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을 기다리는 경비원 P씨

2018.11.02 16:30

홍성조 조회 수:53

새벽을 기다리는 경비원 P

                                         신아문예대학 목요야간반 홍성조

 

 

 

 

 눈을 떠보니 새벽 4시다. 어김없이 찾아오는 눈꺼풀의 열림이 시작된다. 나이가 들다보니 새벽잠이 줄어들었다잠이 안 올 때는 책을 보라고 했던가? 어젯밤에 읽었던 책을 펼쳤다. 한 페이지를 읽다가 싫증이 나 거실로 나왔다. 자동적으로 TV 리모콘에 손이 갔다. 요즈음 텔레비전은 24시간 방송을 하니 참 좋다.“걸어서 세계 속으로”란 프로그램을 제일 좋아한다. 내가 직접 가보지 않았던 이색지대를 소개하니 관심이 많고, 얻은 지식도 많다. 요즈음엔 세계 방방곡곡으로 가서 직접 소개한 것을 보니, 영상매체들은 시청률 잡기에 사활을 거는 것 같다.

 

 나는 새벽을 좋아한다. 새벽에 불을 켜면 치열한 경쟁 속에서 오늘도 내가 제일 먼저 일어났다는 쾌감을 맛보기도 한다. 새벽녘은 어둠이 가장 짙다고 한다. 오늘 해야 할 일들을 카렌다를 보고 정리한다. 밖에 나가 운동도 하고 싶지만, 웬지 나가기가 걱정스럽다. 좀 춥기도 하고 어둡기도 하여 그만두고, 거실에 있는 실내용 자전거를 타는 것으로 운동을 대신했다. 밖은 아직 어둠이 거치지 않았다. 새벽에 출근하는 승용차의 불빛만이 간혹 어둠을 헤쳐 달려가고 있다. 이때쯤이면 손전등 불빛이 위 아래로 길게 비추면서 경비원 P씨가 순찰하는 시간이다.

 

 나는 경비원 P씨를 알고 지낸 지 1년이 넘었다, 1년마다 순환 근무제로 하여 매년 다른 동으로 이동하기 일쑤인데, 지난 1월에 우리 동으로 왔다. 오늘도 P씨는 파수꾼이 새벽을 기다리는 심정일 것이다. 어서 끝내고 집에 가서 잠을 푹 자고 싶을 것이다. 한 평 남짓 되는 경비원실에서 밤에는 잠을 자지 못한다. 꼬박 지새워야 한다. 만약에 자다가 입주민에게 들키는 날이면 바로 징계를 받는다. 올 여름처럼 폭염 속에서도 덜컹거리는 선풍기와 부채로 더위를 이기는 모습을 나는 종종 보았다. 입주민들이 경비실에 에어콘설치를 못 하게 한다. 전기세를 입주민이 부담하기 때문이다.

 

 요즈음 P씨는 바쁘다. 21조로 근무하기에 한 달에 보름동안은 24시간 근무를 해야 한다. 당번 날이면 뜬눈으로 지샌 눈을 비비며 우선 낙엽부터 쓸어야 한다. 출근길에 아파트 앞 주차장이 깨끗해야  입주민들의 구설수에 오르지 않는다. 어느 때는 입주민 승용차 유리위에 떨어진 낙엽도 치워야 한다. 입주민의 갑질이 무섭다기보다는 호구지책으로 여겨야 하기 때문이다. 청소 후 입주민들이 출근할 때는 만나는 사람마다 웃으면서 인사를 해야 한다. 인사를 안 하면 불친절하다고 고발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간혹 입주민들의 농산물을 실은  차를 보면 쫓아가서 같이 거들어 주어야 한다. 그것을 보고도 못 본 체하면 부녀회원들의 성화를 견디지 못한다.

 

 오전 10시쯤이면 어김없이 각 회사의 택배 차량들이 도착한다. 택배 관리도 무시할 수 없다. 간혹 택배물건이 없어지면 그날 당번인 P씨가 책임져야 한다. 또 입주민들이 함부로 버린 음식쓰레기 등을 깨끗이 치워야 하고, 분리수거도 해야 한다. 음식 쓰레기장을 깨끗이 사용하면 될 것인데 간혹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이 P씨를 난처하게 만들곤 한다. P씨를 제일 곤란하게 만드는 것은 외부차량 단속이다. 일일이 주차 차량번호를 확인하여 외부차량이면 빨강 줄이 그어진 경고 스티커를 부쳐야 한다. 그러면 나중에 차주인으로부터 온갖 욕설과 거센 항의를 받는다. 그래도 누구하나 도와주는 사람도 없다. 차량 스티커가 강력 본드로 되었기 때문이다. 항의를 받더라도 가족들을 생각해서 참아야 한다. 눈물을 삼켜야 하는 일이 부지기수다.

 

 올해부터는 최저임금이 조금 올랐다. 애환서린 아파트 경비원의 삶은 최저임금이 오른 다음부터 더 더욱 팍팍해졌다고 한다. 신문을 보니 층간소음을 경비원에게 해결하도록 요구하여, 응하지 않으니 경비원을 폭행했다는 기사를 보고 놀랐다. 개인끼리 해결해야 할 문제인데 말이다.

 

 P씨는 중견기업 간부로 있다가 정년퇴임했단다. 회사 재직시에는 지시와 요구만 하는 관행에 젖어 주민들의 갑질에는 쉽게 적응하지 못했다. 부하직원들의 흠숭과 대접이 몸에 배어서 아파트 경비원으로서의 적응하기가 무척 힘들었다고 한다. 바로 역지사지를 경험하고 있다. 앞으로 100세까지는 40년을 더 견뎌야하는데, 이 많은 시간들을 어떻게 보낼까 걱정하다가 노인 일자리의 일환으로 경비원 생활을 하지만, 지금도 실감이 나지 않는단다오늘도 P씨는 어서 새벽이 가기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2018.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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