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향골 남원을 생각하면

2018.09.26 17:11

김학 조회 수:16

춘향골 남원을 생각하면

김 학



춘향골 남원을 떠난 지 28년이 지났는데 지금도 나는 남원을 생각하면 가슴이 설렌다. 남원과의 인연이 그만큼 깊고 넓기 때문이다. 대학시절 동양사를 가르치셨던 송준호 교수는 남원을 일컬어 살아있는 박물관이라고 하셨던 기억이 새롭다.

나의 외가는 남원시 덕과면 비촌리 사립안이란 마을이다. 내가 해마다 찾아다녔던 외가는 광주이씨(廣州李氏) 집성촌이었다. 남원에서는 알아주는 양반 집안이었다. 큰 외갓집은 솟을대문을 하나 지나면 동헌 같은 사랑채가 나오고, 다시 솟을대문 하나를 더 지나면 안채가 나왔다. 사랑채는 지대가 높아 위엄이 있어 보였고, 안채는 ㄷ자형 한옥이었다. 안채 뒤에는 설날이나 추석 때 온 동네 일가들이 모여 함께 차례를 모시던 사당이 있었다.

나는 6‧25때 외가로 피난을 가서 그 동네의 풍습을 직접 겪어보기도 했었다. 우리 외가는 일제강점기 때 자녀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고 서당을 열어 한문만 가르쳤다. 철저한 유교숭배 집안이었다. 우리 외가 사랑채에 서당이 있었기에 나도 어려서 서당 맛을 볼 수 있었다. 그때 배웠던 게 천자문과 추구였다. 나는 어려서부터 외가에 자주 드나들었기에 남원과는 더 친근감을 갖게 되었다. 그러던 내가 남원에서 직장생활을 하게 될 줄을 어떻게 알았겠는가?

1980년은 격변의 해였다. 보안사령관이던 전두환 소장이 박정희 대통령이 서거하자 뒤를 이어 정권을 잡던 해였다. 언론통폐합으로 신문사는 각 시도에 하나씩만 남겨두고, MBC를 제외한 모든 민영방송은 CBS의 보도기능을 포함하여 KBS에 통합시키는 획기적인 대변혁이 이루어진 해였다. 그 바람에 나는 군산 서해방송 제작부장으로 일하다가 느닷없이 KBS에 흡수되어 남원방송국으로 발령을 받아 남원살이를 시작하게 되었다.

1980년 12월 1일 달랑 가방 하나를 들고 남원에 도착하니 눈까지 많이 내려서 을씨년스럽기 짝이 없었다. 그때부터 10년 동안 남원에서 하숙생활을 하게 되었다. 그때는 KBS 남원방송국이 동충동에 있었는데 사옥은 낡고 누추했었다. 그러다가 향교동에 새 사옥을 신축하여 멋진 방송국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새 사옥으로 이사하고 집기까지 새것으로 바꾸니 모든 사원들이 어깨를 펴고 으쓱거릴 수 있었다.

춘향골 남원을 생각하면 감회가 새롭다.

내가 KBS 남원방송국 방송부장으로 부임해서 추진한 것은 춘향제 3대 행사였다. <전국춘향선발대회>와 <전국명창대회> 그리고 <전국남녀궁도대회>였다. 이 3대 행사는 KBS가 예산과 방송을 지원하게 되면서 조촐한 지역행사가 전국적인 축제로 발전하는 계기가 되었다. 전국춘향선발대회 응모요령이 KBS텔레비전으로 전국에 방송되자 방방곡곡에서 응모자가 몰려들었다. 응모자가 쇄도하자 1차 심사는 사진심사로 할 수 밖에 없었다. 무대심사에 나설 후보자는 30명 정도로 선발했는데 막상 무대심사를 해보니 사진심사의 문제점이 나타났다. 대도시 유명사진관에서 찍은 사진과 중소도시 사진관에서 찍은 사진은 차이가 나타났던 것이다. <전국춘향선발대회>를 녹화하여 전국에 방송하자 시청자의 관심이 높아졌다. 이 대회에서 선발된 수상자들은 KBS드라마국에서 카메라 테스트를 거쳐 탤런트로 특채함으로써 <전국춘향선발대회>에 대한 전국적인 관심을 높일 수 있었다. 이름을 크게 날리고 있는 춘향 출신 탤런트들은 박지영, 윤손하, 오정해 등 여러 명이 있다.

명창대회는 대상 수상자에게는 대통령상이 주어져 명창의 반열에 오를 수 있어서 국악인들에게는 선망의 무대였다. 궁도대회 역시 전국 궁도인들의 주목을 받는 행사였다. 이 세 가지 행사를 KBS가 챙기게 되자 4월 초파일 무렵에 개최하던 춘향제는 전국적인 축제로 발돋움하여 남원은 관광객들로 활기를 띄게 되었다.

KBS 남원방송국에 근무할 때는 열정적으로 아이디어를 짜내 방송을 하고 행사를 열었다. 방송과 문학을 접목시키는데도 힘썼다. 1984년부터는 해마다 봄이면 <KBS 신춘문학의 밤>을 마련했다. 내가 역점을 두었던 이 <KBS 신춘문학의 밤>에는 석정문학회, 청록두시동인회, 표현문학회, 대표에세이문학회 등전북과 서울의 문학동인들을 초청하기도 했었다.

1부는 유명한 시와 수필동인들을 초청하여 <시와 수필낭송>을 선보이고, 2부는 유명 문인을 초청하여 <문학강연>을 들으며, 3부는 <문인과 독자와의 대화> 시간을 마련하여 시민들의 문학에 대한 관심을 높일 수 있었다. 또 그 사이사이에 남원시립국악원생들이 찬조 출연하여 가야금병창 ‧ 판소리 ‧ 무용을 곁들이니 한결 무드가 살아났다. 문학과 국악의 접목이 이루어진 셈이다. 시인과 수필가들이 자기 작품을 낭독할 때는 미리 나누어준 앤솔로지 책장을 넘기는 소리만 들릴 뿐 분위기가 자못 진지했었다.

그밖에도 청소년들의 시와 수필을 투고 받아 방송함으로써 청소년들에게 작품발표의 기회를 제공하고 문학의 꿈을 키울 수 있도록 하고자 매일밤 9시 대에 <오작교의 밤>이란 문학 프로그램을 편성했는데, 이 프로그램은 전문 DJ 오경희가 생방송으로 진행하여 인기를 끌었다.

또 어린이 대상 프로그램과 행사도 마련했었다. 미래의 꿈나무인 어린이들을 위하여 <어린이 편지쓰기대회>, <어린이 동요부르기대회>, <어린이 저축왕 선발대회>, <어린이 독서경진대회> 등을 마련하여 어린이들의 방송 참여를 유도하기도 했었다.

비록 KBS 남원방송국이 라디오방송만 하는 곳이었지만 남원시민을 위해 스포츠 행사도 추진했었다. 춘향골 남원은 전국적으로도 손꼽히는 자전거도시였다. 그리하여 자전거를 탄 남녀시민들이 남원중앙국민학교에서 출발하여 육모정에서 골인하는 <통일기원 시민자전거바로타기대회>도 마련했었다. 또 남원은 비슷한 규모의 다른 도시에 비해 직장이 많은 도시였다. 그래서 직장끼리 친목을 도모하고자 해마다 <직장친선탁구대회>를 열기도 했었다.

10월 25일은 KBS 남원방송국 개국 기념일이다. 이때가 되면 개국기념행사를 마련하는 게 하나의 관례였다. 그래서 개국기념행사로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한동일 초청연주회>, <연극배우 추송웅 모노드라마 공연>, <서울시립국악관현악단 초청연주회>, <KBS가곡의 밤> 등 해마다 다채로운 행사를 마련하여 남원시민의 사랑을 받기도 했었다.

춘향골 남원을 생각하면 내가 10년 동안 근무했던 KBS 남원방송국이 떠오르고, 그 시절의 갖가지 추억들이 되살아난다. 유서 깊은 그 남원방송국이 KBS 한국방송공사의 구조조정에 따라 문을 닫게 된 것은 안타깝고도 섭섭한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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