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수가 빚어낸 놀라운 예술

2018.11.29 05:48

신팔복 조회 수:5

지하수가 빚어낸 놀라운 예술

- 진안초등학교 48회 동창여행기(2) -

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신팔복

 

 

 

 

 

  도담삼봉에서 즐겁게 저녁식사를 마치고 예약된 펜션(pension)으로 찾아갔다. 단양읍 노동리 가리점하우스였다. 고즈넉한 외딴 산골이라 우리의 여흥을 즐길 마땅한 장소는 없었다. 짐을 놓고 다시 한 방에 모였다. 준비한 술과 안주를 나누어 상마다 차리고 빙 둘러앉아 서로 권했다. 아무렇게나 하는 말과 어줍잖은 행동에도 껄껄껄 웃어댔다. 특히 학창시절에 있었던 시답잖은 비밀이라도 나오면 박장대소가 터졌다. 차츰 분위기가 고조되었고 흥취가 절로 솟아나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나무젓가락으로 상을 두드리며 흘러간 옛 노래를 합창했다. 장단을 치며 부르는 노래는 우리가 옛날 술집에서 불렀던 젊은 날의 뽕짝이었다. 분위기는 더욱더 흥겨워졌다. 춤추고 노래하며 손뼉치고, 웃다가 배꼽을 잡는 동심이었다.

 

  아침식사를 마치고 영춘면에 있는 온달관광지로 갔다. 고구려 25대 평원왕 때 울보 평강공주와 바보 온달 장군의 전설이 얽혀있는 곳이다. 평강공주는 지극한 사랑과 내조로 온달을 고구려의 명장으로 만들었다. 용맹한 온달 장군은 신라가 쳐들어왔을 때 이곳 온달산성에서 싸우다 숨을 거뒀다 한다. 온달 관광지는 높다란 성곽과 망루, 궁전과 고대광실, 초가집과 저잣거리 등 테마공원으로 조성되어 있었다. 유물전시관에는 왕과 왕비, 천추태후, 고관대작, 궁인, 서민 등이 복색을 갖추고 전시되어 있었다. 천추태후와 악수하고 나와 누대에 올라보니 굽은 남한강 줄기가 지난날의 역사를 간직한 채 유유히 흐르고 있었다.

 

  온달산성 아래에 있는 온달동굴은 높이가 낮아 헬멧(helmet)을 쓰고 들어가야 했다. 지질시대는 4, 5억 년 전이며 동굴생성은 약 10만 년 전부터 생성된 것이라는데 길이가 760m나 되는 천연동굴이었다. 안으로 들어가자 갑자기 어두워졌다. 조심해 걸었지만, 천정에 머리를 찧었다. 헬멧을 쓰지 않았더라면 구경도 못 할 뻔했다. 눅눅한 동굴 속을 엎드려 걸었다. 철다리길 밑으로 많은 지하수가 도랑물처럼 흘렀다. 동굴산호라 불리는 종유석은 층층이 쌓여 빛났다. 마치 추운 겨울에 벼랑으로 떨어지는 물이 바위벽에 얼어붙은 것처럼 울퉁불퉁한 돌고드름이었다. 궁전이 있고 온달과 평강공주, 선녀와 나무꾼 모양의 암석이 조명을 받아 아름다웠다. 용암동굴과 달리 석회동굴은 석회암 지대에 내린 빗물이 땅속으로 스며들어 석회성분을 녹여서 만든다니 수만 년의 세월을 간직한 대자연의 신비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온달산성을 오르지 못한 것이 아쉬움으로 남았다.

 

  또다시 고수동굴을 찾아갔다. 고수동굴도 국가지정문화재 천연기념물로 예전부터 이름난 곳이다. 학술적 가치가 매우 높은 자연유산으로 1976년부터 일반인에게 공개되었다고 한다. 동굴의 총 길이는 1,395m로 공개구간은 약 940m이고 미공개 구간도 455m나 되었다. 동굴이 크고 높고 웅장했다. 힘찬 날갯짓이 돋보이는 독수리 바위와 석순이 굳은 도담삼봉 바위를 보고 안으로 들어가는데 휘황찬란한 암석들이 무리지어 나타났다. 만물상이었다. 여러 모양을 자연과 동물, 사람과 비교해 보니 눈이 현란했다. 지하에 이런 비경이 있다니, 놀라운 일이었다. 천사의 날개처럼 펼쳐진 종유석을 뒤로하고 회전계단을 돌아 올라서니 우람한 동굴 산호가 층층이 쌓여있어 일행을 내려다 보고 있었다. 거대한 암석에 위압감을 느꼈다. 움푹한 선녀탕과 오밀조밀한 다랑논엔 지하수가 흘러넘쳤다.

 

  사랑의 계곡에 들어서서 사랑 바위 앞에 섰다. 천장에서 내려오는 종유석과 바닥에서 자라나는 석순이 만남을 기약하고 있었다. 한 해에 겨우 티끌만큼만 자란다니 수십만 년이 지나야 만나게 될 인연인 것 같아 안타까운 사랑이었다. 천지창조지대는 하늘의 세상을 옮겨놓은 듯 천당성벽, 창조의 하늘 등 경이로운 세상을 만들어 놓았다. 동물 꼬리 모양의 종유석, 사자바위, 새끼문어, 인어바위, 개선문, 성모마리아상 등 밖에서는 볼 수 없는 별천지를 동굴 내시경을 보듯 흥미진진하게 감상(鑑賞)했다. 지하수가 빚어낸 위대한 예술작품이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도 노래를 함께 부르며 흥을 이어갔다. 언제 봐도 막역한 친구들이다. 벌써 수십 년, 흰머리와 굽은 등이 거친 세파를 헤치고 살아온 흔적이었다. 한 친구의 말처럼 남은 세월 꾸준하게 건강관리 하며 아프지 말고, 욕심을 내려놓고, 작은 보람이라도 찾아 노년의 외로움을 이겨나가길 바랐다. 오랜만에 동창들과 함께한 이번 여행은 오래도록 기억될 행복한 시간이었다.

                                               (2018. 11.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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