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유가 있는 아침

2018.08.13 06:38

이진숙 조회 수:4

여유가 있는 아침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수요반 이진숙

 

 

 

 아침식사 후 부엌 바로 옆에 있는 우드 데크(나무난간)에 나와 서로 마주 보면서 야외 테이블에 앉아 마시는 모닝커피는 그냥 마시는 음료라기보다 두 사람이 같이 만들어 낸 행복을 마시는 특별한 기호식품이다.

 이렇게 날씨가 무더운 여름날에는 멋진 유리컵에 얼음을 넘치게 넣고 주전자에서 뜨겁게 끊여 내린 원두커피를 부어 만든 냉커피가 최고의 후식이다. 특히 얼음에 뜨거운 커피가 닿는 순간 사각사각 얼음이 녹는 소리에 나는 또 다른 흥분을 느낀다. 미리 데크에 나가 있는 그에게 ‘커피 나왔어요.’하며 유리창 너머로 건네 줄 때도 나만이 느끼는 색다른 행복이 있다. 이렇게 만들어진 차가운 커피를 놓고 우리는 오랜 시간 앉아서 간혹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특히 주말에는 그렇게 이야기하다보면 어느 새 두어 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린다.

 주변에 있는 여러 종류의 나무들을 바라보면서 올가을에는 제일 가까이 있는 반송을 강하게 전지를 해야겠다는 둥, 바로 앞에 있는 단풍나무는 옮겨 심은 지 10년째 되어서야 비로소 건강하게 자라고 있으니 기특하다는 등. 다른 이들이 들으면 그다지 중요한 이야기도 아닌데 우리의 대화는 끝없이 이어진다. 주로 우리가 직접 심어 놓은 꽃과 나무에 대한 이야기만으로도 오전 시간이 쏜살 같이 지나갈 때가 많다. 때로는 멀리 살고 있는 아들 내외의 이야기, 서울에 살고 있는 딸 이야기, 특히 올봄에 아빠의 나라인 핀란드로 간 손자들의 이야기가 나오면 서로 먼저 이야기하려고 하면서 또 한 차례 이야기꽃을 피운다. 전날 아이들 사진이라도 카카오 톡으로 보내온 날은 더 많은 이야기를 하며 마치 곁에 있는 듯이 아이들 사진에 대고 말을 걸곤 한다.

 이러다 보면 어느 새 유리잔 가득 들어 있던 차가운 커피는 얼음 몇 조각만 남기고 바닥을 보이기 일쑤다. 그 얼음조각까지 다 먹어 치우고 나서도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무더운 아침에 가끔씩 불어주는 시원한 바람을 못 잊어 한참이나 앉아 있다. 이렇게 차가운 커피를 즐겨 마시다가도 어느새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고 하늘이 높아지면 이제는 뜨거운 커피를 찾게 된다. 그러면 여름 날 아침마다 우리의 눈과 입맛을 즐겁게 해 주었던 멋진 유리컵과 얼음에 대한 사랑을 까마득하게 잊어버리고 만다. 대신 또 다른 사랑이 아침마다 시작된다. 그는 뜨거운 ‘아메리카노커피’를 나는 다른 사람들이 한약 같아서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뜨겁고 새카만 ‘에스프레소커피’를 찾게 된다. 그가 좋아하는 커피는 맛있게 볶아진 커피콩을 사다 집에서 직접 갈아서 커피주전자에 끓여서 내린 ‘아메리카노 커피’를, 나는 역시 커피주전자에서 내린 뜨거운 ‘에스프레소커피’를 좋아한다. 모든 원두커피를 만들어 낼  때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에스프레소커피’이다. 그래서 나는 가끔 카페에 가면 ‘에스프레소커피’를 시키곤 한다. 그 커피가 맛있어야 우리가 흔히 먹는 ‘아메리카노커피’나 ‘카푸치노’ ‘커피 라떼’같은 모든 커피들이 맛있게 되니까.

 내가 아침마다 ‘에스프레소커피’를 좋아하게 된 것은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 3년 전 아들 내외와 우리내외가 이탈리아 여행을 한 달 정도 했던 적이 있다. 이탈리아 사람들의 커피 사랑은 우리보다 한 수 위인 것 같았다. 그들은 아침마다 ‘에스프레소커피’에 ‘크로아상’을 아침 식사로 한다. 집에서 먹는 때도 물론 있지만 대부분은 동네 카페에서 의자에 앉지도 않고 서서 홀짝 마시고 나가는 모습을 보았다. 또 그곳은 카페에 들어가 앉아서 커피를 마시면 값이 서서 먹는 것보다 배는 비싸다. 그 모습을  보고 참으로 합리적인 가격이라고 생각했었다. 이탈리아 여행 때 아침마다 마셨던 ‘에스프레소커피’맛을 잊을 수가 없었다.  한 모금에 그만 홀딱 반해 버렸다. 그때부터 ‘에스프레소커피’는 나의 기호식품 1번이 되었다. 그리고 나는 커피잔에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이다. 어떤 사람들은 ‘어떤 잔이면 어떼?’하는데 나는 절대 아니다, 컵의 모양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반드시 ‘에스프레소 커피’는 에스프레소커피잔에다 먹어야 본래의 맛이 난다.

 

 오랜 세월 우리 내외의 아침시간을 즐겁게 만들어 주는 커피, 그것으로 인해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해준 고마움, 그 이야기들로 인해 온갖 사물에 깊은 애정과 관심을 갖게 해준 커피가 고맙다. 이렇게 고마운 커피처럼 무더위에 시달리는 우리 모두에게 시원함을 선물하는 향기로운 사람으로 살고 싶다. 또한 모든 커피의 기본이 되는 ‘에스프레소커피’가 맛있어야 그 카페의 커피를 많은 사람들이 찾게 되듯이, 나도 언제나 기본이 단단하고 충실한 사람이고 싶다. 그리하여 내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커피향이 진한 ‘에스프레소커피’처럼 오래오래 향기가 넘치는 이웃으로 남아 즐거움도 슬픔도 같이 나누고 사는 넉넉한 삶을 살기를 희망한다.

                                                   (2018. 8.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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