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인숙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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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uck2016.12.07 08:56

                                                   Ode to j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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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론/ 최영미

 

 

사랑이 올 때는 두 팔 벌려 안고

갈 때는 노래 하나 가슴속에 묻어놓을 것

추우면 몸을 최대한 웅크릴 것

남이 닦아논 길로만 다니되

수상한 곳엔 그림자도 비추지 말며

자신을 너무 오래 들여다보지 말 것


답이 나오지 않는 질문은 아예 하지도 말며

확실한 쓸모가 없는 건 배우지 말고

특히 시는 절대로 읽지도 쓰지도 말 것

지나간 일은 모두 잊어버리되

엎질러진 물도 잘 추스려 훔치고

네 자신을 용서하듯 다른 이를 기꺼이 용서할 것


내일은 또 다른 시시한 해가 떠오르리라 믿으며

잘 보낸 하루가 그저 그렇게 보낸 십년 세월을

보상할 수도 있다고, 정말로 그렇게 믿을 것

그러나 태양 아래 새로운 것은 없고

인생은 짧고 하루는 길더라...

 

- 시집『꿈의 페달을 밟고』(창작과 비평사.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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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른 잔치는 끝났다'로 처음 이름을 알린 최영미 시인은 그의 친구들 가운데 가장 먼저 결혼하고 가장 빨리 이혼한 전력을 갖고 있는 독신이다. 그리고 서울대에서 서양사학을 공부했고 홍익대에서 서양미술사를 전공했으며 소설집도 두어 권 냈다. 이건 좀 부담스러운 편견일지 모르겠지만 간략한 이력만으로도 그 콧대의 높이를 짐작할만하다. 말하자면 그 콧대를 염두에 두고 이 시를 읽었는데, 먼저 이별에 대한 쿨한 태도는 살아있음을 본다.

 

 그리고 이 행복론은 첫 작품집에서 감지된 삶의 고행과 비관의 그림자와 비교하면서 읽을 때 얼핏 화해와 희망 그리고 낙관을 이야기하는 듯 보이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 그동안의 다채로운 삶의 이력과 그 궤적의 결과에서 오는 필연적 피곤함에 조금 지친 탓일까. 계획대로 되지 않는 삶에서 자발적 모험들이 내일을 보장받을 수 없고 밤을 새워 고민한들 나아질 게 없다는 인식의 흔적에서 스스로 안전지대를 찾아든 것일까.

 

 그의 말대로라면 절대 촛불 따위는 치켜들지 말고 그 근처에도 얼씬거리지 말며, 남의 일에 공연히 참견하거나 들쑤시지도 말아야 한다. 누구나 행복한 삶을 꿈꾸지만 행복의 진정한 의미는 무얼까 라고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그냥 가란다. 가되 ‘남이 닦아논 길로만’ 다니고, 조금이라도 ‘수상한 곳엔 그림자도 비추지 말며’ ‘자신을 너무 오래 들여다보지 말 것’도 주문한다. 반어적 표현에 시인의 냉소와 열정이 함께 느껴져 묘한 설득력을 지닌다.

 

 그만큼 사람들이 피곤에 지쳐있다는 의미일까. 하지만 현실을 눈감고 얻을 수 있는 반대급부가 있다면 바로 편안함일 텐데, 편함이 곧 행복일 수는 없다. 니체가 말했다. 언젠가 날기를 원한다면 먼저 일어서고, 걷고, 달리고, 기어오르고, 껑충거리는 것을 배워야 한다고. 준비 없이 날 수 있는 사람은 없다고 했다. 인생의 비탈에 선 우리 같은 사람에겐 그리 썩 와 닿거나, 의지를 불태울 격려사는 아니지만 그게 정석 아니겠는가.(글 권순진 ) 

"https://www.youtube.com/embed/i__PgJX_5e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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