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 정도 1000년을 맞으며

2018.10.31 10:30

김학 조회 수:60

전라도 정도 1000년을 맞으며

김 학

무술년 올해는 전라도가 개도(開道)한 지 1000년이 되는 해다. 2018년은 ‘전라도’라는 이름의 행정구역이 생긴지 1000년이 되었다는 이야기다.

고려 현종이 왕위에 오른 1010년, 거란이 개경을 침범하자 난을 피해 남쪽으로 내려온 현종은 이듬해 정월 10여 일 동안 나주에서 머문 적이 있었다. 그 뒤 중앙집권화 기틀을 다진 현종은 1018년 대대적으로 지방제도를 개편하면서 전주 일원의 강남도와 나주 일원의 해양도를 합치고, 전주와 나주라는 지명의 첫 글자를 따서 ‘전라도’라 했다. 어언 1000년 전의 일이다.

2018년 10월 18일, 전라도 수부(首府)였던 전주의 전라감영 터에 마련된 특설무대에서는 전라도 정도 1000년을 기리는 기념식이 열렸다. 이 행사에 참석한 광주광역시와 전라북도, 전라남도 등 3개 시도의 시장과 도지사들은 이 자리에서 전라도의 역사적 정체성과 풍요로웠던 문화를 보존하고 계승해서 새로운 천년을 열어가는 동력을 삼기로 다짐했다.

‘천년의 자긍심, 새로운 천년을 향한 웅비’를 주제로 한 기념식에서 송하진 전라북도지사와 이용섭 광주시장 그리고 김영록 전라남도지사 등은 전라도 천년의 의미와 앞으로 다가올 새 천년에 대한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송하진 지사는 기념사에서 “전라도는 의병활동, 동학농민혁명, 5.18광주민주화운동, 등 나라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결연히 일어나 백성과 나라를 지켰고, 새로운 시대정신을 이끌었다면서 천년의 자긍심으로 자주적이고 당당한 역사의 흐름을 이어가고자 했던 전라도의 역사와 문화를 재조명하고,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천년의 역사를 시작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이영섭 광주시장은 “지난 천년 동안 전라도는 역사 ‧ 행정 ‧ 문화 ‧ 교통 등 모든 분야에서 우리나라의 중심지였다. 천년 후 후손들에게 오늘이 자랑스럽고 빛나는 역사가 될 수 있도록 3개 시 ‧ 도가 손을 맞잡고 풍요로운 번영의 시대를 열어가자.”고 말했다.

또 김영록 전남지사는 “호남은 행정구역상 3개의 시 ‧ 도로 나눠졌지만 역사 ‧ 문화 ‧ 지리적으로 한 뿌리이고, 경제적으로도 공동운명체이니 전라도 개도 천년인 올해를 ‘호남, 새로운 도약’의 원년으로 삼아, 화합과 상생발전의 기틀을 착실히 다져나가겠다.”고 밝혔다.

기념사가 끝난 뒤 3개 시 ‧ 도지사와 내빈들은 다가올 새천년에 대한 희망의 메시지를 적은 쪽지를 타임캡슐에 넣어 봉인했으며, 이어서 새천년의 문을 여는 두드림 퍼포먼스가 진행되었다.

이날 봉인한 타임캡슐을 천년 뒤 뜯어본 우리 후손들은 어떤 표정을 지을까? 우리의 후손들이 천년 뒤에도 이곳 전라도에서 행복하게 잘 살게 될까?

1000년! 참으로 긴 세월이다. 나는 지금 이 순간 왜 전라도에서 태어나 이 전라도에서 살고 있을까를 생각해 보곤 한다. 전라도에서 태어난 것은 어쩔 수 없는 운명이라 하더라도, 사는 곳은 그 동안 옮길 수도 있었으니 말이다.

1968년 6월 말 제대를 하고 서울시청 공무원시험에 합격하여 마포구 공덕동사무소로 발령을 받았다. 그때 동직원이 되었더라면 나는 서울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부임하지 않았다. 그 뒤 전주해성고등학교 선생이 되었고, 반년 만에 군산서해방송 PD가 되었다. 그러나 운명은 나를 그대로 놓아두지 않았다. 1980년 신군부는 권력을 장악한 뒤 언론통폐합을 단행했다. 신문사는 각 시도별로 하나씩만 남겨두었고, 방송은 MBC를 그대로 두고 모든 민영방송은 KBS에 통합시켜버렸다. 또 CBS는 보도기능을 빼앗아 KBS에 흡수시켜버렸다. 그 바람에 서해방송 제작부장으로 일하던 나도 KBS사원이 되어 남원, 군산, 전주를 돌아다니다가 전주에서 정년퇴직을 하다 보니 전라도를 떠날 수 없었다. 이것이야말로 나의 운명이 아닐 수 없다. 나는 전주에서 살지만 큰아들과 고명딸은 서울에 살고, 작은아들은 미국에 산다.

나는 전라도에 살며 전라도를 지키고 있지만 우리 아이들은 직장 때문에 이미 전라도를 떠난 지 오래다. 전북의 인구가 자꾸 줄어든다는 보도가 나올 때마다 마음이 무겁다.

전라도 정도 1000년을 맞은 3개 시 ‧ 도는 앞으로 천년을 내다보며 야심찬 계획을 펼치고 있다. 탐라도를 포함한 전라도를 다스리던 전라감영이 있던 전주는 옛날 전라북도 도청자리에 63억 원을 들여 전라감영 복원공사를 진행하고 있고, 또 새천년공원도 조성하리라 한다. 그것이 마무리되면 전주에는 새로운 볼거리가 탄생될 것이다.

전라남도 나주에서는 천년정원을 조성하고, 나주목관아(羅州牧官衙)와 나주읍성을 복원할 계획이며, 또 광주에는 천년의 빛 미디어 창의 파크를 조성할 계획이라고 한다.

농경시대 전라도는 평야지대로서 풍요의 땅이었다. 농산물의 주산지였을 뿐 아니라 인구도 많은 지역이었다. 그러기에 이순신 장군은 약무호남시무국가(若無湖南是無國家)라도 읊었던 것이다. 호남의 젊은이들이 군복을 입고 나라를 지켰고, 호남에서 생산된 쌀이 군량미로 쓰였을 테니 마땅히 그런 말을 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게 아닌가?

그러던 전라도가 산업화와 더불어 위축되기 시작했다. 전라도의 본업인 농업이 위축되고 경상도의 공업이 활성화되면서 풍요의 땅 전라도는 농업이란 울타리를 뛰어넘지 못해 가난한 고장으로 바뀌게 되었다. 전라도의 젊은이들은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대도시로 떠났으니 전라도의 인구는 자꾸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돌이켜 보면 전라도에는 빼앗아 갈 것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일제강점기 때 일본은 전라도의 쌀을 빼앗아 가기에 바빴다. 쌀을 일본으로 실어가려고 군산항을 키웠고 금만평야의 쌀을 군산까지 운반하려고 도로를 뚫고 포장하기도 했었다. 풍요의 땅인 전라도는 빼앗길 것이 많은 곡창지대였기에 비극을 불러왔는지도 모른다. 또 2022년까지 ‘전라도 천년사’를 편찬할 예정이라고 한다. 전라도 천년의 역사를 어떻게 진솔하게 기술할지 자못 기대가 된다.

전라도 정도 천년의 역사는 이미 지나가 버렸다. 가버린 과거 천년을 거울삼아 다가올 새천년을 착실히 준비하여 전라도의 영광을 되찾았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2018. 10.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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