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7.08 06:10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금요반 변 명 옥
비가 너무 안 온다고 중얼거리는 아낙의 얼굴은 누렇고, 가뭄 든 오이마냥 허리가 잔뜩 굽어있었다. 마른 땅을 긁는 호미는 먼지만 풀풀 날린다. 6월의 태양은 뜨거운 숨을 내뱉고 더위에 지친 아기단풍도 앙증맞은 손끝을 잔뜩 오므리며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사람은 물론 동물과 숲도 더위와 가뭄에 지쳐가고 있었다. 내장사의 넓은 계곡은 바짝 말라 허연 바닥을 드러냈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6월의 마지막 날 장마가 시작되었다. 비를 맞고 있는 화단의 꽃과 나무들이 시원함에 몸을 떨며 서 있었다. 나무들이 말 없는 탄성을 지르며 오랫동안의 갈증을 마음껏 풀었다. 나의 삶 어떤 순간에 저렇게 뛸 듯이 기쁜 순간이 있었을까? 아마 없었지 싶다. 굴곡지고 가뭄처럼 메마른 삶의 마지막 순간에도 ‘휴우’ 하고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목마름을 이겨내고 이 순간까지 살아 있다는 것에 대한 감사뿐이다.
비가 흠뻑 내린 내장 숲이 보고 싶었다. 생기를 되찾은 단풍들이 다른 때와 달리 가지를 흔들며 반겨주었다. 가물 때는 우거진 숲길을 차로 달리는 것도 미안했다. 바짝 마른 잎에 매연까지 얹어 주는 것 같아서….
내장 숲은 갑자기 내린 소나기로 생겨난 작은 폭포들이 골짜기를 메우며 요란한 음악을 연주하고 있었다. 숲이 살아나 요동치고 있었다. 천왕문 옆의 개울은 물이 넘쳐 왈츠를 추듯 빙빙 돌며 흐르고, 오른 쪽 개울은 보란 듯이 하얀 포말을 튀기며 포효하고 있었다. 가슴이 뻥 뚫렸다. 물안개가 피어오르고 나무들은 푸르고 맑은 기운을 마음껏 뽐냈다.
모든 근심 걱정을 한 번에 털어버리고 다시 사는 숲이 부러웠다. 언젠가 들길을 가다 앉아서 겨울 추위에 노랗게 말라죽은 풀을 헤집어 보다가 깜짝 놀랐다. 누런 풀잎을 이불처럼 덮고 연두색 파마머리 새싹이 몸을 한껏 움츠리고 숨어있었다. 아직도 멀리 있는 봄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가녀린 풀잎의 강한 의지와 몸부림에 나도 모르게 벌떡 일어섰다.
검고 투박한 나무 등걸에 볼연지처럼 피어나는 분홍 꽃을 볼 때마다 아련한 그리움이 몰려왔다. ‘사람도 저렇게 죽은 듯이 잠자다가 다시 일어나 찬란한 꽃을 피운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쓸데없는 생각을 해 보았다. 모든 것을 다 내려놓은 나무는 천년의 세월을 산다. 사람도 마음을 비우면 저 나무처럼 다시 살 수 있을까? 저렇게 버리고 비울 수 없는 자신이 초라하다.
콸콸 흐르는 물소리에 숲이 긴 침묵에서 깨어나며 부산스럽다. 땅 속의 뿌리가 바쁘게 다리를 뻗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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