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트 다리 위의 빨간바지 사나이

2018.07.31 18:15

고안상 조회 수:6

모스트 다리 위의 빨간 바지 사나이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금요반 우남 고안상

 

 

 

 

 두브로브니크로의 여행을 앞두고, 우리는 헤르체고비나의 중심도시 모스타르에서 이 지역 전통음식인 체밥치치로 점심을 아주 맛있게 먹었다. 많은 관광객들이 몰려와 길거리가 매우 혼잡했다. 우리 일행은 검고 매끄러운 돌로 무늬가 새겨진 좁은 길거리를 사람들과 부디치지 않으려고 조심조심 걸으면서, 네레트바 강을 가로지르는 스타리 모스트 다리로 향했다.

 

 스타리 모스트 다리는 ‘오래된 다리’라는 뜻으로, 1566년 오스만 튀르크 제국 쉴레이만 황제의 명령에 따라 당시 유명한 건축가 시난에 의해 건축되었는데, 완공 당시에는 세계에서 가장 긴 아치형 다리로 이슬람 건축의 걸작으로 평가받았다고 한다. 건축이 완공되었을 때, 스타리 모스트 다리는 길이가 30m, 폭이 5m, 높이가 24m에 이르렀다고 한다.

 

 그런데 1993, 불행하게도 바로 이곳 모스타르에서도 피비린내 나는 내전이 벌어졌다. 그 때, 세르비아계 민병대와 네레트바 강을 경계로 대치중이던 크로아티아 방위군에 의해 스타리 모스트 다리도 파괴되었다. 이 다리는 전쟁이 끝난 뒤, 2004년에 유네스코에 의해 설립된 국제 과학위원회의 기부와 세계 각국의 지원으로 대부분 재건되거나 복원되었다. 재건 당시 강에서 건져 올린 1,088개의 석재 파편도 함께 사용하여 다리가 현재의 모습으로 바뀌게 되었다고 한다.

 

 스타리 모스트 다리 위에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다리위에는 40대 초반으로 보이는 빨간 바지 차림의 사나이가 다리 난간에 기대어 서있었다. 가이드의 안내에 따르면 그 사람은 관광객들을 상대로 다리 위에서 강물로 뛰어내리는 다이빙을 시연하려고 서있다는 것이다. 우리 같은 사람들은 감히 도전을 꺼리는 24m 높이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묘기를 펼친다고 하니 놀랍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매우 두려운 생각마저 들었다. 다이빙에 성공하게 되면, 그 사람은 그런 용감함에 환호와 박수를 받게 되고, 그 광경을 지켜본 사람들은 격려 차원에서 약간의 돈을 내놓는단다. 소중한 자신의 생명을 담보로 하는 위험한 묘기연출로 생계를 해결해나가는 것이다. 관광객들이 특히 많이 모이는 시간이면, 어김없이 그 빨간 바지의 사나이는 다리 위에 나타나 자신의 담대한 묘기를 펼치는 일이, 어느 덧 모스타르의 명물로 유명세를 타고 있다고 한다. 

 

 우리 일행에게도 가이드를 통해서 묘기를 시연하겠다는 제안이 들어왔다. 하지만 다음 여행 일정 관계로 우리는 그의 용감한 묘기 시연을 볼 수가 없어서 안타까웠다. 우리 일행은 다리 위를 지나서 모스트 다리 아래쪽으로 내려가 보았다. 다리 위아래에서는 수많은 관광객들이 자신들이 서있는 현재의 모습을 사진에 담아내기 위하여 연신 셔터를 눌러대고 있었다. 모든 과거의 불행들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지금의 이 순간들을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이 말이다. 그렇지만 네레트바 강은 오늘도 예나 다름없이 그 고유의 비췻빛을 띠며 유유히 흐르고 있었다. 20여 년 전의 불행했던 과거는 영원 속으로 띄워 보내버리고, 이제는 자유롭고 평화스런 미래만을 기원하는 이곳 주민들의 바람을 알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지난 1969년 최초의 한국직업사전이 발간됐을 때만 해도 3,260개였던 우리나라의 직업은 지난해 11,927개까지 늘었다고 한다. 그렇지만 여전히 미국(3654)과 일본(16,433) 등 선진국에 비해 직업 수가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다. 그만큼 각 분야에서 새로운 직업이 생길 여지가 크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수많은 직업들 가운데서 질이 좋은 일자리를 얻으려면 –그들 중에는 물론 예외도 있겠지만- 사전에 그 직업이 요구하는 자격증을 획득하기 위하여 남다른 노력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 준비를 할 수 없었기에, 저 빨간바지의 주인공은 오늘도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저렇게 위험을 무릅쓰고 생계를 해결하기 위하여 몸부림을 치고 있다는 생각에 미치자 너무도 마음이 아렸다.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지만, 저 빨간바지 사나이를 비롯하여 어려운 일터에서 고생하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과, 오늘도 직장에 들어가기 위하여 밤낮을 가리지 않고 고생하고 있는 우리나라 청년들을 생각하면, 마음속 깊은 곳으로부터 착잡한 마음이 솟구쳐 올라 안타까운 마음 금할 수가 없다.                                                       (2017.  12.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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