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역전

2018.06.16 06:30

김현준 조회 수:27

인생 역전

 

                                      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김현준

 

 

 

 

  믿기지 않은 일이었다. 내 눈으로 TV화면을 지켜보면서도 말이다. 프랑스 파리 어느 아파트 5층 발코니 난간에 어린이가 매달려있는 장면이 나타났고, 순간 ‘떨어지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이 되었다.

  이때 난 데 없이 스파이더맨이 나타나 맨손으로 아파트 1, 2층을 타고 올라갔다. 성큼성큼 걸어 올라가는 느낌이었다. 옆집 베란다에 남자가 나타났으나 별 도움이 되지 못했다. 절체절명, 아이의 팔 힘이 빠지면 금방 추락할 위기의 순간이었다. 젊은이는 주저 없이 5층 아파트 베란다에 올라가 소년을 들어올렸다. 불과 30초 만에 일어난 기적이었다. 가슴을 콩닥거리며 지켜보던 시민들은 환호와 박수를 보냈다. 한 시민은 구조 현장을 동영상으로 찍어 ‘영웅은 망토를 두르지 않았다.’는 제목으로 페이스 북에 올려 화제가 되었다.    

  아이의 아버지는 수퍼마켓을 다녀오면서 아이를 혼자 내버려둔 것이라 한다. 엄마는 어디 갔는지, 아이는 어떻게 베란다 난간에 매달리게 된 것인지 알 수는 없다. 행인이 부른 119 긴급구조대원들은 어찌할 줄을 모르고 바닥에 매트 몇 장을 깔았을 뿐이었다.

  천사는 이럴 때 깜짝 등장해야 하고 구조에 성공해야 한다. 모든 게 완벽하게 들어맞았다. 그 젊은이는 천사임에 틀림없다. 천사가 아니라도 천사의 역할을 수행한 대리 천사임에 틀림없다. 신의 섭리가 작용한 게 아닐까?

  주인공은 아프리카 말리 출신의 22세 청년 마무두 가시마로 밝혀졌다. 파리 시민을 꿈꾸는 아프리카 젊은이로, 몇 달 전 프랑스로 건너왔다. 현재는 시민권이 없는 불법 체류자다. 사건 현장에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 망설여지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본능적으로 아파트 난간을 잡고 뛰어올랐다. 만약 손발이 삐끗했다면, 아이보다 먼저 세상을 버릴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이달고 파리시장은 가시마의 프랑스 정착을 도울 것이라며, 한 아이의 생명을 구한 그의 용감한 행동에 찬사를 보낸다고 트위터에 적었다.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가시마를 대통령궁으로 초대하여 그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가시마는 그때의 상황에 대해 ‘일단 오르기 시작하자 계속 올라갈 용기와 힘이 생겼다. 아이를 도울 수 있어서 신께 감사한다.’고 말했다. 가시마는 리비아에서 배를 타고 지중해를 건너 이탈리아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난민 신분으로 체류할 수 있었지만, 십 년 넘게 프랑스에 정착하고 있는 형을 만나기 위해 프랑스로 이주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그가 원할 경우 프랑스 시민권을 부여할 것이며, 파리의 소방관으로 특채하겠다고 밝혔다. 시민권과 직장을 한꺼번에 얻게 되었다.

 

  말리는 2012년 내전이 발발하여 1년 동안 100만 명이 넘는 난민이 발생했다. 이듬해 내전은 공식적으로 종전되었지만, 계속되는 정치적 불안정으로 주민들이 고국을 떠나고 있는 실정이다.      

  가시마는 고향 마을에서 큰 나무에 오르고 정글을 달리던 어린 시절을 보냈다. 꿈 많은 소년으로 구김살 없이 살았을 것이다. 소년에게 닥친 내전은 가정을 파괴시키고 가족들을 뿔뿔이 흩어지게 했으며, 살기 위해선 유럽으로 가야 한다는 결심을 굳히게 했다. 가시마 소년에게 마을교회 목사는 종교적인 신념과 사랑을 일깨워주었다.

 

  가시마는 사고 현장에서 천사가 도와줄 것이라는 믿음을 가졌다. 천사란 천국에서 파견되는 사자(使者)지만, 지상의 모든 일에 간여할 천사를 보내기는 쉽지 않다. 그만한 천사군(天使群)이 없을 테니까. 신은 필요에 따라 특정의 인간에게 천사 임무를 부여한다. 본인이 그 임무를 알고 있거나 모를 수 있으며, 한 건 또는 그 이상의 역할을 수행할 수도 있다. 임무를 잘 수행한 사람은 천사부대에 스카우트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지난 65일 프랑스 암벽등반가 알랭 로베로는 123층짜리 롯데월드타워를 무단으로 오르다가 곤돌라를 타고 접근한 경찰에 의해 업무방해 혐의로 체포되었다. 아무리 스파이던 맨 같은 능력이 있어도 기회를 만나지 못하면 의인이 될 수 없고 현행범으로 몰릴 수 있다.  

     

  나는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천사의 역할을 해보았던가? 그런 기회가 없었으니 앞으로라도 한 번쯤은 해보고 싶지만 가능할지 모르겠다. 기다린다면 신께서 그런 역할을 할 기회를 주시리라 믿는다. 어떤 역할일까? 정신 바짝 차리고 피하거나 주저하지 말아야겠다.    

  내가 만약 파리의 그 현장에 있었다면, 발만 동동 구르고 아이가 추락하는 불행한 순간을 보지 않으려 눈을 감았을 것이다. 자신의 무력감에 오열했을지도 모른다.        

  가시마의 말리 고향에선 그의 영웅담이 화제다. 시시한 정치꾼 뺨치는 인기인이 되었으며, 그의 귀향을 바라는 주민도 많다. 그의 빛나는 용기는 이웃들에게 삶의 희망을 주었다. 나무를 오르는 아이, 개울을 건너뛰는 아이들이 많아졌다.  

  구조된 소년의 뇌리에는 날개 달린 검은 천사의 모습이 각인되었을 것이다. 그도 언젠가는 누구에게 그런 도움을 주고 싶어할 것이며, 이로써 천사의 릴레이 신화는 시작된 것이다.

 

                                       (2018. 6.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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