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나들이

2018.11.13 04:53

김효순 조회 수:5

 가을 나들이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수요반 김효순

 

 

 

 

 

 수필 공부를 함께하는 문우들과 가을 소풍을 가는 날이다. 여느 날처럼 동 틀 기미가 보이지 않는 신 새벽인데 눈이 떠졌다. 노년으로 접어들면서 일어나는 성가신 것들 중 하나가 잠이 옅어지는 일이다. 어렵사리 들었던 잠이 이리 쉬 달아나버리니!

 밖이 좀 수선스러운 듯하여 문을 여니 가느다란 실비가 내리고 있었다. 조반은 먹는 둥 마는 둥하고는 모임 장소인 경기장으로 갔다. 대기하고 있던 관광버스에 오르니 어느 새 버스 안은 거의 만원이었다. 우리 문우들과 어느 동네 노인회원들이 함께 가는 하루나들이라고 했다.

 나는 맨 뒷줄에 남아있던 자리로 가서 앉았다. 차창 밖으로 대강 가을걷이가 끝나가는 들녘과 가을 산의 모습이 펼쳐졌다. 승용차에서 보던 것보다 훨씬 멀리 넓게 보이니 이 또한 새롭게 맛보는 여행의 흥이 아니랴.

 관광버스는 백양사 진입로의 단풍나무 터널을 지나 여러 주차장을 그냥 통과하더니 절집과 가장 가까운 곳에 우리를 내려 주었다. 나와 두서너 명을 제외한 승객들이 경로우대를 받아야하는 사람들이라서 누리는 특혜인 셈이다.

 안개비 속 백양사 산문 안에는 막바지 단풍놀이를 나온 사람들이 그득했다. 그들과 어깨를 부딪혀가며 산책을 했다. 정작 부처님께는 눈인사만 드리고 서둘러 경내를 빠져나오는데, 잘 물든 가을 옷으로 갈아입은 산자락은 초록이었던 시절은 까맣게 잊었을까, 온통 노랗고 붉었다.

 장성에 있는 편백나무 숲에서는 구수한 된장국과 수육 한 접시가 정갈하게 차려진, 시골밥상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중등교장 출신인 C선생, 미술교사였던 R선생, 경찰 간부를 지낸 K선생과 한 자리에서 밥상을 받았다.

 우리 상에 배당된 막걸리 한 병을 비우고는 한 병을 더 청해서 마셨다. 술의 순기능이었으리라.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우리의 목청은 촉촉해지고 특별한 화제가 아니었어도 웃음소리가 절로 높아졌다. 참 오랜만에 시원하게 웃어본다는 생각을 하면서 밖을 내다보니, 단풍나무 한 그루가 환한 표정으로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막걸리 두어 사발에 벌개진 것은 내 얼굴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비에 씻긴 단풍나무는 온몸이 새빨간 불덩이가 되어 서 있었다.

 해질 무렵, 줄포 만의 끝없이 펼쳐지는 갈대숲에 관광버스가 멈추어 섰다. 추적추적 내리는 가을비를 맞으면서 흔들리는 갈대들은 묵묵한 수행자들처럼 소리가 없었다. 곰소 항에도 들렀다. 잿빛 갯벌을 등지고 있는 한적한 젓갈 상가에서 갈치속젓 한 통을 샀다.

우리를 태운 관광버스가 출발점인 전주 경기장에 도착했을 때도 여전히 내리고 있는 빗속에서 가로등이 노랗게 불을 밝히고 있었다. 아침에 자동차를 세워둔 곳까지는 한참을 가야 한다. 함께 나들이 다녀온 사람들의 뒤를 따라 걸었다. 그들의 긴 그림자가 출렁거리며 주인을 따라간다.

 문득, 불빛보다 환하던 은행나무 이파리들이 우수수 쏟아진다. , 농익은 가을이다.  

                                                                (2018.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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