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편을 빚으면서

2018.09.25 13:52

신효선 조회 수:4

송편을 빚으면서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수요반

꽃밭정이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신효선

 

 

 

 

  폭염이 기승을 부리던 여름이 물러가고 오곡백과가 풍성한 한가위가 다가오고 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우리는 좋은 날을 두고 이렇게 한가위에 빗대어 말하곤 한다. 추석은 설날과 함께 우리나라 최대의 명절이다. 추석에는 가족이 모여 송편을 빚고 햇과일과 햇곡식으로 음식을 마련하여 조상님께 차례를 모시고 성묘를 한다.

 한가위 놀이로는 강강수월래, 줄다리기, 활쏘기, 소싸움, 씨름 등이 있다. 추석 하면 생각나는 음식은 단연코 송편이다. 요즘은 송편을 떡집에서 사지만, 나는 해마다 추석 때면 송편을 직접 빚었다. 올해도 송편을 빚기로 했다.

  봄에 남편과 시골에 갔을 때 뜯어온 쑥이 냉동고에 한 뭉치 있다, 며칠 전 친정아버지 산소 아래 별장 앞에 모싯잎이 무성하기에 뜯어다 삶았더니 한 뭉치가 되었다. 쑥과 모싯잎을 섞어 송편을 빚으면 맛이 더 있을 것 같아서 그렇게 하기로 했다.

  송편이란 솔잎으로 찐 떡이라는 의미에서 송병松餠이다. 소나무 송, 떡 병 자를 써서 원래 송병松餠이라고 했다. 송편은 재료에 따라 골라 먹는 재미도 쏠쏠하다. 멥쌀가루에 여러 가지 재료를 넣어 모양을 꾸미고 색깔과 맛을 내는 꽃송편도 있고, 반죽에 넣는 재료에 따라 흰 송편, 쑥 송편, 감자 송편, 도토리 송편, 모싯잎 송편, 송기 송편, 호박 송편 등 종류도 많다.

  송편은 전통적인 추석음식인데도 보름달을 닮지 않고 오히려 반달을 닮았다. 맵쌀가루를 반죽해서 안에 소를 넣고 접기 전에는 온달 모양이나 만들어 놓고 보면 반달 모양이다. 추석에 먹는 떡인데도 왜 보름달과 전혀 닮지 않은 모양이고, 이름조차도 달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걸까예전에는 송편이 현대와 달리 계절과 관계없이 잔칫날이면 빚어 먹던 민족의 대표 떡이 아니었나 싶다. 추석 무렵이면 올벼로 송편을 빚은 것으로 짐작된다. 그러다 현대에 들어 다른 명절은 퇴색되고 설날과 추석이 대표 명절이 되면서 송편이 특별히 추석 때 먹는 떡이 된 것 같다.

  맵쌀을 몇 시간 물에 불린 다음 바구니에 건져 쑥과 모싯잎을 가지고 떡방앗간으로 갔다. 방앗간에서 반죽까지도 해 주지만 익반죽을 해야 더 쫀득쫀득하기에 가루로 빻아 집으로 가져왔다. 물을 끓여 남편의 힘을 빌려 한참 동안 반죽을 하니 말랑말랑해졌다. 이때 물을 알맞게 쳐주어 힘이 들더라도 약간 되직하게 하는 것이 포인트다. 반죽을 끝내고 송편 속에 넣을 소는 집에 있는 콩으로 준비했다,

 

  혼자 만들기에는 분량이 너무 많아 남편의 힘을 빌리고 싶어 살짝 오늘의 일과를 물어보았다. 밖에 나갈 일은 없는데 집에서 할 일은 끝이 없단다. 도와달라고 부탁하니 기다렸다는 듯 쾌히 승낙했다. 송편 크기도 들쑥날쑥하고 모양도 예쁘지는 않지만, 우리 가족끼리 먹을 거라 신경 쓸 것도 없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함께 하니 쉽게 만들 수 있어 힘 드는 줄도 몰랐다.

  큰아이를 임신하여 시집에서 처음으로 추석을 맞았을 때였다. 어머니가 그릇에 한 아름 송편 재료를 가져다 놓고 만들라고 하셨다. 친정에서는 식구들이 모여 송편을 만들 때면 빙 둘러앉아 지난 이야기를 하면서 송편을 만들었다. 커다란 가마솥에 시루를 올려놓고 시루떡 하듯 가마솥과 시루 사이에 시룻번을 빙 둘러 붙이고, 산에서 따온 솔잎을 깨끗이 씻어 말려 송편 한 줄, 솔잎 한 줄씩 켜켜이 쌓아 쪄낸 기억이 났다.

  어머니와 둘이서 만드는데 솜씨가 구별되었다. 거기에다 송편을 예쁘게 만들어야 예쁜 딸을 낳는다는데, 왜 내가 만든 송편이 그리도 못난이던지 이제 미운 딸을 낳겠구나 하고 체념했다. 왜냐하면 시댁 동네 어른들이나 친정에 가면 임산부 뒤태가 딸 같다고 했었다. 용케도 아들이어서 미운 딸은 낳지 않았다. 송편을 빚을 때면 오래전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이 떠오른다.

  설날과 추석이면 고향을 찾는 민족의 대이동으로 온 나라가 들썩이고 교통체증으로 고속도로가 몸살을 앓는다. 요즈음엔 대명절에도 해외여행을 떠나거나 식구끼리 시간을 보내는 사람도 늘어나고 있다. 끈끈한 가족애도 예전 같지 않지만, 고향에는 사랑하는 부모와 형제, 보고 싶은 친지들이 있기에 그렇게 힘들어도 즐거운 마음으로 고향을 찾는 게 아니겠는가? 비록 배금주의가 팽배하여 세태가 변해도 추석에 온 가족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송편을 빚는 정겨운 미풍양속이 사라져가는 게 안타깝다.

  남편과 옛이야기도 하며 송편을 빚으니 나 혼자 만들 때보다 훨씬 수월했다. 몇 개를 먼저 쪄서 시식했는데 남편과 함께 만들어서인지 송편이 더 맛있게 느껴졌다. ‘백짓장도 맞들면 낫다.’는 게 실감났다.

 “여보, 당신이 도와주니 너무 좋아요. 다음에도 부탁해요!  

 이제 나이 들어 마음과 힘을 합하고 서로 의지하며 오순도순 정담을 나누며 살아가니 살맛이 난다. 이런 게 진짜 행복이 아닐까?

(2018. 9.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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