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이야기

2018.09.02 11:07

김학 조회 수:6

우리 동네 이야기

                                                                                                         김 학




한마디로 불야성(不夜城)이다. 휘황찬란한 네온사인이 명멸하다. 식당과 여관, 카페의 룸살롱이 저마다 손님의 시선을 끌고자 유혹의 미소를 뿌린다.

이미 골목길 도로 양변에는 승용차들이 촘촘히 박혀 있다. 가까스로 소형차들만이 비껴 다닐 수 있을 뿐이다. 퇴근길이면 날마다 마주치게 되는 우리 동네의 표정이다. 우리 동네가 이처럼 불야성으로 변모한 것은 그리 오래 된 일이 아니다. 불과 2년 남짓 사이에 이렇게 변한 것이다.

6년 전 내가 집을 지어 이사를 왔을 때만 해도, 이곳은 신개발지로서 허허벌판이었다. 옆집L교수가 쓸쓸히 살다가 내가 이사를 오니 무척이나 반가워했던 게 엊그제의 일처럼 느껴진다.

우리 동네는 전주역(全州驛)이 옮겨오면서 형성된 마을이다. 풍수지리와 부동산 투기에는 문외한인 내가 보아도 장래성이 있으려니 싶어, 이곳에 보금자리를 마련했었다. 오래 살 결심으로 튼튼히 집을 지었고, 뜨락에는 감나무, 살구나무, 은행나무, 앵두나무, 대추나무, 사과나무, 추자나무 등의 유실수와 목련, 라일락, 영산홍, 벚꽃, 모란, 백일홍, 등의 꽃나무를 심었다. 담장에는 장미꽃과 개나리는 물론 능소화와 담쟁이덩굴을 올려 철따라 계절의 변화를 즐기려고 했다. 그러한 나의 조그만 소망은 이루어지고 있다.

철따라 꽃이 아름답게 피면 꽃나무 앞에 가족을 불러 세워 사진을 찍기도 하며, 과일이 탐스럽게 익으면 그 열매를 따다가 가족끼리 파티를 열기도 한다. 봄부터 가을까지는 심심치 않게 벌‧나비들이 찾아와 주어 자연의 정취에 묻혀 살 수가 있어서 좋다.

교회가 식당으로 변하고, 가정집이던 옆집이 음식집으로 바뀌어도 인심은 옛 그대로인 게 우리 동네다. 늦은 밤 술꾼들의 푸념이 이따금 들려오기도 하지만, 그런 날이면 가까이서 멀리서 들려오는 개 짖는 소리에 묻혀 버리고 만다.

우리 동네는 살기에 편리한 곳이다. 이웃에 식당과 여관이 있으니 갑자기 손님이 오더라도 당황할 필요가 없어 좋다. 또 밤마다 네온사인이 명멸하니 달 없는 밤일지라도 외출에서 돌아오는 길이 밝아서 좋다. 세차장이 이웃에 있으니 자가용 관리하기에 편리하고, 신문사가 이웃에 있으니 새 소식을 빨리 접할 수 있어 좋다. 병원이나 약국도 옆 코 닿을 곳에 있고, 각종 금융기관의 점포가 손을 뻗으면 닿을 거리에 있어 좋다. 이웃에 음식점이 많다보니 식성대로 호주머니 사정대로 메뉴를 마음껏 골라 먹을 수 있어 좋고, 다방이 가까이 있으니 짬이 날 때 무료하지 않아서 좋다.

목욕탕과 이발소가 8차선 도로 만 건너면 나오고, 주유소와 S쇼핑센터가 지척에 있으니 시간의 낭비요소가 없어 좋다. 역이 5분 거리이니 기차여행 하기에 편리해 좋고, 역을 중심으로 하여 시내버스 노선이 실핏줄처럼 사방팔방으로 번져 있으니 교통이 편하여서 좋다.

어디 그뿐이랴. 이른 아침 30분이면 휘적거리며 산책을 즐기고 약수로 목을 축일 수 있는 인후공원이 눈앞에 있으니 건강관리를 하는데도 그만이다. 이보다 더 살기 좋은 곳이 또 어디에 있을까?

“이사를 가야겠소. 자녀교육에 문제가 있지 않소?”

때때로 고마운 충고를 해주는 이들도 없지 않다. 부정적인 측면에서 보면 그건 사실이다. 그러나 호텔에 취직을 하고, 호텔 안의 사무실로 출근하는 직장인이 많은 세상이 아니던가? 지금은 성역(聖域)이 사라진 시대가 아니던가?

비무장지대와 같은 청정구역이 없는 세상이다. 집이 주택가에 있다고 해서 안심할 수 있는 세상이 아니다. 집안에서 저질의 비디오를 본다거나 선정적인 잡지나 만화를 읽는다면, 그것은 자녀들에게 더욱 나쁜 영향을 끼칠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사소한 물건을 사더라도 가급적이면 우리 동네 구멍가게에서 산다. 회식이 있는 날이면 우리 동네 음식점으로 유치한다. 우리의 이웃인 이들이 돈을 잘 벌어야 우리 동네가 발전할 것이며, 우리 동네가 발전해야 나의 유일한 재산인 우리 집도 제값을 물고 있으려니 싶어서다.

신미년이 가고 선거의 해인 새해가 가슴을 열었다. 네 번의 선거를 치르자면 아무래도 우리 동네는 다른 어떤 해보다도 더욱 붐빌 듯하다. 신나는 새해가 되려니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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