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공의 그리움

2018.06.21 09:39

전용창 조회 수:83

사공의 그리움
-‘두루미 호’를 떠나보내며-

꽃밭정이수필문학회  전 용 창

 

 

 

  “두둥실 두리둥실 배 떠나간다 / 물 맑은 봄 바다에 배 떠나간다~

 

 사람은 누구나 길지 않은 인생항로에서 갖가지 인연(因緣)으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만나면 동행하고, 동행하다 보면 희로애락을 함께 누리다가 사랑이 식어지면 이별을 하고, 그래도 생각나고 그리우면 재회를 한다. 내가 수필동네에 인연을 맺은지도 어느덧 3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나이 육십이 넘어서 새로운 분야에 도전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몇 번이고 망설이다가 ‘인생은 육십부터’라는 말에 용기를 얻어 찾아간 곳이 「꽃밭정이노인복지관」이다. 우선 이름부터가 거부감이 들었다. '꽃밭정이'까지는 좋은데 ‘노인’이라는 말이 거슬렸다. 그냥 '꽃밭정이복지관'이라고 하지 왜 하필 '노인'이라는 말을 중간에 넣었을까!

 

 그곳에 컴퓨터, 예능, 문학, 사진, 건강 등 여러 분야가 설강되어 있어서 어르신들을 재교육시키는 좋은 곳인데도 나는 젊다며 그까짓 자존심으로 멀리했던 것이다. 내가 헛짚어 살아온 삶을 원망하고 있을 때 다른 사람들은 인생 2막을 즐겁게 보내고 있었다. 그 많은 프로그램 중 유독 '수필강좌'에 눈길이 멈추었다. 내가 수필을 선택한 것은 중학교 때의 국어선생님이 떠올라서였다. 그때 국어 선생님은 '어머니 당신은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란 시를 쓰신 신석정 시인이었다. 나도 선생님처럼 되는 게 꿈이었고, 선생님은 선망의 대상이었다. 키가 6척 장신에 눈썹이 진하고 덥수룩한 얼굴모습에서 풍기는 강의에 우리 모두 흠뻑 빠져 들었고, 글 한 편 써놓고 시인인 양 거드름도 피워 보았다. '국어는 우리나라 말이기에 배울 필요가 없는데 장차 연애편지를 잘 쓰기 위해서 배운다.'는 말에 모두들 귀가 솔깃하여 국어시간을 기다렸다. 그때의 향수를 떠올리며 찾아간 곳이 '수필 동네'였다.

 

  그 마을에는 학생은 나만 있었고 모두가 선생님이었다. 전직 국어 선생님이 계셨고, 음악선생님, 미술선생님, 체육선생님, 더구나 교장선생님도 여러분 계셨다. 모두가 나의 스승이었다. 더구나 나는 나이도 제일 어렸다. '아이구, 잘못 왔구나!'라고 후회막심했지만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었다. 마침 그 마을 촌장 격인 회장님이 같은 직장에 계셨던 상사여서 반갑고 참으로 다행이었다. 훈장님은 학()이라는 이름을 가지신 분인데 좀처럼 웃지도 않으시고 무뚝뚝하셨다. 나 는 즐겁게 웃어보려고 왔더니, 이 나이에 글을 안 쓴다고 수업시간에 혼이나니 어찌해야 할지 몰랐다. 그렇게 훈장님과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그곳에서는 조그만 실수도 용납이 안 되었다. ‘문재인 대통령’을 ‘문제인 대통령’으로 표기하여 대통령 이름도 정확히 모른다며 문제아가 되어 혼이 났고, ‘사자성어’를 ‘사장성어’로 오타를 해놓고는 퇴고도 못 봐서 혼이 났다. 친구가 내 이름을 ‘용창’이 아닌  ‘용찬’으로 편하게 불러도 나는 아무 말 안했는데 말이다. 강한 펀치를 많이 맞아보아야만 맞는 게 무섭지 않고 챔피언이 된다고 했듯이 나의 맷집도 한 해 두 해 시간이 가다 보니 강해져 갔다. 그리고 어느새 수필 속에서 문우님들의 글을 통하여 나 자신 성찰의 시간도 보낼 수 있었다. 어린 나이에 어머님을 여의고 새어머니와 살아오신 문우님, 아버지를 여의신 선배님들이 고생 고생하며 살아오신 삶이 글에 녹아 있었다. 글을 써가며 스스로 나목()이 되어 지난 세월 부끄러운 삶을 조금씩 보여주며 단련이 되어갔다. 그렇게 서로의 삶의 세계를 보며 감동의 시간을 보냈다. 훈장님은 글이 수필다우면 칭찬도 해주셨지만 신변잡기(身邊雜記)가 되면 채찍도 내려주셨다. 1980년 ‘월간문학 신인상’으로 등단하여 수필 외길을 살아오시며 14권의 수필집과 평론집 2권을 발간하셨고, PEN 문학상, 1회 영호남수필문학상 대상, 신곡문학상 대상, 전북문학상, 전주시예술상, 전라북도문화상, 목정문화상 등을 수상하셨다.

 

  우리 고장 전북이 가장 많은 수필가를 배출하고, 수필에 대한 열정 또한 가장 뜨겁도록 불을 지핀 게 훈장님이시다. 훈장님은 이곳 복지관뿐만이 아니라 또 다른 복지관에서도, 문예대학에서도 여러 반을 지도하시니 아마 제자만도 백 명이 훨씬 넘는 것 같았다. 훈장님의 수업은 칭찬으로부터 시작된다. 각자 한 주일 동안 칭찬할 만한 소재를 찾아와서 발표하는 시간이다. 나는 이 시간이 즐겁다. 정작 강의시간에는 필기를 게을리하면서도 칭찬 시간에는 자세하게 기록하였다. 누가 무슨 일로 칭찬을 받는지 경청하였고, 나도 그분들의 삶을 본받으며 살려고 다짐하기도 했다.

  내가 수필을 ‘붓 가는 대로, 생각나는 대로 쓰는 글’로 단순하게 생각하고 왔을 때 훈장님은 ‘피천득’의 「수필」이란 글을 인용하시며 “수필(隨筆)은 청자연적(靑瓷硯滴)이다. 수필은 난()이요, ()이요, 청초(淸楚)하고 몸맵시 날렵한 여인(女人)이다.”라고 하셨다. 수필은 장인의 섬세한 마음이 가득하여 흠이 없이 잘 빚어진 청자요, 화초에 비유한다면 난이요, 새에 비유하면 학이며, 여인에 비유하면 청초하고 몸맵시 날렵한 여인이라고 했다. 수필은 난의 향처럼 천릿길 향내가 나야하고, 하루 종일 우렁 하나만 먹고도 배고픔을 모르고 깊은 생각에 빠겨있는 학처럼 사색이 있어야 하며, 누구나 흠모하는 아름다운 여인의 몸매를 갖추어야 한다 생각하니 훈장님의 학()이라는 이름이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온갖 잡새들은 한시 반시 쉬지 않고 이리저리 날아다니는데 학은 누가 건들지 않으면 하루 종일 제자리에 서있는 것을 어릴 적에 추수한 논에서 여러 번 보았다.

  

 학()은 두루미과에 속하는 대형 조류이다. 천연기념물 제202호로 보호받고 있다. 두루미는 국경을 넘어 러시아에서도 날아오고, 일본의 홋카이도에서도 온다. 여러 날을 쉬지 않고 바다를 건너오는 두루미는 인내가 있다. 훈장님은 새벽 4시면 일어나서 문하생들이 보내온 원고를 첨삭지도하여 ‘두루미’라는 예명으로 인터넷에 올려주신다. 칠십 대 중반의 적지 않은 나이임에도 새벽마다 5~6편의 글들을 읽고 지도하시는데 아직도 등단을 못한 내 자신을 돌아보며 그만 머리가 숙연해질 뿐이다. 미치지 않고는 도달하지 못한다는 불광불급(不狂不及)을 전하시던 ‘두루미님’은 이번 학기를 마지막으로 꽃밭정이에서 떠나신다. 함께했던 지난날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그동안 ‘두루미님’은 큰 배가 되었기에 우리 모두가 타고 방방곡곡을 구경하였는데 이제 항해가 중단되게 되었다. ‘두루미 호’를 떠나보내는 서운한 마음이 사공의 그리움이 되어 가슴에 차오른다. 그동안 목석처럼 무뚝뚝하고 혼내주어서 밉기도 하고 삐지기도 했지만 막상 이번 주가 마지막 수업이라 생각하니, 미움도 그리움이 되어 너무도 섭섭하다. 건강을 위함인지 사공이 제각각 노를 저어 배가 산으로 갔었는지 한마디 말씀도 없으시다. 이제야 청개구리가 되어 깨닫는 나 자신이 부끄럽다. 부디 ‘김 학 교수님’의 앞날이 ‘난’처럼, ‘학’처럼, ‘청자연적’처럼 향내 나는 아름다운 삶으로 승화하여 천수를 누리시며 행복하시기를 빈다.

                                            (2018. 6. 21.)

 

댓글 1

파일 첨부

여기에 파일을 끌어 놓거나 파일 첨부 버튼을 클릭하세요.

파일 크기 제한 : 0MB (허용 확장자 : *.*)

0개 첨부 됨 ( / )
 
목록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2227 밥알을 생각하십시오 맹사성 2020.11.30 4293
2226 현관문 비밀번호 두루미 2019.12.14 3568
2225 제목짓기 요령 김학 2020.10.12 3498
2224 정력과 건강에 좋은 발마사지법 두루미 2018.07.13 1707
2223 동백꽃 백승훈 2019.12.03 1509
2222 여름 가족나들이 김명희 2018.08.14 1456
2221 책 표지 모음 양봉선 2019.10.20 901
2220 새로운 생일 이준구 2018.08.26 895
2219 엘론 머스크의 꿈과 실행에 대한 명언들 머스크 2020.05.31 687
2218 더위를 이기려는 노력 정석곤 2018.08.27 676
2217 재를 넘는 무명치마 허세욱 2018.08.24 445
2216 영국의 자존심 엘리자베스 2020.09.10 441
2215 운을 상승시키는 9가지 습관 두루미 2019.10.19 348
2214 쪽지덕담 박제철 2020.02.13 322
2213 수필쓰기에 대한 생각 바꾸기 안도 2020.07.04 291
2212 준비하는 삶 권희면 2020.06.18 288
2211 제15회 광명 전국신인문학상 작품 공모 광명시 2016.10.15 270
2210 한국의 수필 강순필 2020.12.12 259
2209 부부란 덕원 2019.05.18 259
2208 예쁜 카드 잘 받았습니다. file 오연희 2017.09.12 2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