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의 가야문화

2018.07.08 06:44

김길남 조회 수:54

전북지역의 가야문화

 전주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김길남

 

 

 

 

 ‘가야’하면 낙동강 서쪽에 있었던 경상도지방의 나라로 안다. 500년이나 지속한 큰 나라라는 것도 근래에야 알려졌다. 우리 국사는 삼국중심의 역사라 기록에 남은 것이 없어서 그런 현상이 일어났다. 가야의 영역이 전북지역까지 넓혀져 있었다는 것도, 198288고속도로 공사를 하면서 고분을 발굴하고서야 알아냈다. 백제고분일 거라 여기고 발굴했더니 엉뚱하게도 가야의 고분이었다. 경상도지역의 가야문화는 많은 고분발굴과 연구로 잘 알려졌지만, 전북지역의 가야문화는 이제 첫 단추도 미처 뀌지 못한 상태다.

 국립전주박물관에서 학술대회를 열어 가야문화를 조명했다. 군산대학교 곽장근 교수는 전북지역의 가야문화에 대하여 발굴 조사한 내용을 중심으로 상세히 논증했다. 가야는 삼국유사에 나온 대로 6가야가 아니라 20여 개의 가야가 있었다. 전북지역에도 그 가운데 운봉지역의 기문국과 장수가야가 있었다. 당시는 부족국가 형태로 나누어져 세력권을 이루고 있었다. 기문국은 일본과 중국문헌에 나오는데 출토유물로 보아 추정했다. 백두대간을 사이에 두고 동쪽은 낙동강 수계인 기문국, 서쪽은 금강 수계인 장수가야가 있었다고 비정했다.

 기문국은 남원 운봉고원에 자리 잡았는데 유곡리 수락리 고분군이 증명한다. 88고속도로를 건설하며 발굴하여 가야유물이 쏟아져 나와 밝혀졌다. 가야 토기. 중국계 청자 계수호(鷄首壺), 금동신발, 수대경, 철제초두, 금제 귀걸이, 철제갑옷과 투구, 기꽂이 등이 나왔다. 180여 기의 고분뿐만 아니라 35개 소의 제철유적이 여러 곳에서 발견되어 증명하고 있다. 다른 가야와 구분 되는 점은 묘의 형식이다. 첫째로 봉토의 중앙부에 하나의 매장주체부만 배치한 단곽식이고, 둘째로 봉토의 가장자리에 호석시설을 두르지 않았다. 셋째는 매장 주체부가 지상식 혹은 반지하식이라는 점이다.

 장수가야는 있는 줄도 모르고 있었다. 1993년 장수군의 문화재 지표조사를 하고 있었는데 천천면 삼고리 삼장마을 입구에서 한흥석 할아버지를 만나 밝혀졌다. 고려장을 한 곳이 있는지 물으니 자기 선산을 뒤지고 다니던 도굴꾼 이야기를 했다. 그들이 지나가고 나면 웅덩이가 파였다는 것이다. 조사단이 살펴보다 가야토기 조각을 발견했다. 이듬해에 발굴비를 지원 받아 발굴 조사를 하는데 그 할아버지가 종중산에서 우연히 발견한 것이라고 가야토기를 기증했다. 이를 계기로 해마다 조사하여 240여 기의 가야계 고총을 발견했고, 제철유적은 물론 곳곳의 산성과 봉수대를 찾아냈다. 봉수대는 장수를 중심으로 진안, 완주, 임실지역까지 연결되어 있었다. 장수가야의 분묘 특징은 봉토의 평면형태가 장타원형이고 인접된 고총과 연결되어 있거나 떨어져 있고 가장자리에 호석을 두르지 않았다.

 전라북도는 기문국과 장수가야를 합하여 전북가야라 명명하고 백두대간의 치재에 ‘봉수왕국 전북가야’라는 비를 세웠다.(2017.11.25.) 위치는 장수군 번암면과 남원시 아영면을 잇는 고개인데, 기문국과 장수가야의 통로다. 요즘 철쭉축제가 열리는 곳이다. 왜 그 고개가 유명한가? 당시 3국은 그 지역을 차지하려고 다투었다. 거기에서 우수한 철이 나오기 때문이다. 우선 질 좋은 철을 얻어가려고 온갖 보물을 가져다주고 바꿨다. 그래서 고총에서 중국제 청자도 나오고, 백제에서 선물한 금동신발도 나온 것이다.

 

 전북의 가야문화 연구는 너무 뒤졌다. 지금도 평지의 고총은 밭을 일구어 하나둘씩 사라진다. 지역주민의 이야기로는 많은 고총이 없어졌다고 한다.  경상도의 가야문화는 발굴은 물론 연구, 보존, 순장묘재현 등 다양한 연구결과를 내 놓았다. 전북은 관심도 없었고 발굴 예산을 따려고 힘쓰지도 않았다. 행정청이나 정치가가 발굴예산을 받으려고 힘써야 한다. 유적에 생명을 불어 넣는 게 발굴이다. 뒷동산으로 알고 있는 고총들을 발굴하여 숨 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발굴비를 지원 받아 1500년이나 잠자고 있는 전북가야의 유적이 빛을 발하기를 바란다.

 역사는 기록이 없으면 유물유적으로 알아낸다. 문자가 없던 구석기, 신석기, 청동기 시대의 역사문화는 유물로 알지 않던가? 돌을 그대로 쓰다가 깨어 쓰고 갈아 썼다는 것을 알아내고, 처음으로 바위를 녹여 쇠붙이를 만들었다는 것도 유물로 알아냈다. 아직 발굴되지 않은 가야고총을 샅샅이 발굴한다면 지금까지 모르던 새로운 사실도 알아낼 수 있으리라. 새로운 모습의 가야문화를 기대하며 발굴을 기다린다.  

                                 ( 2018. 7. 7. )

댓글 0

파일 첨부

여기에 파일을 끌어 놓거나 파일 첨부 버튼을 클릭하세요.

파일 크기 제한 : 0MB (허용 확장자 : *.*)

0개 첨부 됨 ( / )
 
목록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47 월급쟁이 김세명 2018.07.13 24
46 정력과 건강에 좋은 발마사지법 두루미 2018.07.13 1707
45 반딧불 헤는 마음 김영숙 2018.07.12 30
44 나는 집시 윤근택 2018.07.12 65
43 나의 수필 쓰기 김학 2018.07.11 81
42 아빠생각 한성덕 2018.07.11 23
41 인연 최은우 2018.07.11 70
40 걸으면 행복하다 김세명 2018.07.10 56
39 이별통보 [1] 김현준 2018.07.09 98
38 못다한 효 백남인 2018.07.09 52
37 관 속에서 나온 사람 한성덕 2018.07.08 43
» 전북의 가야문화 김길남 2018.07.08 54
35 숲이 깨어나는 소리 변명옥 2018.07.08 56
34 6월을 보내고 7월을 맞으며 김학 2018.07.07 28
33 상추김치를 담그며 최정순 2018.07.07 57
32 자동차 네비게이션만 믿다가 박제철 2018.07.05 52
31 신시도 3형제 전용창 2018.07.05 56
30 글로 다듬는 자화상 전용창 2018.07.04 81
29 이별통보 김현준 2018.07.04 56
28 행복한 노후, 황혼로맨스 최은우 2018.07.04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