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원의 코스모스길

2018.10.19 06:01

한성덕 조회 수:10

평원의 코스모스길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수요반 한성덕

 

 

 

 

  “코스모스 한들한들 피어 있는 길, 향기로운 가을 길을 걸어갑니다. 기다리는 마음 같이 초조하여라, 단풍 같은 마음으로 노래합니다. 길어진 한숨이 이슬에 맺혀서 찬바람 미워서 꽃 속에 숨었네. 코스모스 한들한들 피어있는 길 향기로운 가을 길을 걸어갑니다.

 

  ‘길어진 한숨이’라는 데서부터 끝 소절까지는 반복해서 한 번 더 불러야 한다. 음악의 부호로 말하자면 도돌이표가 붙은 곳인데, 가을의 여인처럼 느껴지는 김상희 씨의 노래 ‘코스모스 피어 있는 길’이다.

  예명으로 널리 알려진 탓인지, 본명 ‘최순강’은 왠지 촌스러워 보이고, ‘김상희’는 몹시 세련돼 보인다. 고려대학교 법대 출신으로, 1943년생인 그도 이제 75세가 되었다. ‘법학도와 가수’라는 이미지가 썩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그래도 ‘코스모스’에 대한 가사와 그의 노래하는 모습은 너무 자연스럽고 우아해 보인다. 그것 때문에 좋았던 걸까, 아니면 노래를 잘 불러서 좋아진 걸까 알쏭달쏭하지만, 코스모스를 몽땅 꺾어서 한 아름 듬뿍 안겨주고 싶은 내 마음의 가수다.

  김상희 씨의 노래 ‘코스모스’는 중학교에 입학하던 1967년 탄생했다. 뜸들일 새도 없이 꽃을 활짝 피웠던 인기 만점의 노래였다. 내가 유행가를 부르는 날이면 부모님의 불호령으로 집안이 들썩거렸다. 그러나 노래를 사랑하고, 부르는 것을 좋아하던 나로서는 입이 근질근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몰래몰래 흥얼거리던 노래가 이제는 계절을 일러주는 가을의 여인처럼 느껴진다. 때때로 그런 추억들이 그리움으로 몰고 간다. 내가 알고 있는 대중가요는 열손가락 안에 있다. 그 중에서도 ‘코스모스 피어 있는 길’은 으뜸으로 꼽힌다. 현재는 오랫동안 부르지 않은 탓에 가사를 버벅거리지만, 코스모스 노래는 역시 가을의 문턱에서 손짓하는 여인이다. 나뭇잎이 노란 살결을 드러내면 코스모스가 그리워지는데, 뒤숭숭한 마음을 달래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올해의 가을은 유난히 거칠 게 찾아왔다. 가을 태풍이 스쳐간 잔재려니 싶다. 그래도 코스모스 길로 들어서고 싶었다. 언제든지 친구들과 함께 다니기를 좋아하지만 아내와 함께 시간을 갖기로 했다. 전라북도에 여러 축제들이 있으나 무주의 ‘반딧불축제’와 김제의 ‘지평선 축제’ 그리고 익산의 ‘천만송이 국화 축제’를 3대축제라고 할 만큼 인기가 높다. 우리 고장의 자랑거리요, 그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는 축제들이다.

  최근 몇 년 동안은 지평선 축제를 전후해서 김제 들녘으로 나들이를 떠나곤 했다. 광활한 대지가 한 눈에 차오르는 김제평야, 시원하게 펼쳐지는 지평선 너머의 그리운 꿈, 노란 물감이 일렁이듯 하는 황금의 벼이삭들, 끝도 없이 사방팔방으로 쭉쭉 뻗어난 도로, 그 주변을 수놓은 형형색색의 흐드러진 코스모스가 풍만한 곳이 김제평야다.

 

  김제평야를 바라보는데, 어째서 정치꾼(얄궂은 정치인)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떠오를까? ‘평화’나 ‘평온’ 또는 ‘화평’이 무엇인지 모를 리 있을까마는, 저 평원을 이리저리 돌아보기 전에는 논의 자체를 삼가라고 말이다. 좀 더 적극성을 띄자면 ‘그런 말은 아예 입 밖에 내놓지도 말라’고 하고 싶다. 너무 지나치고 건방져 보이는가? 자연의 섭리와 인간의 솜씨로 엮어낸 조화, 그 속에서 모두를 아우르는 힘, 곡식들이 영글어가는 사각사각 소리, 모든 것이 한데 어우러져 평온하게 보이는 김제평야말로 평화의 산실이었다. 들녘의 평화스러움이, 온 누리의 화평한 모습으로 다가왔다. 김제들판에서 코스모스를 보고 느낀 바 있어 하는 소리다. 드넓은 대지의 김제평야를 가까운 곳에서 마음껏 볼 수 있다는 게 큰 축복이다.

  김제평야의 긴긴 코스모스 길을 자동차로 서서히 달렸다. 코스모스가 하늘거리고 너풀너풀 춤을 추며 미소로 반겼다. 내 마음을 알아주는 듯해서 더없이 기뻤다. 어느 지역 어떤 곳에서 이런 연출이 가능할까? 군더더기나 잔소리가 필요 없는 길에서 우리 둘만의 평화로운 나들이를 즐겼다. 내 마음을 사로잡은 김제의 큰 뜰이, 모든 사람들에게도 크나큰 뜰로 작용하기를 기도하며 달린 김제평원의 코스모스 길이었다.

                                                        (2018. 10.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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