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인숙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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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 않은 길에 대한 명상'의 에피소드 / 홍인숙(그레이스)



참 이상했다. 평소 잠 자리에 기억할 수 없는 꿈이 많았지만 그날은 유난히 새벽녘 꿈자리가 생생했다. 신문에 실린 나의 글에 문제가 있어 담당자에게 항의를 하다 깨었고, 다시 든 잠에서도 똑같은 꿈을 꾸었다. 뭔가 이상한 예감이 스치고 지나갔다. 생각해 보니 바로 나의 글이 신문에 실리는 날이었다.

신문에 발표되는 글에 심심찮게 오자, 탈자가 발생하기에 의례 그런 일이려니 생각했다. 궁금한 마음으로 잠옷차림에 가운만 걸치고 문 앞에 배달된 신문을 집어 급히 훑어보니 새벽 차가운 공기만큼이나 등이 오싹한 일이 일어났다.

나의 사진과 나의 이름, 나의 글 제목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명상]아래 실린 내용은 첫 줄부터가 생소한 다른 사람의 글이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전문(全文)이 바로 전 주에 실렸던 수필가 B선생님의 글이었다.
즐거워야할 주말 아침이 순식간에 나를 혼란 속으로 몰고 갔다. 지금까지의 나의 글 분위기와는 전혀 다른, 그것도 활달하신 남자분의 글을 나의 글로 알고 반응할 독자에게로 온 신경이 집중되었다.

반응은 의외로 빨랐다. 시누님의 전화로 시작해서 한 분 두 분, 전화를 걸어오기 시작했다. 다음날 교회에 가니, 어찌되었던 내 이름을 걸고 재미있는 글이 실려선지 평소 대화가 없던 남자분들도 다가와 "아니 왜 남의 장미를 그렇게 몽땅 뽑아 버리셨어요?" "어쩌자고 불쌍한 할머니를 그렇게 울리셨어요?" 농담처럼 말을 건네 왔다.

작가와 독자 사이에 거리가 좁혀지고 유대감이 형성된다는 것은 바람직한 현상이다. 그러나 이번 일은 그게 아니었다. 사람마다 생김새가 다르고 분위기가 다르듯이 나에게도 나만의 문학세계가 있고 문체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정작 문제는 내가 나의 이미지만 걱정하고 있을 때가 아닌, 그보다 더 큰 문제가 나를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잘 못 실린 글을 읽으신 분들의 반응은 여러가지였다.
신문에 실린 글이 나의 글 분위기와 전혀 달라 금방 신문사의 실수인 것을 알았다고 하는 사람들은 정말 고마웠다.
문제는, 잘못 실린 B 수필가의 글을 바로 전 주에 읽었다면서, 남의 글을 토씨 하나 안 고치고 제목만 바꾸어 발표했다는 어이없는 상상력을 동원해 곧바로 표절이란 단어를 입에 올리는 사람들이었다.
평소 문학의 정통성을 강조하는 나로선 듣기 거북한 황당한 부분이었다.
한 신문사 직원의 실수로 자칫하면 표절작가라는 누명을 쓰게될 상황이었다.
중학시절부터 글을 써서 발표해왔고 베이에리야에서만도 이십 년이 넘게 글을 발표하며 쌓아온 나의 문학생활에서 한순간에 흔들거리는 소리가 환청처럼 들려왔다.

나의 인생에 '가지 않은 길'이 있다면 문학생활에서도 '가지 않은 길'이 있다.
그것은 순수 문학정신에서 벗어나는 길로, 아무리, 문단의 화려한 인맥에 끼어 들 수 있고, 빠르게 본국 문단에 자리 매김을 할 수 있는 길이라 해도 정도(正道)가 아닌 길에는 시선을 주지 않았다. 또한, 시 쓰기에 욕심을 내는 시인이기보다는 좋은 성향을 갖춘 시인이기를 집착하며 시인의 길을 걸어왔다고 자부 할 수 있었다.

다행히 정정 기사가 나가 오해에서 벗어날 수 있었지만, 앞으로 편집을 담당하는 분들에게는 성의를 다해 실수 없이 글을 실어주기를 부탁하며, 독자들에게는 좀더 사랑과 이해의 시선으로 작품을 대해주었으면 하는 기대를 안아본다.
그리고 어떤 모양이든 나의 문학에 관심을 보내주신 많은 분들에게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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