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하에서 만난 카르멘

2018.11.12 06:10

이진숙 조회 수:12

프라하에서 만난 카르멘

-프라하에서 89일-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수요반 이진숙

 

 

 

 

 

 이른 아침 해맞이를 하려고 ‘프라하 성’에 올랐다그러나 해는 끝내 구름 속에 모습을 감춘 채 그림자만 내비쳤다. 해맞이는 못했지만 다니는 사람도 없는 한적하고 적막하기까지 한 ‘프라하 성’을 우리만 독차지한 듯 상쾌한 기분이었다.

 내친 김에 언제나 수많은 사람들로 붐비는 ‘까를 교’로 갔다. 맙소사! 그곳엔 벌써 웨딩 촬영을 하는 지 새빨간 드레스를 입은 여인이 카메라 앞에서 멋진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일찌감치 거리에 나온 사람들이 모두 발걸음을 멈추고 그녀의 멋진 사진을 보려고 기다리고 있었다. 요즈음 젊은 사람들의 새로운 풍속도란다. 이렇게 멋진 웨딩 촬영을 위해 돈이 많이 들더라도 외국에서 이국적인 풍광을 골라 사진 속에 담는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듣고 웨딩 촬영도 하지 않고 개성에 따라 전통 혼례를 올린 우리 아들과 딸이 생각났다.  

 이번 체코 프라하 여행을 하는 동안 놀란 것들이 참 많았다. 그중 이곳 사람들의 영어회화 실력이었다. 어느 가게에 가서 물건을 사거나, 음식점에서 음식을 주문할 때, 입장권을 살 때도, 거침없이 영어를 구사하여에 놀랐다. 딸에게 들은 이야기로는 그래서 세계 유수의 회사들이 체코에 회사의 허브(Hub : 중심 축)를 구축한다고 한다. 또한 실업률이 0%에 가깝다고 했다. 성당이나 갤러리의 매표직원이나 전시장 지킴이들은 대부분 연로하신 분들이었다. 우리나라의 노후 대책 없이 노년이 되어 공원으로 무료급식소로 다니는 노인들 생각이 났다.

 지금까지 생각했던 체코에 대해 얼마나 무식했었는지 나는 물가가 우리나라보다 싸다는 생각, 얼마 전까지 만해도 소련연방에 속했던 나라, 그곳에서 독립된 지 오래되지 않은 나라, 정도의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참으로 나의 무지와 어리석음에 대해 깊이 반성했다.

 

 드디어 오늘은 ‘프라하국립극장’에서 오페라 공연을 보기로 한 날이다. 이 날을 위해 나는 한국에서부터 따로 옷과 신발을 준비해 왔다. 그리고 오늘 보게 될 ‘오페라 카르멘’에 대한 예습을 하기도 했다. 그것도 모자라 며느리가 테블릿 pc에 미리 저장해 놓은 ‘오페라 카르멘’을 연거푸 두 번이나 돌려 보았다. 과연 ‘카르멘’이란 보헤미아여인이 불행한 여인이라고 해야 될까, 아니면 남자 주인공 ‘돈 호세’라는 군인이 불행하다고 해야 될까?

 드디어 공연장에 갈 시간이 되었다. 여행 중 늘 신었던 운동화 대신 드레스 슈즈를 신고 청바지 대신 드레시한 스커트를 입었다. 아들이 이런 엄마의 모습을 보더니 차림이 마음에 들었는지 한마디 했다 ‘우아하고 멋있어요!’하니, 속없이 기분이 붕 뜬다. 아이들도 모두 오페라 공연에 어울리는 차림으로 숙소를 나섰다. 공연장 입구에서 티켓을 확인하고 먼저 지하로 내려가 두꺼운 외투를 벗어 맡기고 공연장으로 들어갔다. 들어서는 순간 ‘와!’ 하는 감탄사가 저절로 나왔다. 우리 자리는 앞에서 두 번째 줄. 상당한 가격이 들었다고 말할 뿐 모처럼 오빠내외와 엄마를 위해 딸이 한 턱 쏜 것이란다. 극장 내부는 정말 화려했다. 그리고 그곳에 들어오는 관객들의 옷차림 또한 우아하고 아름다웠다. 남자들은 나비넥타이에 연미복을 입은 신사들도 눈에 자주 띠었다.

 객석 맨 앞 줄 아래쪽으로 오케스트라가 자리잡고 있었다. 안내 방송이 나왔다. 잠시 후 공연이 시작되니 자리에 앉고 휴대폰도 꺼달라는 내용이었다. 순간 가슴이 쿵쾅거렸다. 과연 어떤 ‘카르멘’이 나올까? ‘돈 호세’는 어떻게 생겼을까? 드디어 커튼이 열리고 오페라가 시작되었다. ‘투우사의 노래’가 연주되기 시작하고 무대에는 많은 배우들이 등장했다. 무대 맨 위쪽 중앙에는 대본이 체코 말과 영어로 된 모니터가 있었다. 물론 다 알아서 본 것은 아니었지만 사전에 열심히 공부(?)를 한 덕에 바로 내용을 알 수가 있었다.

 1막이 끝나고 2막이 시작되어야 하는데 무대가 바뀐 뒤에도 좀처럼 배우들이 나오질 않았다. 무대 밑에 있는 연주자들이나 지휘자도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청중들도 무슨 일인지 수군수군하고 있었는데 ‘카르멘 역을 맡은 가수가 얼마나 열연을 했는지 약간의 부상이 있다는 방송이 나왔다.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연하는 동안 그녀는 소프라노 가수가 아닌 ‘카르멘’이었던 것이다.

 언젠가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고 있는데 갑자기 영화가 멈추면서 영화관 안이 완전히 암흑세계로 바뀐 적이 있었다. 아주 옛날이야 필름이 돌아가면서 영화가 상영되었는데, 그래서 가끔은 잘 돌아가던 필름이 끊기는 일도 있었지만 디지털시대에 이것이 어찌된 일인가! 영화가 다시 상영되고 다 끝나고 나오니 문 앞에 직원 두 명이 다소곳이 서서 봉투를 한 장씩 건네주었다. 죄송하다는 사과의 말과 함께. 열어 보니 영화 티켓이 두 장씩 들어 있었다. 처음 경험한 일이었다. 영화야 끊기면 다시 돌려서 상영할 수도 있지만 주연 배우가 부상이라니…. 한참 후에야 다시 공연이 시작되었다. 1막 때보다 더 많은 박수를 받으며 그야말로 혼신의 힘을 다해 공연하는 그들의 모습에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박수를 쳤다. 공연이 무사히 끝나고 무대 인사를 하는 그들에게 기립 박수를 보냈다.

 이곳에서 공연한 그들은 단 한 번의 공연으로 프라하 공연을 마치고 외국 순회공연에 나선다는 소식을 들었다. 오로지 한 번을 위해 온 몸을 다해 공연하는 그들이야말로 진정한 예술인들이라는 생각을 했다. 흥분이 채 가시지 않은 상태로 극장을 나섰다. 극장 가까이에 있는 레스토랑에 가서 내일이면 에딘버러로 돌아가는 아들 내외와 다음 만날 날을 기약하며 늦도록 이야기를 나누었다.

 

. 딸과 둘만 남았다. 오붓하게 미처 찾지 못했던 곳을 찾아다니며 한가하게 거닐기도 하고 걷다가 다리가 아프면 근처 공원의자에 앉아 쉬면서 카페에서 가지고 나온 커피를 마시며 낙엽이 되어 바람에 흩날리는 마른 나뭇잎을 눈으로 따라가며 어디까지 날아갈까, 그곳은 어떤 곳일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그 나뭇잎은 멀리 가지 못하고 근방에 떨어졌다. 아마도 다음 해에는 좋은 거름이 되어 또 다시 탄생하겠지.

 우리도 이젠 왔던 곳으로 돌아갈 때가 되었다. 택시를 탔다. 이곳에 왔을 때 호기심에 찬 눈으로 차창을 보았었는데, 이제는 그동안 보았던 것들이 눈앞에서 아스라이 멀어져갔다.

 몇 번이나 오르내렸던 ‘프라하 성’, 그림 동화 같은 동네, ‘체스키 크룸로프’ ‘오페라 카르멘’ 그리고 ‘까를 교’ 등을 한 번씩 그려 보았다. 89일 ‘프라하 여행’은 꿈속의 여행이었다. 그리고 내 마음 깊은 기억의 곳간에 차곡차곡 쌓인 추억이 되었다.

 

 그곳 시간으로 오후 4시쯤 비행기에 오르고 힘차게 솟아오르는 굉음을 들으며 깊은 잠에 빠져 들었다.

                                                (2018.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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