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급 받으러 가신 장인 어르신

2018.06.17 06:41

정석곤 조회 수:27

상급 받으러 가신 장인 어르신

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정석곤

 

 

 

 

 

  지난 어버이날 전날 만남이 마지막일 줄이야! 장인 어르신이 침대에만 누워 계시고 요구르트조차도 드시기 힘드셨지만, 기억력은 초롱초롱하셔서 더 사실 것으로 생각했다. 그날도 두 손을 꼭 잡고 내가 기도할 때 ‘아멘’으로 여러 번 화답(和答)하시고, 같이 주기도문을 암송하고 헤어졌다. 그런데 66일 수요일 오후 157분 하늘나라로 가셨다.

 

  “고 김명수 장로님께서는 91세로 수()를 다 하시고, 하늘나라로 상급을 받으러 가셨습니다.

  입관 예배를 인도하신 목사님의 말씀이다. 장로님은 부유하거나 권력의 집안에 태어나신 게 아니지만, 신앙생활을 잘하시다 50세에 장로가 되어 교회를 충성스럽게 섬기셨다. 30여 년간 교회를 함께 섬겼는데 어려운 일이 있을 때도 흔들리지 않으셔서 존경스러웠다. 게다가 가정과 사회생활도 진실하고 성실하셨으니까 하늘나라 상급을 받아야 한다며 울먹이는 목소리로 이야기하셨다.

 

  아내에게 청혼할 무렵, 나이가 어려 혼인 생각은커녕 아예 준비가 없었다. 장인 어르신은 내 간구에 결혼승낙을 하셨으나, 신행(新行)을 이듬해에 하자고 하셨다. 혼수를 갖추어서 보내고 싶은 게 부모의 마음이리라. 끈질긴 내 강요에 못 이겨 기본적인 혼수만 해준다며 못 이긴 척하신 것이 아닌가? 그 은혜는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다. 장인 어르신이 나를 생각하는 마음은 그때처럼 변함이 없으셨다.      

 

  나는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돌아가셨을 때 초상((初喪)을 치르던 어렴풋한 광경뿐이다. 사위는 백년손님이라고 하지만 결혼 전부터 장인 어르신을 아버지로 모시려고 다짐했었다. 장인 어르신도 5남매 가운데 맏사위인 나를 마음의 첫 자리에 두지 않으셨을까? 결혼하고 5년 동안 순창읍내 처가 가까이에서 살며 매일 가다시피 했다, 전주로 이사를 오면서 자주 뵙질 못했다. 그러나 장인 어르신은 내 곁에 버팀목으로 우뚝 서 계셨다. 안방 작은 칠판에 세 사위의 이름을 써 놓고 날마다 기도의 끈을 이어 오셨는데, 이제는 하늘나라에서도 이어 가실 것이라 믿으니 든든하다.

 

  어버이날과 장인·장모님 생신이 돌아오면 단골 맛집에서 두 처남 가족이랑 저녁을 대접하는 게 10여 년이 넘었다. 장인 어르신은 음식을 가리지 않으시고 복스럽게 드셨다. 좋아하신 오리 불고기를 맛있게 드신 걸 볼 때마다 보람을 느끼곤 했었다. 작년부터는 걷질 못하셔서 찾아뵙기만 해 서글픈 마음으로 되돌아왔다. 그래도 장인 어르신이 누워만 계셔도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좋았다. 이제는 찾아가도 장모님뿐이라 마음이 아리다.  

 

  영안실로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장의사(葬儀師)는 염()을 거의 마쳤다. 장인 어르신은 목욕하신 뒤 한지로 몸을 두르시고 장모님께서 지어놓으신 수의(壽衣)인 삼베 저고리와 바지 그리고 두루마기를 입으셨다. 예쁜 색깔의 꽃잎이 있는 삼베 버선을 신고, 두 손은 두루마기로 감쌌다. , , 입을 솜으로 막고 얼굴만 내놓으셨다. 한 달 전보다 좀 야윈 얼굴로 편안히 주무시는 것 같았다. 유족과 친지들이 둘러섰다.  

 

  장의사는 한 번 더 머리를 감기고 얼굴을 씻기셨다. 이어 자녀들에게 시신을 만져보며 한마디씩 말씀드리라고 했다. 곧바로 아내가 얼굴로 얼굴을 비비며 오열했다. 돌아가며 평소에 못 한 말씀을 드리며 용서도 구했다. 나는 맨 나중에 두 손을 싸늘한 양 볼에 대고 기도드렸다. 이제 삼베 모자로 얼굴을 가리고 두 아들은 한지로 입을 덮었다. 영혼은 하늘나라에 가 계시지만, 육체는 우리와 영영 이별했다. 안경 밑으로 흘러내린 눈물을 훔쳐냈다. 마지막으로 모두 시신 위에 손을 얹고 목사님께서 기도하셨다. 옆에는 꽃 관이 기다리고 있는 게 아닌가? 바닥에는 하얀 종이꽃이 피어오르고, 여러 색깔의 국화와 안개꽃이 네 모서리를 한 바퀴 돌면서 줄을 서 있었다. 바닥 머리 쪽에는 작은 십자가를 따라 빨간 카네이션이 피어있었다. 장의사는 꽃상여 대신에 꽃 관으로 장식해 보았다며 자랑했다. 온몸을 다섯 번 묶여 자녀들의 손에 들리어 꽃 관에 편안히 누우셨다. 정성을 다한 입관이라 장의사에게 감사했고, 발인날 사장에게도 칭찬을 했다.    

 

  장모님께서는 장인 어르신이 빨리 가실 줄 아셨는지, 작년에 두루마기를 나에게 주셨다. 양복은 큰 동서가 가져갔다고 했다. 짙은 회색빛의 두루마기는 몸집은 작지만, 키가 비슷해 딱 맞았다. 수십 년 전, 교회에서 성탄절 칸타타를 발표하면서 한복을 마고자까지만 장만했다. 농속에서 잠만 자는 한복이지만 두루마기 생각을 많이 했었다. 올 설에 한복에다 두루마기를 입지 못해 후회도 했었다. 앞으로는 두루마기를 설빔으로 생각하고 꼭 한복을 챙겨 입으며 하늘나라에 상급 받으러 가신 장인 어르신의 신앙과 인품을 기리며 닮아가야겠다.

                                                 (2018. 6. 16.)

 

※장의사(葬儀師): 염사(殮師)라고도 하며, 죽은 사람의 시체 처리에 속하는 여러 가지 업무를 하는 사람.        

※ 염() : 죽은 사람의 몸을 씻긴 뒤 옷을 입히고 염포로 싸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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