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이란 숫자 때문에

2018.06.23 07:11

백남인 조회 수:29

100 이란 숫자 때문에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금요반 백남인

 

 

 

 

 수많은 숫자 가운데 100은 많은 사람들이 호감을 가지기도 하고, 일상생활에서 자주 쓰기도 한다. ()자가 들어가는 낱말을 생각나는 대로 적어보니 백세시대, 백가쟁명, 백문불여일견, 백과사전, 일벌백계, 백년대계, 백년지객(백년손님), 오곡백과, 백년가약, 백년해로, 백발백중, 일당백, 백만장자, 백화난만, 백인삼사, 백 퍼센트 등 한없이 떠오른다. 그 밖에도 백(100)이 들어가는 낱말은 수없이 많다.

 

 나는 성()이 백()이어서 일상생활 중에 100이라는 단어가 나오면 나도 모르게 관심이 쏠리는 때가 많다. 주변 사람들도 나와 100을 관련지어 말하는 경우가 많다. 합리적인 이유가 있거나 진심이라기보다는 흘러가는 말이겠거니 하고 그냥 넘어가지만, 어떤 땐 암시적 동기유발이 되기도 했다.

 

 나의 성()은 백()이지 백()이 아닌데도 100으로 생각하여 주술을 기대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내 어렸을 적, 초등학교 저학년때 어머니 친구들이 백씨 성을 가진 사람이 백 번 밟으면 아픈 허리가 낫는다더라.’고 하여 내가 학교에서 돌아오자 허리를 밟아달라고 하셨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허무맹랑한 짓이었지만, 별로 어려운 일도 아니어서 100번을 밟아드렸더니 허리가 시원하다는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니 안마의 효과가 조금 있었음직하다. 아직 철모를 때였지만 어머니 친구들을 내가 밟아드리면 낫는다는데 어찌 밟아드리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그저 어머니 친구들을 도와주는 일이고, 내 발로 사람들의 아픈 허리를 낫게 할 수 있다는 신기한 마음으로, 그리고도 그 당시 우리 마을에는 백씨가 나 밖에 없었으니 그 일을 함께 나누어 할 수도 없었다. 그날로부터 내가 집에 올 때쯤이면 허리 아픈 분들이 몇 명씩 와 계셨다.

 

 문턱에 서서 문고리를 잡고 한 발로 아프다는 곳을 자근자근 밟아드리는 것인데, 정말 조심조심 100번을 밟았다. 처음에는 힘든 줄 몰랐는데 같은 일을 끝도 없이 되풀이해야 하므로 재미도 없고 힘도 들었다. 100번을 정확히 밟아야 한다니 정신을 쏟아야 하는 중노동이었다.

 

 다른 아이들은 밖에 나가 뛰노는데, 나는 요즘 말로 돌팔이 물리치료사 노릇을 한 것이다. 마루에 누워 나한테 밟힌 어른들은 허리가 거뜬해졌다고 좋아들 하셨다. 참말인지 거짓인지 그분들의 소문으로 오후의 우리 집 마루는 항상 사람들이 모여들었다나는 중노동에 시달렸다. 마음대로 놀지도 못하고 숙제할 시간도 빼앗겨가면서 정말 힘들었다.

 

 혹여 돈을 받고 밟아드리지 않았을까 의심하려는 독자도 있을지 모르겠는데, 돈이라고는 1원도 받은 일이 없다. 오로지 어머니 친구들을 도와드리려는 마음에서 한 일이었다. 당시로서는 병원이 멀어 손쉽게 갈 수 없으므로, 어느 한 사람이 꾀를 내어 그 미신을 만들어가지고 그렇게 나를 힘들게 한 것이다.

 

 몇 년 동안 계속되던 그 일도 내가 고학년이 되면서 나의 공부시간을 생각해서 점차 찾아오는 횟수가 줄어들었고, 내가 중학교에 입학한 뒤로는 그 일을 안 해도 되었다.

 

  벌써 70여 년이 흘러서 나의 어머니를 비롯한 그 때 그 어른들은 이 세상에 한 분도 계시지 않는다. 나의 성()100이라는 숫자와 발음이 같았을 뿐인데, 나와의 인연이 있었고, 추억의 한 단면이 되었다. 지금 내 앞엔 그 때 그 어른들의 흐뭇해하시던 모습과 내 어머니의 미소 띤 얼굴이 눈에 선하게 그려진다.

                                                   (2018. 6.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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