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를 야단치는 남편

2016.10.31 03:59

노 기제 조회 수:82

20160928                    아내를 야단치는 남편 

 

 

   덥다. 여름이다. 8월이면 더운 여름이지. 피하고 싶은 더위는 아니다. 휴가를 신청하기엔 8월쯤이 그럴듯해서 뽑아 놓은 일 주일이다. 딱히 어디를 가겠다는 생각도 없다. 남들 다 찾아 먹는 휴가를 갈 곳 없고, 마음 없어 자주 반납하던 남편이 금년엔 집에서 딩굴더라도 휴가를 써야겠다는 생각이었단다.


   12년 전, 맥킨리 산 등정을 위해 한 달을 머물렀던 알라스카였지만, 산행 외에는 어느 한 곳도 관광답게 못 해본지라 남편에겐 알라스카가 다시 가보고 싶은 곳이다. 그 당시 남편의 산행 스케줄 끝 부분에 맞춰 잽싸게 알라스카 관광에 나섰던 내겐 또 가고 싶은 곳은 아니다.


   그 때 내가 둘러 본 알라스카의 이곳저곳과는 사뭇 다른 코스가 관광 상품에 있다면서 남편이 나를 설득한다. 아무렴 어떠랴. 어차피 남편을 위해 희생하는 마음으로 함께 여행을 하겠다고 했던 것인걸.


   사십여 명 십여 가족이 한 버스로 이동했다. 내리고 타고, 먹고를 반복하며 함께 보낸 일주일이다. 한국에서 가족여행 온 팀이 미국에서 여행하는 팀 보다 숫자가 많다. 평균 아이 둘, 40대 초 중 하반 부부들. 기러기 아빠의 합류, 경제적으로 풍성해진 세대들, 부부 사이도 눈에 거슬리는 부분 없이 정답게 보인다.


   어디쯤에서 자유 시간을 받고 천천히 거리 구경을 다녔다. 붐비지 않은 어느 장소에선가 혼자 가슴을 팍팍 치면서 궁시렁 대는 부인네. 왜 나를 그렇게 감시하는 거야. 내가 지 딸이야? 바짝 쫓아다니면서 온갖 잔소리에 해라, 말아라. 앉아라, 서라, 말하지 마라, 이리 와라, 저리 가라, 내가 못 살지 못 살아. 아휴 지겨워.


   나를 보고 있는 착각이 든다. 차라리 저렇게 입 밖으로 토해 내면 시원해져서 얼마간은 견디며 살 수 있어진다. 슬며시 미소가 내 얼굴에 번진다. 나 혼자만 겪는 불행은 아니구나. 이 야릇한 대리 만족. 와락 끌어 안아주고 싶어진다. 다가갈까? 아니다. 혼자 그렇게 털어 버리게 귀한 시간을 빼앗지 말자. 아무것도 안 보았다. 듣지도 못했다. 난 내가 갈 길을 걷고 있을 뿐이다. 적당한 거리를 두고 그를 지나쳐 버스로 돌아 왔다. 나와 같은 연배의 부부다.


   점심을 위해 촌 동네 식당에 오십여 명이 들이 닥쳤다. 허둥대는 종업원들이 미처 정돈하지 못한 테이블에 두 가정 네 사람이 배정 받았다. 그 때 우리 부부와 팀이 된 비슷한 연배의 부부. 자기 가방에서 휴지를 몇 장 꺼내서 식탁을 닦는 부인. 순간 당신은 가만히 좀 있어. 기다리면 되잖아.” 벼락 치는 소리처럼 들렸다. 내가 겪어 본 상황이다. 오랜 결혼 생활에 변한 부부사이. 남편이랑 함께 여행 다니면 불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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