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을 끝냈지만

2018.11.30 05:28

이진숙 조회 수:54

김장을 끝냈지만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수요반 이진숙

 

 

 

 

 드디어 김장이 끝났다. 몸은 말할 수 없이 개운하다. 하지만 마음 한 쪽이 허전함은 왜일까? 해마다 이맘 때쯤이면 어디를 가나 인사말이 ‘김장하셨어요?’였다. 그만큼 김장은 예나 지금이나 중요하고도 크나큰 연중행사이기 때문이다.

 옛날에는 겨울양식이라고 할 만큼 김장은 중요한 일이었다. 보통 가정에서의 김장은 배추 한 접(100포기)를 하는 것이 다반사였다. 시대가 변하고 세월이 흐르면서 김장을 직접 담그는 집보다는 전문으로 하는 곳에 맡기거나, 아니면 그때그때 필요에 따라 사먹는 집이 많아졌다. 또 간편하게 ‘절인배추’를 사다 하는 집들도 많아졌다.

 나도 직장생활을 할 때는 더러 ‘절인배추’를 사다 김장을 한 때도 있었다. 식성이 예민한 편이 아닌데도 반찬만은 직접 해 먹어야 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 아무리 귀찮고 몸이 아파도 꼭 집에서 반찬을 만들어 먹곤 했다. 물론 대부분의 주부들도 예외 없이 다 그렇게 살고 있다. 더욱이 김치를 사먹을 생각은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었다. 특히 퇴직한 다음 아파트가 아닌 한적한 곳에 집을 마련하여 살게 된 뒤로는 텃밭에서 채소를 가꾸게 되었고, 대부분의 채소를 우리 텃밭에서 가꾸어 먹고 있다.

 올해는 유난히 배추농사가 잘 되었다. 십여 년 넘게 배추농사를 지었는데 올해처럼 잘 된 적은 없었다. 밭에서 배추를 뽑으면서 ‘배추장사를 해도 되겠는 걸!’ 하며 서로 농담을 건네며 즐거워했다. 우리가 농사를 잘 지은 것이 아니라 종자가 좋아서였을 것이다.

 해마다 4~50포기 정도는 김장을 했었다. 올해는 30여 포기만 해도 충분할 것 같았다. 그래도 혹시나 모자라지 않을까 해서 40포기를 뽑아 손수레에 싣고, 남편은 앞에서 끌고 나는 뒤에서 밀며 수돗가에 있는 평상으로 옮겨 놓았다. 남편이 칼로 배추를 반으로 자르기 시작했다. 속이 노랗고 튼실하게 꽉 찬 것이 초록색 잎도 적당히 있어 김치가 맛있게 생겼다. 그가 넷 쪽으로 배추를 잘라 주면 나는 물에 소금을 풀어놓은 커다란 통에 푹 담갔다가 또 다른 통으로 옮겨 배추위에 적당히 굵은소금을 뿌려 주었다. 통속에 배추가 쌓일수록 허리는 점점 굽어지고 손놀림은 더욱 더뎌졌다. 배추가 커다란 통에 가득 차게 되자 배추를 절이는 작업이 끝났다. 이제는 밤새 저희들끼리 통 속에서 적당히 숨이 죽기를 기다리면 된다.

 김장은 단 하루 만에 할 수 없는 일이다. 적어도 이틀 아니면 한 사나흘은 해야 맛있는 김장 김치가 담가진다. 미처 해가 솟아오르기 전에 수돗가에 나가 어제 절여 놓은 배추를 뒤적뒤적 자리를 바꾸어 주었다. 그래야만 골고루 숨이 잘 죽어 간이 딱 맞게 절여진다.

 김장하기로 마음먹었던 날은 날씨가 추워진다는 예보가 있어 예정된 날짜보다 며칠을 앞당겼다. 그러니 김장김치에 들어갈 재료들이 준비가 덜 될 수밖에. 아침 일찍 부랴부랴 서둘러 시장에 갔다. 김장철임을 실감할 수 있었다. 산더미처럼 쌓인 배추와 무들, 시장 한가운데 대파가 열을 맞추어 소복이 쌓여 있었다. 총각무도 매무새를 곱게 다듬고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김장을 하지 않는 집들도 많다는데 그래도 김장하는 집이 더 많은 가보다. 이렇게 많은 김장거리들이 나와 있는 것을 보니. 그런데 이렇게 많은 것들을 누가 다 사갈까. 괜한 걱정이 되었다. 이런 채소들은 우리 밭에 있으니 나는 내가 살 것을 둘러 보았다. 마침 깨끗하게 몸단장을 한 미나리가 눈에 띄었다. 그런데 그 보다 먼저 때깔이 아주 좋은 표고버섯이 눈에 들어왔다. 해마다 표고버섯을 사다 말려서 음식을 해 먹었는데 올해는 그 시기를 놓친 것 같아 서운했는데, ‘떡본 김에 제사 지낸다’ 고 표고버섯을 두 상자나 덥석 샀다. 젓갈 시장에 가서 액젓도 사고 생선가게에서 생새우와 낙지도 샀다. 이것들을 차에 싣고 집으로 오니 해야 될 일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일꾼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런 철딱서니하곤 이렇게 많은 일들이 있는데 생각지도 않던 버섯을 덜컥 사버렸으니, 버섯을 말리려면 지금 바로 손질해야만 했다. 아직도 내가 초보 주부인 것 같아 참 한심했다. 서둘러 버섯을 손질해서 채반에 널어 햇볕 아래 놓았다. 그는 대파와 갓을 뽑으러, 나는 쪽파를 뽑으러 밭으로 가서 손발을 열심히 놀렸다.

 

 뱃속에서는 밥 달라고 아우성이지만 평상 귀퉁이에 있는 홍시로 뱃속을 달래고 소금에 잘 절여진 배추를 씻었다.

가까이 사는 친척도 없고 동기간들도 모두 직장일로 바쁘다. 더구나 우리 자식들은 멀리 살고 있으니 오로지 우리 둘이 손발을 맞추어 일을 해야 했다. 잘 씻어진 배추를 그가 커다란 소쿠리에 물이 잘 빠지도록 정리를 해 놓았다. 배추가 몸에서 물을 빼는 동안 나는 칼로 양념거리를 썰고, 그는 그 사이 다른 재료들을 손질해 주었다. 한두 해 해본 것이 아니니 그와 나는 손발이 척척 잘도 맞았다. 어느덧 해가 산 너머로 꼴깍 넘어가고 집 앞 가로등에 불이 켜졌다. 하루 종일 일에 치어 더 이상 기운이 남아 있질 않는 나를 대신하여 먼저 들어간 그가 하얀 쌀밥을 해 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아침에 서둘러 밥을 먹고 처음 먹은 밥이었다. 역시 남편밖에 없다.

  밥숟가락 놓기가 무섭게 잠이 들었다. 잠깐 잔 것 같은데 밖에는 새들이 아침을 먹으려고 우리 집 감나무에 앉아서 서로 먼저 먹겠다고 울어대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몸이 침대에 딱 붙은 양 일어나려는데 침대가 놓아 주질 않았다. 온몸이 마치 몽둥이로 맞은 듯 아팠다. 아예 아침커피까지 끓여 마시고 해가 솟아올라 마당에 내린 서리가 녹은 다음에야 마당으로 나왔다. 둘이 마주보며 손바닥을 부딪치고 ‘힘냅시다!’하면서 평상에 커다란 함지박을 놓고 전날 열심히 쑤어서 준비한 찹쌀 죽을 부었다.  이제부터는 남편이 제대로 실력을 발휘할 때다. 손에는 크기가 제일 큰 분홍색 고무장갑을 야무지게 끼고 두 손으로 힘껏 고춧가루, 액젓, 마늘 갈아 놓은 것과 생강 등 갖은 양념을 넣고 주무르기 시작했다. 고춧가루 색이 빨갛게 우러나기 시작하면 어제 힘들게 준비해 놓은 온갖 채소를 넣어 살살 버무리면 김치를 담글 양념 준비가 끝난다. 그가 손가락으로 양념을 찍어 나에게 간을 보란다. 간이 딱 맞았다

 “이번 김장은 참 맛있겠는데!”

 “그럼 누가 했는데?”

며 그가 웃었다.  

 평상 앞에 의자를 두 개 놓고 나란히 앉아 소금간이 적당히 밴 배추에 영념을 묻히며 조금 덜 발랐다느니, 그렇게 많이 바르면 매워서 어떻게 먹겠느냐며, 서로 주거니 받거니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김치를 담갔다. 날씨마저 우리를 도와주는 양 등이 따뜻하니 이마에는 약간 땀도 비칠 정도였다. 김치 냉장고에 넣을 통에 김치를 가득 담아 꼭꼭 누른 다음 뚜껑을 덮고 차례차례 늘어놓았다.

 습관처럼 김장 김치용 비닐 봉투를 찾았다. 시댁에 보낼 20여 포기의 김치를 넣기 위해서다. 그러다가 ‘아차! 이번 김장김치를 더 이상 보낼 곳이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이내 기분이 가라앉았다. 해마다 시부모님께 김치와 배추시래기를 가지고 가면 시어머니는 봉투를 열고 그 속에 잇는 김치를 한 가닥 쭉 찢어 입에 넣으시면서 ‘너희들 김치가 훨씬 맛있더라, 수고 했다.’ 하시곤 했었는데…. 40년 넘게 고부간으로 살았지만 그다지 살가운 분은 아니셨다. 그러나 매번 시부모의 빈자리가 생각나곤 한다. 김장을 하다 보니 언뜻언뜻 생각난다. 설상가상 해마다 김치 한두 통은 가져가던 딸네 집에도 이젠 김치가 필요없게 되었다. 모두들 아빠의 나라인 핀란드로 갔으니까. 이래저래 기뻐야 할 김장날에 허전한 마음만 커졌다.

 

 이왕에 챙겨 놓은 봉투이니 그 속에 김치를 넣고 오래 전 혼자되신 시 작은어머니 댁에 보내 드렸다. 시댁 쪽으로 제일 큰 어른이 되신 작은 어머니라도 보살펴 드려야겠다는 생각으로 작년부터 조금씩 보내 드렸었는데 앞으로 더 자주 찾아뵈어야겠다. 이래저래 몸은 피곤하지만 김장을 끝내서 개운했는데 허전한 마음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2018.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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