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초예찬

2018.07.29 07:54

김학 조회 수:10

잡초예찬/김학


잡초는 나무나 꽃을 부러워하지 않는다. 잡초는 언제나 끼리끼리 어울려 산다. 잡초는 럭비선수들처럼 언제 어디서나 뿌리로 스크럼을 짜고 끈질기게 버틴다. 잡초는 사나운 태풍이 몰아쳐도 꿈쩍하지 않고, 장맛비 정도는 오히려 영양제로 여긴다. 억센 생명력으로 대를 이어가며 인간과 지구를 지킨다. 이 지구를 이나마 보존할 수 있는 것은 나무나 꽃이 아니라 잡초의 은공이다. 잡초는 지구의 지킴이다.

인간들은 잡초를 없애려고 호미나 삽으로 파헤치고, 쟁기나 굴착기로 뒤집어엎기도 한다. 그러면 잡초는 잠시 죽은 듯 몸을 사리다가 되살아난다. 인간들이 독한 제초제를 뿌려도 잡초는 멸종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잡초는 인간을 비난하거나 원망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인간들이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은혜를 베푼다. 잡초는 온갖 시달림을 받으면서도 묵묵히 견뎌내는 성자(聖者)다. 인간의 무자비한 공격을 받으면서도 잡초는 스스로 더 면역성을 키우고. 더 종족 번식에 힘쓰며, 뭉쳐야 산다는 지혜를 얻는다. 잡초는 늘 방어태세만을 갖출 뿐 선제공격을 시도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몽매한 인간들이 어서 철이 들고 스스로 잘못을 뉘우치기를 기다린다.

해마다 장마철이면 산사태로 소중한 사람의 목숨과 재산을 잃는다. 산사태는 대개 잡초가 자라지 않는 곳에서 일어난다. 만일 산에 나무나 꽃들만 있고 잡초가 없다면 그 산이 오늘처럼 버틸 수 있을까, 만일 모든 땅을 논이나 밭으로 만들어 곡식이나 채소만 가꾼다면 여름철 장마를 견딜 수 있을까, 왜 논밭 주변에는 잡초가 무성한 두렁을 만들었을까를 생각해볼 일이다. 바로 그 두렁이 있기에 논밭은 안전을 보장받는다.

먹음직한 과일을 주렁주렁 매단 나무들도 좋고, 향기를 내뿜는 아름다운 꽃들도 좋다. 그러나 그보다 더 소중한 잡초는 자기를 내세우지 아니하고 자자손손 대를 이어가며 묵묵히 잔인한 인간과 무기력한 이 지구를 지킨다. 잡초는 지구의 파수꾼이다. 잡초는 이 땅의 이름 없는 서민들이다. 서민이 없다면 어떻게 나라가 지탱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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