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 그린 가을 모악산

2018.11.19 05:33

정석곤 조회 수:5

글로 그린 가을 모악산

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정석곤

 

 

 

 

  118, 모악산 걷기 모임은 전주교육대학동창회 올해 행사 가운데 하나다.

  ‘모악산 걷기 모임을 비가 와도 우산을 받고 실시합니다.어제 총무가 두 번째 보내준 문자다.

 

  시내버스를 타고 전북도립미술관 앞 모악산 하차장(下車場)에 내렸다. 비가 추적추적 내려도 가을 산을 좋아하는 동창들이 모였다. 입구에 있는 ‘모악산(母岳山)’ 표지석까지 양쪽 가로수는 맨몸뚱이로 서 있어 날씨를 더 싸늘하게 했다. 오른쪽 멀리 서 있는 감나무는 감을 주렁주렁 매달고서 몇 개의 잎을 바람에 펄럭이며 우리를 반겼다. 감들은 불그스레한 맨살을 드러내 놓고 깊어가는 가을을 노래하고 있었다. 올 우리 교회 신정 모악산 산행 때 오고 이제 만나니 면목이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동창 걷기 모임이 있어서 마음이 놓였다.  

 

  계곡물은 가을을 보내고 겨울을 맞이하려 분주했다. 물소리를 들으며 올라갔다. 목요일에다 비가 온 탓도 있겠으나 오르내리는 이가 적은 걸 보니, 모악산은 겨울 문턱에 가까이 온 것 같았다. 그동안 멈추었던 이야기가 봇물 터지듯 터졌다. 먼저 지난달 동창 남편이 오전에 모악산을 산행하고 오후에 갑자기 돌아가셨다는 소식이었다. 날씨만큼이나 마음이 무거웠으며 건강관리에 경각심을 갖기도 했다. 2년 뒤, 2020년은 우리 7회가 졸업 50주년 행사를 해야 한다며 세월의 빠름을 공감했다.

 

  골짜기에 머물던 운무(雲霧)는 산등성이를 넘어가고 산봉우리는 우뚝 솟아올랐다. 나무들은 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그나마 매달고 있는 이파리를 겨울 길로 떠나보내고 있었다. 빨강 노랑 아기단풍 나무가 빛을 내며 가을 산을 지키고 있었다.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다 어느새 대원사(大院寺)에 도착했다. 서넛은 수왕사(水王寺)를 다녀온다며 곧바로 올라갔다. 난 모악산을 어느 길로 오르던지 기어코 정상에 발을 디뎌야 직성이 풀린다. 오늘은 허리가 안 좋아 마음을 달래며 대원사에서 멈췄다.

     

  오르막길 따라가며 오른쪽으로 꽃무릇[相思花〕들이 작은 키에 넓은 선모양의 녹색 잎을 펴들고 모악산 새 식구가 됐다고 자랑하고 있는 게 아닌가? 완주군이 낮은 산자락에 군데군데 꽃무릇 식재지(植栽地)를 만들어 군락지로 조성하고 있었다. 고창 선운사로 가지 않아도 꽃무릇을 볼 수 있으니 내년 여름 산행이 기대된다며 좋아했다.

 

  대원사 마당의 소나무는 키가 그리 크지 않고 아담한 몸매에다 푸르름이 더해져 돋보였다. 둘레 나무들은 잎을 다 떨어뜨리고 겨울 채비를 마친 것 같은데, 소나무는 이제야 제철을 만난 듯했다. 엊저녁부터 내린 비는 오다 말고 올라가 잿빛 하늘을 만들었다. 대원사 계단은 울긋불긋 단풍잎이 쌓여 레드 카펫보다 더 호화찬란한 양탄자를 밟고 올라가는 것 같았다. 단풍잎들은 누워서 다섯, 여섯, 일곱 손가락을 펴고서 가을 하늘을 쳐다보며 봄부터 단장해온 색깔을 뽐내고 있는 게 아닌가?

 

  대원사 바로 아래 낮은 대나무 울타리 너머 작은 집 지붕과 마당에는 단풍잎이 함박눈처럼 내려 등산객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고 탄성까지 지르게 하지 않는가? 한여름 바위틈에 끼운 대나무 홈통을 타고 쏟아진 물줄기가 보이지 않았다. 대신 단풍잎 계단과 단풍나무들이 어우러져 부른 가을 노래가 우릴 즐겁게 했다. 우리는 그냥 올 수 없어 서로 그 정경을 사진기에 담아주며 오래 두고 감상하자고 다짐도 했다.  

 

  오를 때는 첫 다리요, 내려갈 때는 마지막 다리가 선녀교이다. 다리 근처에 힘차게 뻗어 나간 칡덩굴도 이제 멈추고 이파리는 된서리를 기다리며 가을을 아쉬워했다. 상수리나무 잎사귀들도 내려가는 길을 깔아주느라 앞다투었다. 도토리가 바람에 못 이겨 “툭” 떨어졌다. 얼른 눈길을 맞추고 도토리를 찾았으나 꼭지만 주워 주머니에 넣었다. 모악산의 가을을 담아오고 싶어서였다.

       

  다 내려와 전북도립미술관으로 들어갔다. 가던 날이 장날이라고 천년 전라기념 ‘전라굴기(全羅崛起)’ 특별전을 열고 있었다. 천년 전라의 기상을 현대미술로 제시한 특별전으로 3개의 주제를 설정했다. ‘전라산하’ 전시장에 있는 화가 이상조의 대형 그림이 눈에 들어왔다. 주제가 '모악산'인데 여름 산이다. 그 화가는 산을 좋아한다. 그래서 산에 오르고 산을 그린다고 했다. 나도 산을 좋아한다. 그래서 비가 와도 모악산을 오른 게다. 오늘 내 맘에 내려앉은 가을 모악산을 화가처럼 그림으로 그리지는 못하지만, 글로서 그려보리라는 충동을 가슴에 안고 미술관을 나왔다. 회장이 자기 임기도 깊어가는 가을이 됐다며 한 턱을 낼  점심은 꿀맛일 것 같았다.

                                      (2018. 11. 16.)

 

※ 굴기(崛起) : 사전적 의미는 산이 불뚝 솟음, 벌떡 일어섬을 말하며, 기울어져 가는 집안에 훌륭한 인물이 난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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