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

2018.07.11 07:15

최은우 조회 수:70

인연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금요반 최은우

 

 

 

 

 ‘사람은 나면서부터 제 짝이 있으니 사람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다. 인연이란 짝을 만나면 서로 끌려 허락하는 것이니, 뭇 짐승들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는 부처님 말씀이다.

 

 내 나이 26세 때의 일이다. 우리 옆집에 살다가 전주 시내로 이사를 나왔던 아주머니가 엄마를 통해 맞선 자리를 주선했다. 집은 전주에 있지만, 서울에서 공무원 생활을 하는 사람이었다. 나는 당시에 결혼할 생각이 없어 정식 선 자리에는 나가지 않으려고 했지만, 엄마의 강권에 의해 19796월 첫째 주말에 선을 보게 되었다. 그리고 둘째 주말에는 직장의 동료가 주선해서 창원에서 회사에 다니는 사람과 소개팅을 했다. 소개팅은 당사자들만 보는 거라 결혼에 대한 부담도 적어 가볍게 만났다. 셋째 주말에는 친구가 소개하여 서울에서 증권회사에 다니는 사람을 만났다. 6월에만 세 번을 연이어 선을 보고 소개팅을 한 것이다.

 

  그동안 한 번도 선을 보거나 소개팅으로 만나 본 사람도 없었는데 이상하게도 한꺼번에 기회가 왔다. 내가 아마 결혼 적령기가 되어서 그랬나 보다. 그리고 나이가 나이인 만큼 한창때여서 더 예뻐 보였는지도 모르겠다. 서로 소개해주려고 했으니 말이다. '서로 양립되면 될 것도 안 된다'는 말이 있어서 겹쳐서 보지 않으려고 했는데 모두 강력하게 추천하는 바람에 연이어 보게 되었다.

 

  첫 번째 선을 본 사람의 아버지는 내게 전화를 하셔서 “요즘 내 아들이 너무 바빠서 못 내려오고 아마 다음 주말에는 올 수 있을 것”이라며 안부를 전해왔지만, 나는 당장 결혼 생각이 없고, 부담이 되어서 별로 기대하지 않았다. 그러나 정작 본인은 전화도 안 하는데 그의 아버지가 전화를 하시고 또 만나자고 하시면서 내가 근무하는 직장 근처에 오셔서 만나기도 했다. 이야기 도중 그분은 내게 고등학교 때의 학적사항을 써주라며 종이와 펜을 내놓으셨다. 나의 학교생활을 알아보시려는 것이란다. 난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그래서 알아보시려면 이름만 대면 알아보실 수 있을 것이며, 죄송하지만, 써 드리고 싶지 않다고 하고 종이와 펜을 도로 밀었다. 그분은 기분이 나빴다면 미안하다며 나의 필체를 보고 싶어서 그랬노라고 하셨다. 난 엄마에게 이런 사실을 이야기하며 그분은 나의 당돌한 행동에 아마 당황하셨을 것이고, 나도 아직 결혼할 의사가 없으니 이번에는 인연이 아니니까 기대하지 마시라고 얘기했다.

 

 6월 넷째 주말에 세 사람이 동시에 전주에 내려온다고 했다. 난 누구를 만나야 할지 아직 결정도 하지 않았는데 이게 웬일이란 말인가? 왜 하필 똑같은 날일까? 나는 바쁘다고 핑계를 댔지만, 어차피 고향에 내려가니 시간 나는 대로 잠깐만이라도 만나자고 했다. 이건 정말 실타래가 꼬이듯 난감했다.

 

 나는 일단 먼저 연락이 오는 사람과 만나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첫 번째 선을 본 사람에게서 토요일 오전에 직장으로 연락이 왔다. 오후 730분쯤 도착하니 고속버스터미널로 나와 달라고 했다. 나는 상황 봐서 나가겠으나 기다리지는 말라고 했다. 아무튼 먼저 도착하는 사람을 만나려고 기다렸는데 7시가 다 되어도 다른 사람에게서는 연락이 없었다. 내 마음과 몸은 이미 터미널로 향했다.

 

 고속버스터미널에서 만나 저녁을 먹고, 이야기 나누면서 걷기도 하고, 다방에 앉아 차도 마시며 데이트를 했다. 헤어지면서 그는 다음날 광주 군부대에 있는 친구를 면회 가는데 같이 가자고 했다. 오전 930분 고속버스를 예매해 놓았으니 터미널에서 만나자며 올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했다.

 

 다음날, 둘째 주말에 소개팅으로 만난 사람이 오전 8시경에 도착한다고 연락이 왔다. 토요일에 창원에서 출발했으나 너무 늦어 대전에서 하루 머물고 오느라 일요일 아침에 전주에 도착한 것이다. 집 근처 식당에서 아침을 같이 먹고 있는데 이상하게도 내 마음은 자꾸 터미널로 향하고 있었다. 버스 출발시각 안에 도착하기는 좀 힘들 것 같았으나 나는 소개팅남에게 일이 있다는 핑계를 대고 무작정 택시를 타고 고속버스터미널로 갔다.

 그는 막 떠나려는 버스를 붙잡고 일행이 곧 올 것이라며 사정하고 있었다. 다행히 버스는 조금 지체해주어 나를 태우고 출발했다. 우리는 그의 친구를 만나 무등산 계곡에서 재미있는 시간을 보냈고, 종일 그와 같이 있느라 셋째 주말에 소개팅으로 만난 증권사 직원은 연락이 닿지 않아 결국 만나지도 못했다.

 

 정식으로 선을 봐서 그런지 아니면 인연이라서 그런지 제대로 데이트도 못 했는데 우리의 결혼은 빠른 속도로 진행되었다. 이미 지인들을 통해 나에 대해서 알아볼 것 다 알아보신 그의 아버님은 내가 당돌하게 굴었는데도 오히려 나의 그런 면을 똑똑하다고 생각하셨나 보다. 서로에 대해 호감을 느낀 상태에서 양가 부모의 적극적인 추진으로 우리의 약혼식과 결혼식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소개팅한 증권사 직원은 내가 이미 약혼식을 하고 난 뒤에 꼭 한 번만이라도 다시 만나보고 싶다고 연락이 왔지만, 나는 약혼 사실을 말하고 미안하다고 했다.

  

 인연이어서 끌렸을까? 몇 천 겁의 인연으로 부부가 된다지만, 사이좋은 부부가 되는 길이 쉽지만은 않기에 누군가 부부는 전생의 악연으로 만난다고 했다. 그렇다면 부부는 전생에서 지은 죄를 이생에서 서로 갚아가며 사는 인연일까? 서로 이해하고 화해가 되면 사이좋은 부부로 살 것이고, 이해하지 못하고 화해가 되지 않으면 악연이 풀리지 않은 채 서로 빚을 더 안고 살아가게 되리라. 어찌하든 세상의 수많은 사람 중에 부부로 만난 것은 정말 대단한 인연이다. 이 인연을 악연이 아닌 좋은 인연으로 만드는 몫은 그들 부부에게 달려있는 게 아닐까?

                                                         (2018. 7.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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