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있어도 못 보았네

2018.08.05 17:54

정석곤 조회 수:59

마음이 있어도 못 보았네

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정석곤

 

 

 

 

  연일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더운 줄도 모르고 L택배에서 문자가 왔다. ‘범우사’에서 보낸 물품이다. '범우사'라고 하니까, 아마도 주지 스님인 대학동창이 부쳤을까? 불교에 관한 책일까? 상상의 나래를 펴느라 잠깐 더위를 잊었다.

 

  해는 이른 새벽부터 온 대지를 달구느라 지쳤는지, 이제 서쪽으로 뉘엿뉘엿 지고 있다. 아내는 택배 물품이 올 시간을 기다리다 받아놓고 외출했다. 그 물품은 거실에서 내가 오기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다. '범우사'는 출판사 이름이고, 월간지 《책과 인생》 8월호였다. 어떤 지인이 보냈을까? 봉투와 월간지 뒷면을 몇 번 읽어보았다. 찾을 수가 없었다.

 

  다음은 목차를 읽어보았다. 혹시 내 작품이 들어있는지 서너 번 위아래로 훑어 보았다. 책장을 대충 넘겨보기도 했다. 없었다. 월간지 한 권은 큰아들에게 읽어 보라고 주었는데 시큰둥했다. 앞표지 뒷장에 있는 〔함께 읽는 이달의 시〕‘인생찬가’ 를 두어 번 읽고 덮어 두었다.

 

  지난 월요일, 서울 갈 때 가방 속에 《책과 인생》을 넣고 갔다. 내려올 때 권두 에세이 ‘백범정신, 무엇이 되느냐 보다 어떻게 사느냐’를 읽었다. 그날 밤에 K 교수님한테 전화가 왔다.

  “월간지 《책과 인생》을 받았느냐? 읽고 있느냐?

자신 있게 답을 못하고 머뭇거렸다. 이번에는 정석곤 씨 작품이 월간지에 나온 걸 아느냐고 물으셨다. 깜짝 놀랐다. 몰랐다고 하니까, 내 작품이 실려 월간지를 보낸 것이고, 원고료 대신에 1년 동안 정기구독하게 된다고 하셨다.

 

  등잔 밑이 어둡다더니, 그렇게도 어두울 수가 있을까? 월간지 목차에서 내 이름과 작품명을 못 찾았을까. 할 말을 잃고 잠시 멈춘 사이에 감사 인사도 못 드린 채 전화가 끊겼다. 곧바로 카카오톡으로 문자를 보냈다. 월간지에 내 글이 있는 걸 몰라 죄송하다며, 잘 읽겠다고 했다. 이어 목차를 봤다. 오른쪽, ‘독자에세이’에 제목과 내 이름이 있는 게 아닌가? 얼른 108쪽을 펼쳤다. 문학기행 글인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나라사랑학교’ 이다. 네 면의 글에다 사진들도 넣어 독자들이 읽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였다. 계간(季刊), 기간(期刊) 등 문학동인지를 받아도 먼저 지인의 글이 있나 없나를 보고, 있으면 먼저 읽기 일쑤였다. 그런데 《책과 인생》에서는 왜 내 이름을 못 찾았을까? 보름이 넘게 가지고 있으면서도…. 시력이 나빠서 내 이름을 못 찾았을까? 안경을 낀 채 1.0이 되지 않는가. 중국 고전에, 마음이 없으면 보고도 안 보이고, 들어도 귀에 들리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내가 마음이 없는 건 아니었다. 나를 얼마나 존귀하게 여기고 내 이름에 많은 관심을 두고 있지 않은가. 고은(高銀) 시 ‘그 꽃’에서 “내려갈 때 보았네/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이라고 노래했다. 시인이 그 꽃을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것은 오로지 정상에 오르겠다는 집념 때문에 볼 겨를이 없었을 것이다. 나는 어떤 생각에 몰두한 것도 아니었다. 아마 눈에 뭔가 내 이름이 안 보이는 콩깍지가 끼었던 것 같다.

 

  연세가 많으신 분들 앞에서는 쑥스럽지만, 올해 칠순(七旬)이라 도둑 같이 달려오는 치매를 예방하라는 신호탄이라 여겨지기도 했다. 전주시치매안심센터의 치매 예방수칙에 3() 3() 3()이 있다. 3가지 즐길 것 가운데 하나가 부지런히 읽고 쓰라는 독서(讀書). 책을 즐기면서 부지런히 읽는데, 수박 겉핥기식보다는 쥐가 소금을 쏠듯 집중해야 할 성싶다.  

                                                (2018. 8.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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