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과 딸에게 보내는 편지

2018.12.02 10:43

김학 조회 수:60

아들과 딸에게 보내는 편지

                                                                                                      김 학



가을이 겨울로 접어드는 길목이어서 그런지 날씨가 쌀쌀하구나. 손자손녀들도 감기에 걸리지 않았느냐? 난방비 줄이겠다고 너무 춥게 살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들아 딸아, 지난해 미성년자에 대한 아파트 증여 재산가액이 1조원을 넘었다는 뉴스를 보고 나는 깜짝 놀랐다. 아파트 두 채를 4억 원에 산 네 살짜리 유치원생이 있는가 하면, 11억 원짜리 아파트를 산 초등학생도 있다더구나. 어린이들이 무슨 돈으로 그렇게 비싼 아파트를 샀단 말이냐?

국세청은 제대로 세무서에 신고도 하지 않고 부동산을 취득한 미성년자 225명을 조사 중이라더라. 이게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우리나라 대한민국의 이야기란다. 이런 걸 너희들은 어떻게 생각하니?

조사 결과가 어떻게 나타날지 기대가 된다. 소득도 없는 미성년자들이 어떻게 그처럼 비싼 아파트를 살 수 있었겠니? 미성년자의 이름만 빌리고 그 부모가 돈을 냈으리라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일이 아니겠니? 그 부모들은 어린 자녀들에게 일찍부터 부동산투자 실습을 시키려고 그런 것인지는 모르지만, 바람직한 가정교육은 아닐 줄 안다.

아들아 딸아, 너희들에게 어릴 때 그런 부동산투자 실습을 시키지 못하여 미안하다. 너희들도 어려서부터 그런 교육을 받았더라면 40대에 접어든 지금 너희들이 재테크를 더 잘 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하지만 아들아 딸아, 아빠가 너희들에게 그런 실습 기회를 주지 못한 걸 다행으로 여기면 안 되겠니? 그 덕에 너희들이 불법과 탈법을 저지르지 않았으니까.

아빠는 평생 월급쟁이 생활을 하면서 너희들을 대학까지 가르치느라 허리가 휘었단다. 그러니 어린 너희들 이름으로 땅이나 아파트를 살 엄두조차 낼 수 없었지. 다행히 너희들 3남매가 착하게 잘 자라주어서 고마웠다. 하지만 이런 뉴스를 보면서 내가 무능한 아빠인 것 같아 너희들에게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더구나.

어느 초등학생은 할아버지에게서 6억 5천만 원짜리 아파트를 증여받았다고 하더라. 이 기사를 보고나니 사랑하는 여섯 명의 손자손녀들에게도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지 뭐니? 지금 이 할아버지는 고작 2억 원 남짓한 아파트에서 살고 있으니 어떡하면 좋겠느냐? 손자손녀들에게도 미안하다고 사과를 해야 할까? 참으로 아버지 할아버지 노릇하기도 힘든 세상인 것 같다.

18살짜리 어떤 고등학생은 8억 원을 증여받았다고 세무서에 신고했지만 실제로는 9억 원짜리 아파트를 구입하고, 12억 원의 자금을 지출했다더구나. 신고를 하려거든 정직하게 할 일이지 이게 무어란 말이냐?

어떤 미성년자는 고액부동산과 예금, 주식을 보유하고 있을 뿐 아니라 부동산 임대소득을 올리기도 한다더구나. 이래서야 되겠니? 불법이나 탈법으로 재테크를 하려거든 어른 이름으로 할 일이지 왜 때 묻지 않은 어린 자녀나 손자손녀들까지 끌어들인단 말이냐?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치고 싶어 그랬는지 물어보고 싶구나.

아들아 딸아, 너희들에게 그런 불법과 탈법을 가르치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여겨주기 바란다. 아빠가 무능해서 그런 것이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너희들이 착하게 살게 되지 않았느냐? 세상은 순리에 따라 착하게 사는 게 좋단다. 그래야 마음이 편하니 말이다.

몇 년 전, 나는 너희들이랑 함께 살던 단독주택 한 채를 팔고서 양도세 천만 원을 낸 적이 있단다. 세금이란 게 무척 비싸더구나. 그래도 세무서에 제대로 세금을 내고 살아야 편안하니 어쩌겠니? 또 얼마 전에는 산 4정보를 팔고 양도세를 5천만 원이나 내기도 했었다. 세금이 너무 비싸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 세금을 내고 나니 마음이 가볍더구나. 법을 어기면서 살 수는 없는 일이 아니냐?

아들아 딸아, 너희들에게 꼭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 살다가 너희들이 혹 부자가 되더라도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요즘의 졸부들처럼 너희 자손들에게 불법이나 탈법으로 재산을 물려주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빠는 시골 큰 기와집에서 살다가 전주로 이사를 오면서 셋방살이부터 시작했단다. 셋방살이를 하다가 전셋집으로 옮겼고, 드디어 내 집을 마련하기까지의 과정을 겪으면서 그런 삶이 진짜 행복임을 알았다. 1층짜리 단독주택에서 살다가 2층짜리 단독주택을 지어 이사를 할 때는 천하를 얻은 듯 부러울 것이 없었다. 그러다가 아파트로 이사를 가니 편리하여 살맛이 나더구나. 너희들이 태어나서 아빠엄마랑 함께 살았던 집들을 다 기억하니? 돌아가신 할머니는 너희들을 얼마나 사랑하셨니? 가족끼리 오순도순 정을 나누며 사는 게 중요하지 철모르는 어린 아이에게 아파트 몇 채를 불법으로 물려주는 게 무슨 도움이 되겠니?

세상을 살다보니 과욕(過慾)은 금물이더라. 욕심이 죄를 낳고 죄가 사망을 낳는다고 하지 않더냐? 그러니 너희는 타고난 천성대로 욕심 부리지 말고 착하게 살아가면 좋겠다.

아들아 딸아, 너희들이 서울에서 대학에 다닐 때 아파트 전세를 얻어주었는데 2년이 지나자 8천만 원이던 전세금을 1억 3천만 원으로 올려달라고 했던 일을 기억하니? 그때 서울의 부자들은 피도 눈물도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었지 않니? 그런 어려움을 겪은 너희들이 결혼하여 지금의 조그마한 보금자리를 마련한 추억을 잊지 말고 살아가기 바란다. 전셋집에 살던 때의 기억을 늘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아들아 딸아, 이제는 아빠가 너희들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하지 않아도 괜찮겠지?

(2018. 12.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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