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힘

2018.08.29 08:44

변명옥 조회 수:5

어머니의 힘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금요반 변명옥

 

 

 

 

 “상철이야? 상철이 맞니? 아이고~너 죽은 줄 알았지. 상철이 네가 어떻게 살았어?”

 네 살 때 헤어져 71세가 된 아들을 한 눈에 알아본 92세 된 어머니는 외마디 비명처럼 말하고 아들을 끌어안았다.  ‘동포 여러분, 형제 여러분, 이렇게 만나니 반갑습니다’ 라는 북한 노래가 코웃음이 쳐질 만큼 코미디로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누가 이 모자를 68년 동안이나 갈라놓고 못 만나게 했던가? 지구상에 아직도 이런 비인간적인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니! 부끄럽고 참담한 일이다. 그래도 죽기 전에 만난 사람들은 로또에 당첨된 것 같은 행운이지만 수많은 이산가족들이 부모와 형제자매가 살았는지 죽었는지 소식도 모른 채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111년 만에 처음 겪는 무더위에 지구가 지글지글 끓는 가마솥 같은 뜨거움보다 아들을 만난 어머니의 가슴은 더 뜨겁게 요동쳤을 것이다.

 

 관광지나 찜질방, 외국여행을 가면 여자들이 압도적으로 많다. 나이 드신 분들은 혀를 ‘끌끌’ 차며 온통 여자들 세상이라고 못마땅해 하기도 한다. 막혔던 호스에서 물이 쏟아지듯 세계 각국을 활개치며 돌아다닌다. 남편과 자식 뒷바라지를 하느라고 보낸 3040년 세월을 보상이라도 받듯이 그들의 표정은 밝고 활기차다.

 

 코카서스 3국 여행 중 아르메니아에서 점심을 먹는데 생선구이가 나왔다. 어두일미가 우리에게만 있는 게 아닌지 생선머리까지 구워져 나오니까 어떤 여자 분은 머리 부분 말고 꼬리를 달라고 했다. 내 옆에 딸과 함께 오신 선희씨는 머리 쪽을 받자 딸에게 ‘뒤비어라’ 했다. 그 소리에 내가 ‘빵‘ 터졌다. 나는 생선 눈알을 보면 빼 먹고 싶은데 그 엄마는 징그러워서 얼른 눈이 안 보이게 뒤집으라고 소리쳤다. 사투리가 재미있어 다시 한 번 해 달라고 했더니 리얼하게 “뒤빈다”라고 악센트까지 넣어 말해 다시 한 번 크게 웃었다. 선희씨의 부드럽고 상냥한 모습은 모두에게 호감을 주었다. 그녀의 눈빛은 아기눈처럼 순수하고 맑았지만, 옳은 일에는 주장을 굽히지 않는 단호함도 보였다. 그러면서도 세상 풍파를 전혀 겪지 않은 눈 같았다.

 

 아르메니아의 어머니상을 구경하러 갔다. 어머니상이 부드럽고 우아할 줄 알았는데 여전사 같이 강인한 인상이었다. 굵고 튼튼한 오른 팔로 칼을 잡고 왼손으로 칼을 받치고 서 있었다. 칼끝은 터키를 향하고 있다고 한다. 어머니상 정면에는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영령을 위로하는 꺼지지 않는 불이 타오르고 있었다. 평화를 바라는 불꽃은 한낮에도 바람에 이리 저리 나부끼며 끊어지지 않고 불타고 있었다. 어머니상은 불꽃 앞에서 먼 곳을 응시하며 당당하게 서서 나라를 지키고 있었다. 여자는 약하지만 어머니라는 위치가 되면 그 누구보다도 강하게 자식과 가정을 지키기 위해 떨치고 일어나는 것이 어머니다.

 

 조지아의 어머니상은, 적에게는 칼을 손님에게는 와인을 권하기 위해 왼손에는 와인 잔을 들고 있었다. 어머니상의 색깔도 아르메니아의 어머니처럼 강한 청동색이 아니라 하얀 빛이라 부드럽게 보였다.

 

 문득 어머니상을 돌아보며 우리 조선시대의 어머니상을 생각했다. 남편들이 밖에서 어떤 일을 하건 무조건 남편을 존중하고 섬겼다. 안살림과 자식교육을 도맡아 하면서 가정의 평온과 화목을 위해 밤잠을 아껴가며 온힘을 쏟은 어머니들 때문에 우리나라가 이 만큼이나 발전하고 지탱해온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율곡의 어머니 신사임당을 비롯하여 아들을 나라에 바친 안중근 의사의 어머니는 자기 목숨보다도 귀한 아들에게 편지를 보내 “네가 의로운 일을 했으니 일본에게 목숨을 구걸하는 일은 하지 마라!” 하며 당신이 손수 지은 한복을 죽을 때 입고 가라고 했다. 어느 애국지사보다도 강한 신념으로 자식을 나라에 바치면서 당당했다. 안 의사 어머니 조성녀 여사의 서릿발 같은 기상에 일본인들의 간담이 서늘해졌을 것이다. 아들의 죽음으로도 어머니의 애국충정은 꺾이지 않았다. 그런 어머니의 교육으로 안중근 의사 같은 애국자가 길러졌던 것이다.

 

 조선시대는 남존여비의 사상으로 여자는 존중 받지 못했다고 하지만 내 생각은 그렇지 않다. 조선시대의 안방마님은 모든 집안 대소사를 결정하고 챙기면서 가정의 경제권을 쥐고 있었다. 집안이 잘 되려면 여자가 잘 들어와야 한다는 뜻은 살림을 알뜰하고 지혜롭게 하여 집안을 부흥시키는 일이 여자의 책임이었기 때문이다. 남편은 부인에게 함부로 말하지 않았고 존댓말을 썼다. 여자가 자기표현도 하지 못하는 일본과 큰돈을 사용할 때 남편의 허락을 얻어야 지출하는 미국의 여자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았다.

 

 조지아 고리에 있는 러시아(구 소련)의 독재자 스탈린박물관에 갔다. 스탈린은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어려운 어린 시절을 보내고 성인이 되어 러시아의 독재자가 되었다. 아버지는 구두수선공에 술주정뱅이라 스탈린은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한다. 아버지의 술 중독 때문인지 발가락도 붙어 태어나고 왼손은 펴지지 않아 사진에 보면 왼 손을 주머니에 넣고 찍은 사진이 많았다. 아버지가 일찍 죽고 어머니 손에서 자란 스탈린은 가난하지만 어머니의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랐다고 한다. 어머니는 스탈린이 러시아 정교 성직자가 되기를 원해서 기독교 학교에 보냈으나 4년 만에 돈이 없어 학교를 그만 두었다고 한다. 스탈린은 어머니의 뜻을 거스른 것을 죄송하게 생각했다고 한다. 스탈린박물관에는 스탈린이 어머니와 함께 있는 그림이 있다. 그 그림에는 독재자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조용히 고개를 숙이고 어머니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있는 스탈린의 모습에서 다시 한 번 어머니의 위대한 힘을 느낄 수 있었다. 스탈린의 어머니는 많이 배우지도 세련된 어머니도 아니었지만 스탈린은 어머니의 말씀에 순응하는 착한 아들이었다고 한다. 자식을 위한 어머니의 희생에 독재자 스탈린도 고개를 숙였을 것이다.

 

  아들에게 ‘네가 내 앞에 죽는다고 슬퍼하면 이 어미는 온 백성의 웃음거리가 되니 절대 그런 마음 갖지 말라.’고 당부하던 안 의사의 어머니, 칼을 들고 나라를 지키는 당당한 아르메니의 여전사 같은 어머니, 손님에게는 와인을 적에게는 칼을 든 조지아의 어머니, 모든 어머니들은 세상의 거친 풍랑을 온 몸으로 맞서 헤쳐 온 전사들이다. 동양이나 서양이나 역시 어머니는 위대했다.

                                                     (2018.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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