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인 장모님을 그리워하며

2018.09.08 09:46

박용덕 조회 수:48

장인 장모님을 그리워하며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금요반 박용덕

 

 

 

 

                                       

  남자는 결혼을 하면 배우자의 부모님을 장인. 장모님이라고 부르게 된다. 서로 다른 두 집안이 혼인으로 가족관계가 형성됨으로써 장인. 장모님이 생긴 것이다. 부모님은 가족관계의 구심점이다. 어떤 이는 Father and Mather I love you. 에서 각 단어 첫머리 글자를 나열하면 Family(가족)란 단어가 된다고 했는데 이 역시 부모님의 사랑이 가족관계를 이루어지게 하는 근본임을 말해준다.

 나의 장인은 한마디로, 무한한 사랑을 베풀어주신 어진 멋쟁이 아버지셨다. 아내 말에 따르면 시집갈 때까지 손톱, 발톱을 다듬어주셨다는 정 많고 자상한 아버지셨다. 그러나 내가 복이 없어서인지 결혼 4년째 되던 1977년 여름에 갑자기 심장마비로 59세의 짧은 생애를 마치셨다. 그러나 나에게 남겨주신 것은 매우 큰 선물로, 살아갈 좌표를 제시하여 주셨다.

 신혼 초 처가 집이 있는 목포에 갔을 때 외식을 하고 들어왔는데 복통이 왔다. 그때 장인께서 이불을 손수 펴고, 누우라고 하시더니 배를 쓸어내리기를 근 한 시간을 하자 복통이 멈추었다. 나는 누워서 눈물을 흘렸다. 감동의 눈물이었다. 나는 자라면서 아버지가 무서웠기에 한 번도 안겨 보지 못했다. 그 순간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이처럼 나도 '권위의 아버지가 아니라 같이 놀아주는 친구 같은 아버지가 되자.'라고 다짐한 것이다.

 그 뒤 첫째 아이가 다섯 살 무렵부터, 막내는 열 살 때까지 주말이면 온 식구가 무작정 교외로 나가 명소, 유적지, 산천 구경도 하고, 비록 준비해간 매운탕을 끓여 먹으면서 낚시도 했다. 성인식은 물론이고 고등학교 3학년 때는 100일주를 같이 먹으며 소주는 소리 없이 낙방하고, 막걸리는 막 떨어지고, 맥주는 맥없이 떨어진다 해서 양쪽으로 다 합격하라고 양주를 가져왔다고 웃기는 등 자상한 아빠가 되려고 노력한 것도 장인의 영향을 받은 까닭이다.

 짧은 4년 동안에 나에게 정을 듬뿍 주신 것은 남 주기 아까운 막내딸을 잘 부탁한다는 뜻도 있으리라 생각도 해 보았다. 결혼한 뒤 신행길에 구례 산동 골짜기에 오셔서 딸을 두고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돌려 떠나시면서 눈물을 흘리시는 것도 잊을 수 없다. 가진 것이 없다던 사위가 결혼 3개월 만에 부산에서 집을 샀다고 할 때 놀라고 기뻐하시던 일이 눈에 선하다. 살아 계셨더라면 기뻐할 일이 많았을 텐데, 마냥 아쉬울 뿐이다. 그러나 무언중에 행동으로 보여주어 나의 인생관을 바로 잡아주고 가정이 화평할 수 있는 길잡이가 되어 주신 장인어른을 나는 존경해 마지않았다.

 

 또 한 분 장모님! 백제 왕인박사 출생지이고 유림세력이 지금까지 활동하고 있는 저라남도 영암군 군서면이 고향이시다. 양반가의 규수로 자랄 때 습관이 되어서인지 말수가 적으시다. 그런데 57세에 남편을 여의고, 30년을 홀로 사시다 돌아가셨다. 나이 들어 보니까 장모님께서 인고의 세월을 보내면서 얼마나 쓸쓸하고 어려웠을까 생각해 보지만 가신 뒤에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장인어른이 돌아가셨을 때 제일 슬퍼하시는 것을 보았다. 입관 예배를 드릴 때였다. 내 가슴이 아릴 정도로 소리 죽여 흐느끼던 모습을 40년이 넘은 지금도 잊지 못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사위가 가장 무서워하는 사람이 장모라 한다지만, 나는 장모님을 가장 좋아했다. 장모님 역시 나를 딸 이상으로 아껴 주셨다. 어쩌다 장모님을 찾아 뵈올 때면 내가 좋아하는 조기매운탕. 갓 담은 김치. 소주 한 병은 틀림없이 상에 올라왔었다. 장모님은 고춧가루를 평생 맛도 못 보시면서 사위 좋아한다고 매운탕을 끓여주시던 분이셨다. 언젠가 아내와 같이 과천 장모님 댁에 갔을 때, '네 차가 하얀 차라서 하얀 차만 보면 우리 딸이 오나 보다!' 하고 창문을 열어 보신다는 말씀이 귀에 쟁쟁하다. 딸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고 창문을 닫을 때의 허탈감, 그리고 얼마나 외롭고 보고 싶었으면 그리 하셨을까? 그러면서도 우리가 힘들까봐 내색 한 번 하신 적이 없다.  

 유교사상에 젖은 종갓집 맏며느리로서, 시부모님 몰래 이불속에 성경과 찬송가를 숨겨놓고 교회를 다니셨다는 그 믿음에 저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또 어느 어머니보다 유별나게 몸소 행동으로 자식 사랑을 보여주신 분이다. 5남매들은 이구동성으로 '성인이 될 때까지 큰소리 한 번 들어본 적이 없었다.'고 한다. 그리고 항상 조그만 상위에 성경과 찬송가를 올려놓고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아파트에서 정장차림으로 성경을 보시던 자세 또한 본받을 점이다.

  87세 되신 그 해에 아프시다고 해서 큰 처남 집으로 아내와 같이 갔었다. 한 나절쯤 지나 집으로 가려고 장모님한테 가겠다고 인사를 드렸더니 “박 서방, 보려는지 모르겠네!” 하시며 눈물을 보이셨다. 그런데 그 말씀을 하신지 3일 뒤에 돌아가셨다. 그럴 줄 알았더라면 하룻밤이라도 더 옆에 있었을 텐데!

 오늘 아내의 생일을 맞으니 장인 장모님 생각이 더 간절하다. 실현성없는 바람이지만 두 분이 뵙고 싶다

 "장인 장모님, 예쁜 딸을 낳아주셔서 감사합니다!"                                      

                                2018. 6. 26(). (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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