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시성 싸움

2018.10.24 06:03

한성덕 조회 수:10

안시성 싸움

-영화, ‘안시성’ 사람들과, 성주 양만춘의 리더십-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수요반 한성덕  

 

 

 

 

  광주에서 목회를 하는 친구가 있다. 바람을 쐬고 싶을 땐 종종 전화를 한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무척 반기는 절친한 사이다. 지난 928일은 금요일이었다. 그날도 텅 빈 가슴이 일렁이고 있었다. 광주 친구에게 전화를 했더니 ‘극장에 가려는 걸 어떻게 알았냐?’고 너스레를 떨며 어지간히도 기뻐했다. 우리 역시 영화를 좋아하는 터여서 신나게 극장엘 갔다.

  추석을 맞아 인기리에 개봉한 영화 ‘안시성’을 감상하자고 했다. 시작부터 화면에서 요동치는 말발굽소리가 압도권이었다. 20만 대군을 거느린 당나라 태종 이세민의 군대였다. 고구려를 정복하려는 엄청난 위세와 야욕이 철철 넘쳤다. 그런 모습을 대하는 것만으로도 기가 꺾이는 장면이었다. 그 화력 앞에 고구려의 여러 성들은 힘없이 무너졌다. 이제 평양성만 넘으면 고구려는 함몰된다. 평양성 길목에는 자그마한 ‘안시성’이 버티고 있었다.

  내 나라를 치러오는 적군들에게 순순히 길을 내줄 자가 있겠는가? 문제는 안시성의 군대였다. 5,000여 명에 불과한 그들이 20만 대군과 싸운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일이었다. 성경에 등장하는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었다. 그런데도 성주 양만춘을 비롯해서 그를 따르는 부하들과 안시성 사람들은 목숨을 걸고 결전을 준비했다. 양만춘은 왕을 죽이고 권력을 찬탈한 연개소문에게 굴복하지 않았다. 연개소문에게 저항한 탓으로 역도가 되어 고구려군대의 지원을 받지 못하는 딱한 처지였다. ‘엎친데 덮친다.’고, 연개소문은 ‘사물’이라는 첩자에게 양만춘을 암살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그런 상황을 간파한 양만춘은 되레 첩자를 온유와 따뜻함으로 대한다. 한 발 더 나아가 자신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대장의 기를 들게 한다. 만나기만하면 티격태격 싸우는 병사들을 달래야 하는 괴로움도 있었다. 안팎의 이런저런 어려움 속에서 양만춘은 병사들에게 호소한다.

  “우리가 하나로 뭉치면 못할 일이 없다. 함께 뭉쳐서 싸우면 반드시 이긴다. 사실 나도 두렵다. 그러나 나는 물러서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안시성 사람들의 삶을 지키기 위해서 싸우자.

  ‘사물’의 본래 사명은 양만춘 암살이었다. 실제로 몇 번을 시도했으나 실패로 끝났다. 결국 양만춘의 너그러움과 진솔함에 감동된 ‘사물’은 그의 진정한 심복이 된다. 그리고 극한 위기에서 양만춘을 구해낸다. 안시성 군사들도 성주 양만춘의 진솔함에 감동한다. 그 진솔함은 부하들의 성주에 대한 신뢰와, 마을사람들의 사랑으로 번지면서 똘똘 뭉치는 원동력이 된다. 병사들과 함께 안시성 주민들도 목숨을 내 놓을만한 가치가 있음을 깨닫기에 이른다.

 

  영화는 클라이막스에 접어들었다. 당나라 이세민은 안시성 사람들을 몰살시키려고 토산을 쌓았다. 주민들은 땅굴을 파고 들어가 토성을 무너뜨린다. 한 사람도 살아나오지 못했다. 성주는 마을 사람들의 희생에 따른 극한 슬픔과 고마움이 엉키면서, 적군에 대한 격분을 참다못해 격전지로 뛰어든다. 그토록 거만하고 당당하던 이세민도 양만춘의 신궁(神弓)을 맞고 눈을 잃는다. 결국 당나라 군대는 피눈물을 흘리며 퇴각한다. 그 뒤로는 두 번 다시 얼씬거리지 않았다.

  이 영화에서 느낀 점 둘 중 하나는, 작은 사랑이 곧 큰 사랑이라는 점이었다. 역사적으로 안시성이 어딘지 조차 잘 모른다. 당나라의 유일한 패전이기 때문에 중국역사에서 안시성의 전투를 송두리째 지워버렸다고 한다. 작은 성 하나를 넘지 못했으니 그럴 만도 하다. 주민들의 마을 사랑이 곧 나라사랑이요, 작은 고을의 지킴이들이 나라를 구한 영웅이었다.

  또 하나는, 싸움의 승자는 강한 자나 큰 자가 아니란 점이다. 양만춘의 온유와 따뜻함을 언급하지 않았던가? 첩자 사물이나, 용맹한 장수들이나, 생각이 다른 마을 사람들을 얻게 된 것은, 힘의 논리가 아니라 겸손에서 오는 따뜻한 마음이었다. 어찌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하겠는가? 양만춘의 무예가 제아무리 출중해도 강성이나 독불장군 식의 리더십이라면 발붙일 곳이 없었을 것이다.  

  영화에서 가슴이 뭉클뭉클했던 장면은 ‘어쩔 수 없는 희생’을 보는 순간들이었다. 희생은 강요나 요구로 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양만춘과 함께한 부하들과 ‘안시성 사람들’ 은 죽음을 두려워하거나 물러서지 않았다. 이런 자발적인 희생이야말로 시대적인 표상이 아니겠는가?

                                                               (2018. 10.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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