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담과 진담 사이

2018.10.31 05:58

한성덕 조회 수:5

 농담과 진담 사이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수요반 한성덕

 

 

 

 

  가까운 벗들이 많다. 그 중에서도 각별한 사이는 내 고향너머에 살았던 무주 친구다. 목회의 동역자여서 더 살갑다. 박사학위를 취득하더니, ‘국제신학대학원 대학교’에서 두 과목의 ‘사회복지학’ 교수가 되었다.

  2007년 시골교회에서 전주시내 교회로 옮겼다. 부임한지 얼마 되지 않아 바빴다. 나와 친구사이는 동향이면서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을 졸업한 동창이요, 목회자다. 그 친구는 졸업(1985)하자마자 교회를 개척했다. 한 교회에서 30년 이상을 목회하고 있으니 기성교회의 생리를 알 턱이 없다.

  그 때문에 기성교회 사정은 아랑곳하지 않고, ‘사회복지사’와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취득하라고 야단이었다. 초기여서 학력도, 경력도, 나이도, 어떤 제한이나 제약도 없다고 했다. 한두 번도 아니고 끊임없이 요청하며 다그쳤다. 앞으로 가장 인기 있는 직종은 노인에 관한 것이라며, 두세 개의 자격증을 따 놓으라고 다그쳤다. 적극적으로 표현하자면 절대적 강요였다.

 목회자의 정년은 70세다. 은퇴하면 뭘 하라고 저토록 자격증 타령인가? 막무가내로 ‘자격증’의 우월성을 강조했다. 제아무리 백세시대를 외쳐도 현실은 현실이다. 현장에서 감각이 뒤처지는 노인을 누가 채용하겠는가? 강요(?)를 견뎌내지 못하고 공부를 한 것은 ‘자격증’보다 ‘친구’의 정 때문이었다.

  10(2008) 8월이었다. 무더위 속에서 아내와 함께 ‘요양보호사’ 1급 자격증을 취득했다. 자격증에는 ‘노인복지법 제392, 2항 제3항에 따른 요양보호사 자격이 있다’고 명시되었다. 졸업장이나 학위증이 아닌 자격증을 받는 감정이 참 묘하게 느껴졌다.

  공부는 나름대로 할 만큼 했다. 이제 더 이상의 학습은 싫었다. 하고 싶지 않은 ‘공부’여서 이런저런 핑계로 멀찍이 밀어냈다. 그마저도 결국은 뿌리치지 못하고, 2년 과정의 학습으로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그리고 10년이 흘렀으나 두 개의 자격증은 쓸모가 없었다. ‘장롱 속 자격증’이라며 천덕꾸러기 취급을 했다. 아니, 잊고 살았다는 표현이 옳다. 그처럼 사장되었던 자격증이 기지개를 폈다. ‘십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말이 나한테도 해당되리라고 상상이나 했던가?

  금년 1, 무주친구가 논산에서 ‘뉴 양촌수양관 요양원’을 인수해 원장이 되었다. 7월 중순이었다. ‘우리 부부를 요양보호사로 만들었으면 써먹어야지, 언제 쓰려고 억지(?) 요양보호사를 만든 거냐?’고 문자를 보냈다. 솔직히 농담반 진담반이 아닌, 진담 10%에 농담 90%였다. 친구도 내 마음을 알았던지 ‘맘을 비워야 하는 일이라 몹시 힘들다’며 탐탁지 않게 여겼다. 만약, 근무하게 되면 대소변을 받아야하는 역겨움이 따르는데, 할 수 있을까를 몹시 걱정한 친구였다.

 

  그냥 ‘해 본 소리’니까 신경 쓰지 말라고 했다. 모든 것을 ‘없었던 일’로 하자며 마무리를 잘 지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농담’이었다는 말의 잔재가 찝찝하게 남았다. 붕어찜을 먹다가 잔가시에 걸린 느낌이었다. 전화하는 중 마음을 주고받는 사이에 개운함이 온몸으로 내려앉았다. ‘농담이라도 함부로 하지 말라’는 교훈이 강하게 와 닿았다.  

  이게 웬일인가? 10%진담이 90%의 농담을 뒤집고 말았다. 요양원에서 근무하던 부부가 7월 말로 그만 둔다는 게 아닌가? 내 농담을 진담으로 들은 듯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는 속담이 실감났다. 친구 원장은, 도무지 사람을 구할 수 없으니 우리가 와야 한다고 했다. 정말로 사람을 구하지 못한 건지, 아니면 90%의 농담을 100% 진담으로 알아들은 건지 아리송하다.

  아내와 함께 ‘농담’이었다고, 다 ‘끝난 일’이라고, ‘신경’쓸 일 아니라며 극구 거절했지만 소용없었다. 친구는 ‘절대로 와야 한다.’며 여지를 두지 않았다. 한 달만이라도 도와달라는 간청엔 꼼짝 할 수가 없었다. 결국은 우정을 앞세워 8월부터 요양원 근무에 들어갔다. 아내는 한 달로 정리하고 나는 계속 다닌다. 요양원의 일이 힘들거나 바쁜 것은 아니다. 단지, 대소변이나 양치질로 인한 역겨움과, 급한 일이 터질까봐 긴장하고 신경이 쓰일 뿐이다.

  시작할 때부터 아무리 힘들어도 3개월은 버텨야한다고 생각했다. 그 착한(?) 마음이 친구사이를 일감으로 더 얽어맸다. 농담과 진담사이에서 빚어진 결과였다. 농담이 진담될 수 있다는 진리가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2018. 10.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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