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동반자, 나일론 남방셔츠

2018.07.25 06:42

김삼남 조회 수:6

나의 동반자(同伴者), 나일론 남방셔츠

                                             신아문예대학 수필반 김삼남

 

 

 

 

 나일론 남방셔츠는 한여름이 올 때까지 장농속에서 긴 잠을 자야 했다. 지난해 가을 소슬한 바람이 불 때부터 겨울을 지나 꽃피는 봄에도 반겨할 줄 모르더니, 여름이 되니 나를 어루만지며 반겨준다고 넋두리를 한다. 남방셔츠는 여름 한철 주인인 나와 함께 지내는 짧은 한 철 인생이다. 한 철도 꼭 주인과 함께할 수 없고, 날씨와 매일 행사에 따라 이 옷 저 옷 번갈아 입는 주인과 함께하는 외로운 일생이다. 하지만 변함없이 오랜세월 동반자가 되었으니 행복한 운명을 타고 난 셈이다. 짙은 남색 바탕에 하얀 체크무늬가 있는 나일론 남방은 40년간 나와 희로애락을 함께 했다. 30대 젊은시절 처음 만났을 때는 무척 귀엽고 자랑스러운 남방셔츠였다. 그때는 지금처럼 다양한 색과 천으로 고급스럽게 디자인한 남방셔츠가 없던 시절이댜.  

 

 군산경찰서 과장 근무때 서장님이 서울회의를 다녀오면서 선물로 사다주셨다. 40년이 지났으니 옷의 수명으로 보면 옛날에 고인이 되었을 테다. 국가 경제가 어렵고 산업발전도 초보단계였던 1970년대 의류산업은 모직과 면직이 주류였고, 화학섬유와 나일론이 신기루처럼 나타났을 때였다. 나일론은 가볍고 질기며 구김살이 없어 세탁이 편리하니 모두가 선망하는 고급의류로 인정하던 때였다. 선물 받은 셔츠는 크기와 색상이 몸에 잘 맞아 아끼면서 주로 외출용으로 착용했다. 촉감이 깔깔하고 통풍이 잘되며 손으로 물세탁을 하면 금방 건조되고 다름질없이 새옷처럼 입게되어 하숙생활을 하던 나에게는 안성마춤이었다.

 

 오랜 세월 이곳저곳을 전전하면서도 나일론 셔츠만은 꼭 챙겨 같이 다녔다. 올해도 여름을 맞아 장농속 셔츠를 꺼내 보니 색의 변질은 커녕 겉모습도 옛날 그대로였다. 요즈음의 브랜드 패션에 견줄 수는 없지만 색상과 디자인은 유행에 특별히 뒤지지 않는다. 항상 유행감각에 무딘 나에게는 오히려 고풍스러운 멋을 느끼게 한다.

 

 오늘따라 폭염속에 챙겨 입으면서 옛날 선물하신 J 서장님이 무척 그리워졌다. 서장님은 경남 김해서장에서 군산으로 전보되셨다. 군부시절 부동산 부자라는 이유만으로 군산으로 전보되셨고, 인자하신 성품에 직원들을 가족처럼 따뜻이 대하셨다. 서민서장으로 시민들의 대호평을 받았다. 전북경찰청을 거쳐 고향으로 가신 뒤 안부도 모르고 무심히 지내왔다. 오늘도 남방셔츠를 보며 옛모습을 그려보았다. 나는 훗날 지휘관이 되어 옛날 J서장님의 통솔방침과 인간성을 떠올리며 서장님을 닮도록 노력했다.

 

 요즈음엔 시시각각으로 변화하는 유행의 물결속에 살고 있어 브랜드 패션에 뒤지면 구시대인으로 평가한다. 옷이 날개라는 옛말이 오늘날 유행을 뜻하는 것 같아 명언인 것 같지만 의복은 본래 신체를 감싸주고 보온에 그 목적이 있다. 그러나 옷의 유행은 시대와 기후 풍토에 따라 특이한 양식으로 변화되면서 유행의 첨단을 걷고 있다. 열대와 한대지방 동서양은 각기 고유한 역사와 문화에 따라 각양각색으로 발전해왔고 발전해 간다. 요즈음은 의복의 본질적 기능을 떠나 멋과 사치의 풍조에 빠져 유행에 민첩할수록 높이 평가하고 과소비 풍조를 낳게 한다. 그 결과 경제생활이 나아젔다 하여 과거 어려웠던 시절을 외면하고 모르는 체 살고 있다. 오늘날 젊은 세대는 풍요로움만 누려왔기 때문에 지난 어려웠던 시절을 동화속 이야기로 여긴다. 세계곳곳에 헐벗고 굷주리고 병마에 시달리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우리 주변 어두운 곳에도 도움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도사리고 있다.

 

 우리는 1990년대 외환위기때 '아. . . .'의 정신으로 위기를 극복했던 근검절약은 고대로부터 현대까지 빈부 구별 없는 생활철학이다. 국가 경제 위기 돌파구로 소비가 미덕이라는 경제순환논리는 일시적 미봉책일뿐 국가 경제부흥책은 아니다.

 

 얼마 전 캄보디아에 갔을 때 우리나라에서 수집하여 구호품으로 보내준 책가방과 의류품을 착용한 어린이들이 한국을 부러워하고 고마워 하는 모습이 생생하다.  나는 매일아침 산책길에 남부시장 휴게실에 들른다. 최명희문학관에서 추천하여 걸려있는 어린이들의 글을 읽으면서 어릴 때 내 모습을 떠올리며 감상에 젖곤한다.

 

 “내 옷은 다 헌옷이다. 누나가 입다가 작아저서 내가 입은 것이다. 지금 누나 옷도 곧 내 것이 될 것이다. 누난 여잔데 이러다가 내가 여자가 될까 걱정이다.

(익산 성당 초 2  0)

 

 순진무구한 어린 학생의 글이다. 이는 실화로 지금도 우리 주변에 흔히 있는 사실이다.

 

 오늘 새삼스럽게 장롱과 물치고를 정리했다. 애착과 미련 때문에 매정스럽게 버리지 못한 소지품과 옷가지를 차곡차곡 정리하여 재활용처로 보내려한다. 오늘도 나일론 남방셔츠를 입고 외출하면서 내곁을 떠나기 싫어하는 남방셔츠와 오랜 세월 아껴왔던 손때 묻은 정을 오래오래 간직하며 살아가련다.

                                                       (2018.7.24.)

 

        (...)

 아: 아껴쓰고,   : 나누어 쓰고,   : 바꾸어 쓰고,  : 다시 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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