어려서는 이른바 넉넉한 집에 태어나
한강가 이름 있는 집에서 자랐노라.

조상은 부귀영화를 누려 왔던 사람들
장안에서도 이름 높던 가문이었다.
이웃 사람들 생남했다 축하해주며
언젠가는 출세하리라 기대했건만.

자랄수록 운명이 자꾸만 기구하여
오래잖아 상전이 벽해처럼 변했소.
의지할 친척 없고 인심도 각박한데
부모마저 돌아가서 집안은 망했도다.

새벽 종소리 들으며 방랑길에 오르니 
생소한 객지라서 마음 애달팠노라.
마음은 고향 그리는 여호 같고
신세는 궁지에 몰린 양 같은 나로다.

남쪽 지방은 자고로 과객이 많은 곳
부평초처럼 떠돌아가기 몇몇 해던고.
머리 굽신거림이 어찌 내 본성이리오.
먹고 살아가기 위해 버릇이 되었도다.

그런 중에도 세월은 속절없이 흘러가
삼각산 푸른 모습 생각할수록 아득하네.
떠돌며 구걸한 집 수없이 많으니
풍월 읊는 행랑은 언제나 비었도다.

큰 부자 작은 부자 고루 찾아다니며
후하고 박한 가풍 모조리 맛보았노라.
신세가 기구해 남의 눈총만 받다보니
흐르는 세월 속에 머리만 희었도다.

돌아가자니 어렵고 머무르기도 어려워
노상에서 방황하기 몇 날 몇 해 이던고
저 하얀 구름타고 
신선이 되어 하늘로 올라간다. <김삿갓>

 일성(一醒)이준(李儁)열사는 1859년 함북 북청에서 태어나 고종의 밀지를 받고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가서 활동 중 순사(殉死)하였다. 그는 와세다 대학을 졸업하였다고 과거에도 급제 하였다. 그가 남긴 유시는 없었지만 그의 분사 소식을 듣고 당시 중화민국의 총통인 원세개(元世凱)가 보낸 만장(輓章)이 바로 애끓는 시이기에 여기 옮긴다.

가슴 헤쳐 피 뿌리니 그 마음 참됨이여,
장한 절개는 천하 사람의 가슴을 울리네.
만리의 넋 돌아와도 고국은 어지러워
온 나라 그 충성에 눈물 뿌리네.
처자를 두고 어찌 쉬이 눈 감기랴만
나라 위해서는 제 몸도 버렸네.
대의는 당당하여 일월에 걸리고  
구천에서 마땅히 백이숙제와 짝하겠네. <원세개>

매천(梅泉)황현(黃玹)(1855-1910)은 조선말에 올곧은 우국지사다. 자는 운경(雲卿)본은 장수(長水)로 전남 광양 출신이다. 시문에 능하여 1885년 (고종22년)생원시에 장원 하였으나 시국의 혼란함을 개탄하여 향리에 은거 하였다.1910년 (융희4년)일제의 강압으로 조국이 일본과 합방되자 국치를 통분하여 절명시 4편을 남기고 음독 순국하였다. 
조국이 이런 선열들의 목숨을 바친 음덕으로 독립이 되었는데 일제의 갖은 아양과 간교로 일신을 평안히 누리던 자들이 통치를 하였으니 참으로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요사스런 기운에 가리어 임금별 자리를 옮기니
구중궁궐은 침침해져 햇살도 더디드네.
조칙도 인제는 다시 있을 수 없어
구슬 같은 눈물이 종이 가닥을 모두 적시네.

새 짐승도 슬피 울고 강산도 찡그리네.
무궁화 이 나라가 이젠 망해 버렸어라.
가을 등불 아래서 책 덮고 지난 역사 생각해보니
인간 세상에 글 아는 사람 노릇 어렵기만 하구나.

내 일찍이 나라를 버티는 일에 서까래하나 놓은 공도 없었으니 
겨우 인(仁)을 이루었을 뿐 충을 이루지 못했어라.
겨우 윤 곡을 따른 데서 그칠 뿐
진동을 못 넘어선 게 부끄럽기만 하여라.
어지러운 세상 부대끼면서 흰 머리 되기까지,
몇 번이나 목숨을 버리려 했지만 여지껏 그러지를 못했어라
오늘은 참으로 촛불만 푸른 하늘을 비추네. <매천. 황현>

 충정공(忠正公) 민영환(閔泳煥)(1861-1905)은 한말의 문신이요 순국지사다. 그는 문과에 급제한 후 예조, 병조, 형조 판서를 역임 하였고 1905년 을사보호조약이 체결되자 망국의 설움을 달랠 길 없어 5통의 유서를 남기고 자결하여 고국과 국민을 향한 애국 충정을 보였다.
 
 “아! 국치와 민욕이 이에 이르렀으니 우리 민족은 장차 생존경쟁 가운데서 진멸하리라. 대저 살기를 바라는 사람은 반드시 죽고, 죽기를 기약하는 사람은 도리어 삶을 얻나니
제공은 어찌 이것을 알지 못하는고? 영환은 한번 죽음으로 황은에 보답하고 2천만 동포형제에게 사죄하려 하노라. 그러나 영환은 죽어도 죽지 않고 저승에서라도 제공을 기어이 도우리니 동포형제들은 천만 배 더욱 학문에 힘쓰며 한마음으로 힘을 다하여 우리의 자유 독립을 회복하면 죽은 몸도 마땅히 저 세상에서 기뻐 웃으리라. 아! 조금도 실망하지 말지어다. 우리 대한제국 2천만 동포에게 삼가 이별을 고하노라.“
                             <민영환> 

 그가 자결한 뒤에 남기고간 피 묻은 옷과 칼을 마루방에다 봉안했는데 이듬해 1906년 7월비로서 그곳을 열고 보았을 때 마루 틈에서 4줄기 9가지 48잎사귀가 돋은 푸른 대나무가 솟아올라 있었다 한다. 그의 애끓는 우국충정이 고려 말 포은 정몽주의 선죽교 고사와 함께 우리 민족사의 애국 충절의 표본으로 길이길이 칭송 될 것이다.

 안중근(安重根)의사는 1879년 황해도 해주에서 안태훈(安泰勳)씨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도산 안창호를 만나 그의 영향을 받았고 1909년 10월 22일 하르빈 역두에서 조선총독 이등박문을 사살하고 체포되어 1910년 3월26일 오전10시 여순 감옥에서 순국하였다. 그는 조국을 위하여 명문과 명필을 많이 남겨 후세에 귀감이 되었다. 이를 여기 옮겨 놓는다.

장부는 비록 죽을지라도 마음이 쇠와 같고
의사는 위태로움에 임할지라도 기운이 구름 같도다.

동양 대세 생각하매 아득코 어둡거니 
뜻있는 사나이 편한 잠을 어이 들리.
평화시국 못 이룸이 이리도 슬픈지고.
침략정책 안 고침은 참으로 가엽도다.

눈보라 친 연후 예야 송백의 이울어지지 않음을 아느니라.
사람이 멀리 생각지 못하면 큰 일을 이루기 어려우니라.

이로움을 보거든 정의를 생각하고
위태로움을 보거든 목숨을 주라.
(見利思義 見危授命)

임 생각 천리 길에 바라보는 눈이 뚫어질 듯하오이다.
이로써 작은 정성 바치노니 행여 이 정을 버리지 마소서.

내가 한국 독립을 회복하고 동양평화를 유지하기 위하여 
3년 동안 풍찬노숙 하다가 마침내 그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이곳에서 죽노니 우리 2천만 형제자매는 각각 스스로 분발하여 학문을 힘쓰고 사업을 진흥하여 나의 끼친 뜻을 이어 자유 독립을 회복하면 죽는 자 유한이 없겠노라. <안중근>

 그의 최후의 소식을 듣고 청국의 대 정치가 원세게는 
이런 조시를 보냈다. 그 또한 얼마나 그릇이 큰 인물인가? 


평생을 벼르던 일 이제야 끝났구료
죽을 땅에서 살려는 건 장부가 아니고 말고
몸은 한국에 있어도 만방에 이름 떨쳤소
살아선 백 살이 없는 건데 죽어서 천년을 가오리다.<원세게>

安重根義士 輓章袁世凱 平生營事只今畢 死地圖生非丈夫 身在三韓名萬國 生無百歲死千秋 …………………………………. *袁世凱:1910년 당시 중국의 국가주석

이렇게 우리 조국과 민족을 진지하고 가슴 뛰게 한 참 지도자가 과연 우리 역사 속에 몇 분이나 계셨는지 우리 스스로에게 묻고 싶다. 이 못난 민족 앞에  그 귀한, 천하와도 바꿀 수 없는  목숨을 바치신 의사 앞에 우리 모두는 가슴을 기우려야한다.

 안중근이 어려서 늘 선친께 아침 문안을 드렸는데 하루 아침에는 조부가 얼른 그래 잘 잤다. 하시는 말씀이 없이 주저주저 하시기에 여쭈었더니 싯귀가 얼른 생각이 안 떠올라 그런다 하신지라 그가 답한 내용인즉 이러하다.

새벽 이는 삶을 도모하고자 도망을 치는데  (曉蝎圖生潛跡去)
저녁모기는 오히려 소리를 치면서 달려오누나(慕蚊迎事有聲來) 
라는 댓구의 시를 지었다고 하니 어려서부터 그의 문장과 패기가 엿보이는 듯하
다. 나는 안 의사 의거 100주년을 맞이하여 시를 한 수 올렸다. 속히 님의 유골을 찾아 그가 살아 간절히 원하시던 조국 강산에 모시고 예의를 올렸으면 한다.

安重根義士 義擧 100주년에 부치는 詩
                                              정용진
탕 탕 탕
탕 탕 탕

1909 10월 26일 오전 9시
만주 하얼빈 역에서 육혈포(六穴砲)가
국적(國賊) 이토 히로부미 가슴을 향해
6발의 총성이 불을 토했다.

의사(醫師)는 개인의 질병을 치료하나
의사(義士)는 나라의 병을 고친다.

안중근 의사는 어려서
조부가 새벽잠을 깨어
이불 위를 기어가는 이(蝎)를 보고
새벽 이는 삶을 도모하고자 잠적 하는구나
(曉蝎圖生 潛跡去) 라고 하는 싯귀에
저녁 모기는 오히려 소리를 치며 달려 오는도다.
(慕蚊迎事 有聲來)라고 기백과 담력의 답을 올렸다.

그는 1910년 3월 26일 오전 10시
여순 감옥에서 순국 하였을 지라도
천추만세를 길이 살 것이며
그 이름은 청사(靑史)에 빛나리라.

이로움을 보거든 정의를 생각하고
위태로움을 보거든 목숨을 주라.
(見利思義 見危授命)
그의 유언이 귓가에 쟁쟁하다.

이 얼마나
조국과 민족을 위하여
자신의 생명을 바치면서
절절히 토해놓은
피맺힌 절규인가.

100년이 지난 오늘 날에도
의인의 진실 된 말씀에
가슴이 저려온다.

해몽(海夢) 전봉준(全奉準)녹두장군은 조선말 동학혁명의 지도자로 1854년 철종 5년에 전북 태인에서 태어났다. 고부군수 조병갑의 탐학에 항거하여 죽창을 손에 들고 보국안민(輔國安民) 제폭구민(除暴救民) 과 진멸권귀(盡滅權貴) 축멸왜이(逐滅倭夷)의기치아래 시호시호 불재래(時好時好 不再來)를 외치면서 농민혁명을 주도하였다.
고려시대 만적의 난 이후 민중의 봉기로서는 혁명적 거사였다. 그는 키가 너무 작아 별명이 녹두였고 왜군은 푸른색 군복을 입어서

새야새야 파랑새야 녹두밭에 앉지마라
녹두꽃이 떨어지면 청포장수 울고간다
새야새야 파랑새야 녹두밭에 앉은새야
녹두꽃이 떨어지면 부지깽이 매맞는다
새야새야 파랑새야 녹두밭에 앉은새야
아버지의 넋새보오 엄마죽은 넋이외다
새야새야 파랑새야 너는어이 널라왔니
솔잎댓닢 푸릇푸릇 봄철인가 널라왔지.

라는 민요가 가난에 찌들고 권세에 억눌려 가슴이 답답한 민중의 입에서 입으로 불려 져왔다.
그는 부하 김경천의 밀고로 왜군에 잡혀 서울로 압송되어 처형되었다. 그러나 지금도 그를 칭송하는 파랑새는 민중의 가슴속에 살아 푸르다.

도산(島山) 안창호(安昌浩)선생은 1878년 평양에서 안흥국씨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미국으로 공부를 하려고 왔다가 민족이 어려움을 받고 천시를 당하는 모습을 보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이 인격완성과 경제적 자립임을 깨닫고 해외동포들을 훈련시켜 국력을 기르고 힘이 없어서 잃은 조국을 되찾으려는 일념으로 흥사단과 국민회를 조직하고 해외동포들을 훈련 시켜다. 흥사는 흥단을 위하여 흥단은 흥국을 위하여 초지일관한 것이 그의 애국관이요 민족혼이었다.
“나라가 없고서 한 집안과 한 몸이 있을 수 없고, 민족이 천대받을 때 혼자만이 영광을 누릴 수 없다.”는 것이  그이 신념이었다.
그가 독립 운동을 하다 왜경에 체포되어 검사가 또 독립운동을 하겠느냐? 는 질문에 “나는 밥을 먹는 것도 민족 운동이요, 잠을 자는 것 도 민족운동이다. 나더러 민족운동을 하지마라 하는 것은 죽으라 하는 것과 같다. 죽어도 혼이 있으면 나는 여전히 민족 운동을 계속 할 것이다.”라고 진술하였다.
도산이 단장의 슬픔을 안고 조국을 떠나 미국으로 올 때 그가 남긴 거국가(去國歌)는 오늘도 우리의 심금을 울린다.

간다 간다 나는 간다
너를 두고 나는 간다
잠시 뜻을 얻었노라
까불대는 이 시운이
나의 등을 내밀어서
너를 떠나가게 하니
일로부터 여러 해를
너를 보지 못할지니
그 동안에 나는 오직
너를 위해 일할지니
나 간다고 설워마라
나의 사랑 한반도야.“

이는 애국가와 같은 심경의 토로이기도 하다.
애국가의 가사가 도산이 지었다는 설이 있음도 이에 연유 되었을 성 싶다. 그가 서울대학 병원에서 옥고로 순국 할 때 마지막으로 남긴 유언이 “낙심 마오.”였다.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도산 안창호 인터체인지와 도산 우체국이 세워진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닌 그가 바라던 염원의 아름다운 결실이다.

5)현대 시인들의 유시

 윤동주(尹東柱)시인은 1917년 북간도 명동촌에서 태어나 숭실, 동명 중학을 졸업 한 후 연희전문 문과를 졸업하였다. 구주 동경 입교대학을 거쳐 경도 동지사대학 영문과에 재학 중 사상범으로 체포되어1944년 2년 형을 선고받고 복강형무소에 수감 중 1945년 2월16일 형무소에서 별세 하였다 .그는 우리 민족이면  누구나 읽어 감동을 받는 “서시”를 유시처럼 남기고 조금만 있으면 맞이할 조국 해방을 못 본채  세상을 떠났다. 

서시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 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 하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윤동주>

 운명의 길을 인간의 힘으로는 벗어날 수가 없다는 아픔을 우리는 도산 안창호 선생이나 시인 윤동주에게서 절실히 보고 아프게 깨닫는다. 아주 짧은 세월만 더 살았더라면 그들은 꿈속에서 그리던 조국 해방을 보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 젊은 나이에 얼마나 학문의 깊이가 있었으면 그의 싯귀에 맹자집주 13장3락에 ‘부모가 생존해 계시고 형제가 무고하면 “첫 번째 기쁨이요, 하늘을 우러러 한 덩이 부끄러움이 없고, 고개 숙여 사람을 대하여 부끄러움이 없다면 두 번째 기쁨이라(仰塊於天 俯不作於人)의 ”하늘을 우러러 한 점의 부끄러움”을 논한 것을 보면 한문에도 깊은 조예가 있었음을 알 수가 있다.

 미당(未堂)서정주(徐廷柱)시인은 1915년 전북 고창에서 태어나 숱한 사연을 뿌리면서 한국 서정시의 토대를 구축한 명인이다. 그의 서정성에 흠뻑 빠지다 보면 친일, 독재찬양 등 흠과 티로 얼룩져 있다. 그러나 그를 못 잊어하는 것은 그의 독창적인 서정성에 있다. 그가 임종이 가까워 부른 길마재의 노래를 들어보자.

길마재의 노래

세상일 고단해서 지칠 때마다
댓잎으로 말아 부는 피리 소리로
앳되고도 싱싱히는 나를 부르는
질마제, 질마제, 고향 질마제.

소나무 바람 소리 피리 바로 그대로
한숨 쉬다 돌아가신 할머님 마음.

지붕위에 바가지 꽃 그 하얀 웃음
나를 부르네 나를 부르네.

도라지꽃 모양으로 가서 살리요?
칡 넌출 뻗어가듯 가서 살리요?
솔바람에 이 숨결도 포개어 살다
질마재 그 하늘에 푸르릴리요. <서정주>

 금년 가을에는 그의 명작 “국화 옆에서”를 기리는 무명의 시인이 길마재를 1억 송이의 황국으로 덮어서 화제다. 미당은 저승에서도 국화주를 들며 기뻐하겠다.

 편운(片雲)조병화(趙炳華)시인은 1921년 경기 안성에서 태어나 일본 고등사범에서 수학하였고 한국 문단의 거목으로 살다갔다. 그는 3천여 편의 시를 남기고 2003년 3월8일 어머님의 심부름을 왔다 어머님께로 돌아갔다. 그는 자신의 묘비명으로 “꿈의 고향”이란 시를 새겼다.

“어머님의 심부름으로 이 세상에 나왔다가
이제 어머님의 심부름 다 마치고 
어머님께 돌아 왔습니다. <조병화>

 이 시를 남기고 한 조각 구름으로 다시 어머님께 돌아갔다.

천상병(千祥炳)시인은 1930년 태어나서 고교3학년 때 처녀 시 “강물‘로 등단했다.

귀천

나 하늘로 돌아 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 잡고,

나 하늘로 돌아 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 하며는,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다고 말하리라... <천상병>

 박정희 독재가 칼날을 세우고 무소불위 날뛰던 어두움의 시절 그는 동백림 사건에 연루되어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고문을 당하고 침묵을 하다가 “그날은-새”를 내놓았다

이젠 몇 년 이었는가
아이론 밑 와이셔츠같이
당한 그날은....

이젠 몇 년 이었는가
무서운 짐 뒷 창가에 여름 곤충 한 마리
땀 흘리는 나에게 악수를 청한 그날은...

내 살과 뼈는 알고 있다.
진실과 고통
그 어느 쪽이 강자인가를....

내 마음 하늘
한편 가에서
새는 소스라치게 날개 편다. <천상병>

 저승 가는데도 여비가 들면 어떻게 가느냐고 묻는 시인.
중앙정보부에서 전기고문을 세 번 당하고 아이도 낳을 수 없다 던 그, 그가 빈 손으로 이 세상을 떠나던 그날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조의금으로 모인 3백 만원을 둘 곳이 없어서 쩔쩔매던 장모가 아궁이에 넣어둔 것을 모르고 연탄불을 넣어 태워버리고 빈손으로 떠난 천상병 시인은 여비가 없어서 어떻게 저승에 갔을까? 인간은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라더니 알 수가 없는 신비의 세계일 뿐이다.

경허 스님 열반송
1912년 4월 25일, 갑산 웅이방(熊耳坊) 도하동(道下洞)에서 입적하시니, 세수(世壽)는 64세, 법랍(法臘)은 56세였습니다.
 시적(示寂) 그 직전에 마지막으로 일원상(一圓相)을 그리며써놓은 열반게송(涅槃偈頌)이 있습니다.
 
心月孤圓光呑萬像 光境俱忘復是何物
 
마음만 홀로 둥글어 그 빛 만상을 삼켰어라빛과 경계 다 공한데 다시 이 무슨 물건이리오.
여름에 천화(遷化) 소식을 듣고 제자 만공(滿空)스님과 혜월(慧月)스님이 열반지 갑산에 가서 법구(法軀)를 모셔다 난덕산(難德山)에서 다비(茶毘)하여 모셨습니다

6) 근세들의 유시
근세 작고하신 분들의 유언과 유시들을 여기에 옮겨 놓는다.

숭산(崇山) 스님은 2004년 11월 30일 입적하셨다.

< 열  반  송 > 다 걱정하지 마라, 만고광명(萬古光明)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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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 한국의 슈바이쳐 선우경식 원장님의 명복을 빕니다 존경 2008.04.19 17482
1939 꽃의 시(詩)학(4) 꽃은 아픔아다./秀峯 鄭用眞/ 증보편 정용진 2012.09.23 8246
1938 동요와 민요/샌디에고 문장교실 송년 강론 자료/정용진 시인/ 정용진 2012.12.04 28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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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 대화 없는 대화 석류나무 2007.03.22 1816
1935 재산 양도 에 대하여 석류나무 2007.04.02 1628
1934 최락완 시인 동씨침법 특별강의 한길수 2010.11.10 1541
1933 秀峯 明心寶鑑/정용진 시인 정용진 2013.04.22 1530
1932 秀峯 明心寶鑑/증보편/秀峯 鄭用眞/(2) 정용진 2012.06.21 1517
1931 사랑의 시학(詩學) 정용진 2008.07.20 15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