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밤 아기의 울음소리

2018.10.04 18:10

김혜숙 조회 수:43

금요일밤 아기의 울음소리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수요반 김혜숙

 

 

 

                           

 오늘도 두 살배기 작은 손자는 자다 깨어 서럽게 운다.

 “함마, 어디 갔지? 함마, 어디 갔지?

어깨까지 들썩이는 아이를 안고

 “함마는 집에 갔지. 오늘은 엄마하고 자야지.

한참을 달랜 뒤에야 슬며시 잠이 든다. 잠결에 옆을 더듬다가 익숙한 이모님이 아닌 엄마를 오히려 낯설게 여기는 일이 금요일 밤마다 반복된다.

 

 퇴근 시간이 늦은 편인 딸을 대신해 첫째는 내가 돌봐줬고, 둘째는 입주도우미의 손을 빌려 키우고 있다. 1년여를 보살펴주신 분이 사정상 그만둔 뒤 새로 오신 분은 낯설어하는 아이를 익숙한 솜씨로 어르고 달래는 비결이 남달랐다. 입주 첫날 내가 쌀을 옮겨 담다 바닥에 흘렸는데, 아이가 쌀로 장난을 치면서 좋아했다. 내 입에선 “안돼!” 하는 말이 먼저 나왔는데 그 이모님은 같이 앉아서 놀아주었다. 한참을 깔깔거리며 재미있게 놀고 난 아이는 금방 이모님께 안겼다. 호기심 반 우려 반으로 지켜보던 우리는 ‘아, 참 현명한 분이구나.’하면서, 육아의 전문가다운 이모님에게 믿음이 갔다. 따뜻한 보살핌에 마음을 연 아이는 첫날부터 이모님과 같이 자기 시작했다.

 

 눈높이를 아이의 시선에 맞추고, 같이 재미있게 놀아주는 이모님과 아이는 한층 더 가까워졌다. 그러던 어느 날, 건강하던 아이가 갑자기 숨소리가 거칠어지면서 힘들어했다. 낮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었으나, 이모님은 별일 없었다니 갑갑했다. 목감기인가 하고 소아과에 가려다 잘 아는 의사에게 문의하니, 빨리 큰 병원으로 가야한다며 세브란스 병원 호흡기내과로 연락해놓겠다고 했다.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가 다들 소스라치게 놀라 서둘러 병원으로 갔다. 입원한 뒤, X-레이를 찍은 결과 땅콩 한 알이 기도를 거쳐 오른쪽 기관지 아래까지 내려가 걸려 있었다. 어린 것을 전신마취하고 내시경으로 꺼내야 하는데, 여의치 않으면 가슴을 열어야 한다니 기가 막혔다.  그 때서야 이모님은 땅콩을 먹으면서 장난을 치다가 캑캑거린 적이 있다고 했다. 왜 그 얘길 이제야 하는지 믿었던 신뢰감이 싹 가시면서 화가 났다.

 

 좌불안석으로 밤을 새운 다음 날, 낮 12시에 시술을 한다고 아침부터 금식을 시켰으나 오후 늦도록 수술실에서는 연락이 없었다. 설 연휴 전날이라서 각과마다 수술실 사용이 밀려 있으니 조금만 더 기다려보자는 얘기만 들을 뿐 속수무책이었다. 아이는 숨도 제대로 못 쉬면서 지쳐 눈도 뜨지 못할 지경이던 저녁 8시에 수술실에 들어가게 되었다. 수술실 밖에서 기다리는 온 식구의 마음은 타들어갔다. 두 손을 모으고 간절하게 기도하면서도 수술실 안에서 아이의 울음소리가 나는지에 귀는 크게 열려 있었다. 울음소리가 나면 내시경 시술이 잘 된 거라는 의사의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20여 분 뒤에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리고 흉부외과 의사가 비닐 속에 담긴 땅콩을 가져와 보여줬다. 14개월 아이의 작은 기도를 통해 폐에 가까운 기관지에서 내시경 시술로 땅콩 알을 집어낸 그 여의사가 천사처럼 보였다.

 “감사 합니다. 감사 합니다.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하고 모두 기쁨의 눈물을 흘릴 때서야, 한쪽에서 같이 애태우며 기도하던 이모님이 눈에 들어왔다. 밤늦도록 집으로 가지도 못하고 긴장했던 모습이 역력했다. 많이 미안했다.

 

  딸은 이모님이 바로 땅콩얘기를 안 해줘서 일이 커진 거라며 많이 화가 나 있었다. 새 도우미를 구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되었다, 다음 날  이모님과 둘만의 시간을 갖고 많은 얘기를 나눈 딸은 그 분의 순수함에 다시 마음의 문을 열었다. 10여 개월을  같이 해 온 지금은 가족의 일원으로 생각하며 모두들 편하게 지내고 있다. 지금 돌이켜 보면 그 때의 시련이 우리를 더욱 가깝게 엮어준 것 같기도 하다.

 

 사람의 여러 인연 중에도 아이를 돌봐주는 사람과의 인연은 가장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은 관계인 것 같다. 소중한 내 아이에게 사랑을 주는 사람이야말로 어떤 표현으로도 모자랄 정도로 고마운 분이니까. 하물며 작은 손자가 밤이면 엄마보다 더 같이하고픈 이모님이니 건강이 허락하는 날까지 함께 할 수 있기를 항상 기도드린다.

 

                         (2018. 10.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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