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산 등정기

2018.11.27 15:35

곽창선 조회 수:6

한라산 등정기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금요반 곽창선

 

 

 

 

 벌써 2년이 지난 한라산 등정기를 쓰려니 기억이 가물거린다. 다행히 사진과 메모가 도움을 주었다. 어느 날, 평소 가까이 지내던 이웃과 모임에서 추석연휴를 이용해서 한라산에 다녀오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귀가 솔깃했다. 한라산은 ‘2007년 세계자연유산'에 등재되어 세계인의 사랑을 받고 있는 산이다. 몇 번의 기회가 있었는데 다녀오지 못해서 섭섭하던 터였다. 아내와 상의하여 동행하기로 했다. 산행에 따른 모든 계획을 후배에게 일임하고 개인적인 준비를 서둘렀다. 언젠가부터 꼭 다녀오고 싶었던 한라산등정이 마음에 활력소를 불어 넣어주었다. 조금 흥분이 되었다. 여행은 살아 있는 교과라는 어느 시인의 시구가 생각났다. 군산에서 출발하여 제주에 도착하니 예정 시간보다 좀 늦었다. 공항 6번 게이트에서 서귀포 행 버스를 타고 중문 L호텔에 도착하여 여장을 풀고 밖을 보니 하늘에 먹구름이 끼어 곧 비가 쏟아질 것 같았다.

 

 한라산에 오르는 방법은, 도보로 완주하는 방법과 차로 중간까지 가서 오르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첫 등반이라 왕복 5시간 정도 걸리는 영실기암 등산로를 이용하기로 하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창문을 세차게 뒤흔드는 소리에 창밖을 보니 폭풍우를 동반한 비가 양동이로 물을 퍼붓듯 쏟아졌다. 깊은 잠에 빠진 아내의 숨결이 파도처럼 출렁거렸다. 피곤한가 보다. 산에 오를 수 있을까? 벨이 울린다. 손 사장의 모닝콜이다. 비가 그치고 바람도 잦아드는 고요한 아침이다. 매우 신선한 공기와 맑은 하늘을 보며 변화무쌍한 제주의 날씨에 혀를 내두르고 말았다. 서둘러 영실 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버스는 비탈길을 마치 곡예 듯 달려 영실에 도착했다. 벌써 주차장이며 인도는 인산인해였다. 안내도를 보니 이곳에서 영실 탐방로까지는 약 2km거리다. 택시를 이용하려니 기다리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걷기로 했다. 오르는 길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이곳을 오르며 무리한 것이 등반 내내 힘들게 했다. 휴게소는 해발 1,280m에 있고, 여기서부터 오르는 분기점이다. 공기가 참 맑고 신선했다. 청송이 너무 좋으니 기념사진 하나 찍으라는 손 사장의 권유에 못이기는 척 응했다. 음이온이 흘러 심호흡을 깊게 하고 나니 가벼워진 느낌이다. 정상까지는 약 670m정도인데 현재 몸 상태로 오를 수 있을까 불안했지만, 젊은 부부가 4-5세 되는 어린아이와 함께 오르는 걸 보고 용기를 냈다. 손 사장은 무리하지 말라고 당부하며 올랐다. 서서히 오르면 되겠지 마음을 다지며 한 발 한 발 나무계단을 오르려니 쉽지 않았다. 계단의 저주인지 화산석이 깔린 길 입구에 다다르자 다리에 힘이 풀렸다.

 "여보, 돌아가지, 힘들어!" 지친 아내는 울상을 지었다. 바로 앞 영실기암의 신비가 눈에 들어와, 돌아서기엔 너무 아쉽쉬웠다. 1,600m 고지에 기암괴석이 계곡을 이루고 솟구친 돌기둥과 절벽 사이로 샘솟는 물소리며 새소리가 화음을 이루니 무릉도원에 다다른 기분이었다. 잠시 쉬며 아내를 달랬다. 지나는 사람들도 윗세오름까지 다 왔다며 용기를 북돋아주었다. 양사언의 ‘태산이 높다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 를 반복적으로 중얼거리며 걷다가, 잠시 다리를 쉬는데 어디선가 까악 까악 까마귀 울음소리가 들렸다. 마치 격려하듯 울어댔다. 까마귀의 응원 덕에 좀 수월하게 병풍바위에 올랐다. 올라오면서 본 느낌과 내려다보 는 느낌이 사뭇 달랐다. 그래서 영실기암, 오백나한, 병풍바위 등으로 명명되었나 보다. 열두 폭 병풍으로 둘러친 듯 수려한 기암괴석에 홀리니 마치 구름 위에 떠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주위에 도열한 구상나무며 노관주나무는 모진 풍파에 시달리다 벌거벗은 이유를 무언으로 하소연하는 형상이었다. 어제 비가 그렇게 내렸는데 땅에 물기가 조금 있을 뿐이었다. 아마 화산암자대라서 그런가 보다.

 힘들고 어려운 고비를 넘기니 평평한 윗세오름이다. 해발 1,700m 지점이다. 억새와 작달만한 나무들이 즐비했다. 여기저기 놓인 화산석의 날카로움이 예사롭지 않았다. 15m 전방에 노루터약수가 있다는 안내 표지판이 보였다. 기쁜 나머지 뛰어가 옹달샘 물을 한 바가지 마시던 아내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흘렀다. 참 시원한 옹달샘 물이었다. 목을 달래고 저 멀리에 산방산이며 마라도를 보니 바다와 어우러진 모습이 큰 화폭에 담은 한 폭의 산수화 같았다. 가슴이 뛰었다. 이 희열은 산자수려하게 펼쳐진 대자연이 우리에게 주는 축복이다. 뒤로는 원주형으로 솟아오른 영봉이 흰구름에 싸여 영롱한 자태를 보일락말락 술래잡기를 즐기며 우리를 반겼다. 이 평화로운 분지에 제주도 43사건의 피비린내가 풍기는 듯 암울한 전운이 감돌았다. 모두 대승적 차원에서 잘 매듭되어지기 바란다.

 

  오늘은 시간이 늦어 백록담에 오를 수 없어 분기점에서 분화구를 둘러보았다. 연꽃처럼 생긴 모형에 마치 대접 같아 보였다. 커다란 분화구가 360여 개의 화산재로 이루어져 오밀조밀한 모습이 경이로웠다. 영봉 분화구는 제주의 실제 모습과 비슷하게 생겼다고 한다. 정상에 오르지 못한 것이 아쉬웠지만 여기까지 오른 것만 해도 얼마나 다행인가?

 

 휴게소는 넓은 분지에 아늑히 자리하고 있었다. 그곳에서 기다리던 손 사장 내외가 반겨주었다. 휴게소에서 준비한 컵라면으로 빈 뱃속을 달랬다. 돌에 걸터앉아 먹어본 컵라면 맛은 별미였다. 맛보지 않고는 느낄 수 없는 기쁨이었다. 식곤증과 겹친 피로감으로 눈이 감겼다. 서둘러 비교적 완만한 어리목방면으로 하산하기로 했다. 길은 트레킹코스로 조성되었으나 내려가기가 쉽지 않았다. 등산은 오를 때보다 하산이 더 어렵다는 말이 진실인 것 같았다. 이곳에서 주차장까진 4.7Km. 내려오는 길목마다 기묘한 화산 석 사이에 묻힌 듯 자리 잡은 철쭉들은 잘 가꾼 분재처럼 아담하고 보기 좋았다. 아내는 감탄사를 쏟아내며 기쁨을 발산하고 내려 올 줄 몰랐다. 늦는다고 소리쳐도 발걸음을 떼지 못했다. 중간 중간에 추억을 남기려는 젊은이들이 발길을 막았다. 순간 손 사장 부인이 엉덩방아를 찧었으나 다행히 일어서서 걸었다. 나무사이로 기계음소리가 들리는 곳을 보니 환자나 노약자를 싣고 내려가는 모노레일 소리였다. 타고 내려가는 사람들을 부럽게 바라보는데 아내가 옆구리를 찔렀다. 놀림을 받으며 어리목주차장까지 무사히 내려왔다. 포기하지 않고 내려와 기뻤다. 고희를 넘긴 내가 아내와 함께 꿈에 그리던 한라산 등정을 했다. 너무나도 기뻐서 가슴이 뭉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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