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드렛돌

2018.11.27 04:23

윤요셉 조회 수:7

고드렛돌               

 

 윤요셉 (수필가/수필평론가)

 

    

    거적을 치고 있었다. 미리 수북하게 치려 놓은 짚을 조금씩 떼서 거적틀에다 얹고, 앞 뒤 고드렛돌을 교대로 넘겨가고 있었다. 네 주름(묶음)의 거적이었다. 앞 뒤 고드렛돌이 서로 부딪치는 소리가 다그락다그락 났다. 곁에서 내 아버지는 장죽(長竹)을 물고 연신 담배 연기를 뿜어대며, 으흠!으흠! 헛기침을 하고 있었다. 이 아들이 제대로 거적을 치는지 지켜보는 중이었다. 아버지가 지켜보는 가운데 나의 거적치기는 밤 내내 이루어졌다.

 벌떡 잠에서 깨어나니 새벽인데, 꿈이었다. 참으로 괴이한 일이다. 사실 나는 밤마다 몇 자락씩 어지러운 꿈을 꾸는데, 일어나면 죄다 잊어버린다. 해서, 늘 개꿈을 꾸는 셈이다. 그런데 지난 밤에는 선친(先親)이 지켜보는 가운데 거적치기를 하는 꿈을 그렇듯 꾸었고, 비교적 기억 또렷하다. 고드렛돌이 서로 부딪는 소리는 귀에 여태 쟁쟁한 듯하다. 참말로 이상한 일이다. 늘 새로운 글감을 사냥하고자 애쓰다 보니까, 꿈속에서조차 그렇듯 수필작품을 적었던가 보다. 실제로, 나는 문학에 보다 열정적이었던 시절엔 문학상(文學賞)과 관련된 꿈을 퍽이나 많이 꾸었다. 신춘문예 당선 시상식에서, 내 어린 두 딸애들로부터 당선 축하 꽃다발을 받는 꿈도 숱하게 꾸었다. 하지만, 나는 끝내 신춘문예에는 당선하지 못하였다. 어느 중앙의 일간지 신춘문예 수필부문에 댓잎편지라는 글이 최종심에 오른 적은 있었지만.

각설(却說)하고, 지금부터 적게 되는 내용은 내가 어젯밤 꿈에서 적은 수필이다.

짚거적,돗자리,왕골자리, 갈대발[갈대簾],화문석 등을 엮기 위해서는 우선 이 필요하다. 그 틀은 마치 낮은 철봉대 같기도 하고,허들경기장에 놓인 허들 같기도 하고, 소형 축구골대 같기도 하다. 그 틀의 크로스바(cross-bar)엔 자[]의 눈금인양 필요한 만큼의 눈금이 그어져 있다. 그 눈금은 V 모양으로 에워져 있어,그곳에 고드렛돌에 감긴 노끈이나 새끼가 고드렛돌의 넘나듦에 따라 넘나들며 거적 등이 일정한 간격으로 엮여지게 한다. 나는 내 아버지가 살아생전 쓰던, 손때 묻은 거적틀을 쓰고 있었다. 거적 등을 엮는 데에는 고드렛돌도 필수품이다. 고드렛돌이란, 노끈이나 새끼를 감는 실패에 해당하는 물건이다. 가장 이상적(理想的)인 고드렛돌은 아령(啞鈴)처럼 생겨 있는 것. 그렇게 생겼으면,노끈이나 새끼가 쉽게 풀려 달아나지 않는다. 고드렛돌은, 엮일 것이 짚이냐 왕골이냐 갈대냐에 따라 그 무게가 달라야 한다. 너무 무거워도 아니 되지만, 너무 가벼워도 못 쓴다. 엮는 부위를 조여주는 맛이 재질에 따라 각각 달라야 하기 때문이다. 내 어릴 적에, 이웃어른들은 묵직한 통나무를 아처럼 깎아서 고드렛돌을 만들어 썼는데, 내 아버지는 언제고 돌로 된 고드렛돌을 썼다. 당신은 냇가에서 갸름하고 허리가 잘록한 돌을 주워 왔고, 그 돌에다 미리 허리띠를 채웠다. 그러면 돌은 빠져 달아나지 않았다. 내 아버지는 이미 묶인 그 고드렛돌 허리에다 가는[細] 새끼를 감았다. 물론 새끼의 양단(兩端)에 각각 하나의 고드렛돌을 달고, 새끼의 중앙지점까지 대칭이 되도록 감아 들어 왔다. 고드렛돌은 거적을 치기 위해서 어느 정도 늘어뜨려야 하지만, 또 거기 감긴 새끼 따위가 필요한 길이만큼 솔솔 풀리도록 감아야 한다. 내가 기억하기에, 내 아버지는 지게고리 매는 방식 내지 소 고삐 매는 방식의 매듭법을 취한 것 같다. 어젯밤 내가 꿈속에서 짚 거적을 치면서 취한 고드렛돌도 살아생전 내 아버지가 쓰던 것이었으며, 그 매듭법도 당신의 방식을 그대로 따랐다. 그러기에 곁에 앉은 아버지가 대견해 했다. 다그락다그락 앞 뒤 고드렛돌이 서로 위치를 바꿀 적마다 소리가 났다. 늘어나는 거적의 폭. 나는 그렇게 친 거적으로 쓸 데가 너무도 많았다. 겨우내 유목(幼木) 과수(果樹)의 줄기를 감싸주기도 하고, 김치독을 묻을 때 독을 에워싸기도 하고, 무 구덩이 위에다 덮기도 하고 .

 생각해 봤다. 틀도 틀이지만, 고드렛돌의 역할이 아주 대단하다는 것을. 한낱 냇가에 뒹굴던 돌에 불과했던 것들이 우리네 삶에 그토록 유용하게 쓰인다는 것을. 내 아버지가 살아생전 늘 쓰던 그 고드렛돌을 꿈속에서나마 그대로 물려받아 당신처럼 겨우살이 준비를 위해 거적을 쳤다는 거.

사실 여러 종류의 품질 좋은 보온재가 시중에 흔하리만치 많다. 그러나 마음 먹으면, 나는 짚단을 쉽게 구할 수 있다. 더더군다나 머잖아 내 논에서 벼 타작을 하고 나면 짚은 충분하다. 그러니 이 참에 거적틀을 하나 만들어 볼까도 고려 중이다. 그리고 개여울에서 고드렛돌로 쓸만한 돌들도 얼마든지 주워올 수가 있다. 그것으로 쉽게 고드렛돌을 삼을 수 있다.그리고는 지난 날 내 아버지가 그랬듯, 어젯밤 내가 꿈속에서 그러했듯, 긴 겨울 밤 거적치기를 한번 해볼까 싶다. 고드렛돌이 서로 부딪치면서 내는 그 경쾌한 음향을 타악기(打樂器) 연주인양 덤으로 즐겨도 좋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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