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1102                            숨 막히는 통증, 마음은 넓어졌다

                                              

 

    “아악외마디 비명을 토해 내곤 곧 호흡이 멈췄다. 왼쪽 팔꿈치로 바닥을 치며 균형을 잃었다. 가슴이 탁 막히면서 숨을 쉴 수가 없다. 입을 벌린 채, 오른손으로 왼쪽 팔꿈치를 움켜쥐고 주저앉아 눈을 감고 정신이 나가고 있다고 느꼈다.

  

   한국 방문 기간에 당한 사고다. 동창들이 모이는 탁구 모임에 초대를 받아 새로운 스포츠에 입문하면서 재미를 붙이고 있었다. 대치동에 있는 탁구장에서 매 주 목요일에 모인다고 오겠느냐는 희림이 초대에 신나서 어울린 두 번째 모임에서다.

  

   나름대로 운동엔 자신이 있고, 오래전에 엘에이 어느 탁구장에서 잠깐 접해 본 경험이 있다. 탁구 고수인 희림이가 상대해줌에 완전 초보가 되어 첫 날부터 칭찬까지 들었다. 내친김에 매주 나와서 치다보면 제대로 즐길 수 있는 스포츠 하나 추가 된다. 한국에 머무는 동안 네 번의 목요일이 있다. 운동도 하고, 서먹한 남자 동창들과도 만나니 재미가 배가 된다.

  

   오는 공들 모조리 잘 받아 치려고 빠르게 뛰다가 순간적으로 균형을 잃고 오른발, 왼발, 차례로 균형 잡기에 애쓰다가 실패하며 쓰러졌다. 반사적으로 온몸의 무게를 왼쪽 팔꿈치로 받아 바닥에 패대기를 친 것이다. 비명 소리에 놀라 모여든 사람들. 간호원 출신 희림이가 살이 찢어져 피범벅인 팔을 소독하고 붕대를 감는다. 왼쪽 팔꿈치를 있는 힘을 다해 움켜쥐고 숨 막히는 통증만을 호소하는 날 채근해서 병원으로 옮겼다.

  

   일곱 바늘 꿰매고 엑스레이 찍고 팔꿈치 뼈 작은 조각하나 떨어져 나갔단다. 그 정도에 왜 숨도 못 쉬게 심한 통증이 오는 것일까. 깁스까지 하고 부상병 모습으로 혼자 묵고 있는 호스텔로 돌아오니 막막하다샤워도옷을 갈아입는 것도전화 걸고 받는 것 등 모든 것이 불편하다그 동안 두 팔로 자유롭게 살았던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절감했다글 쓰는 작업도 못한다. 편히 누워 잘 수도 없다화장실 출입도 자유롭지 않고 어찌해야 좋을지 망연자실.

  

   비상사태에 대비해서 소독약, 붕대 등을 상비하고 다니는 희림이가 없었다면 어쩔 뻔 했나. 병원도 마침 옆 건물에 있어서 마음고생 덜 했으니 얼마나 감사한가미국에서 나온 손님이 일을 당해서 동창들 마음에 많은 부담을 주게 된 것이 미안하다.

  

   지금까지 내 인생에 한 번도 없던 일이다몸을 다치고, 피를 흘리고, 병원에 가서 상처를 꿰매고, 일상생활에 지장을 받고, 집 떠나 타지에서 혼자 감당해야 한다. 귀국날짜는 보름이나 남았다. 이 사고로 한국방문 일정이 엉망이 됐다. 내 기분 또한 수습 불가능처럼 뒤엉킨다.

  

   기회로 삼자. 평생 경험 못했던 일이니 새로운 글감이다. 막연히 동창이란 관계에서 가슴 뜨겁게 친구로 찾아 온 희림을 얻었다. 한층 소중한 것은, 건강상 일상이 불편한 많은 사람들에게 관심을 보이고 따스하게 이해할 수 있는 가슴이 되었다. 돈 주고도 얻지 못할 좋은 경험이다. 참기 힘든 고통을 맛 본 것도 감사하다. 제법 넓어진 내 마음이 고맙기도 해서 웃는다.

 

20161114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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