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 같은 나라, 크로아티아의 기적

2018.07.26 06:03

한성덕 조회 수:8

동화 같은 나라, 크로아티아의 기적

  -2018년 FIFA 러시아 월드컵 결승경기를 보고-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수요반 한성덕

 

 

 

  축구를 워낙 좋아해서 50대 중반까지만 해도 열심히 경기에 나섰다. 나이가 들자 지금은 텔레비전에서 중계방송하는 경기를 보는 것으로 만족한다. 축구경기를 보려고 서재에 텔레비전 한 대를 더 설치했다. 나는 축구를 좋아하기도 했지만, 볼을 잘 차는 선수였다.

  고등학교 1학년 때, 00중학교 축구선수로 특별 선발됐다면 보통 일이 아닌데 이를 어쩌나? 그 정도로 축구 실력을 인정받았다. 볼을 차는 실력도 실력이지만 100m12초로 달리는 나를 탐냈기 때문이다. 한 때는 축구선수였지만, 시방은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 되었다. 국내 리그는 말할 것도 없고, 축구경기 중계방송을 즐겨 시청한다. 지난 러시아 월드컵이 끝난 지 보름이 되었으나 그 추억이 쉽게 사그라지지 않는 이유다. 크로아티아의 경기력을 보면서 감동한 탓에 더 그렇다.

 결승전까지 오른 크로아티아는 지칠대로 지친 상태였다. 공교롭게도 16강전, 8강전, 4강전 모두 연장전을 치르고 올라온 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크로아티아는 줄기차게 달리고 또 달렸다. 체력적으로 지칠 만도 한데 프랑스 선수들보다 더 뛰었다. 동료가 공을 빼앗기면 비난하는 대신 격려했다. 지친 동료의 부족한 공간을 메우려고 애를 썼다. 팀원을 믿고 내가 좀 더 뛰자는 자세가 역력했다. 개인기보다 팀을 중심으로 한 전략, 포기하지 않고 뛰는 희생정신, 나라를 사랑하는 국가관, 그리고 하나됨과 협동심을 충분히 느끼게 하는 장면들이 속출했다. 그런 모습들이 아직도 눈에 아른거린다. 크로아티아 선수들은 인간의 한계 이상을 보여준 위대한 경기였지만, 아쉽게도 프랑스에게 42로 패하고 준우승에 머물렀다.

  결승전이 끝나자마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진땀을 식혀주는 건지, 우승을 축하해 주는 건지 주룩주룩 내렸다. 우승국인 프랑스 대통령이 시상대에 올라섰다. 준우승한 크로아티아 대통령도 함께했다. 대형우산을 받쳐 들어도 소용없을 만큼 쏟아지는 장대비였다. 크로아티아 여성대통령인 ‘그라바르 키타로비치’는 그 빗속에서도 전혀 흐트러짐이 없었다. 허리를 굽혀서 선수들을 일일이 껴안고, 다독거리는 모습이 퍽 인상적이었다. 그 중에서도 유독 한 선수를 오래도록 안아주었다. 다름 아닌 크로아티아의 주장이면서, 최우수선수에게 주는 ‘골든 볼’의 수상자, ‘루카 모드리치’(33)였다. 결승전에서 보여준 선수들의 열정과 투혼도 인상적이었지만, 여성대통령이 선수들을 안아주는 장면, 특히 모드리치를 안을 때 의연하던 대통령의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모습에서 가슴이 뭉클했다. 여성대통령과 포옹하는 ‘선수들의 마음이 어땠을까?’ 그 심정 때문에 크로아티아를 쉽게 보내지 못한 채 나는 여태까지 서성거리고 있다.

 

  실은 크로아티아를 알기나 했던가? 어느 텔레비전에서 ‘꽃보다 누나’를 여러 차례 방송해서 알게 된 것이 전부였다. 크로아티아는 터키를 경유해야만 갈 수 있는 지중해의 아름다운 나라로 소개했다. 면적은 한반도의 4분의 1에 해당하며, 인구는 416만여 명으로 서울의 절반도 안 되는 수준이다. 수도 ‘자그레브’의 동화 속 같은 고풍스러움도, 눈부신 쪽빛바다의 찬란함도, 주황색 지붕이 어우러진 도시들도 모두 환상을 이루었다. 그 중에서도 해변의 멋진 성곽인 ‘두브로브니크’는 ‘아드리아 해’의 진주요, 지상낙원이었다.  

  오랜 세월동안 외세의 침입을 받아 온 크로아티아는 1991년 ‘유고슬라비아’로부터 독립된 신생국가다. 독립 후에도 수년간 전쟁과 내전을 겪었다. 결국은 텔레비전 방송으로 알게 되었으며, 가보고 싶은 나라로 자리매김하기에 이르렀다. 그 조그마한 나라가 작은 공 하나로 전 세계를 감동시켰다. 선수들은 전 국민과 함께 존재감을 과시하며 기쁨을 만끽했다. ‘동화 같은 작은 나라 크로아티아의 기적’으로 밖에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크로아티아는 월드컵 결승에 오르면서 숱한 화제를 뿌렸다. 그 가운데서 팀이 남긴 교훈 두어 가지를 찾았다. 하나는 ‘뛰어난 스타플레이어 몇 명의 활약보다, 평범한 여러 명의 끈끈한 조직력이 더 중요하다’. 또 하나는, ‘동료를 믿고 자신이 좀 더 뛴다면 기대이상의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교훈이다. 이 교훈은 비단 축구에만 적용되는 것일까?

                                                                            (2018. 7.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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