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가 열리면

2018.11.05 09:19

김학 조회 수: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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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가 열리면
김 학



눈을 떴다. 머리맡에 있는 스마트폰을 열어 보니 새벽 4시 15분! 푹 숙면을 하고나서 그런지 기분이 상쾌하다. 새로운 하루가 열렸으니 나는 오늘도 하루 여행을 떠나야 한다. 아직은 어둠이 사위(四圍)를 감싸고 있다.
오늘은 화요일, 강의도 없는 날이고, 특별한 일거리도 없는 날이다. 오래 전부터 비워둔 날이어서, 내 마음대로 활용할 수 있는 날이다. 오늘은 누구를 만날까, 어디로 갈까, 무엇을 할까? 그것은 오로지 내 마음 내키는 대로 결정하면 된다. 참으로 행복한 날이다.
잠자리에서 일어나기 전 평소 습관대로 스트레칭을 한다. 두 손으로 양쪽 무릎 안쪽 오금을 붙잡고 허리를 활처럼 휘게 하여 앞뒤로 뒹굴뒹굴하며 30번 허리운동을 한다. 뻐근하던 허리가 펴지며 몸이 가벼워진다. 그 다음엔 앉아서 왼손은 왼쪽 발바닥 오른손은 오른쪽 발바닥 움푹 파인 곳을 위아래로 100번씩 문지른다. 어제 하루 동안 육중한 내 몸을 싣고 다니노라 수고했다면서 칭찬을 해 준다.
사실 내 발은 참 고생을 많이 했다. 중학교 때는 3년 동안 8km를 걸어서 통학을 했고, 대학시절엔 4년 동안 10km를 걸어 다녔으니 말이다. 그뿐이 아니다. 대학을 마치고서는 보병장교가 되어 군대생활을 했으니 내 발이 얼마나 고생했겠는가?
포병장교는 3보 이상 승차를 하지만 보병장교는 3보 이상 구보를 해야 한다. 그러니 내 발은 무척 힘들었을 것이다. 그래도 내 발은 지금까지 불평불만 한마디도 없었다. 참으로 고맙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날마다 발바닥을 문질러주며 고마움을 표하는 것이다. 그런 뒤 종아리 마사지를 2백 번 정도 한다. 다시 누워서 발끝 부딪치기를 6백 번쯤 한다. 잠자느라 뻣뻣해진 몸이 한결 부드러워진다.
거실로 나가 전등을 켜고 스마트폰을 점검한다. 문자 메시지와 카카오톡을 열어본다. 지울 것은 지우고 전달할 것은 전달한 뒤 충전기에 꽂아둔다. 주방으로 가서 알칼리이온수를 머그잔으로 한 컵 받아서 꿀꺽꿀꺽 마신다. 가슴이 뻥 뚫리는 것처럼 시원하다.
화장실로 가서 CYTOMAX로 머리를 백 번 두드려 마사지를 한 뒤 깨끗한 수돗물로 입을 헹구고 눈을 씻는다. 그런 뒤 서재로 가서 컴퓨터를 켠다. 컴퓨터 화면에는 미국에 사는 손자 동윤이의 사진이 뜬다. 나는 그 손자를 마주보면서 큰소리로 기도를 한다.
“동윤이, 파이팅! 너는 위대한 인물, 세계적인 인물이 될 것이야. 할아버지는 그렇게 믿는다. 그러니 너도 그런 인물이 되도록 노력해야지. 또 그런 인물이 될 수 있도록 준비를 해야 할 것이야. 알겠니?”
내 컴퓨터의 화면에 손자들의 사진을 올릴 때도 편애하지 않으려고 번갈아가면서 선정한다. 큰아들, 작은아들, 딸네 손자들마다 돌아가면서 공평하게 기회를 준다.
e-mail을 열어본다. 날마다 대개 20여 개 이상의 메일이 도착하여 나를 기다린다. 세계 방방곡곡에서 나를 찾아온 별의별 내용들이 많다. 그 중에는 한 번 읽고 지울 것도 있고,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해 줄 내용도 있으며, 내가 즐겨 찾는 홈페이지나 카페에 옮겨 줄 것도 있다. 그런 작업을 하노라면 금세 시간이 가 버린다. 첨삭해달라며 보내준 문하생들의 수필작품도 많다. 그 첨삭작업을 하다 보면 어둠이 벗겨지고 밝은 아침이 뿌옇게 펼쳐진다. 그러면 하던 일을 멈추고 Naver에서 <윤항기의 나는 행복합니다>란 노래를 검색하여 크게 틀어놓고 베란다의 화분과 아침인사를 나누며 물을 뿌려 갈증을 달래 준다. 내 몸무게를 달아본 뒤 샤워장에서 샤워를 한다. 몸을 닦고서 2백 번쯤 귀 마사지를 한다. 몸과 마음을 깨끗이 가꾼 뒤 나의 2남1녀와 그 자녀들 그리고 우리 부부를 하나하나 들먹이며 두 손을 모아 기도를 한다. 이 역시 오래 전부터 해온 나의 일상이다. 이런 과정을 거친 뒤 아침식사를 하지만, 오늘은 건강검진을 하기로 한 날이니, 아침 식사를 하지 않고 병원으로 가야한다.
텔레비전을 켜고 소리만 들으면서 신문을 읽는다. 중앙지 2가지, 스포츠신문 한 가지, 지방지 3가지를 대충대충 훑어본다. 내 발 못지않게 고생을 많이 하는 게 내 눈이다. 미안할 정도다. 요즘 인터넷으로 신문을 읽는 사람들이 늘어나 신문 구독률이 낮아지고 있고, 그 때문에 제지회사들은 경영난으로 사원들을 명예퇴직 시킨다니 안타까울 따름이다.
나는 날마다 아침 8시쯤이면 또 거실에서 운동을 한다. 바닥에 누워서 발목펌프운동과 발끝 부딪치기 운동을 6백 번씩 하고, 이어서 종아리 마사지운동을 2백 번쯤 한다. 실내 자전거가 있지만 그 운동은 자주 하지 않는다.
오늘은 동네내과에 가기로 한 날이다. 8시 40분쯤 집을 나섰다. 병원 문을 열고 들어서니 벌써 도착한 이들이 많다. 순서에 따라 나도 소변검사, 심혈관검사, 혈액검사를 했다. 결과는 내일 나온다고 한다. 나이가 들어가니 병원에 가서 검사를 하는 일이 걱정스럽다. 느닷없이 큰 병원으로 가서 다시 진단해 보라고 할까 두렵기 때문이다.
오늘은 비가 오려는지 하늘엔 먹구름이 잔뜩 끼어 있다. 오늘 오후 6시엔 같은 시각에 KBS사우회와 고등학교동창회 두 가지 모임이 겹쳤다. 어디로 갈까? 사우회는 직장생활을 하면서 정의 탑을 쌓았던 인연들이고, 고등학교동창회는 풋풋한 우정으로 얽힌 친구들이다. 선뜻 결정하기가 쉽지 않다. 시내버스를 타고 가다가 마음이 가는대로 따라야겠다. 어느 모임에 참석하던 모임에서 돌아오면 나의 오늘 하루여행은 끝날 것이다. 일주일 가운데 일부러 비워둔 화요일도 이렇게 빡빡한 일정으로 하루를 마무리하게 된다. 산다는 것은 바쁜 일의 연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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