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지 않는 사람들

2018.11.23 06:03

한성덕 조회 수:7

 웃지 않는 사람들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수요반 한성덕

 

 

 

 

 

  초고령사회란, 통상적으로 65세 이상 연령층이 총 인구의 20% 이상을 차지하는 사회를 가리킨다. 우리나라도 이런 추세로 가면 2026년에는 초고령사회로 진입한다는 전망을 내놓았다. 이를 걱정하는 사회학자들이, 20087월 노인 장기요양보험제도를 도입하면서 ‘요양보호사’ 국가전문자격증 과정을 신설했다. 때맞춰 단짝친구가 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 그 과목의 교수가 되면서 자격증을 무조건 따 놓으라고 했다. 이제 시작한 제도니까 어렵지 않게 취득할 수 있단다. 강압(?)에 못 이겨 1급 ‘요양보호사’가 되었다. 그리고 10년 만에 요양보호사 일을 하고 있다.

  요즘 요양병원이 꽤 인기인데, 내 근무지는 요양원이다. 뒤에는 자그마한 산자락 시작점이고, 앞은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사는 촌락이며, 오른쪽으로는 강물이 유유히 흐른다. 사시사철 물이 마르지 않고, 길게 뻗은 시멘트 보를 싸안은 채 둑으로 물이 철철 흐른다. 휴가철의 보 아래는 물을 만난 고기떼처럼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산과 맑은 공기와 강을 찾는 사람들의 수양지로 적격이다. 그 한 발 거리에 ‘요양원’이 있으니, 요양하기에 안성맞춤이다.

  너른 요양원 둘레둘레 감나무가 무성하고, 야트막한 산에는 밤나무가 손짓한다. 감나무는 주인이 있어 홍시나 주워 먹을 정도지만, 밤나무는 요양원에서 관리하는 덕에 언제든지 산에 드나들 수 있다. 직원들마다 밤을 주워 담고 희색이 만연한 걸 보면서 가을의 넉넉함을 즐긴다. 그야말로 요양하기에 좋은 ‘양촌수양관요양원’이다. 그 곳에는 어르신들이 스무 분 가까이 계신다. 요양법상 나이에 상관없이 모두를 ‘어르신’이라고 부른다. 4개월 전 첫 출근 때 놀란 것은 웃음이 없고, 모든 근심걱정을 다 짊어진 분들처럼 보였다.

  사람이 늙어가면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변화가 있다면 숨과 웃음이다. 아이들은 배가 불룩하도록 숨을 쉰다. 점점 나이 들면서 숨이 위로 달라붙어 가슴과 목으로 숨을 쉬다가, 더 이상 올라 갈 수 없을 때 숨이 빠져나가면서 죽는다. 웃음도 그와 같다. 아이 때는 시도 때도 없이 걸핏하면 까르르 웃는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웃음이 점점 사라져 죽을 때는 웃지도 않고 떠난다. 웃음이 끊어져서 죽는다면 과장된 표현일까? 숨과 웃음이 그만큼 중요하고, 사람의 건강이 호흡과 웃음 속에 들어있다는 증거다.

  미친 사람들은 히죽히죽 곧잘 웃는다. 웃고 싶어서 웃는 게 아니라 정신적 장애 때문이다. 이런 사람들은 미친 것 외에 다른 병을 앓지 않는다니 놀라울 뿐이다. 웃음이 귀하다는 또 다른 증거가 아니겠는가?

 나는, 유머감각이 살아있고 웃음 주는 사람을 퍽 좋아한다. 그 주변에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좋은 분위기를 만들어 가기 때문이다. 오랜 세월 속 바위를 덮고 촉촉이 젖어있는 이끼 같은 존재다. 그가 없으면 심심하고, 따분하며, 무미건조하다. 실은, 웃음보를 달고 살자는 게 나의 소박한 꿈이기도 하다. 그래서 때로는 유머와 재치 있는 말로, 어눌한 목소리로, 못난이 행동으로, 그리고 다양한 얼굴 표정으로 사람들을 웃기곤 한다.

 

  요양원에 출근하면서부터 끼가 더 심해졌다. 거실에 앉아계시는 어르신들 앞에서 개다리 춤도, 엉덩이춤도, 원숭이 흉내도 서슴치 않는다. 동심을 건드려보려고 동요를 부르며, 여러 장르의 노래를 목청껏 부른다. 목사의 신분을 내려놓고, 내 부모라 생각하면서 그 분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즐겁다. 웃지 않는 어르신들의 환한 얼굴을 볼 때까지 광대 아닌 광대노릇을 한다.

  어느새 웃음보가 터지고 천정이 들썩거리지만, 결코 웃지 않는 두세 분이 있다. 한 번쯤은 ‘환하게 웃겠지!’ 하는 기대감으로 더 신경을 쓰는데도 어림없다. 아예 ‘난 웃지 않는다.’고 선포하니 ‘치매’증상이란다. 비지땀으로 젖은 나를 보노라면 ‘내가 미쳤구나.’ 싶기도 하나, 어르신들 모두 폭소가 터진다면 무엇을 더 바라겠는가? 아직도 희망의 불씨가 남아있다는 게 감사하다.  

  아직은 건강해서 나는 ‘요양보호사’의 일을 하고 있다. 그런데 어르신들 속에 내가 있었다. 쓸쓸이 앉아서 웃음을 잃고, 어딘가를 멀거니 주시하고 있을지도 모를 나, 그 생각을 하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그러나 나는 천국에 대한 소망이 있기에 감사하다.

                                                     

                                       (2018. 11.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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