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러오는 탁구공

2018.09.14 06:13

황춘택 조회 수: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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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일보 금요수필>

굴러오는 탁구공
황춘택


새알같이 작은 공 하나가 내 앞에 굴러온다. 세 살 어린이가 부모 앞에 굴려 보내는 공처럼 귀엽고 애교스럽다. 얼른 손에 쥐어보면 차가운 듯하지만 금세 체온에 젖어 들어 부드럽다.

탁구장에는 똑딱똑딱 공치는 소리가 창가에 빗방울 소리처럼 들린다. 마치 그들의 놀이터인 양 사람들 앞에서 재주를 부리며 자랑스럽게 구르고 있다. 탁구대에 튀어 오른 공이 탁구채에 맞아 빗살같이 달리고 공중 높이 올라가 떨어질 때는 목표 지점에 이른다. 기묘한 모습에 관중의 박수 소리가 진동한다. 또 공이 네트 위를 징검다리 건너가듯 튕기며 다른 곳으로 떨어질 때는 웃음을 자아내기도 한다. 잘 못 맞은 공이 엉뚱한 곳으로 달아나면 고개를 갸우뚱 한숨을 내쉬게 한다. 작은 탁구공이 무대의 주역으로 드라마를 엮어내고 있다.

탁구는 남녀노소 누구나 힘들이지 않고 자연스럽게 할 수 있어 좋다. 가족과 친구들 모임에 친목으로 할 수 있다. 탁구공이 손에 잡히면 탁구대에 힘차게 보내고 싶은 마음으로 힘이 솟아오른다.

집에서 여유 시간이 있을 때는 가까운 노인복지관 탁구장으로 간다. 실내에 들어서면 오가는 탁구공이 운동하는 사람의 도구로 빛살처럼 날아다닌다. 허탈한 웃음소리가 들리면 실수로 공이 천정으로 튕겨 나가서다. 타자는 그런 실수 없이 잘 치고 싶은 마음으로 쥐어진 탁구공을 마주 보며 소원을 빌어 본다. “탁구공아! 지금 내가 시키는 대로 잘 좀 움직여다오.” 말없이 부탁한다. 탁구공은 그 뜻에 따라준다는 약속을 하고 상대 코트 안으로 힘차게 달려간다. 빗살같이 넘어간 공으로 후련한 마음이다. 순간 넘어갔던 공이 이쪽으로 다시 잽싸게 넘어오니 ‘아니, 이럴 수가!’ 탁구공에 속아준 내가 바보로 여겨진다. 귀엽게만 보이던 공이 사람의 마음을 이렇게 흔들 줄은 몰랐다.

탁구장에서 운동하고 차례를 기다릴 때는 탁구공의 움직임에 시선이 쏠린다. 모든 잡념은 물로 씻은 듯이 없어지고 즐거움만 남는다.

물총새가 냇물 속의 물고기를 순간에 챙겨 먹듯이 탁구채를 잽싸게 휘둘러 상대 코트에 떨어뜨리면 관중은 그 소리에 눈길을 끈다. 그때마다 탁구의 참 맛이 보이고 흥미롭다.

탁구장에서 터지는 웃음은 한 달 동안 웃을 수 있는 양만큼 짧은 시간에 웃어 준다고 할 수 있다. 웃음이 건강에 도움이 된다고 할 때 매일 이렇게 웃음이 있어 얼마나 좋을까! TV를 볼 때나 친구 모임에 특별한 태도나 유머로 웃음을 만들어 주지만 자주 있는 일은 아니다.

지름 40㎜ 무게 2.7g의 작은 공이 관중 앞에서 사람과 사람의 우정을 자아낸다. 그뿐만 아니라 미국과 중국의 국교를 트이게 해 준 것도 탁구공의 외교 덕이었다. 평창올림픽에서 남북 단일팀을 구성해 남북화해의 길을 열어 준 역할도 했다. 작은 것이 큰일을 못 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작은 나사못이 사닥다리를 받쳐주고, 다이너마이트 한 알이 바위산을 부수는 예와 같다. 손에 쥔 핸드폰이 우주 공간에 떠 있는 소리를 끌어 들인다. 작은 것이 작동하여 세상을 변질시킨다는 것을 알게 해준다.

평소 작은 일에 소홀하지 말고 지혜를 쏟아 가치를 추구하며 탁구공처럼 열심히 움직이며 살아야겠다는 교훈을 남겨준다. 탁구공은 나의 친구요 애인 같다. 오래오래 부드럽게 같이 지내고 싶다. 운동경기가 끝나 공을 바구니에 담으려니 그동안 웃음과 즐거움을 안겨준 작은 공의 고마움을 품에 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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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춘택 수필가는 ‘대한문학’으로 등단했다. 대한문학작가회 이사, 행촌수필문학회 부회장을 역임했다. 영호남수필문학협회, 전북문인협회, 전북수필문학회 회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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