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녀도

2018.11.10 14:09

김윤배 조회 수:5

무녀도(巫女島)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수요반 김 윤 배

 

 

 

 

  지난 토요일 오후 무녀도를 찾았다. 무녀도는 고군산군도에 속하는 여러 섬들 중 하나다. 무녀도는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어부의 무사귀환을 바라는 고사를 지내려고 여자무당이 고깔을 쓰고 제단 앞에서 춤을 추는 모습 같다하여 그리 불리어졌다 한다. 19년의 공사기간을 끝으로 마침내 2010년 새만금도로가 완성되었고, 올해는 신시도에서 무녀도까지 무녀대교가 세워져 이젠 육지와 연결되었다.

 나는 약 25년 전에 무녀도초등학교에서 평교사로 3년을 근무했었다. 그 당시는 군산에서 부안까지 33.9km의 바다를 막는 새만금 방조제공사가 막 시작할 때였기에 무녀도까지 가려면 군산 내항에서 여객선을 타고 약 2시간 남짓 가야만 했었다. 육지와 떨어져 있지만 무녀도·선유도·장자도·대장도는 개조한 삼발이 오토바이가 다닐 수 있을 정도의 다리가 이어져있어서 주민들끼리 서로 왕래하는 하나의 큰 섬동네가 군산 앞바다에 떠 있었다.

 

  항상 가보고는 싶었지만 이런 저런 이유로 가보지 못하고 정년퇴직을 한 뒤 25년 만에 배가 아니라 내 승용차를 몰고 직접 가니 감개가 무량 했다. 그 때는 무녀도초등학교 전교생이 9명이었고, 복식학급으로 2개 학년을 묶어 한 학급으로 편성했으니, 학생수가 2,3명 정도였다. 맨 먼저 무녀도초등학교가 있던 무녀1구로 건너가니 감회가 새로웠다.

 토요일이라 학교는 조용했다. 먼저 학교 앞에 차를 세우고 학교를 한 바퀴 돌아보니 옛 생각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잠시 그때의 아이들과 학부모의 얼굴들을 떠올려 보며 내가 살던 관사도 둘러보았다. 내가 이 집에서 3년 동안 자취를 하며 살지 않았던가? 수돗물이 없었기에 지하수를 활용했고, 가물 때는 처마 끝에서 흐르는 빗물을 받아 세수를 하고 그 물로 다시 내복과 양말을 빨았었다. 열악한 환경에서 고생했던 생각이 나지만,  바다낚시를 즐기고, 탐석하러 다닌다고 고군산군도에 있는 섬들을 무인도까지 온통 헤매고 다녔던 추억이 새롭다. 퇴근시간이 되면 무녀도, 선유도, 장자도까지 섬 구석구석을 오토바이로 유람을 즐겼다. 바닷가에 홀로 앉아 외롭고 쓸쓸한 상념에 잠겨 서해바다를 바라보며 기타를 쳤으며, 무녀봉과 선유도, 망주봉까지 등산을 다니기도 했었다, 지나고 보니 아름다운 추억이 아닐 수 없다. 1주일에 한 번씩 전주 집으로 오는데 토요일에 폭풍주의보가 떨어져 여객선운항 금지가 떨어져지면 해태채취선인 사선(社船)을 타고 배보다 더 높은 파도를 넘으며 그야말로 사선(死線)을 넘어 군산항으로 오곤 했었다.

 

  학교를 한 바퀴 돌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내가 맨 처음 찾아간 곳은 나에게 잘해주셨던 1학년 아이의 학부모인  할머니집이었다.  그 할머니는 허리가 구부정한 60대 후반이었는데 아이 아빠가 신선한 생선을 잡아 오는 날이면 어김없이 혼자 자취하느라 고생한다며 같이 식사하자고 하시는 어머니 같은 분이셨다.어쩌다 학부모나 주민들과 갈등이 있으면 그 할머니는 특유의 카리스마로 항상 내편에 서서 나를 적극 옹호해 주셨다. 할머니는 또 어촌계의 바지락 채취날이면 어김없이 검정 비닐봉지에 해금시킨 깨끗한 바지락을 먹기 좋게 따로 챙겨 주셨다. 애주가였던 나는 아침에 할머니가 준 바지락을 냄비에 넣고 간단히 소금 약간만 넣으면 하얀 국물 속에 살이 통통 오른 ‘할며니표 바지락 해장국’이 되어 맛있게 먹곤 했었다.

 학교에 부임한 첫날 생각이 난다.

 “김 선상님, 애미가 없는데다 애비는 늘 물보러 다니느라 피곤하고 바빠서 선상님을 찾아오지 못하구만요. 먼데까지 와서 고생하시는데 마땅히 해줄 것이 없는디, 이거라도 맛보실라요? 우리 불쌍한 손주 잘 부탁허요.

 그 뒤엔 아예 나를 찾지도 않고 내방 문고리에 검정 비닐봉투를 걸어두고 가면 난 할머니가 놓고 가신 것으로 알고 익숙하게 냉장고에 넣어두곤 했었다. 그렇게 3년 내내 나의 냉동실에는 바지락이 떨어지질 않았다.

나는 평교사로서 우리 반 3명의 아이들을 친 자식처럼 대하며 뭍에서 가지고 온 학용품과 참고서 및 간식 등을 주면서 내가 베풀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물심양면으로 정성껏 보살폈고, 밤에도 딱히 할 일이 없는 아이들을 데려다 도시아이들에 뒤지지 않게 열심히 가르쳤다. 지금으로 말하자면 방과후 활동 및 야간 돌봄까지 했다고나 할까?

 

 학교에서 나와서 먼저 할머니 집으로 갔더니 아무도 없었다. 어디 외출하셨나 하면서도 지나간 25년의 세월을 더하니 구순이 넘었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문득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래서 무녀도 구판장에 들렀다. 섬의 구판장은 뭍에서 공동으로 생활필수품을 대량으로 떼어다가 운영하는 슈퍼마겟이라고나 할까? 섬 주민들이 자주 모이는 복지회관 같은 섬 주민들의 소통의 장이었다. 구판장 아저씨와 아주머니는 팔순을 바라보는 나이였는데 나를 보더니 반갑게 맞아 주셨다.

 

 맨 처음 할머니 소식을 물었더니 지병으로 3년 전에 하늘나라로 가셨다고 했다진즉 찾아뵈었더라면 좋았을 걸, 후회가 되었다. 1학년 아이는 서울 어느 대학교 대학원에서 박사과정까지 마치고 대기업에 들어갔다고 했고, 다른 아이들도 모두 뭍에 나가 대학을 졸업하고 공무원과 좋은 직장에 다니며 잘 지낸다고 하여 마음이 뿌듯했다. 한참동안 그 때의 아이들과 학부모 및 주민들의 근황까지 다 들을 수 있었다.

 

 구판장에서 밖으로 나와 보니 낮에는 바다에 나갔는지 마을주민은 별로 없고 토요일인지라 관광객들만 붐비고 있었다. 나는 늘 그랬듯이 걸어서 무녀도에서 선유도, 장자도, 대장도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장소 하나하나에서 옛 추억을 떠올리고 있었다. 여기저기 한참을 걷다가 해질 무렵 선유도에서 식당을 하고 있다는 학부모집에 들렀다. 나를 알아 보려나 하며 들어가니 덥석 내손을 잡으며 왜 한 번도 안 오셨냐면서 나를 반갑게 맞아 주셨다. 한참 젊다고 생각했던 학부모들이 벌써 50대 중·후반이었다.

 조금 뒤에 내가 좋아했던 바지락 할머니의 아들을 비롯한 5명의 학부모들이 소식을 들었는지 식당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25년이 흘렀건만 지금까지도 나를 잊지 않고 있어서 참으로 고마웠다.

 

 만나자 마자 학부모들과 술을 마시며 옛 추억과 정담을 나누다보니 학교 앞에 주차해둔 내 차를 까맣게 잊어버린 채 어느덧 취기가 돌았다. 나는 25년 전의 추억 여행을 하고 있었다. 그날은 날씨가 좋았기에 아름다운 석양과 밝은 보름달을 볼 수 있었는데 달빛이 바닷물을 비추며 내 얼굴에 닿았을 때는 또다시 바지락 할머니의 모습이 떠올랐다.

 “선상님, 나 없어도 많이 드시고 즐겁게 놀다 가셔!”

 그래서 난 그 느낌을 할머니 아들에게 전했다.

 “어머님이 나보고 잘 놀다가라 하시네.

그 아들은 웃으면서 내일 아침에 어머니를 대신해서 바지락 국을 맛있게 끓여 주겠다고 약속했다.

‘아, 할머니가 보고 싶었는데!

나는 밤늦게까지 무녀도에서 추억의 술을 마시고 모텔로 돌아와 25년 전의 보람 있고 아름다웠던 무녀도의 생활과 바지락 할머니를 회상하며 깊은 잠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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