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플 룩/한석철

2018.04.23 07:07

전주인 조회 수:99

커플 룩(Couple look)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수요반 한석철

 

 

 

 

  커플 룩(Couple look:짝궁차림)은 커플들이 똑같은 의상을 맞춰 입는 것을 말한다. 큰며느리가 아르바이트했다고 용돈을 보내왔다. 어떻게 쓸까? 망설이다가 옷가게에 가서 커플 티를 샀다. 한 번도 입어보지 않았지만, 아내의 제안이 싫지 않았다.

 며칠 동안 봄추위가 계속되더니, 오늘은 날씨가 참 좋다. 부산 아들 집에 가려고 커플티를 입고 상쾌한 기분으로 출발했다. 집에서 점심을 먹고 오후에 출발할 예정이었으나 아파트 승강기 교체 작업이 열 시부터 시작한다니 일찍 출발할 수밖에 없었다. 아내가 아들 집에 간다고 며칠 동안 준비한 음식들이 승용차로 가득했다. 아내는 기분이 최고였다.

 며느리, 손자, 손녀는 다섯 시가 되어야 오며, 아들도 출장 중이라 밤 아홉시 이후에나 도착할 거란다. 참 모두 바쁘게 산다. 아내에게 어디가 제일 가고 싶은가 물으니 보리암을 가자고 했다. 창밖을 보니 옅은 연두색이 감도는 봄의 정취는 한없이 내 마음을 설레게 했다. 보리암은 오래전에 가본 기억이 있는데 가물가물했다. 푸른 바다와 섬들이 아름답게 보였다는 것만 떠올랐다. 내비게이션으로 찍어보니 183km로 열두시 반에 도착 예정이라는 표시가 나왔다. 월요일이라 고속도로는 원활하여 차가 싱싱 달렸다.

 산과 들이 파릇파릇 봄기운이 올라오고 있었다. 섬진강 휴게소가 보이니 반가웠다. 참 많이 다니던 길이다. 섬진강을 건너 조금 달리다가 하동IC에서 고속도로를 빠져나왔다. 곧 남해대교가 나왔다. 남해대교를 지나면서 보니 이순신 장군 묘소가 보였다. 함께 놀러 다니던 진주 친구들이 생각났다. 참 세월이 빨리 가버린 것 같았다. 국도를 따라 내비게이션이 가라는 데로 가니 금방 보리암 매표소 주차장이 나왔다. 자가용이 없던 시절에는 참으로 오기 힘든 곳이었는데, 이렇게 쉽게 올 수 있다니….

 주차장에는 월요일인데도 많은 차가 대기하고 있었다. 주말은 자가용으로는 올라갈 수 없는데, 오늘은 평일이라 갈 수 있단다. “야~!” 보리암에 갔던 차 한 대가 내려오면 한 대가 올라갈 수 있었다. 국립공원 직원이 통제하고 있는데, 우리 앞에 50여 대가 있었다. 우린 언제 올라간단 말인가? 시계를 보니 열두시 사십 분이었다. 아내는 기다리는 동안 점심을 먹자며 “짜~!” 과일, 음료수 등 푸짐하게 준비한 음식을 내놓는 게 아닌가? 언제 준비했느냐 물으니 입가에 미소만 짓는다. 참 고맙기도 한 사람이다. 점심은 꿀맛이었다. 식사를 하고 나니 우리 앞에는 십여 대의 차가 기다리고 있었다. 아마도 한 시간은 기다린 것 같다. 드디어 우리 차례. 출발! 올라가면서 보니 도로가 꼬불꼬불하고 경사가 심하지만 잘 정비되어 있었다. , 한 대씩만 가야하는지 알 것 같았다. 조심조심 3km의 험한 길을 올라갔다. 나무가 울창하고 도로 주변에는 늦은 벚꽃과 이른 철쭉들이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보리암 주차장에 도착하니, 여기에도 많은 차가 주차하고 있었다. 차를 세워놓고 다시 1km를 걸어서 올라갔다. 지금은 다 포장된 도로지만, 옛날에는 비포장도로로 4km를 걸어서 가야 하니 참 힘들었는데, 이제는 사람살기가 편리해지고 발달함을 실감하는 시간이었다. 많은 여행객이 즐거워하며 오른다. 우리도 즐거운 마음으로 커플티를 입고 올라갔다. 내 나이가 내년이면 칠순인데…. 많은 사람이 우릴 쳐다보는 것 같아, 부끄러워 내가 웃옷을 걸쳤더니, 아내가 벗으란다. 아는 사람도 없고 산길을 오르니 땀이 나서 벗어 버렸다. 관광지에서 가끔 신혼부부들이 커플티를 입고 다니는 걸 봤지만 오늘은 내가 신혼여행을 온 것 같았다.

 

  절이다. 보리암에 오르니 날씨가 좋아 저 멀리 남해가 손에 잡힐 듯이 푸른 들과 어울려 장관을 이루었다. 보리암은 경남 남해군 상주면 금산(해발 701m) 남쪽 봉우리에 있는 절로서, 신라 신문왕 3(683)에 원효대사가 세웠다는 절이다. 경내를 이리저리 기웃거려 본다. 부처상을 보니 30년 전에 왔다 간 기억이 난다. 그때 내가 진주에 살던 시절이었다(1988). 남해를 향하여 향수도 달래고, 소원도 빌고, 사진도 찍으며 한가로운 시간을 보냈다. 부처상 앞에서 어느 젊은 여성이 우릴 보고 멋있다며 사진을 찍어주는 게 아닌가. 사진작가라며 참 예쁘게 여러 장의 사진을 찍어주었다. 오늘은 행운의 여신이 우리를 찾아와 준 것 같아 아주 기분이 좋은 날이었다. 시간이 없어 오래 머물지 못해 아쉽지만, 이런 곳에 다시 올 수 있어 행복했다.

  부산으로 향하다 보니 벌써 세 시 반이다. TV에서 보았던 독일마을이 생각났다. 독일마을은 1960~70년대 어려운 시기에 조국근대화를 위해 광부, 간호사로 독일에 파견되어 경제발전에 헌신한 독일 거주 교포들을 위해, 조국의 따뜻한 정을 느끼면서 살 수 있도록 2000년부터~2006년간에 걸쳐 남해군이 조성한 마을이다. 독일마을, 바닷가 한적한 곳에, 독일의 마을을 옮겨 놓은 것 같았다. 몇 년 전 독일에서 보았던 마을과 비슷했다. 음식점 상호와 집 모양도 독일풍이었다. 독일 맥주와 소시지, 과자도 먹어보고 싶었다. 참으로 멋진 곳이었다. 독일마을 기념탑 앞에서 사진을 찍으려니, 젊은 청년이 커플 티가 독일 국기와 닮았다며 자청하여 사진을 찍어주면서, 참 보기 좋다며 어디에서 왔으며 연세가 몇이냐고 물었다. 전주에서 왔으며 칠순을 대비하여 여행 중이라고 하니, 함께 온 주변 젊은이들이 “와~”하며 손뼉을 쳐주었다. 참 기분이 좋았다. 독일 파견 기념관도 월요일이라 문을 닫았고, 가게들도 대부분 문을 닫았지만, 관람객은 끊임없이 오고 있었다. 문을 연 가게가 하나 있기에 가서 소시지를 주문했더니 다 팔렸단다. 참 서운했다. 독일 과자만 몇 개 사가지고 왔다. 나는 이제 자신이 생겨 커플 티를 입고 활보했다. 독일마을 전망대에서 독일마을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려니, 이번에는 수녀님이 사진을 찍어 주셨다. 수녀님이 우릴 보고 참 아름답다고 하니 수녀님과 함께 온 일행들이 모두가 멋있다고 한마디씩 거들었다. 우리는 스타가 된 기분이었다. 커플 티 하나가 이렇게 기쁨을 선사하다니….

 독일마을을 구경하고 서둘러 창선대교를 넘으니 삼천포항이다. 우리가 진주에서 살던 시절 이곳에서 자주 회식을 했는데, 벌써 30년 세월이 흘렀다. 아름다운 추억을 되새기고 싶어 항구를 한 바퀴 돌고나서 가고 싶지만, 부산에서 기다리는 아들 가족을 생각하여 서둘러 사천을 거쳐 진주에서 남해고속도로로 진입하여 부산으로 달렸다.

                                               (2018. 4.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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