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미의 계절

2018.08.14 06:13

김현준 조회 수:4

매미의 계절

 

                                        안골복지관 수필창작반 김 현 준

 

 

 

  공원을 산책하다 오솔길에 떨어진 매미를 주웠다. 대왕참나무에서 떨어진 매미의 사체였다. 사람 같았으면 체온이 아직 남아있을 시각인데, 매미는 그냥 딱딱한 덩어리였다.

  이 매미는 언제 지상으로 올라와 우화했을까? 열흘 전일까? 암수를 구별할 수 없으니, 그냥 수매미라고 짐작한다. 아침 8시부터 울기 시작하여 저녁 8시까지 울었다 치자. 10분 정도 울고 2분 정도 쉬었다면, 하루 중 9시간 30분을 운 셈이다. 열흘 동안 살았을 테니 평생 95 시간을 울었다. 꼬박 4일 동안이다. 그 사이 사이 암매미를 기다리고 살피며, 짝짓기까지 했다. 몇 마리에게 유전자를 전했을까? 최소 하루 한 마리와 데이트를 했다치면, 열 마리의 상대를 만났을 것이다. 그 중에서 1/2 정도가 이 매미의 유전자를 받아 다섯 마리의 후손을 남겼을까? 암컷이 한 번의 수정으로 몇 개의 알을 낳을 수 있을지에 따라 달라질 게다. 어찌했건 올여름 이 공원에서 수정된 매미의 후손은 땅 속으로 내려가 78년에 걸친 긴 굼벵이 생활을 이어갈 것이다.

  예전에는 매미에 대한 평가가 좋았다. ()의 시인 육운()은 매미의 다섯 가지 덕을 노래했다. 머리에 갓끈을 달고 있어 교양이요, 공기를 머금고 이슬을 마셔 맑음이요, 곡식을 먹지 않아 청렴, 고치를 짓지 않는 검소, 철 따라 절도를 지키는 신의가 있다고 예찬한 바 있다.  

  세상의 모든 존재는 악을 행하면 그에 상응하는 벌을 받고, 선을 행하면 그 보답이 따를 것이다. 초월자가 있건 없건 자연의 섭리 속에 자신이 행하는 대로 거둘 뿐이니, 이것이 나의 도덕률이다.

  아아! 윤회가 가능하여 내가 죽어 수백 년 뒤 사람으로 환생할 수 있다면, 그 전에 꼭 한 번 매미로 살고 싶다. 지상에서 며칠을 보내려고 땅 속에서 78년을 준비한다는 게 얼마나 치열한 삶인가?  

  매미의 한 여름을 우습게 보아서는 안 된다. 실수를 한 게 생각난다. 전주시 인후동 도당산 정상에 서 있는 나무에 매미 십여 마리가 붙어있었다. 아마 집단으로 소개팅이 있는 모양이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나무에 올라가 매미 두 마리를 잡았다. 그때 웬 할아버지가 다가와 “그리 할 일이 없소?” 하며 책망을 했다. ‘나잇살이라도 먹은 사람이….’ 하는 뒷말은 목안으로 삼킨 듯했다.

  ‘매미 좀 잡는다고 탓하다니….’ 하며 불쾌한 마음이었으나, 노인장 체면을 고려하여 고개만 돌렸다. 이제 생각하니 ‘내가 그 노인이 된 거로구나.’ 싶다.

 

  매미에게 무슨 죄가 있으리. 사람에게 소음공해가 되었다고 할까? 매미의 울음은 생존을 위한 부득이한 일이다. 열대야엔 사람의 수면을 방해하지 않으려 울음을 그치는 지혜가 가상하다.

  내가 매미로 태어나면 우는 시간을 줄여야겠다. 10초 정도 울고 50초 동안은 놀고 싶다. 오전에는 10시부터 12시까지 울고, 오후 2시까지는 오침과 휴식을 취한다. 오후엔 2시부터 6시까지 울고 일과를 마친다. 밤에는 하늘의 별을 보고 잠을 자야겠다.                

  여름은 매미의 세상이다. 쨍쨍 내리쬐는 햇볕과 매미 소리는 잘 어울린다. 매미는 수컷만이 운다. 짝짓기를 위한 호객행위라 하겠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매미는 집단을 이루기 위하여 울고 동료에게 안전신호를 보내기 위해서도 운다.

  소음이 많은 도시에서 고요하게 부르는 수컷매미의 세레나데는 암컷에게 전달될 수 없다. 그런 매미는 점차 도태되어 갈 뿐이다. 더욱 거세고 시끄러운 소리를 내는 수컷만이 짝을 이루어 유전자를 전달하게 된다. 다윈의 이론을 빌면 도시의 매미는 더욱 시끄러워질 수밖에 없다. 가로수에 매달린 두어 마리의 수컷매미가 내는 소리는 자동차 소리를 뺨친다.  

  어느 학자는 덩치가 크고 울음소리가 큰 말매미의 수가 늘어나 시끄러워졌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말매미가 좋아하는 벚나무, 플라타너스 등을 가로수와 정원수로 쓴 탓에 개체 수를 급격히 증가시킨 이유라고 한다.

  입추를 지나도 무더위가 가시지 않고 여름은 활활 타오른다. 더위가 사라지기 전에 매미는 알을 낳고 생을 마쳐야 한다. 시간이 지나면 매미의 울음소리가 그리워질 때도 있으리. 겨울이 깊어지면 여름날도 괜찮았다고 생각되듯이. '매미여, 이 여름을 실컷 노래하라! 네 노랫소리에 벼가 쑥쑥 자라고 과일도 탱글탱글 여물어 갈 것이다.'  

  매미의 사체를 공원 느티나무 아래에 묻어주며, 유난스레 무더웠던 2018년의 여름을 되돌아본다. 겨울이 오기 전에 매미의 노랫소리가 그리워질 것 같다.

                                      (2018. 8.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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