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나들이

2018.09.08 07:23

이진숙 조회 수:35

서울 나들이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수요반 이진숙

 

 

 

 그때 먹었던 라면이 생각났다. 또 남산에서 내려다보이는 콧대 높은 서울의 아름다움에 푹 빠지며 대낮부터 마셨던 시원한 생맥주가 먹고 싶었다.

 어느 곳을 여행하든 두고두고 마음속에 남는 것은 그때 먹었던 맛있는 음식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 음식을 떠올리며 그 곳의 풍경과, 함께 했던 사람들이 생각난다.

 며칠 전 추석 연휴에 핀란드에 있는 아이들과 남편을 만나러 휴가를 내서 가기 때문에 전주에 내려오지 못한다는 딸의 말에 마음 한 쪽이 허전했었다. 딸의 얼굴도 볼 겸 나 혼자 서울에 갔다. 지난 4월에 사위와 외손주들이 핀란드로 간 이후 두 번째 만남이다.

 서울에 오면 맛있는 음식들도 많고 돌아다니며 구경할 곳도 많으니 한 번 올라오라는 이야기를 했는데 바쁜 일들이 많아서 쉬이 올라가기가 어려웠다. 하긴 올 여름 더위 같으면 아무리 자식의 집이라 해도, 오는 손님이 호랑이보다 더 무서울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 차례 요란한 태풍이 지나가고 날씨가 시원해진 날, 모녀간에 재미있게 지내다 오라며 흔쾌히 집에 혼자 남겠다는 남편에게 ‘집 잘보고 계세요!’하며 올라갔다.

 나들이를 할 때 짐이 무거우면 몸과 마음이 힘들어서 혼자 올라 갈 때는 이것저것 다 빼고 간다. 없는 것은 딸에게 같이 쓰자고 하면 되니 가방도 몸도 홀가분하게 딸네 집에 들어갔다. 하루 종일 혼자 입 한 번 딸싹거릴 일이 없었으리라, 내가 들어가자마자 달려와 와락 껴안는다. 한 달 전에 보았지만 매일 보아도 반가운 사이이니 무척 좋았다.

 언젠가 ‘성내 천’변에 단팥죽과 팥빙수가 맛있다며 서울에 오면 같이 가자고 했었다. 올라가자마자 이른 저녁을 간단히 챙겨 먹고 ‘성내천’ 산책에 나섰다. 산책길을 쭉 따라가다 보면 ‘올림픽공원’과 연결된다. 마침 딸네 집이 ‘올림픽 공원’과 가까이 있어 가끔 그곳에 아이들을 데리고 산책을 하곤 했었다.

 늦은 저녁인데도 아직은 여름 끝더위가 있어서인지 많은 사람들이 천변에 나와 아이들과 놀이도 하고 산책을 하거나 자전거를 타느라 사람들로 가득했다, 산책길을 따라가다 계단으로 올라가니 맛있다는 음식점이 나왔다. 한 여름에는 줄이 길게 늘어서있어 안으로 들어가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단다. 다행히 2인용 식탁이 딱 한 자리 비어있어 자리를 잡고 맛있다는 팥빙수와 단팥죽을 시켰다. 팥이 들어 있는 음식을 유난히 좋아하는 나는 무조건 맛있게 먹었을 것인데, 소문대로 옛날에 먹었던 맛이나 똑같은 빙수와 단팥죽이라 더욱 맛있게 먹었다.

 다음 날 ‘스코틀랜드’에 있는 아들이 서울 ‘Sklo’라는 갤러리에서 ‘Glass and Ceramics 3인 초대전’에 초대되어 작품전이 열리고 있었다. 때 마침 서울 올라온 김에 아들을 보는 기분으로 아들의 작품을 보았다. 그간의 노력이 작품에 가득 담겨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새로운 기법으로 창작해 낸 아들이 대견했다. 흐뭇한 마음으로, 우리 아들이 이렇게 훌륭한 작가였나 생각하며 갤러리를 나섰다.

 마을버스를 타고 남산으로 향했다. 주말이고 모처럼 날씨도 좋으니 많은 사람들이 남산에 모여 들었다. 언제 올라와도 참 좋다. 나무들이 해가 갈수록 빽빽해지고, 더불어 공기도 맑고 청명하다.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온 젊은 부부도, 이제 막 사귀기 시작한 듯 어색한 남녀들도, 장성한 아들이 효도 관광차 모시고 나들이 한 것 같은 늙수그레한 부모도, 모두들 신이 난 표정들이다. 우리도 그들과 같이 이리저리 구경하고 사진도 찍고 한참을 돌아다니다가 보니 ‘Beer Bar’라는 간판이 보였다. 그런데 그 안은 텅 비어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제 막 12시를 넘겼으니 그런 시간에 맥주를 마시러 들어 갈 사람이 있을까? 용감한 우리 모녀가 들어가서 자리를 잡고 앉았다. 앉고 보니 눈앞에 멀리 청와대까지 선명하게 보였다. 저절로 두 팔을 벌리고 ‘와!’하고 소리를 질렀다. 서울의 멋진 풍경을 감상하며 둘이 맥주잔을 ‘짠’하고 부딪치며 시원하게 쭉 들이켰다. 온몸의 땀이 싹 가셨다. 남산이라는 높은 곳에서 서울의 셀 수 없이 많은 아파트들을 보면서, 저렇게 많은 집이 있건만 왜 평생 집 한 채를 갖기 위해 피나게 노력을며 서럽게 사는 사람들이 많을까! 한편으론 경치에 마냥 취할 수만은 없었다.

 

 내려오다가 ‘남산도서관’ 근처에 있는 ‘안중근기념관’에 들렀다. 아이들이 있다면 한 번 꼭 둘러봐야 될 곳이란 생각을 했다. 원래 일제 강점기 ‘조선신궁’을 헐고 이 기념관을 설립했다고 한다. 이 건물을 만드는데 참여한 수많은 사람들의 이름 중 일본인들의 이름을 볼 수 있었다. 일제 강점기 한국인들에게 행했던 여러 가지 악행들에 대해 전심어린 사과를 받을 날이 빨리 오기를 바란다.

 다시 마을버스를 타고 내린 곳이 ‘해방촌’이란 동네였다. 광복과 함께 해외에서 돌아온 사람들, 북쪽에서 월남한 사람들, 한국전쟁으로 인해 피난 온 사람들이 정착하며 ‘해방촌’이라 불리게 되었단다. 이곳이 새로운 관광명소가 되어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게 되었다. 사람들이 사는 곳이 관광명소가 되면 좋긴 하나 그곳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의 불편함이 많을 것이다. 서울의 북촌에서도 많은 주민들이 피해를 호소한다고 한다. 그러나 모처럼 그곳을 구경하러 몰려든 사람들이 그들이 사는 환경까지 생각해주는 여유는 없으리라. 우리도 철저히 관광객의 자세로 ‘해방촌’을 한 바퀴 쭉 돌아보았는데 삼삼오오 술 마시고 떠드는 사람, 맥주가게에서 흘러나오는 잡다한 노래들, 좁은 길에 돌아다니는 많은 사람들, 택시, 마을버스들이 뒤엉켜 큰 혼잡을 이루고 있었다. 또 유명세를 탄 음식점들은 으레 줄을 길게 서서 오고가는 사람들의 발길을 막고 있었다. 우리도 그들 중 하나. 어느 유명한 음식점 앞에 줄을 섰다. 요즈음은 색다르게 장사하는 집이 많아졌다고 한다. ‘저녁에만 장사하는 집’이라면 일단 호기심이 생기게 마련, 거기에다 한 번에 12~3명 정도만 들어 갈 수 있는 아주 좁은 실내 등등. 어려운 세상에 살아남기 위한 여러 가지 방법들을 볼 수가 있었다. 우리도 그렇게 들어가기 힘든 곳에 떡하니 자리를 잡고 맛있는 저녁과 멋지게 와인 한 잔을 했다. 이런 모습을 사진을 찍어 집에서 홀로 지내고 있을 남편에게 보내니, 곧 바로 보글보글 끓고 있는 김치찌개와 시원한 소주병이 있는 사진을 보내왔다. ‘다행이다!’하며 딸과 마주보고 웃었다. 참 편리하고 좋은 세상이다. 아무리 먼 곳에 있어도 바로 곁에 있는 양, 실시간으로 모든 일들을 알고 서로 얼굴을 보며 이야기도 할 수 있으니….

 서울은 ‘한강’이 있어 참 좋다. 어떤 이들은 서울 ‘한강’의 강폭이 너무 넓어 운치가 없다며 ‘센 강’처럼 폭이 좁으면 쉽게 건널 수도 있어서 좋을 것 같다고 한다. 하지만 좁으면 좁은대로 넓으면 넓은대로 강은 운치가 있지 않을까?

 한강 변을 걷다가 편의점에서 라면을 샀다. 이런 경험은 처음이다. 봉지라면을 사고, 날달걀도 사고, 또 종이 그릇도 샀다. 가게 옆으로 가니 마치 자동판매기와 비슷한 기계가 보였다. 바로 라면을 끓여주는 기계였다. 설명서에 쓰인대로 따라 하면 신기하게도 기계가 라면을 끓여준다. 달걀을 깨트려 넣는 시간까지 친절하게 안내해준다. 컵라면을 야외에서 먹어보긴 했어도 이런 봉지라면을 강변에서 먹다니…. 평소 라면을 그다지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그날 먹은 라면은 국물까지도 남김없이 먹어버렸다. 지금도 내 입속에는 침이 고이고 있다. 앞으로 또 어떤 자동기계가 나와서 우리를 홀릴까?

 

 아이들이 집에 같이 있을 때는 생각도 못했는데, 아이들을 보내고 혼자 있는 딸과 함께 모처럼 서울 구경도 하고 맥주도 마시며 같이 걷고 이야기하고, 또 한강변에 나가 라면도 먹어보고, 여러 가지 색다른 경험을 했다. 마치 나만 이런 딸이 있어 행복을 맛보는 것 같은 착각에 빠져 들었다.

 며칠 되지 않았지만 혼자 있는 딸과 모처럼 좋은 시간을 보내고 집에 오는 버스를 타고 와서 내리니, 남편이 반가운 표정으로 마중나와 있었다. 집에 와보니 오랜만에 오는 아내를 위해 집안 청소도 말끔히 해 놓았다.

 “여보! 고마워요. 역시 당신 밖에 없어.

 이렇게 부부간에 살뜰하게 챙기고 부모자식 간에 포근한 정을 나누며 사는 것이 행복이 아닐까?

                                                     (2018. 9.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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